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나뿐이라,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이사야 47장)

“나뿐이라,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한 교만한 바벨론은 무너진다 (이사야 47장 1–15절)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끝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이사야 47장은 “교만한 바벨론은 무너진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은 무너지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산다.” 핵심입니다.
바벨론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고, 경제력이 있었고, 지식이 있었고, 천문학과 점성술과 주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말을 자기 마음속에 품었습니다.
“나는 있고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이 말은 단순한 자신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말을 인간이 자기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5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그런데 바벨론이 똑같은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이사야 47장 10절입니다.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였음이라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여기에 인간 교만의 본질이 있습니다. 죄란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가장 깊은 본질은 하나님께 속한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내가 기준이 되고, 하나님 대신 내가 판단자가 되고, 하나님 대신 내가 주인이 되고,
하나님 대신 내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 47장은 단순히 “옛날 바벨론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1. 이사야 46장과 47장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47장을 이해하려면 바로 앞의 46장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46장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의 우상인 벨과 느보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짐승에게 싣고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짊어진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입니다.
우상은 인간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짊어지십니다.
우상은 인간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6장 9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그리고 46장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이것이 46장이고, 47장은 그 말씀을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세력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바벨론은 당시 절정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관은 인간 중심의 역사관이 아닙니다.
역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제국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2. “내려오라”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낮추십니다
이사야 47장 1절을 보십시오.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얼마나 강렬한 말씀입니까?
바벨론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려오라.”
바벨론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왕좌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땅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은 여왕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의 자리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주석 전통에서도 이 부분은 바벨론의 왕좌에서 노예의 자리로 떨어지는 급격한 반전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높아지면 하나님께서 낮추시지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잠언 16장 18절은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야고보서 4장 6절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고난을 당할 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성공했을 때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보다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사람에게 무시당할 때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축복을 받으면 너무 쉽게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해서 이렇게 되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능력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내가 만든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비극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도구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때
여기에서 이사야 47장의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본문 6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거늘…”
바벨론의 승리는 전적으로 자기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역사적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셨다”가 아니라 “내가 강해서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도구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비극이 있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을 맡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교회를 맡기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향력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그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보다 사랑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사역이 하나님보다 커지고,
성공이 하나님보다 커지고,
교회가 하나님보다 커지고,
직분이 하나님보다 커지고,
사람들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커지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도구가 어느 순간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저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4. 바벨론의 두 번째 죄 — 무자비함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넘었습니다. 이사야 47장 6절입니다.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특히 늙은 사람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단순히 바벨론의 “힘” 때문이 아니라 그 힘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힘을 착취의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력은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바벨론은 약한 자를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교만과 잔혹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자신을 절대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면 다른 사람은 나를 위한 도구가 됩니다.
내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어도 괜찮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약한 사람이 손해를 봐도 괜찮습니다.
내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미가 6장 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은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누르는 신앙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섬기는 신앙입니다.
5. 바벨론의 가장 무서운 말 — “나뿐이라”
이제 이사야 47장의 심장부로 들어갑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이것이 바벨론의 영적 질병입니다. “나뿐이라.” 이 말이 왜 그렇게 심각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그 말을 자기에게 적용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이 차지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단순한 자만심을 넘어섭니다. 자기 신격화입니다.
바벨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내가 결정한다.”
“내가 판단한다.”
“내가 옳다.”
“내가 기준이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한 마음입니다.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뱀이 하와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여기서 죄의 유혹은 단순히 열매를 먹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살 수 있다.”
이것이 죄의 거짓말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내가 선과 악을 결정할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내가 행복을 만들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내가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자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을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6. 교만은 어떻게 자라는가?
교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이런 순서로 자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축복을 나의 공로로 돌립니다. “내가 잘해서 되었다.”
둘째, 하나님을 점점 멀리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
셋째, 다른 것들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돈, 권력, 지식, 인맥, 경력, 건강, 명예, 기술, 정보.
넷째, 마지막에는 내가 나의 우상이 됩니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마지막 단계가 되기 전까지 자신이 우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돌이나 나무 앞에 절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한다면 돈이 우상입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한다면 사람이 우상입니다.
내 경험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한다면 경험이 우상입니다.
내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이면 지식이 우상이 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는 우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7.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
바벨론은 말합니다.
“나는 과부가 되지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나에게는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
“나는 괜찮겠지.” “나는 망하지 않겠지.” “나는 예외겠지.” “나는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무너지겠어?”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한 날에 홀연히 네게 이 두 일이 이르리니 곧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일이니라.”
바벨론의 문제는 미래를 몰랐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미래가 자기 손에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4장 13–14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가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8.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가?
이제 12절부터 마지막 부분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놀라운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가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마술을 가지고 서 보라…”
13절에서는 별을 관찰하는 자들과 점성술사들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정말 너를 구원할 수 있다면 한번 구원해 보라.” 왜 그렇습니까?
바벨론은 자기 힘뿐만 아니라 자기 지식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천체를 관찰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주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인간의 지혜가 심판의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식은 좋은 것입니다. 과학도 좋은 것입니다. 의학도 좋은 것입니다. 기술도 좋은 것입니다. 정보도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을 하나님처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의사를 하나님처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돈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돈을 구원자처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하나님보다 높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은 선물이지만, 선물을 하나님 대신 붙들면 우상이 됩니다.
9. “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14절은 매우 강렬합니다.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바벨론이 그렇게 자랑하던 지식, 주술, 점성술, 권력, 경제력, 상업, 인맥, 모든 것이 불 앞의 지푸라기처럼 됩니다.
여기에서 성경이 말하는 심판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의지하던 거짓된 구원자를 하나씩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판을 말씀하실 때, 단지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동시에 우상의 폭로입니다.
“네가 믿었던 그것이 너를 구원할 수 없다.”
“네가 의지했던 그것이 네 영혼을 붙들 수 없다.”
“네가 하나님 대신 붙들었던 그것은 결국 사라진다.”
10. 바벨론의 멸망은 다니엘 5장에서 역사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사야 47장의 말씀은 추상적인 경고가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바벨론이 몰락합니다.
다니엘 5장을 보십시오.
벨사살 왕이 큰 잔치를 벌입니다. 왕과 귀족들이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거룩한 그릇으로 술을 마십니다. 그 순간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씁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그리고 그날 밤 바벨론이 무너집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사야 47장 11절의 말씀처럼, “재앙이 갑자기 임하므로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역사 속에서 드러납니다.
인간에게는 갑작스러운 사건이지만 하나님께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역사를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역사는 혼돈이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11. 그런데 바벨론은 성경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이사야 47장을 신약까지 연결해야 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으로 가면 다시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의 바벨론입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고대 도시 바벨론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신학적 상징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권력과 사치와 경제적 탐욕과 우상숭배로 인간을 유혹하는 세상 체제를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요한계시록 18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리고 그 바벨론은 결국 무너집니다. 이것은 이사야 47장과 놀라울 정도로 연결됩니다.
이사야의 바벨론은 “나뿐이라.” 요한계시록의 바벨론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합니다.”
이사야의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역시 사람과 민족들을 미혹합니다.
이사야의 바벨론은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바벨론도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두 바벨론 모두 마지막에는 무너집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제국은 아무리 강해 보여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12.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
성경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두 도시를 만납니다.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입니다.
바벨론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 만들어낸 세계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세계입니다.
바벨론은 자기를 영화롭게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납니다.
바벨론은 자기 힘을 자랑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보좌를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바벨론은 사람을 이용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성경의 마지막 결론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13. 복음은 바벨론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바벨론의 죄는 무엇입니까? “내가 높아지겠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바벨론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이 되셔서 내려오셨습니다.
바벨론은 왕좌를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벨론은 다른 사람을 짓밟았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바벨론은 “나뿐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러므로 교만의 반대는 단순히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14.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바벨론이 망했다.” 이것만 말하면 설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내 안에 바벨론은 없는가?”
내 마음속에 “나뿐이라”는 생각은 없습니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 말씀보다 높이지는 않습니까?
내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뢰하지는 않습니까?
내 계획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지는 않습니까?
내 성공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사람의 박수에 너무 민감하지 않습니까?
돈이 많아지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직분과 사역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특별히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이사야 47장은 우리에게 영적 건강검진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15. 하나님께서 주신 성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축복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명예도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커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면, 그 복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셨다면 그 물질로 이웃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향력을 주셨다면 그 영향력으로 약한 자를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맡기셨다면 그 교회를 자기 왕국으로 만들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섬겨야 합니다.
**축복은 나를 높이는 사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통로입니다.**
16. 진짜 강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강해져라.”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세상은 말합니다. “네 이름을 높여라.”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라.”
세상은 말합니다. “네가 중심이 되어라.”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게 하라.”
세상은 말합니다. “너의 능력을 믿어라.”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잠언 3장 5–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것이 바벨론의 길과 하나님의 백성의 길의 차이입니다. 바벨론은 자기 명철을 의지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바벨론은 자기 이름을 높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바벨론은 자기 미래를 통제하려 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17. 이사야 47장이 주는 세 가지 마지막 질문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의 공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은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생명도 받았습니다.
건강도 받았습니다.
가족도 받았습니다.
재능도 받았습니다.
기회도 받았습니다.
믿음도 은혜입니다.
구원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둘째,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있는가?
바벨론은 힘이 있었지만 긍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셨지만 긍휼이 충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진짜 영성은 사람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진짜 영성은 약한 자를 봅니다.
진짜 영성은 상처 입은 사람을 품습니다. 진짜 영성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짓밟는다면 우리는 바벨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사람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의학도 필요합니다. 지식도 필요합니다.
계획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의지는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시편 20편 7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것이 성도의 고백입니다.
“나는 이것을 사용하지만 이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만 사람을 구원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돈을 관리하지만 돈을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지식을 사용하지만 지식을 하나님보다 높이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힘을 사용하지만 나의 힘을 구원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오직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바벨론은 무너졌습니다. 그토록 강했던 제국도 무너졌습니다.
그토록 자랑했던 지식도 그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의지했던 주술도 그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자랑했던 권력도 그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믿었던 안전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한 가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47장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든 것은 결국 무너진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은혜를 입습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내 안의 바벨론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내 안의 교만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처럼 판단하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해주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를 나의 공로라고 착각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약한 사람을 짓누르지 않고 섬기게 해주십시오.”
“돈과 지식과 권력과 사람을 하나님 대신 의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삶의 마지막에 이 고백이 남기를 바랍니다.
“나뿐이라”가 아니라 “주님뿐입니다.” “내 힘뿐이라”가 아니라 “주의 은혜뿐입니다.”
“내 지혜뿐이라”가 아니라 “주의 말씀이 나의 길입니다.” “내가 나를 구원한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길에서 나와 하나님 나라의 길로 들어가는 신앙입니다.
[복음적 최종 메시지]
사랑하는 여러분, 바벨론의 마지막에는 폐허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바벨론은 인간의 교만이 세운 성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려오는 성입니다.
바벨론은 “내가 나를 영화롭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어린양이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선포합니다.
바벨론의 중심에는 인간의 왕좌가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바벨론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길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사야 47장의 말씀을 통하여 교만한 바벨론의 몰락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바벨론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우리의 능력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보여주시고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우상화를 깨뜨려 주옵소서.
“나뿐이라”라고 말했던 바벨론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능력을 하나님보다 높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면 약한 자를 섬기게 하시며,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다면 가난한 자와 이웃을 돌아보게 하시며, 지혜를 주셨다면 그 지혜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하옵소서.
바벨론처럼 무자비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시고, 돈도, 권력도, 명예도, 사람도, 지식도, 경험도,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아 있는
나 자신이라는 우상까지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고백합니다.
“나뿐이라”가 아니라 “주님뿐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주의 은혜입니다. 내 지혜가 아니라 주의 말씀입니다.
내 계획이 아니라 주의 뜻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의 능력입니다.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고 나의 구원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주님 앞에서 날마다 낮아지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시며, 사람을 사랑하고,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바벨론처럼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에 무너지는 바벨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자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