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심판과 잔치 (이사야 24–25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8. 12. 13:27

 

온전한 심판을 넘어 온전한 잔치로 — 하나님은 무너뜨리시는 분이 아니라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24–25장)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이사야 24장과 25장으로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교만으로 뒤틀린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그 심판의 목적은 멸망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새 창조와 구원의 잔치로 인도하시는 데 있습니다.”

 

이사야 24장만 읽으면 굉장히 무겁습니다.

땅이 황폐해집니다. 사람들이 흩어집니다.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포도주가 쓰게 되고 노래가 끊어집니다. 성읍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떨게 됩니다. 

 

그런데 25장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심판 가운데 찬양이 나오고, 황폐함 가운데 잔치가 준비되고, 눈물 가운데 위로가 선포되고, 죽음 가운데 생명의 약속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놀라운 선언이 나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적 회복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창조세계를 어떻게 회복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구속사의 큰 그림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마지막 날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1. 온 땅을 흔드는 하나님의 심판

이사야 24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라고 하실까요?

 

우리는 보통 자신이 원하는 것만 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루어 놓은 것, 내 지위, 내 재산, 내 성공, 내 명예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것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게 합니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나라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24장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무너뜨리면서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동일합니다

2절을 보면 놀라운 대조가 등장합니다. 백성과 제사장, 종과 상전, 여종과 여주인, 사는 자와 파는 자,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 

채권자와 채무자가 모두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과 이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인간이 만든 모든 계급과 차이가 사라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지위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목사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오래 다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했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적인 경력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2. 왜 땅이 황폐해지는가?

이사야 24장 5절은 심판의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기에 심판의 원인이 있습니다.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내가 주인이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인데 내가 기준이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데 내가 영광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중심에는 항상 교만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의 타락도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24장에서도 동일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세계는 결국 무너집니다.

3. 죄는 인간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까지 뒤틀어 놓습니다

이사야 24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성경에서 죄의 영향은 인간 개인에게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창조세계 전체가 죄의 영향 아래 들어갔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은 말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이사야 24장의 땅의 탄식과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의 탄식은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질서 전체를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내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여기서 이사야 24장의 “보라”와 요한계시록의 “보라”가 연결됩니다.

 

이사야에서는 무너지는 세계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새롭게 되는 세계를 보라고 하십니다.

심판의 마지막 단어가 멸망이 아니라 새 창조라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심판 가운데 “남은 자”가 있습니다

이사야 24장 6절 마지막에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남은 자가 적도다.” 이것이 이사야서의 중요한 신학입니다. 남은 자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은혜의 씨앗을 보존하십니다.

이사야 6장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그리고 이사야 10장 22절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돌아오며…” 남은 자는 자신이 특별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 신학은 인간의 공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언약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5.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은 자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상이 모두 하나님을 떠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더라도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성공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의 삶은 외로운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버림받은 삶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소수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6. 이사야 24장의 황폐함과 고린도후서 5장의 새 피조물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을 이사야 24장과 연결해 보면 놀라운 통찰이 생깁니다.

 

이사야 24장은 죄로 오염된 옛 질서가 심판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단순한 “개선”이 아닙니다.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의 구원은 근본적인 새로움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7. 이사야 25장 — 심판 이후에 준비된 하나님의 잔치

이제 25장으로 넘어갑니다. 24장이 심판이라면 25장은 찬양입니다. 

24장이 땅의 황폐함이라면 25장은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24장이 인간의 교만을 무너뜨린다면 25장은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하나님은 추상적인 신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나를 알고, 나를 붙들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8.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사야 25장 4절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가 되시며

환난당한 빈궁한 자의 요새가 되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가 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역설입니다.

세상이 강한 자에게 안전을 제공한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약한 자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세상은 힘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지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시편 46편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믿음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문제가 있어도 피난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9. 그리고 하나님은 피난처에서 끝내지 않고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이사야 25장 6절은 오늘 본문의 절정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잔치에 초대하시는 분입니다.

피난처에서 잔치로,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눈물에서 웃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동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방향입니다.

10. 그런데 이 잔치는 “이스라엘만의 잔치”가 아닙니다

6절에 놀라운 표현이 있습니다. “만민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사야 49장 6절에서는 하나님의 종을 “이방의 빛”으로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25장의 잔치는 결국 하나님의 선교적 목적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한 민족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민족을 향합니다.

11. 잔치의 가장 놀라운 메뉴 — 사망의 제거

그런데 이사야 25장에서 가장 놀라운 말씀은 음식이 아닙니다.

포도주도 아닙니다. 연회도 아닙니다. 

 

바로 8절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이것이 성경의 진짜 구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때때로 문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큽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인 죽음 자체를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마지막 원수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은 말합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리고 바울은 이사야 25장 8절의 말씀을 사실상 부활 신앙의 승리 선언 속에서 사용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12. 십자가는 죽음이 하나님을 삼킨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죽음을 삼키신 사건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깊은 신비입니다. 십자가를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님이 패배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원수들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전혀 달랐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려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죽음의 승리가 아닙니다. 죽음을 죽이는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이사야 25장의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미 결정적으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창조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으십니다

8절은 계속됩니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물을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도 우리의 고통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눈물, 혼자 흘렸던 눈물, 기도하다가 흘렸던 눈물, 가족을 위해 흘렸던 눈물, 신앙 때문에 흘렸던 눈물,

하나님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로 인해 흘렸던 눈물까지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친히 닦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도 이사야 25장을 울림 있게 이어갑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성경의 종말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과 눈물과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새 창조를 약속하십니다.

14. “그 날에” — 기다림의 신앙

이사야 25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기다렸으니”​입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립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이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완전히 제거되는 날은 아직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완성은 아직 미래에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이미와 아직”​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다림의 삶입니다. 

5.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손 놓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오늘을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도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세상이 성공을 예배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세상이 힘을 숭배해도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세상이 복수를 말해도 우리는 용서를 선택합니다.

세상이 자기 영광을 말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잔치가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결말을 아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16. 그러나 이사야 25장은 교만한 자에게 경고합니다

이사야 25장 10절부터 12절에서는 모압의 교만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것은 단순한 힘이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사람이 강한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강해지려는 것이 죄입니다.

돈이 있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는 것이 죄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하나님보다 높이는 것이 죄입니다.

 

지식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필요 없게 만드는 지식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시는 것은 인간의 모든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17.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첨부 자료가 25장에서 강조한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아는 것.”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피조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는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나는 역사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내일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님이 주인이시고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18. 예수님은 하나님의 위치를 인정하시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부터 11절은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역설이 있습니다. 낮아짐이 높아짐으로 연결됩니다.

십자가가 부활로 연결됩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연결됩니다.

눈물이 기쁨으로 연결됩니다.

고난이 영광으로 연결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지막 결말을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19. 예수님은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것과 다른 사람의 멸망을 즐거워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님은 심판을 모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심판을 가장 분명하게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우셨습니다.

 

왜 우셨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심판을 말할 때에도 증오와 교만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심판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우월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20. 이사야 24장과 25장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제 전체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이사야 24장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25장에는 잔치가 있습니다.

24장에는 땅의 황폐함이 있습니다. 25장에는 창조의 회복이 있습니다.

24장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25장에는 사망의 멸망이 있습니다.

24장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25장에는 눈물을 닦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그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심판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24–25장을 그리스도 없이 읽으면 단순한 심판과 회복의 예언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읽으면, 하나님께서 죄의 심판을 어떻게 통과하여 새 창조의 잔치로 우리를 데려가시는지가 보입니다.

21.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벽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성공입니까?

건강입니까?

내가 쌓아 올린 경력입니까?

 

이사야 25장의 모압처럼 인간의 성벽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성벽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떠날 수 있습니다.

환경은 변할 수 있습니다. 재산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건강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22.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새로운 피조물은 옛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 이름만 붙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가치가 달라집니다.

삶의 중심이 달라집니다. 욕망이 달라집니다. 관계가 달라집니다. 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성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고난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23. 우리는 지금 잔치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인생이 완성된 잔치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사야 24장처럼 황폐해 보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도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24장이 마지막 장이 아닙니다. 25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25장도 마지막 장이 아닙니다.

26장이 있습니다. 27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에는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합니다.

24. 오늘의 영적 적용 — 심판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첫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십시오.

내가 주인이 되려는 순간 교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자리를 돌려드리십시오.

 

둘째, 남은 자의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람들이 다 다른 길로 가더라도 말씀을 붙드십시오.

 

셋째,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환경을 피난처로 삼지 마십시오. 사람을 궁극적인 피난처로 삼지 마십시오. 돈을 피난처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넷째, 다가올 잔치를 바라보십시오.

현재의 고난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잔치가 있습니다.

 

다섯째, 죽음을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는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여섯째, 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 없이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눈물 흘리십시오.

심판을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멸망을 즐거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눈물을 배우십시오.

맺는말 —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이사야 24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의지하는 것이 정말 영원한 것이냐?”

이사야 25장은 대답합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세상의 성벽은 무너집니다. 나라들도 사라집니다. 권력도 지나갑니다. 재물도 사라집니다. 인간의 명예도 사라집니다.

육체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 25장 9절의 고백을 오늘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우리가 그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기다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다렸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기다렸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할 때도 기다렸습니다. 

 

왜 기다렸습니까?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도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이사야 24장 같은 시간이 있습니까?

 

무너지는 것처럼 보입니까?

황폐해지는 것처럼 보입니까?

기쁨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까?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24장이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25장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피난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잔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눈물을 닦으실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십시오. 세상의 성벽을 내려놓으십시오.

교만을 버리십시오.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부활의 소망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잔치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심판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심판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구원이 마지막 말입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부활이 마지막 말입니다. 눈물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마지막 말입니다. 황폐함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새 창조가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고백은 이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아멘.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사야 24장의 심판 앞에서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게 하시고, 이사야 25장의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의 힘과 재물과 사람의 인정과 우리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게 하옵소서.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세상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말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 창조의 소망을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믿게 하옵소서.

 

사람의 멸망을 기뻐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던

그 마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하나님을 떠날수록 더욱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세상이 교만해질수록 더욱 겸손하게 하시며,

세상이 절망할수록 더욱 부활의 소망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이사야 24장과 같은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잔치가 있음을 믿게 하시고, 모든 눈물을 닦으실 날을 기다리게 하시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그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날 우리가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우리의 삶이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이 되게 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위치와 우리의 위치를 바르게 알고,

겸손과 순종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