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타락의 뿌리 '망각' (사사기 3장)

「타락의 패턴을 끊고, 하나님의 구원 패턴 안으로 들어가라」
옷니엘, 에훗, 삼갈 그리고 참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사사기 3장 전체입니다.
사사기 3장은 단순히 옛날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시대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영적 상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왜 사람은 은혜를 경험하고도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가?
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는데도 같은 죄를 반복하는가?
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반복해서 죄를 짓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가?
사사기 3장은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일시적 구원은 궁극적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기 3장에서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시작되는 타락의 패턴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은혜의 패턴입니다.
셋째, 옷니엘과 에훗과 삼갈을 넘어 참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지만, 시험의 목적은 버림이 아니라 성숙입니다
사사기 3장 1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남겨 두신 민족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남겨 두신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였기 때문에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사사기 2장과 연결됩니다.
여호수아 시대를 경험했던 세대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가장 무서운 위기는 고난이 아닙니다. 망각입니다.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왜 죄가 시작됩니까? 하나님을 잊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갑니까? 하나님을 잊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잊기 때문입니다. 왜 예배가 형식이 됩니까? 하나님을 잊기 때문입니다.
왜 작은 죄와 타협합니까? 하나님을 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3장에서 하나님이 남겨 두신 민족들은 일종의 영적 시험대가 됩니다.
그들과 싸울 것인가?
그들과 타협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것인가?
본문은 이것을 “시험”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시험은 무엇입니까?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모르셔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중심을 아십니다.
시험은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믿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떤 시험을 허락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를 깨우십니다. 시험을 통해 믿음을 드러내십니다. 시험을 통해 성장하게 하십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면서,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시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시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우느냐입니다.
2. 타락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사기 3장 5–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딸들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들을 섬깁니다.
여기에서 죄의 발전 단계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가까워집니다. 그다음에는 결혼합니다. 그다음에는 가치관이 섞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배의 대상이 바뀝니다. 삶의 타협이 결국 예배의 타락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죄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타협으로 시작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이 정도 세상적인 것은 괜찮아.”
“내 신앙은 이것 때문에 무너지지 않아.” 그러나 죄는 우리의 경계를 조금씩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게 합니다. 사사기 3장 7절은 이스라엘의 문제를 아주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잊어버림과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잊었더니 다른 것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가 나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것을 섬깁니다.
돈을 섬기거나, 성공을 섬기거나, 명예를 섬기거나, 사람의 인정을 섬기거나, 자녀를 섬기거나, 자기 자신을 섬깁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결국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3. 죄의 패턴은 반드시 심판의 패턴을 동반합니다
사사기 3장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8년 동안 그를 섬겼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 넘기셨다.”
이스라엘의 고통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가볍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죄를 심으면 고통을 거두게 됩니다.
불순종을 심으면 관계의 파괴를 거두게 됩니다. 탐욕을 심으면 영혼의 황폐함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른 것의 종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8년 동안 다른 왕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노예가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죄는 자유가 아닙니다. 죄는 속박입니다.
4. 그런데 인간의 부르짖음보다 먼저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사사기 3장 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셨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회개한 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에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의 반복되는 구조를 보면 그들은 고난이 사라지면 다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완전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로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성취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입니다.
업로드하신 원고가 강조하는 핵심도 바로 이것입니다.
타락은 인간의 죄에서 시작되지만 구원은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5. 옷니엘 — 성령께 붙들린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드디어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이 등장합니다. 사사기 3장 10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다.” 여기에서 사사기의 구원 구조를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옷니엘이 위대한 사람이어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옷니엘의 능력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옷니엘은 구원의 근원이 아니라 구원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시고 옷니엘은 도구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구원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영광은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스가랴 4장 6절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옷니엘 이야기는 이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사람을 붙드시고, 그 사람을 통해 대적을 물리치시고, 백성에게 쉼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땅에 40년 동안 평안이 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사기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옷니엘이 죽습니다.
그리고 다시 죄가 시작됩니다. 왜입니까? 옷니엘이 궁극적인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6. 옷니엘이 죽자 다시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사기 3장 12절은 충격적인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또.” 이 한 단어가 사사기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습니다.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문제는 단순히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진짜 적은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문제인 것처럼 보였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이 문제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문제는 우상을 섬기는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환경만 바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이 바뀌면, 경제적으로 좋아지면,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건강이 좋아지면,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문제는 환경보다 마음입니다. 환경이 좋아져도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으면 다시 무너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환경만 바꾸는 구원이 아닙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구원입니다.
7. 에훗 — 하나님은 사람들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일하십니다
두 번째 사사 에훗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에훗을 소개하면서 특별히 그가 왼손잡이였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오른손은 힘과 명예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에서 왼손잡이 에훗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에훗을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모세는 말이 둔했습니다. 기드온은 작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다윗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어리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약점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약점을 모르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약점까지 아시면서 부르십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약점이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한 사람을 붙드실 때 그 약함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8. 에글론의 죽음 —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한다
에훗 이야기는 사사기에서 가장 극적이고 풍자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압 왕 에글론은 매우 비대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에훗은 조공을 바치는 사람으로 위장하여 왕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왕이여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왕에게 아뢰려 함이니이다.” 에글론은 사람들을 물러가게 합니다.
그리고 에훗이 칼을 꺼내 그를 찌릅니다. 성경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 장면을 묘사합니다.
왜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했을까요? 단순히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적 풍자를 통해 모압의 강대함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에게 조공을 바치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한 사람이 왕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모압의 권력이 무너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 눈에 거대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거대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무엇이 거대한 문제입니까?
경제입니까?
질병입니까?
관계입니까?
미래입니까?
죽음입니까?
사람입니까?
권력입니까?
하나님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시편 46편 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문제의 크기를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9. 에훗의 승리 후 80년의 평안 — 그러나 이것도 궁극적인 구원은 아닙니다
사사기 3장 30절은 에훗의 승리 이후 그 땅에 80년 동안 평안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옷니엘 시대에는 40년, 에훗 시대에는 80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평안도 영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사사들의 구원은 일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사들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인간의 죄성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사사들은 외부의 압제를 물리쳤지만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사들은 이스라엘에게 일시적인 안식을 주었지만 영원한 안식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구약을 복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옷니엘은 참된 구원자가 아닙니다.
에훗도 참된 구원자가 아닙니다.
삼갈도 참된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더 위대한 구원자를 기다리게 만드는 표지판입니다.
10. 삼갈 —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있는 작은 것을 사용하십니다
사사기 3장 31절은 삼갈에 대해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말합니다.
삼갈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대단한 도구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평범한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특별한 도구가 됩니다.
모세에게는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물맷돌이 있었습니다. 삼갈에게는 소 모는 막대기가 있었습니다.
소년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입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누구의 손에 그것이 붙들려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이 작아 보입니까?
여러분의 재능이 작아 보입니까?
여러분의 경험이 부족해 보입니까?
여러분의 사역이 너무 작아 보입니까?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입니다.
삼갈의 기록은 단 한 절이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학자들도 삼갈의 짧은 기록이 다른 사사 이야기와는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가 블레셋의 위협에 맞서 이스라엘을 구한 인물로 소개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11. 그러나 사사기 3장의 진짜 주인공은 옷니엘도 에훗도 삼갈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사기 3장을 단순히 읽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옷니엘처럼 되자.” “우리도 에훗처럼 용감해지자.” “우리도 삼갈처럼 하나님께 쓰임받자.” 물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사기 3장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사들의 구원은 계속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사가 죽으면 다시 타락합니다. 한 번의 구원 이후 다시 죄가 반복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스라엘에게 정말 필요한 구원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성경 전체는 그 질문에 대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옷니엘은 죽었습니다. 에훗도 죽었습니다. 삼갈도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사사들은 일시적인 안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안식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것이 사사기와 복음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사사기의 안식은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안식은 영원합니다.
사사들은 이스라엘을 외부의 압제에서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사들은 원수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사사들의 시대에는 구원이 반복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의 선언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12. 사사기의 반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사사기의 가장 무서운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했는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입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어려우면 기도합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기도가 줄어듭니다. 병들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건강해지면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하나님보다 돈을 의지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예배를 붙듭니다.
문제가 사라지면 예배가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이것이 현대판 사사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시 부르십니다. 말씀으로 깨우십니다. 성령으로 책망하십니다.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으로 부르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13.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다는 사실을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니까 괜찮아.”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묻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은혜는 우리를 죄 가운데 머물게 하지 않고 죄에서 돌아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죄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14.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평안” 또는 “안식”입니다. 옷니엘 이후 40년, 에훗 이후 80년의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평안을 주신 하나님보다 평안 자체를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성공을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건강을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경제적 안정을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자녀의 성공을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인간관계의 평안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최고의 선물은 환경의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15.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끊어야 할 것은 ‘문제’가 아니라 ‘타락의 패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의 패턴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죄로 돌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어도 하나님을 붙드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은 뒤에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축복을 받은 뒤에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성할 때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만 책임지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평안까지 책임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16. 오늘 우리가 점검해야 할 세 가지
첫째, 나는 무엇을 잊고 있는가?
사사기 3장의 첫 번째 문제는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최근에 내가 잊어버린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십시오.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말씀을 회복하십시오.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기도를 회복하십시오.
둘째, 나는 무엇과 타협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결국 그들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자녀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안락함입니까?
성공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오늘 그 우상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셋째, 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누구에게서 찾고 있는가?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계속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옷니엘이 필요했습니다.
에훗이 필요했습니다.
삼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이상 임시적인 사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7. 복음의 결론 — 다시 실패하는 사사가 아니라 영원한 왕이 필요합니다
사사기를 끝까지 읽어가면 상황은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사사들의 이야기는 갈수록 길어지고, 이스라엘의 타락은 갈수록 깊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사사기 21장 25절의 비극적인 선언에 도달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이 사사기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 왕 하나만 세우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죄 없는 왕, 실패하지 않는 왕, 죽음에 매이지 않는 왕, 영원히 통치하는 왕입니다.
그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사기의 모든 일시적 구원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게 합니다.
옷니엘이 보여준 구원, 에훗이 보여준 구원, 삼갈이 보여준 구원은 모두 불완전한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8. 마지막으로 기억하십시오 — 은혜의 시간은 오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단순한 하루가 아닙니다.
회개할 수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날입니다.
말씀을 붙들 수 있는 날입니다.
복음을 믿을 수 있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타락의 패턴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죄를 짓고,
고난을 받고,
부르짖고,
구원받고,
평안해지고,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그 패턴을 이제는 끊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일시적인 옷니엘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에훗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삼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문제가 없어서 평안한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평안한 사람입니다. 고난이 없어야 안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사람입니다.
결론
사사기 3장은 세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잊으면 타락이 시작됩니다.
둘째, 죄는 결국 우리를 다시 종으로 만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부르지만, 사사들의 일시적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타락의 패턴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주님, 제가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습니다.”
“주님, 이제 다시 십자가 앞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의 구원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나의 능력에도 있지 않습니다.”
“나의 의에도 있지 않습니다.”
“나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옷니엘이 죽어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훗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삼갈의 이야기가 한 절밖에 기록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죽지 않는 구원자,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구원자,
다시는 반복되는 임시적인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 안에서 쉬십시오.
오늘 예수님 안에서 회복하십시오.
오늘 예수님 안에서 죄를 끊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맡기신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삼갈에게 소 모는 막대기가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재능,
우리의 물질,
우리의 말,
우리의 기도, 우리의 섬김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작은 것을 사용하셔서 큰 일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나는 더 이상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사사기 3장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타락의 패턴을 끊으십시오. 은혜의 패턴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일시적인 사사가 아니라 영원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깨우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