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영적 전쟁, 영적 타협(죄와 타협하면 죄가 이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사기 1장

「군사적 승리인가, 영적 승리인가 — 작은 타협이 신앙을 무너뜨린다」(사사기 1장)
신앙을 무너뜨린 작은 타협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사사기 1장 전체입니다. 사사기 1장은 겉으로 보면 상당히 성공적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합니다. 적을 공격합니다. 여러 성읍을 차지합니다.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점령하고, 드빌을 점령합니다.
갈렙은 아낙 자손을 몰아냅니다. 유다 지파는 상당한 지역을 차지합니다. 요셉 가문도 벧엘을 점령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사기 1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이스라엘은 승리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쫓아내지 못하였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다.”
“그들이 거주하였다.”
“그들을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승리를 완전한 승리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땅을 빼앗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기 1장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얼마나 온전히 순종했는가?”
1. 사사기 1장은 승리의 기록처럼 시작합니다
사사기 1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사기 1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합니다.
그리고 승리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일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점점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자신들의 유익이 기준이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것을 남겨두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를 계산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영적인 타협이 시작됩니다.
2. 악사 —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적극적으로 구한 사람
사사기 1장 11절부터 15절은 매우 짧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갈렙에게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악사입니다.
갈렙은 드빌을 점령하는 사람에게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갈렙의 친족인 옷니엘이 드빌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악사는 옷니엘의 아내가 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악사가 단순히 결혼하는 여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악사의 행동을 특별히 기록합니다. 악사는 자기 아버지 갈렙에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게 복을 주소서.”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내게 샘물을 주소서.” 갈렙은 악사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줍니다.
이 이야기는 여호수아 15장에도 평행적으로 나타납니다. 연구자들은 이 본문을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남부 지파들의 정착과 약속의 땅 성취라는 큰 문맥에서 읽습니다. 악사는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소극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하는 믿음입니다. 그녀는 이미 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남방의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땅만 가지고 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땅에서 생명이 살아나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악사는 말합니다. “샘물을 주십시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실제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 더 구해야 합니다. 악사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땅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물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욕심과 다릅니다.
욕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더 온전히 누리기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악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말씀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3. 악사의 믿음과 이스라엘의 타협은 서로 대조됩니다
사사기 1장의 구조를 보면 놀라운 대조가 나타납니다. 한쪽에는 악사가 있습니다. 악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적극적으로 붙듭니다. 다른 한쪽에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쫓아내라고 하신 사람들을 남겨둡니다.
왜 남겨둡니까? 자신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악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더 온전히 누리기 위해 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제거하라고 하신 것을 자신의 이익 때문에 남겨둡니다.
이것이 사사기 1장의 중요한 신학적 대조입니다.
악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온전히 누리기 위해 적극적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하기 위해 타협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우리의 문제는 항상 큰 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타협에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것 하나쯤은 남겨둬도 되겠지.” “이 정도 세상과 타협한다고 신앙이 무너지겠어?”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작은 타협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타협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4. 철 병거가 문제였을까요?
사사기 1장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가 1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를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쫓아내지 못하였더라.”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는데 왜 철 병거를 이기지 못했습니까?”
철 병거가 하나님보다 강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철 병거가 하나님께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애굽의 병거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여호수아 11장에서도 이스라엘은 병거와 말을 가진 강력한 가나안 연합군을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사사기 1장 19절의 핵심은 “철 병거가 너무 강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눈앞의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크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주석과 연구에서도 사사기 1장 19절의 핵심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불완전한 정복과 신뢰의 문제로 해석합니다.
철 병거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의 미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을 포기하면 내가 손해 본다”는 두려움입니다.
문제는 그것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보다 커지는 순간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편 20편 7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철 병거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철 병거를 보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5. 가장 무서운 타협은 ‘손해 보지 않기 위한 타협’입니다
사사기 1장의 후반부로 가면 이스라엘의 타협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납니다.
27절 이후를 보면 여러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뒤에도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을 강제 노동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저들을 이길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저들을 남겨두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데 굳이 쫓아낼 필요가 있을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운 발전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죄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죄와 타협하면 죄가 이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세상에 끌려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세상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통제당합니다.
6. 죄는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를 지배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이해하려면 신명기와 출애굽기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3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우상숭배와 언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왜입니까?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사기 2장에 가면 바로 그 일이 현실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즉 사사기 1장은 사사기 2장의 원인을 설명하는 장입니다. 그리고 사사기 2장은 사사기 전체의 반복되는 영적 악순환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타협합니다.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대적에게 넘겨집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십니다.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다시 타락합니다. 이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그러므로 사사기 1장의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말은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만들어내는 씨앗입니다.
7. 작은 타협은 다음 세대의 큰 시험이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타협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전달됩니다. 우리의 가정에 전달됩니다. 우리의 교회에 전달됩니다. 우리의 공동체에 전달됩니다.
출애굽기 23장은 가나안의 우상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하게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만 봅니다.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보십니다. 우리는 오늘의 이익을 계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적 결과를 가져올지를 보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내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돈만 남기고 있습니까? 집만 남기고 있습니까? 학력만 남기고 있습니까? 좋은 직장만 남기고 있습니까?
사회적 성공만 남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남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가 우리를 기억하면서 “우리 부모님은 성공한 분이었다.” 라고만 말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우리 부모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지켰다.”
“우리 부모님은 세상의 박수를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이 믿음의 유산입니다.
8. 성공했는데 실패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1장의 가장 무서운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성공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많은 성읍을 차지했습니다. 적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을 강제노동에 사용할 만큼 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실패한 백성으로 드러내십니다.
왜입니까? 세상의 성공과 하나님의 평가가 항상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공을 숫자로 판단합니다.
얼마나 벌었는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인정하는가? 얼마나 큰 교회를 이루었는가?
얼마나 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에게 신실했느냐?” “내 말씀을 지켰느냐?” “너에게 맡긴 사람들을 사랑했느냐?” “네가 세상의 유익 때문에 진리를 타협하지 않았느냐?”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남겼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평가 기준입니다.
9. 성공의 흔적보다 신실함의 흔적을 남기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많은 흔적이 남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의 흔적을 남깁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의 흔적을 남깁니다.
어떤 사람은 경력의 흔적을 남깁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의 흔적을 남깁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흔적은 신실함의 흔적입니다.
사사기 1장의 비극은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 삶에서 아직 쫓아내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알고도 타협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끊으라고 하셨는데 아직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돈입니까?
욕심입니까?
분노입니까?
음란입니까?
교만입니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입니까?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입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10. 그러나 여기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사사기 1장은 단순히 “타협하지 마십시오.” 라는 도덕적 교훈으로 끝나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사기의 진짜 문제는 인간이 얼마나 자주 실패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가 결국 우리에게 완전한 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마지막에는 이런 말씀이 반복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이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가?”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더 용감한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더 뛰어난 전략가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왕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구속사는 우리를 그 왕에게 데려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자리에서 성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시험받고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받으셨지만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우상과 타협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 앞에서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이루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은 말씀합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사사기 1장에서 실패하는 인간을 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끝까지 순종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11.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사사기의 문제는 가나안 땅에 적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문제는 이스라엘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구원은 단순히 외적인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십니다.
에스겔 36장 26절은 말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복음은 우리에게 “더 강해져라.” 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더 노력해서 죄를 이겨라.” 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라.” 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은 죄와 타협하는 것을 점점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화는 죄 없는 완벽한 상태를 한순간에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죄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끊어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삶입니다.
12. 영적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이 정도면 됐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사기 1장을 읽으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순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충분히 땅을 차지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노동력으로 사용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온전히 순종하라.” 신앙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났을 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편의대로 조정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결국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부”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일부”만 하면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버리라”고 하셨는데 내가 “관리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셨는데 내가 “적당히 거리를 두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13. 오늘 우리의 ‘철 병거’는 무엇입니까?
이제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봅시다. 여러분에게 철 병거는 무엇입니까?
혹시 돈입니까? “돈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혹시 사람입니까?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혹시 자녀입니까? “내 자녀의 성공이 나의 믿음보다 더 중요해졌습니다.”
혹시 직장입니까?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신앙의 원칙 하나 정도는 포기할 수 있습니다.”
혹시 명예입니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보다 더 중요합니다.”
혹시 세상의 가치관입니까? “모두가 그렇게 사는데 나만 왜 다르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철 병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철 병거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안전은 세상의 병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사람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14. 오늘 하나를 제거하십시오
사사기 1장의 메시지를 오늘 우리의 삶에 아주 실제적으로 적용한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하나를 제거하십시오.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끊어야 할 관계가 있다면 끊으십시오.
버려야 할 습관이 있다면 버리십시오.
회개해야 할 죄가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정리해야 할 물질의 문제가 있다면 정리하십시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려놓으십시오.
왜냐하면 영적 승리는 거대한 결심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15. 우리의 다음 세대가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 우리의 삶을 봅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지 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지 봅니다.
우리가 무엇과 타협하는지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은 “너는 성공해야 한다.” 가 아닙니다. “너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라.” 가 아니라 “하나님을 잃지 말아라.” 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라.” 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라.” 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모님은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지켰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성공보다 신실함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입니다.
결론 —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영적 승리를 구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 1장은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정복하고 있는가?”
우리는 많은 것을 정복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재산을 늘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1장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군사적으로 승리했다고 영적으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순종했다고 온전히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타협은 결코 작은 결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타협이 내일의 습관이 됩니다.
오늘의 습관이 내일의 성품이 됩니다.
오늘의 성품이 다음 세대의 환경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 내 삶에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내가 타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내가 철 병거를 두려워하여 포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내가 눈앞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내려놓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나의 실패보다 크신 은혜를 의지합니다.
나의 연약함보다 크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오늘 한 걸음 순종하게 하시고,
오늘 하나의 죄를 끊게 하시고,
오늘 하나의 타협을 거절하게 하시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성공의 흔적이 아닙니다. 신실함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남겨야 할 것은 세상의 가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인생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실 때 “얼마나 많이 이루었느냐?”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끝까지 나를 신뢰했느냐?”
“끝까지 나의 말씀을 붙들었느냐?”
“끝까지 나에게 신실했느냐?”
사사기 1장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타협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복음은 동시에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너의 힘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하신 왕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세상의 철 병거를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눈앞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하십시오.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선택하십시오.
편안함보다 순종을 선택하십시오.
타협보다 거룩함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루, 작은 신실함 하나를 지켜내십시오. 그 작은 순종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다음 세대를 살리는 거룩한 씨앗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사기 1장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눈앞의 철 병거를 두려워했고, 눈앞의 이익 때문에 말씀과 타협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죄를 보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아직 버리지 못한 우상을 보여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계산을 더 신뢰했다면 회개하게 하옵소서.
악사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필요한 것을 담대하게 구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도록 살아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타협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물려주게 하옵소서.
우리의 성공보다 우리의 신실함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재산보다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게 하시며,
우리의 명예보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우리의 삶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
철 병거를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게 하시고,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게 하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 하나의 죄를 끊고, 오늘 하나의 타협을 거절하며, 오늘 하나의 순종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세상 앞에서 성공한 인생으로만 기억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인생으로 기억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