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두로'의 마음 (이사야 23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8. 12. 11:07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라 — 두로의 심판과 회복, 이사야 23장」

 
 

이사야 23장은 한 도시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 도시는 두로입니다.

두로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역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농사를 지을 넓은 땅을 가진 나라가 아니었지만 바다를 이용했습니다. 이집트의 곡물을 가져오고, 여러 나라의 상품을 중개하고, 먼 지역까지 배를 보내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한다면 국제무역과 금융과 물류가 결합된 세계적인 경제도시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도시를 향하여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왜입니까?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입니까? 사업을 크게 했기 때문입니까? 경제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두로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 부를 자기들의 안전과 영광과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두로는 오래전에 사라진 도시이지만, 두로의 마음은 오늘도 우리 안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 돈이 우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재산을 관리하지만, 어느 순간 재산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지만, 어느 순간 미래를 하나님이 아니라 통장 잔고가 책임져 준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더 깊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풍요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1. 두로는 부유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23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두로에 관한 경고라.” 그리고 이어서 다시스의 배들을 향하여 슬피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로의 항구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두로에게 항구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경제의 심장이었습니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야 했습니다.

상품이 들어오고 나가야 했습니다. 상인들이 모이고 거래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막으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두로 하나만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돈이 슬퍼합니다. 애굽이 고통을 받습니다. 다시스의 배들이 통곡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경제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로의 부는 두로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곡물이 있었고, 먼 나라의 배가 있었고,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있었고, 바다라는 환경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내가 가진 성공도 결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 노력만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수고가 있었고, 가족의 도움이 있었고, 좋은 사람을 만났고, 시대적 환경이 있었고, 건강이 있었고, 교육의 기회가 있었고,

수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그러므로 신앙인은 성공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잘해서 이렇게 되었다.”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두로의 교만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이사야 23장의 중심 질문은 8절에 등장합니다.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두로는 자신들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배가 세계를 연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상인들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부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묻습니다.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9절은 대답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 23장의 핵심을 발견합니다. 두로의 죄는 부 자체가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

 

돈이 죄가 아닙니다. 사업이 죄가 아닙니다. 경제활동이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입니다.

돈이 수단일 때는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주인이 되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너를 안전하게 해줄게.”

“내가 너의 미래를 보장해 줄게.”

“내가 너의 가치를 증명해 줄게.” “내가 많으면 너는 성공한 사람이고, 내가 적으면 너는 실패한 사람이야.”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3. 예수님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의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돈을 가지고 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돈을 관리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누가 주인이냐의 문제입니다. 돈은 좋은 종이 될 수 있지만 나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을 내가 다스려야 하는데, 돈이 나를 다스리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의 규모보다 먼저 마음의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돈이 줄어들었을 때 내가 하나님까지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집니까?

통장의 숫자가 나의 평안을 결정합니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내가 가진 것에 따라 달라집니까?

좋은 집에 사는 것, 좋은 차를 타는 것, 좋은 옷을 입는 것, 많은 자산을 갖는 것, 이 모든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성경은 우리의 가치를 소유에서 찾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는 더 깊은 곳에서 우리의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얼마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정체성은 통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십자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 두로의 항구가 무너지자 모든 것이 흔들렸습니다

이사야 23장 11절은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셨다고 말씀합니다.

두로는 바다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주인은 두로가 아니었습니다. 바다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경제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국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역사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보험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산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죽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기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준비하되 의지하지 않습니다.

저축하되 저축을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계획하되 계획을 하나님보다 높이지 않습니다.

일하되 일을 하나님보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가지되 재산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청지기 정신입니다. 

5.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두로의 모습을 반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농사가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합니다. “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그리고 더 큰 곳간을 짓기로 합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이 사람은 돈을 많이 번 것이 죄가 아니었습니다. 곡식을 많이 거둔 것이 죄가 아니었습니다.

곳간을 지은 것 자체가 죄라고 성경이 말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하나님 없이 미래를 확보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곳간은 있었지만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재산은 있었지만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 성경은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6. 그런데 이사야 23장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절부터 14절까지는 두로의 몰락을 말합니다. 그런데 15절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두로가 70년 동안 잊혀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놀라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하나님의 심판은 무질서한 파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목적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주석가들도 이 부분을 두로의 완전한 영구적 멸망보다는 정해진 기간의 심판 이후 찾아오는 회복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에 관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실 때에는 다시 세우실 목적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으실 때 단순히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지하던 것을 흔드심으로써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다시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돈을 의지하면 돈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건강을 의지하면 건강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직장을 의지하면 직장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구조를 의지하면 그 구조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우리의 영혼을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서입니다.

7. 그러나 회복이 곧 구원은 아닙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구분이 필요합니다.

두로가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한다고 해서 곧바로 영적으로 완전하게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15–17절을 보면 두로가 다시 옛 상업활동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단순히 이렇게 읽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두로를 다시 부자로 만들어 주셨다.”

성경의 관심은 부의 회복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부의 목적이 바뀌는 데 있습니다. 바로 18절입니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이것이 이사야 23장의 절정입니다. 

 

돈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상업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능력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돈의 방향이 바뀝니다.

 

과거에는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돌려집니다.

과거에는 쌓아두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됩니다.

 

본문은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라고 말합니다.

그 무역의 이익이 하나님 앞에 사는 자들의 양식과 의복을 위해 사용됩니다. 이것이 이사야 23장의 복음적 방향입니다.

8. 복음은 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돈의 주인을 바꿉니다

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돈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사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문가가 전문성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얼마나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물었다면, 복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이것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라고 묻게 됩니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내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돈을 내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간입니다. 내 재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능입니다.

내 직업도 하나님 앞에서 사명으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내 사업도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내 재산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적 재정관은 단순히 “돈을 많이 갖지 말자”가 아닙니다.

“돈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자”​입니다.

9. 성경에서 돈은 ‘흘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재산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임을 잊고 자기만을 위해 쌓아두는 것을 경고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목적을 말합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보십시오.

 

넉넉하게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만 편안하게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은 나에게서 멈추면 안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와서 나에게 머물고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샘물이 썩는 이유는 물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움켜쥐기만 하면 그것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흘려보낼 때 우리의 소유가 사명의 도구가 됩니다.

10.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우리의 실제 삶에 세 가지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 돈을 준비하되 돈을 피난처로 만들지 마십시오.

예산을 세우십시오. 저축하십시오. 미래를 준비하십시오. 가족을 책임지십시오. 합리적으로 투자하십시오.

성경은 무책임한 삶을 믿음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통장 잔고가 우리의 평안을 결정하게 하지 마십시오. 돈이 많을 때만 평안하다면, 돈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돈이 줄어들어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둘째, 돈을 사용하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누가 더 좋은 차를 타는가?

누가 더 좋은 집에 사는가?

누가 더 많은 돈을 버는가?

누가 더 좋은 곳으로 여행하는가? 그러나 성도의 가치는 소유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나의 신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누리고, 절제하며 누리고, 나누며 누리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흘려보내십시오.

가족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복음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교회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다음 세대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이것이 이사야 23장 18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향입니다. 두로의 회복은 단순히 다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11. 이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사야 23장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단순한 재정관리 강의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의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경제와 권력과 문화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기 영광을 추구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단순히 폐기하는 데서 끝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열방의 자원과 문화와 능력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복속되는 방향을 보여주십니다.

 

이 점에서 이사야 23장 18절은 성경 전체의 하나님 나라 사상과 연결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새 예루살렘에 “만국의 영광과 존귀”가 들어오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향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직업도 그렇습니다. 문화도 그렇습니다. 재능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간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부자는 가진 것이 많아서 부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부요하신 분이시면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돈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내 재물을 내려놓기 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헌신은 손해가 아닙니다.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12.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사야 23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느냐?”

돈입니까?

직장입니까?

부동산입니까?

주식입니까?

저축입니까?

사람입니까?

경력입니까?

건강입니까?

사회적 지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두로는 거대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제력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로를 회복시키시면서 새로운 목적을 보여주십니다.

 

“네가 가진 것이 누구의 것이며, 그것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본문의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통장을 보면서 단순히 “얼마나 있느냐?” 만 묻지 마십시오.

이 질문을 던지십시오. “이 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나의 영광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습니까?

나의 욕망만 채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살리고 있습니까?

나의 안전만 쌓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13. 이사야 23장의 마지막 교훈

오늘 말씀을 세 문장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풍요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두로는 풍요를 받았지만 풍요를 하나님보다 높였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는 거짓 피난처를 흔드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시는 것에는 때로 구원의 목적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릴 때 가장 거룩한 목적을 갖게 됩니다.

두로의 무역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익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재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 쌓던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흘러가는 것입니다.

결론 — “주님, 제가 돈을 섬기지 않고 돈이 저를 섬기게 하소서”

“하나님, 제가 돈을 섬기지 않게 하시고 돈이 하나님의 뜻을 섬기게 하옵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풍요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부족할 때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가 가진 재물이 저의 안전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저의 피난처가 되게 하옵소서.

 

제가 가진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나의 이름을 높이는 데만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옵소서.

제가 쌓아두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가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데 제가 가진 것을 사용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내 재물의 주인도 하나님, 내 시간의 주인도 하나님, 내 재능의 주인도 하나님, 내 삶의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날마다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