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끊임없이 다른 왕을 찾는 백성들 (사무엘상 12장)

사무엘의 고별, 변해야 할 것은 변하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라 (사무엘상 12장)
변함없는 하나님을 붙드는 신실한 사람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사무엘상 12장입니다.
오늘 말씀읕 “변해야 할 것은 변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십시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직분입니까?
권력입니까?
성공입니까?
조직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아니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입니까?
사무엘상 12장은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직후,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왕도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안정된 나라가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사무엘이 백성 앞에 서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놀라운 점입니다.
사무엘은 승리의 순간에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외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실패할 때보다 성공할 때 하나님을 더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아프면 기도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고, 원하던 것을 얻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내 손에 힘이 생기면, 어느 순간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성공한 다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1. 사무엘은 떠날 때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웠습니다
사무엘상 12장 1절에서 사무엘은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다.”
이제 왕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말합니다. “나는 늙었고 머리가 희어졌고,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다.”
사무엘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한나의 기도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사가 되었습니다.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말씀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왕정시대입니다. 사울이라는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자신이 내려갈 때를 압니다. 이것이 신실한 지도자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나 없이도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내가 해야 한다.”
“내가 이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
“내가 이 조직을 움직여야 한다.”
“내가 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이것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교회도 내 것이 아닙니다.
사역도 내 것이 아닙니다.
성도도 내 사람이 아닙니다.
자녀도 내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왕이 등장하는 순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리를 내려놓으면서도 말씀의 자리는 지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직분은 내려놓을 수 있지만 사명은 내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무대에서는 내려올 수 있지만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에서는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고별을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언제 떠나야 하는지를 아는 분별”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2.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변화가 너무 빠릅니다.
기업도 변화해야 합니다. 기술도 변화합니다. 문화도 변화합니다.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합니다. 세상의 가치관도 변화합니다.
어제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은 낡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칩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말라기 3장 6절은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야고보서 1장 17절은 하나님을 가리켜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내 감정이 변합니다. 내 결심이 변합니다. 내 믿음도 흔들립니다.
사람에 대한 마음도 변합니다. 환경에 따라 신앙의 온도가 달라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변하지 않는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을 붙들겠다” 는 것입니다.
“내가 넘어져도 하나님께 돌아가겠다.”
“내가 실패해도 하나님을 놓지 않겠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겠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사무엘의 일관성은 사무엘이라는 인간의 위대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세상이 변해도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람이 변해도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환경이 변해도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소서.”
3. 신실한 지도자는 사람의 것을 빼앗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2장 3절은 굉장히 강력합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했느냐?”
“누구의 손에서 뇌물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자기변호가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는 일은 매우 흔했습니다.
왕은 백성의 아들과 딸을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밭과 포도원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세금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자는 약자의 삶을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말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리고 백성들이 대답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압제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손에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본질을 봅니다.
지도력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움직였느냐가 아니라, 사람을 얼마나 살렸느냐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영향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따르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인정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말을 듣는가?
얼마나 큰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구독자가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아는가?
그러나 성경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유로워졌는가?”
“당신 때문에 누군가 하나님께 가까워졌는가?”
“당신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이 회복되었는가?”
“당신 때문에 약한 사람이 보호받았는가?”
“당신은 사람을 이용했는가, 아니면 섬겼는가?”
이것이 성경적 리더십입니다.
4. 교회는 사람을 통제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자유롭게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속이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을 억압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을 조종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적인 지도자는 사람을 자기에게 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 연결합니다.
사람이 나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돕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면 불안해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떠나서라도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무엘의 모습입니다.
사무엘은 왕의 자리를 빼앗지 않습니다. 왕을 조종하지 않습니다.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참된 영적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는 사람을 눌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 때 생깁니다.
5. 사무엘은 자기 삶을 공개함으로써 지도자의 청렴성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자기 삶을 증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입니다.
“나를 조사해 보십시오.”
“내가 누구를 속였는지 말해 보십시오.”
“내가 누구를 압제했는지 말해 보십시오.”
“내가 뇌물을 받았다면 말하십시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지도자는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질문입니다.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교회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매일 만나는 가족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내 자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내 배우자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내 동료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내가 설교할 때는 모두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강단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드러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했고 백성 앞에서도 떳떳했습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과 사람 앞에서의 삶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했습니까?
사무엘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한 다음 갑자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문제가 사무엘에게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2장 12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신데 인간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왕을 요구한 이유는 단순히 정치제도가 필요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8장을 보면 그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세상과 같아지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보다 세상의 시스템을 더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보다 인간의 힘을 더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왕을 더 신뢰했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우상은 단지 나무나 돌로 만든 신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안전하게 느껴지면 돈이 우상입니다.
권력이 하나님보다 나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면 권력이 우상입니다.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중요하면 인정이 우상입니다.
자녀가 하나님보다 중요하면 자녀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이 하나님보다 중요하면 성공이 우상이 됩니다.
7.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사울이 강력한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말합니다. “승리의 영광 뒤에서 하나님을 보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 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 고 고백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은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은혜입니다.
생명도 은혜입니다.
건강도 은혜입니다.
가정도 은혜입니다.
직장도 은혜입니다.
교회도 은혜입니다.
사역도 은혜입니다.
믿음도 은혜입니다.
구원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한 뒤에 하나님을 잊는 사람보다, 성공한 뒤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 인간 왕이 세워졌어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여기서 사무엘상 12장의 매우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왕이지만 절대 왕이 아닙니다. 사울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왕권의 핵심입니다.
사무엘은 13절에서 “너희가 구한 왕을 보라” 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너희가 원한 왕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잘못된 요구조차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해서 인간의 죄가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잘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역사 속에서 일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 때문에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리석음보다 크십니다.
그러나 은혜는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죄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능력입니다.
9. 왕이 바뀌어도 기준은 바뀌지 않습니다
14절과 15절은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사무엘은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만”
그리고 반대로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이 누구냐가 아닙니다. 왕이 하나님께 순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바뀌어도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시대를 읽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중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닮는 방향으로 변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10. 우리가 반드시 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말라”는 말은 모든 것을 고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교만은 변해야 합니다.
이기심은 변해야 합니다.
욕심은 변해야 합니다.
미움은 변해야 합니다.
혈기는 변해야 합니다.
상처에 대한 집착도 변해야 합니다.
사람을 조종하려는 욕망도 변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움직이려는 마음도 변해야 합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도 변해야 합니다.
세상의 인정에 목마른 마음도 변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목표는 “나는 변하지 않겠다” 가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변화되겠다.” 이것입니다.
11. 그러나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반대로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복음에 대한 충성입니다.
거룩에 대한 열망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입니다.
정직입니다.
진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말해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경제가 흔들려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사람들이 떠나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내 계획이 무너져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내가 실패해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12. 이것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상 12장에서 하나님은 인간 왕을 허락하셨지만 인간 왕이 참된 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계속 드러납니다. 사울도 실패합니다. 다윗도 실패합니다. 솔로몬도 실패합니다. 그 이후의 왕들도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참된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점점 더 완전한 왕을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그 왕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장 36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참된 왕이십니다.
다만 세상의 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왕이 되셨습니다.
세상의 왕은 사람을 지배합니다. 예수님은 섬기셨습니다.
세상의 왕은 사람에게서 빼앗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세상의 왕은 사람을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사람을 위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이것이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억압하지 않으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용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지 않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2장의 신실한 지도자상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13.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가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이제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가정에서 가장 먼저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해야 합니다.
배우자를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를 내 성공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했는데” 라는 계산만 쌓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은 남편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지배가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정의 권위는 통제가 아니라 희생에서 나옵니다.
14. 교회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교회 역시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우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
“우리는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우리 조직 안에 붙잡아두는 데 더 관심이 있는가?”
사무엘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속였느냐?”
“내가 누구를 압제했느냐?”
“내가 누구의 것을 빼앗았느냐?”
오늘 교회 지도자들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목회자도 서야 합니다.
장로도 서야 합니다.
교사도 서야 합니다.
부모도 서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야 합니다. “나 때문에 누군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갔는가?” 이 질문입니다.
15. 세상은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에서는 때때로 속이는 것이 빠릅니다.
빼앗는 것이 효율적일 때도 있습니다.
억압하는 것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통제하는 것이 쉬울 때도 있습니다.
사람을 조종하면 원하는 결과를 빨리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스가랴 4장 6절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통제하지 않고도 공동체를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속이지 않고도 조직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빼앗지 않고도 교회를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억압하지 않고도 가정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성령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6.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사람이 아니라 더 신실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가장 강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했습니다. 그는 완벽한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들려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완벽함보다 신실함입니다.
인기보다 진실함입니다.
영향력보다 거룩함입니다.
성공보다 충성입니다.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을 평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 보다 먼저, “얼마나 신실했느냐?” 를 물으실 것입니다.
17.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세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첫째, 변함없는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사람은 변합니다.
환경은 변합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둘째, 변해야 할 것은 철저하게 변화되십시오.
죄를 붙들고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교만을 붙들고 원칙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고집을 붙들고 신앙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깨뜨리실 때 깨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의 죄를 보여주실 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셋째,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말씀을 붙드십시오.
복음에 충성하십시오.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약한 사람을 보호하십시오.
정직하십시오.
그리고 누구도 속이지 마십시오.
누구의 것을 빼앗지 마십시오.
누구도 억압하지 마십시오.
누구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맺는말 — 하나님이 왕이신 삶
사랑하는 여러분, 사무엘상 12장은 단순히 한 시대의 정치적 전환을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너의 왕은 누구인가?”
사울입니까?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성공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내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이스라엘은 인간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들에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왕을 찾습니다.
돈이라는 왕을 찾습니다.
안전이라는 왕을 찾습니다.
사람이라는 왕을 찾습니다.
성공이라는 왕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전히 너의 왕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변해야 할 것은 변하게 하시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세상의 기준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말씀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사람들의 평가가 아무리 달라져도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시고,
누구도 속이지 않게 하시고,
누구의 것을 빼앗지 않게 하시고,
누구도 억압하지 않게 하시고,
누구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공동체가 그런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소유하지 말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소서.
지배하지 말게 하시고,
섬기게 하소서.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려 하지 말게 하시고,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날, 사람들의 박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 앞에 서게 하소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음성을 듣게 하소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