Q&A

[Q & A] 요즘 다들 점보러 다니는데 저도 점 봐도 될까요?

knowledgeplatform100 2026. 7. 3. 08:49

두려움을 몰아내는 복음, 점을 끊게 하는 믿음

본문 : 요한일서 4:18 / 히브리서 9:27 / 요한복음 11:25-26

들어가는 말

복음을 믿는 사람이 점을 보아도 될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점술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그 질문의 뿌리에는 더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미래가 더 두렵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가장 큰 문제가 미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성도님이 새벽예배 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을 더 깊이 믿게 되면서 점집 예약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첫째, 사람은 미래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점을 찾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선언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 아닙니다. 

사업이 불안하고, 건강이 걱정되고, 자녀의 미래가 염려되고, 죽음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점술은 바로 이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조금 맞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람을 계속 의존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복음은 두려움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둘째, 성경은 미래를 점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은 죽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현실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26)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강조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사주도, 운세도, 별자리도 결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움직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0절은 "너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며, 로마서 8장 28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복음은 점을 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끝내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점을 끊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 점도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용서하셨고,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 안에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미래는 몰라도 괜찮습니다." "내일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 믿음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맺음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래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점술은 불안을 먹고 자라지만, 복음은 믿음을 통해 평안을 줍니다.

점술은 사람을 묶지만, 복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점술은 내일을 예측하려 하지만, 복음은 영원을 보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운명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십시오.

 

복음은 미래를 설명하는 소식이 아니라, 미래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시작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점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이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