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것들

제국의 명암: 바벨론의 환상과 그리스도의 실재(이사야 13–14장)
핵심 질문:
“무엇이 영원한 나라를 만드는가? 힘과 부와 성공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그리스도의 통치인가?”
1. 오프닝 —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마지막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무엇이 영원합니까?”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제국들이 있습니다. 바벨론이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있었습니다. 페르시아가 있었습니다. 헬라가 있었습니다.
로마가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사람들은 거대한 국가와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 금융과 자본, 문화와 미디어를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이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다른 시선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한순간에 흔드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13장 19절은 바벨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던 곳이 하나님께 멸망을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바벨론은 당시 세계가 바라보던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영광도 영원하지 않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이사야 13–14장은 단순히 고대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깊은 영적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너의 삶을 실제로 지배하는 왕은 누구인가?”
“너는 바벨론의 나라를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나라를 받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운 나라는 아무리 높아도 무너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나라는 아무리 작아 보여도 영원합니다.”
2. 이사야 13장, 14장의 큰 구조 — 하나님은 유다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사야 1–12장에서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 그리고 남은 자와 메시아의 소망이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13장부터 시야가 넓어집니다.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 다메섹, 애굽 등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1–12장과 13–23장을 구분하면서, 13장부터는 바벨론을 시작으로 여러 열방을 향한 심판 선포가 이어진다는
구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신학적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24편 1절은 말씀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가 아무리 강해져도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지 않습니다.
제국이 스스로 말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역사는 내가 주관한다.”
제국이 말합니다. “우리가 세계를 움직인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이사야 13–14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현대 학계에서도 이사야 13–23장을 단순히 각 나라에 대한 독립적인 심판 선언으로만 보지 않고,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이라는 더 넓은 주제 안에서 연구합니다.
3. 바벨론의 시작 — 하나님 없는 문명이 만든 거대한 탑
바벨론을 이해하려면 창세기 11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여기에서 바벨론 정신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내자.”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바벨론이 있습니다.
“내 능력이면 된다.”
“내 경력이 나를 지켜준다.”
“내 돈이 나를 지켜준다.”
“내 인맥이 나를 지켜준다.”
“내가 만든 시스템이 나를 지켜준다.”
“내가 쌓아 놓은 것이 나의 미래를 보장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은 단순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인간 자신을 궁극적인 주권자로 만드는
인간 문명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 “바벨론”이 다시 등장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학자 Dean Flemming은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상징이 고대 제국에만 갇혀 있지 않고, 우상숭배와 경제적 착취, 인간의 비인격화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바벨론은 단지 과거의 지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인간 문명의 모습입니다.
4. 교만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존재의 반역이다
이제 이사야 14장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사야 14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바로 유명한 조롱의 노래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그리고 13–14절입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에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내가.” 내가 올라가겠다. 내가 높아지겠다. 내가 앉겠다. 내가 하나님과 같아지겠다.
교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이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교만을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내 삶의 최종 주권자가 나 자신이라는 치명적인 착각”으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교만은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나를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5. “루시퍼”는 사탄인가? — 본문을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해석상의 질문이 생깁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사야 14장 12절의 “계명성” 또는 “루시퍼”를 곧바로 사탄의 이름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정확하게 읽으면 조금 더 신중해야 합니다. 이사야 14장 전체의 직접적인 대상은 바벨론 왕입니다.
현대 주석 전통에서도 이 구절을 우선적으로 바벨론 왕을 향한 조롱의 노래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USCCB의 주석도 “Morning Star”를 바벨론 왕에게 적용하며, 라틴어 불가타의 Lucifer가 후대 교부 전통에서 사탄에게 적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학술 연구에서도 이사야 14:12–15와 에스겔 28:11–19의 왕 이미지가 실제 역사적 왕과 고대 신화적 이미지의 관계 속에서 연구되어 왔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흔히 “헬렐 벤 샤하르”로 음역되며, “빛나는 자, 새벽의 아들” 또는 “아침의 별”이라는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첫째, 직접적인 역사적 문맥에서는 바벨론 왕입니다.
둘째, 신학적으로 이 본문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계시 안에서는 이 교만의 궁극적 영적 실체를 사탄의 반역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는 신학적 틀이 형성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0장 1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이사야 14장의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사탄의 창조와 타락에 관한 직접적인 역사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본문의 직접적인 대상은 바벨론 왕이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은 성경 전체의 사탄적
반역이라는 신학적 패턴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힌 접근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존중하면서도 과도한 알레고리를 피하는 방법입니다.
6. 바벨론의 죄 — 높아지려는 욕망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사탄인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안에도 바벨론의 마음이 있는가?”
바벨론은 말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겠다.”
오늘 우리는 말하지 않을까요?
“내가 성공하면.”
“내가 인정받으면.”
“내가 더 가지면.”
“내가 더 높아지면.”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내가 이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그때 나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너를 구원할 수 있느냐?” 바벨론은 높아졌지만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높아질수록 더 깊은 추락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4장 15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여기에서 성경의 역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던 자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만의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마태복음 23:12
7. 이사야 13장의 “여호와의 날” — 역사는 하나님의 법정이다
이사야 13장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사야 13장 6절입니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그리고 9절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한 날이 이르러 분노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땅을 황무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단순히 “하나님이 화가 나셨다”는 감정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로 개입하시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시고, 폭력을 심판하시고, 우상숭배를 심판하시고, 자기 절대화를 심판하시며,
인간이 만든 거짓 안전장치를 무너뜨리시는 날입니다.
이 “여호와의 날”을 역사적 심판, 반복되는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되는 최종적 심판이라는 세 차원의 구조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종말론적 패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의 예언에는 종종 가까운 역사적 사건과 더 먼 종말론적 완성이 겹쳐 나타납니다.
바벨론의 실제 몰락은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 안에서 실현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더 큰 심판의 그림자가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다시 바벨론의 몰락을 말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인간의 체계는 결국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8. 돈과 권력은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이사야 13장 17절은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충동하여 그들을 치게 하리니.”
바벨론에게 돈이 있었습니다. 금이 있었습니다.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군사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순간에는 그 모든 것이 바벨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돈은 중요합니다. 경제도 중요합니다. 국가의 안보도 중요합니다. 기술도 중요합니다. 성공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우상이 됩니다.
돈은 좋은 종이지만 나쁜 주인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사역도 하나님보다 앞서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하나님 아래에 두는 것입니다.
권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9. 바벨론은 왜 무너졌는가?
이사야 13–14장을 보면 바벨론은 외부의 공격 때문에만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은 내부적으로 이미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교만이 중심이 되었고, 힘이 정의를 대신했고, 타인을 수단으로 사용했고, 자기 영광이 하나님보다 높아졌습니다.
“심판의 해부학”도 바로 이 과정을 설명합니다.
자기 절대화 → 타인의 수단화 → 구조적 폭력 → 관계의 붕괴. 이것은 아주 중요한 통찰입니다.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중심이다.” 그다음 “다른 사람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다음 “내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사용해도 된다.” 그다음 “힘 있는 사람이 옳다.” 그다음 “약한 사람은 희생되어도 된다.”
이것이 구조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한 사회 전체가 폭력의 시스템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심판은 단순히 외부에서 떨어지는 벼락이 아닙니다.
죄가 끝까지 자라났을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10. 바벨론의 가장 큰 착각 — “나는 영원하다”
이사야 13장 19절을 다시 보십시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던 곳이 하나님께 멸망을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그리고 20절부터 바벨론이 황폐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제국의 역설입니다.
가장 화려한 곳이 가장 황폐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을 보면서 말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너질 것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성경의 관점입니다. 로마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몽골 제국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영제국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소련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강력한 나라들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음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건강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재산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명예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직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박수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습니까?
11. 바벨론의 환상과 그리스도의 실재
여기에서 복음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바벨론의 왕과 예수 그리스도를 정반대의 왕으로 보여줍니다. 바벨론의 왕은 말합니다.
“내가 높아지겠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빌립보서 2장 6–8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벨론의 왕은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려오셨습니다. 바벨론의 왕은 자신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셨습니다. 바벨론의 왕은 힘으로 사람을 지배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벨론은 사람을 자기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12. 십자가는 바벨론의 논리를 뒤집는다
십자가를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입니다. 힘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죽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곳이 왕의 보좌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보십시오. 바벨론 왕은 스스로 높아지려다가 낮아졌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셨기에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한 형벌의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를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힘으로 올라갑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섬김으로 확장됩니다.
세상의 나라는 경쟁으로 세워집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세상의 나라는 두려움으로 사람을 묶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복음으로 사람을 부릅니다.
바벨론의 목적이 자기 이름과 영광을 높이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십자가의
자기희생으로 사람을 섬기는 나라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3.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가?
이제 오늘 말씀의 가장 무서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바벨론은 어디에 있는가?”
멀리 있습니까? 고대 유적지에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한다면, 내 안에 바벨론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원한다면, 내 안에 바벨론이 있습니다.
내가 성공을 하나님보다 사랑한다면, 내 안에 바벨론이 있습니다.
내가 약한 사람을 나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내 안에 바벨론의 정신이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바벨론의 탑을 다시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회개입니다.
14. 영적 기반을 점검하라 — Spiritual Audit
첨부자료의 13번째 슬라이드는 이것을 “나의 영적 기반 감사(Spiritual Audit)”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이 네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십시오.
첫째, 나는 무엇을 묻고 있는가?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게 이익이 되는가?” 만 묻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를 먼저 묻습니까?
둘째, 나는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는가?
성공했을 때 “내가 잘해서 그렇다.” 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 라고 고백합니까?
셋째, 나는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함부로 합니까? 내 목적을 위해 이용합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을 주님께 한 것으로 여깁니까?
넷째, 위기 때 무엇을 붙드는가?
돈입니까? 사람입니까? 경험입니까? 계획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이 네 질문은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보여줍니다.
15. 믿음은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가 아니다
여기에서 믿음에 대한 매우 중요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믿음은 “나는 하나님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도 있으면 더 좋다.” 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없이는 나는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으며, 미래도 맡길 수 없다.”
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내가 설 수 있다.”
고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없이는 나는 설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 설 수 있다는 착각이지만, 믿음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은혜가 시작됩니다.
16. 그러면 무너지는 나라를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의 변화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소망은 세상의 제국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
세상은 흔들립니다.
경제가 흔들립니다.
정치가 흔들립니다.
국제질서가 흔들립니다.
사람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의 이 표현은 현재 우리가 그 나라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예배를 연결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담대함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담대한 것입니다.
17. 바벨론에서 그리스도로 — 신앙의 방향을 바꾸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바벨론처럼 살지 마십시오.
“내가.”
“내 이름.”
“내 영광.”
“내 힘.”
“내 성공.”
“내 소유.” 이것을 삶의 중심에 놓지 마십시오. 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18. 결론 — 무너지는 제국과 영원한 왕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 13–14장은 우리에게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한때 찬란했던 바벨론. 엄청난 권력. 거대한 도시. 화려한 궁전. 막대한 재물. 강력한 군대. 세계가 두려워하던 제국.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에게 증명했습니다. 제국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또 다른 왕을 보여줍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10–11절은 말씀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겠다.” 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바벨론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바벨론은 높아지려다가 낮아졌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셨다가 지극히 높아지셨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환상과 그리스도의 실재의 차이입니다.
19. 오늘의 마지막 질문
오늘 마지막으로 네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돈입니까? 사람입니까? 경력입니까? 내 경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둘째, 나는 누구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내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입니까?
셋째, 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깁니까?
넷째, 내가 무너질 때 무엇이 남습니까?
내 재산이 없어져도, 내 직분이 없어져도, 사람들의 인정이 없어져도, 내 계획이 무너져도, 예수 그리스도가 남습니까?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너지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20. 마지막 선언 — 나는 바벨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택합니다
오늘 우리는 선언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힘으로 나의 세계를 지키려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바벨론처럼 내 이름을 높이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겠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권자로 인정하겠습니다.”
“나는 세상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하겠습니다.”
“나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2장 28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우리가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사랑하는 여러분, 바벨론은 환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실재이십니다. 바벨론의 영광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바벨론의 왕은 무덤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바벨론의 나라는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히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광이 흔들릴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왕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제국이 무너질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내 삶의 기반이 흔들릴 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위에 다시 서십시오.
마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때로 바벨론처럼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보다 우리의 힘을 의지했고, 하나님보다 돈을 의지했고, 하나님보다 사람의 인정을 의지했고,
하나님보다 우리의 경험과 계획을 의지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고, 우리의 영광을 구했으며, 우리의 삶의 최종 주권자가 우리 자신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바벨론의 교만을 무너뜨려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에서 “내가” 라는 말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께서” 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의 왕좌를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내어드리게 하옵소서. 세상의 영광은 사라지고, 제국은 무너지고,
사람의 성공도 지나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영적 기반을 날마다 말씀 앞에서 점검하게 하옵소서.
무엇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게 하시고, 성공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며,
약한 사람을 섬기게 하시고, 위기의 순간에는 돈과 사람과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원자로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바벨론의 문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나타내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사람의 이름을 높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내가 하늘에 올라가리라”가 아니라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날, 모든 제국이 사라지고, 모든 인간의 영광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게 하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이미 받은 자답게 감사하게 하시고, 경외하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 문장 결론
“바벨론은 자기 이름을 높이다 무너졌지만,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높아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원한 안전은 내가 세운 제국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