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사무엘상 16장–17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8. 31. 12:18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사무엘상 16장–17장)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며,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라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16장과 17장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며, 믿음의 사람은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를 바라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평가하고 상황을 판단합니다.

누가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누가 성공할 사람인가?

누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가?

누가 나보다 강한 사람인가? 그리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평가합니다.

나는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뛰어난가?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다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외모”는 단순히 얼굴 생김새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조건, 신분, 능력, 크기, 가능성, 사회적 가치와 같은 외적인 기준 전체를 포함합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은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 곧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적인 존재와 방향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도 “마음”을 뜻하는 레바브(לֵבָב)​가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의 내면을 아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단순히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 라는 도덕적인 교훈만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을 세우는 기준은 인간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사무엘상 17장의 골리앗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16장에서는 사무엘이 사람을 잘못 보았습니다.

17장에서는 이스라엘 전체가 골리앗을 잘못 봅니다.

16장에서는 사무엘이 엘리압의 키와 외모를 보았습니다.

17장에서는 이스라엘이 골리앗의 키와 갑옷과 무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실패가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내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이 말씀에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긴장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실패는 단순한 정치적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할 왕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그 실패를 보면서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이 말씀은 죄에 대해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보며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슬픔이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다윗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울의 실패가 하나님의 계획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도 때로 과거의 실패를 너무 오래 바라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을까?”

“왜 우리 가정은 이렇게 되었을까?”

“왜 내 인생은 기대했던 것과 다를까?”  물론 아파해야 합니다.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과거의 실패는 종착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십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집에 도착합니다. 첫째 아들 엘리압이 나타납니다. 사무엘은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엘리압의 외모 때문입니다.

 

키가 크고 왕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씀은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아십니다. 사람은 현재를 보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현재뿐 아니라 그 사람의 미래까지 아십니다. 사람은 능력을 보고 선택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할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사람은 왕의 조건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하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외적인 조건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성경은 다윗을 “아름답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고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6장 7절은 “외모는 나쁘고 내면만 중요하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으로 삼느냐입니다. 다윗이 잘생겼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이 키가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두려워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은 인간이 왕을 판단하는 기준과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무엇을 보실까?”

 

사람들은 나의 직업을 볼 수 있습니다.

재산을 볼 수 있습니다.

학력을 볼 수 있습니다.

경력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직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인정하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묻습니다.

“너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나에게 순종하느냐?”

“너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느냐?” 이것이 중심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만들어집니다

이새의 집에서 일곱 아들이 모두 지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이 묻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대답합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여러분, 이것이 다윗의 첫 등장입니다. 왕의 옷을 입고 등장하지 않습니다. 군복을 입고 등장하지 않습니다.

궁전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양을 지키는 목자로 등장합니다.

 

형들은 잔치 자리에 있습니다.

다윗은 들판에 있습니다.

형들은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다윗은 양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들판에 있는 다윗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십니다.

사람이 박수치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믿음을 훈련시키십니다.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중심을 준비시키십니다.

다윗에게 양을 돌보는 일은 하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양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을 보호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훗날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다윗은 과거의 경험을 기억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다윗의 믿음은 공중에서 떨어진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지식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말씀을 알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할 때 믿음이 깊어집니다.

 

오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충성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공개적인 무대보다 먼저 은밀한 자리에서 사람을 만드십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목자였습니다. 왕의 왕관을 쓰기 전에 양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사자와 곰을 상대했습니다. 공적인 승리 전에 사적인 훈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4. 골리앗의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그의 말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으로 넘어가면 골리앗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그의 외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키가 매우 컸습니다. 갑옷도 무거웠습니다. 창도 거대했습니다. 그의 모습만 보면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만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했습니다.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골리앗의 진짜 무기는 창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진짜 무기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분노한 이유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저 거인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누가 감히 모욕하는가?”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문제의 크기를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크기를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의 능력을 계산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는 저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골리앗을 보았지만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5.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에 대한 오해를 하나 바로잡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골리앗이 작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은 실제로 컸습니다. 강력했습니다. 위협적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무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현실 부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하나님이라는 더 큰 현실 안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병이 있다고 해서 “병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는데 “어려움은 없다.” 라고 말하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도 계신다.” “내가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강하다.”

“내가 길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을 아신다.” “내 능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부족하지 않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골리앗이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문제입니까?

관계의 문제입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사람들의 평가입니까?

실패의 기억입니까?

나 자신의 연약함입니까?

그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것만 바라보지도 마십시오. 골리앗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십시오.

 

6. 다윗의 믿음은 말씀을 경험한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 섰을 때 사울은 말합니다. “너는 소년이고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사울의 판단은 현실적으로 매우 합리적입니다. 

사울은 군사적 능력을 계산합니다. 다윗의 나이를 봅니다. 골리앗의 경력을 봅니다. 전쟁의 경험을 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사자와 곰의 이야기를 합니다. 왜입니까?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은혜에 대한 기억은 현재의 믿음을 만들어 줍니다.

다윗은 “내가 강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싸움을 잘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나를 건지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간증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해냈다.” 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입니다. “내가 이겼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셨다.” 입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간증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결국 다윗에게 말합니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제야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갑니다.

 

7.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힙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벗습니다. 왜입니까?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에 익은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갑니다.

 

이 장면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저 사람처럼 해야 한다.”

“저 사람처럼 말해야 한다.”

“저 사람처럼 성공해야 한다.”

“저 사람처럼 사역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른 사람의 복제품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다윗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기의 크기가 아닙니다. 그 무기를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무기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8. 다윗의 진짜 무기는 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은 오늘 말씀의 절정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 말씀을 깊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진짜 무기는 돌이 아닙니다. 물매도 아닙니다.

다윗의 진짜 무기는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다윗의 최대 무기는 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확신이며, 전쟁의 승패가 세상적인 무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선포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지고 온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온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강하다.” 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한다.” 입니다.

 

그리고 47절에서 다윗은 선포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이것이 사무엘상 17장의 신학적 중심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승리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건입니다.

 

9.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을 넘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17장을 읽으면서 “나도 다윗처럼 골리앗을 이겨야지.” 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읽으면 성경의 중심이 인간에게 이동합니다.

 

다윗을 단순히 “용기 있는 사람의 모델” 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에서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힘으로 골리앗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대표자가 싸웠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골리앗 앞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들을 대표하여 나갑니다.

 

다윗의 승리는 공동체의 승리가 됩니다. 이것은 신약의 복음과 놀라운 구조적 연결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죄와 사망과 사탄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원수를 대신하여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을 때 우리는 그 승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죄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 대신 싸우시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완전한 실체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 장차 오실 참된 왕을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그림자가 됩니다.

 

사무엘상 17장의 중심을 다윗의 용기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확장할 때 우리는 이 본문의 복음적 깊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10. 예수님은 사람들이 버린 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셨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16장과도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새조차 다윗을 처음에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반복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나사렛 출신의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죄인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4절과 6절은 예수님을 사람들이 버린 돌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이 달랐습니다.

사람은 버렸지만 하나님은 택하셨습니다.

사람은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사람은 십자가를 죽음으로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생명의 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6장과 17장은 우리에게 단순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자.” 라는 교훈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인간의 판단을 초월한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11.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능력이 없어. 저 사람은 별 볼 일 없어. 저 사람은 실패했어. 저 사람은 나와 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쉽게 정죄하지 마십시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사용하지 않으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직 준비하고 계시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들판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왕이었습니다.

둘째, 상황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십시오.

골리앗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부정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십시오.

오늘 우리의 눈앞에 있는 골리앗은 매우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우리의 죄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큽니다.

우리의 죽음보다 부활의 능력이 큽니다.

셋째, 말씀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지 말고 삶에서 경험하십시오.

다윗의 믿음은 들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양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사자와 곰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 앞에서 과거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기억이 필요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셨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왜냐하면 어제의 은혜에 대한 기억이 오늘의 믿음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넷째, 사람의 갑옷을 벗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십시오.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방식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복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십시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작은 일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충성하십시오. 왕이 되기 전에 목자가 되었던 다윗처럼 말입니다.

 

12. 마지막으로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복음의 핵심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강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골리앗을 잘 이겨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내가 반드시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다.” 라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다.” 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혜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외쳤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이라는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내 인생의 전쟁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내 가정의 문제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미래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사역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자녀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실패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약함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나는 칼과 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결론 ―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무엘상 16장과 17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사무엘처럼 사람의 외모를 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처럼 골리앗의 크기를 보고 있습니까?

사울처럼 인간의 능력을 계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윗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까?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골리앗의 크기를 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크기를 봅니다.

사람은 현재의 조건을 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보십니다.

사람은 실패를 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사람은 다윗을 양을 치는 막내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왕을 보셨습니다.

사람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만왕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두려움의 눈에서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보는 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눈으로.

 

히브리서 12장 2절의 말씀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봅시다.”

여러분의 눈앞에 골리앗이 있습니까? 그 골리앗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들판에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판에서 왕으로 준비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은밀한 충성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명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물매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사람의 평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게 하소서.”

“주님, 골리앗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게 하소서.”

“주님, 말씀을 아는 데 머물지 않고 말씀을 살아내게 하소서.”

“주님, 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의 모든 승리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에서 나온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십시오.

말씀으로 현실을 해석하십시오.

골리앗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여러분의 눈이 세상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눈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충성하십시오.

두려움이 밀려올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삶의 모든 전쟁 가운데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 이라는 다윗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으십시오.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패배를 향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