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사는데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이사야 28장)

나는 괜찮겠지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견고한 기초 위에 서라! (이사야 28장)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28장으로 “거짓된 안전을 믿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견고한 기초 위에 서십시오.”
그리고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적용한다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을 믿고 있는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말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사는데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나님께서 설마 나를 심판하시겠어?” “지금까지 별일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괜찮겠지.”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엄중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의 승낙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정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은혜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28장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심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본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예루살렘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괜찮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착각을 깨뜨리십니다.
1.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오만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교만이라고 진단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경고도 받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에게는 심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만든 안전장치를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그들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와도 우리는 괜찮다.” “죽음이 와도 우리는 피할 수 있다.” “재앙이 와도 우리에게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습니까?
그들의 안전은 하나님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과 인간적인 동맹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는 국제정세 속에서 강대국의 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앗수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애굽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우리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다른 것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돈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맥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경력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신앙 경력까지 의지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교회 다닌 지 오래됐어.” “나는 직분이 있어.” “나는 봉사도 많이 했어.” “나는 성경도 많이 알아.” 그런데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그것이 정말 너의 기초냐?”
2. 우리의 거짓 피난처는 결국 드러납니다
15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직접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피난처를 찾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숨을 곳을 찾습니다.
두려움이 오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질병이 오면 붙잡을 것을 찾습니다.
경제적인 위기가 오면 안전장치를 찾습니다.
관계가 흔들리면 사람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금 숨고 있는 곳이 거짓이라면, 그 피난처는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안전과 구원을 혼동합니다.
돈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잘되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시편 20편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병거와 말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궁극적인 의지처로 삼는 것입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이 나를 구원한다고 믿으면 우상이 됩니다.
의사를 찾아가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건강을 더 신뢰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한다면 그것은 거짓 피난처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궁극적으로 의지하느냐?”입니다.
3. 하나님은 거짓 기초 대신 참된 기초석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폭로하신 후에 심판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16절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십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사람들은 거짓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된 기초를 세우십니다. 사람은 거짓으로 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리의 기초를 세우십니다. 사람은 스스로 안전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친히 구원의 기초를 놓으십니다.
16절의 중심은 “내가”입니다.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구원은 인간의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초를 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그리고 이 기초석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은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바울도 로마서 9장 33절에서 이 말씀을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이사야 28장의 기초석은 단순히 좋은 삶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 기초석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인생의 기초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예수님도 있고 돈도 있습니까? 예수님도 믿고 사람도 믿습니까?
예수님도 믿고 내 경험도 최종적으로 믿습니까? 예수님도 믿지만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기초는 아직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놓이지 않은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모퉁잇돌입니다
건축에서 기초석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건물 전체의 방향과 정렬을 결정합니다. 기초가 틀어지면 건물 전체가 틀어집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주변부에 계시면 안 됩니다.
주일에는 예수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내가 주인이 되는 신앙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기초가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경제의 기초도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자녀교육의 기초도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직업의 기초도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노년의 기초도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 외에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8장 전체의 흐름을 보면 인간이 자랑하는 면류관은 시들고, 인간이 만든 안전장치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초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인생의 최종적인 안전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28장 16절은 “그를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위기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가 와도 기초가 무너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폭풍은 옵니다. 질병도 옵니다. 경제적 어려움도 옵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그리스도라면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로 우리의 거짓 기초를 측량하십니다
17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추로 삼으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측량하십니다. 사람은 외형을 봅니다.
하나님은 기초를 보십니다. 사람은 성공을 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보십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를 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사람은 교회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의 말씀처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포장된 신앙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삶이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그 기초가 드러납니다.
기도를 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의지한다면 그 기초가 드러납니다.
성경을 읽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기초가 드러납니다.
입술로는 “주님”이라고 하지만 내 뜻만 고집한다면 그 기초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측량하시는 날, 우리가 만든 모든 거짓 피난처는 무너질 것입니다.
6. “나는 괜찮겠지”라는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균형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한 말씀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은혜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네가 무엇을 해도 괜찮다.” 라는 허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네가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회개와 구원의 길로 부른다.” 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4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께서 내 삶을 괜찮다고 인정하셨다.” 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직 나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고 계시는구나.” 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도 마음에 찔림이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도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고 계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7. 거짓 언약은 결국 취소됩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고…”
인간이 만든 안전계약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가 됩니다. 얼마나 강력한 표현입니까?
인간은 “나는 안전하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계약은 효력이 없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거짓 언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이 사람이 나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내 경력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내 자녀가 나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잘했으니까 괜찮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너의 구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돈은 나를 도울 수 있지만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나를 위로할 수 있지만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의학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영생을 줄 수 없습니다.
국가는 질서를 제공할 수 있지만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8. 하나님의 심판은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입니다
21절은 “여호와께서 일어나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행동하십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선지자가 다시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 선언 속에도 회개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사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고는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부모가 위험한 길로 가는 자녀에게 “거기 가지 마!” 라고 외치는 것은 미워서가 아닙니다.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같습니다.
“돌아오라.” “거짓 피난처에서 나오라.” “교만을 내려놓으라.” “내 아들에게로 돌아오라.” “말씀 위에 다시 서라.”
9. 농부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이제 본문은 놀랍게 전환됩니다. 2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그리고 농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파종하려고 밭을 가는 농부가 어찌 계속 갈기만 하겠느냐…”
이 말씀은 단순한 농업 상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설명하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농부는 아무렇게나 농사짓지 않습니다. 밭을 갈아야 할 때가 있고,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작물을 똑같이 다루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각 씨앗에 맞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농부의 지혜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29절에서 놀라운 결론이 나옵니다.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그의 지혜는 광대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웁니다.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농부가 씨앗에 따라 다르게 다루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다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법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기도했는데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왜 저 사람은 잘되는데 나는 이렇게 힘듭니까?”
“왜 하나님은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오늘 농부의 비유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다루는 방식은 씨앗마다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다림을 통해 성숙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해 교만이 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다시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실을 통해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 다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잠언 3장 5–6절 말씀처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11.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되어도 지루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많이 들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이미 많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라는 말도 압니다.”
“용서하라는 말도 압니다.”
“성경 읽으라는 말도 압니다.”
“예배드리라는 말도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새롭지 않아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들어도 여전히 생명입니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어제 먹었다고 오늘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매일 양식을 필요로 합니다. 영혼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러므로 말씀을 반복해서 듣는 것은 지루한 일이 아닙니다. 생명을 반복해서 공급받는 일입니다.
12. “나는 괜찮겠지” 신앙의 다섯 가지 특징
이제 오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첨부 원고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진단을 본문 전체의 신학적 흐름 속에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도 무시합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성경은 읽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위험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과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둘째, 세상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은 어둠과 구별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가 최종 기준은 아닙니다. 돈을 벌지만 돈이 주인이 아닙니다.
성공을 추구하지만 성공이 우상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의 박수가 삶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셋째, 성경보다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경험으로는 그래.” “요즘 세상은 달라.” 이 말들이 성경보다 위에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신앙의 기준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성경에 맞추어져야지, 성경을 우리의 생각에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넷째,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는지를 잊으면, 현재의 작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낙심합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입니까? 기억은 믿음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신실하셨다면 오늘도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셨다면, 오늘의 홍해 앞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 하늘나라의 법칙보다 세상의 법칙을 신뢰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힘이 있어야 산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세상은 말합니다.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세상은 말합니다. “너 자신을 높여라.” 복음은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세상은 말합니다. “네가 너의 인생을 만들어라.” 복음은 말합니다. “나를 따르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13.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괜찮겠지”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첫째,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보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만들어 놓은 거짓 피난처는 무엇입니까?”
“제가 회개하지 않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리시는 이유는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기초석으로 다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장식으로 두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기초로 삼으십시오.
결정할 때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돈을 사용할 때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가정을 세울 때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자녀를 교육할 때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사람을 용서할 때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그리스도가 기초라면 인생의 모든 것이 그 기초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십시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즉시 열매를 요구하지 않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었다고 내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기도했다고 내일 모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일합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의 시간에도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14. 영원한 면류관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인생에는 두 종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주는 면류관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사람이 주는 면류관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젊음의 면류관도 사라집니다. 건강의 면류관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재산의 면류관도 사라집니다. 명예의 면류관도 사라집니다. 인기의 면류관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영원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4절은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8절에서 “의의 면류관”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오늘 사람들에게 박수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입니까?
고린도후서 5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것이 성도의 방향입니다.
15.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괜찮다”는 자기 위로가 아니라 복음의 확신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차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나는 괜찮아.” 라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안전하다”가 아닙니다.
“나는 잘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도 아닙니다.
“나는 신앙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기초가 되시기 때문에 안전하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아서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붙들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내가 완벽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기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내가 끝까지 강하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끝까지 나를 붙들기 때문에 견딥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16. 결론 — 당신의 인생은 지금 무엇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기초로 살아가고 있느냐?”
돈입니까?
건강입니까?
자녀입니까?
직장입니까?
사람입니까?
경력입니까?
자신의 경험입니까?
자신의 의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이사야 28장 16절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시온에 견고한 기초석을 두셨습니다.
그 기초석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그 기초석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거절당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나는 괜찮겠지”가 아니라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괜찮다.”
“내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의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괜찮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에 괜찮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괜찮다.”
“내가 미래를 알기 때문에 괜찮다”가 아니라,
“나의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괜찮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오늘의 영적 점검
오늘 하루 다섯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십시오.
첫째, 나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가?
둘째,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나의 거짓 피난처는 무엇인가?
셋째,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내 인생의 기초인가?
넷째, 나는 성경보다 내 생각을 더 높은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다섯째, 나는 썩어질 면류관을 위해 살고 있는가, 영원한 면류관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해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무너뜨리기 위해 기초를 흔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기초를 제거하고 참된 기초 위에 다시 세우시기 위해 흔드시는 것입니다.
맺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사야 28장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나는 괜찮겠지”라는 교만한 신앙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무시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좇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성경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더 신뢰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현재의 어려움만 바라보았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건강을 의지하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했던 우리의 거짓된 신앙을 깨뜨려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거짓 피난처를 무너뜨려 주시고 우리의 참된 피난처가 되어 주옵소서.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세우신 견고한 기초석,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인생을 다시 세워 주옵소서.
가정도 그리스도 위에 세우게 하시고, 자녀도 그리스도 위에 맡기게 하시며, 경제도 그리스도께 맡기게 하시고,
직장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시며, 노년과 미래와 죽음까지도 주님의 손에 맡기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주님의 지혜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농부가 씨앗에 따라 다르게 일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게 하옵소서.
오늘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썩어질 면류관을 좇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면류관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지막 고백이 “나는 괜찮겠지”가 아니라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강합니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의 힘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나는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나의 삶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말씀 위에 서고, 복음 위에 서고, 은혜 위에 서고, 견고한 기초석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서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