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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칼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사무엘상 31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1. 10:48

삶이 가벼워지고 가시가 힘을 잃을 때 (사무엘상 31장)

나를 무겁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내 힘으로 가시를 제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사무엘상 마지막 장인 31장을 함께 묵상합니다. 사무엘상 31장은 참 무거운 장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죽습니다. 그의 세 아들도 죽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게 패배합니다.

 

백성들은 성읍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그리고 사울의 시신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합니다.

한 시대가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울의 죽음을 단순히 한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죽음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입니다.

사울은 처음부터 실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선택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겸손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의 삶에서 한 가지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왕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울은 점점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왕권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기보다 자신을 무겁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버렸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가?

둘째, 어떻게 하면 인생의 가시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는가?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것입니다.

“나를 무겁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가시와 싸우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1. 사울의 마지막은 ‘무너진 인생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3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합니다. 사울의 세 아들이 죽습니다. 요나단도 죽습니다.

그리고 사울 자신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습니다. 사울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 무기를 든 병사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왜입니까?

사무엘상 31장 4절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사울이 두려워한 것은 죽음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당할 수치였습니다.

사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지배했던 것이 마지막 순간에도 나타납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 앞에서 자신의 체면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비극입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왕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 사울의 문제는 ‘무게 중심’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보다 훨씬 깊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는 분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최종적인 권위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무게 중심을 하나님께 옮기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 무게 중심을 하나님에게서 자기 자신에게 옮겨버렸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책망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왜 불순종했습니까?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체면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유명한 말씀을 선언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말씀은 사울의 실패를 정확하게 찌릅니다. 

사울에게 종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사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예배하면서도 자기 뜻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신앙의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실제 삶의 무게 중심은 여전히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3. 인생이 무거운 이유는 ‘내가 하나님처럼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왜 무거워집니까?

모든 문제를 내가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녀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미래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명예를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성공을 내가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내가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자녀 문제도 내 짐입니다.

돈 문제도 내 짐입니다.

건강 문제도 내 짐입니다.

직장 문제도 내 짐입니다.

교회 문제도 내 짐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내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내가 붙들고 있으면 결국 그 무게가 나를 누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37편 5절은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기서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4. 예수님은 무거운 사람에게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예수님은 “짐을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3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짐을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혼자 지는 멍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는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이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자도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무책임한 자유가 아닙니다. 율법 없는 방종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배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새로운 삶입니다.

 

마태복음 11장의 ‘가벼운 멍에’는 삶의 모든 고난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그 짐을 감당할 은혜를 받는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벼운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이 아닙니다. 가벼운 인생은 하나님께 맡기면서 순종하는 인생입니다.

 

5. 히브리서는 ‘무게를 벗으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을 보십시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거운 것과 죄를 구분합니다. 모든 무게가 죄는 아닙니다.

어떤 것은 죄가 아니라도 우리를 무겁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염려, 사람의 인정에 대한 집착, 통제하려는 욕망, 비교, 지나친 성공 욕구, 자기 의, 과거의 상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무겁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단순히 죄를 끊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무겁게 붙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6.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이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십시오.

다윗에게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죄도 있었습니다. 실패도 있었습니다. 잘못된 판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사울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7장 1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은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커지면 내가 작아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사람이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사람들이 몰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사람들이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내가 나를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자유가 시작됩니다.

 

7.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가벼운 인생’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내가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죄로 왜곡된 ‘나 중심의 나’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새롭게 된 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자기 자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이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그 순간 삶의 무게 중심이 바뀝니다.

 

8.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인생의 가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는 모두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가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 가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관계가 가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외로움이 가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성격과 약점이 가시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의 상처가 계속 가시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구분이 필요합니다. 모든 가시가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사무엘상에서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불순종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라는 맥락에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는 단순히 그의 불순종에 대한 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것을 자신의 교만을 막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로 설명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바울은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의 가시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가시가 없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모든 가시가 반드시 사라진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입니다. 순종할 때 가시가 나를 지배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가시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은혜의 통로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훨씬 깊은 복음입니다.

 

9. 사울은 가시와 싸웠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울에게도 블레셋이라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블레셋이라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블레셋이 누구에게는 거대한 골리앗이었고, 

누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차이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다윗이 더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울은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명예를 생각했습니다. 이 차이가 인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10. 가시와 직접 싸우기보다 순종하십시오

우리에게 가시가 생기면 우리는 가시를 없애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왜 하나님은 이것을 없애주지 않으십니까?”

“왜 저 사람은 잘되는데 나는 안 됩니까?”

그러나 때로 하나님께서는 가시를 없애주시기 전에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나에게 순종하고 있느냐?”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가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시가 있을 때 우리는 먼저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맡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멈추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시작하면 가시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11. 순종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십시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내가 결과를 보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결과를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에는 항상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당장 결과가 없어도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12. 그러나 순종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복음적인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100%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또 다른 무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왜 100% 순종하지 못하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나는 왜 또 실패하지?”

그러면 순종조차 자기 의가 됩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서 순종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가 순종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먼저입니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순종이 뒤따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순종은 공로가 아닙니다. 감사입니다.

 

13.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잠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27편 2절은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잠은 인간의 통제력이 멈추는 시간입니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세상이 돌아갑니다.

내가 모든 문제를 붙들고 있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것이 안식의 신학입니다. 안식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 제가 할 일을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씨앗의 성장에 비유하십니다.

 

사람이 씨를 뿌리고 밤낮 자고 깨는 동안 씨가 자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손을 놓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맡기는 믿음을 배우십시오.

 

14. 예배는 내 인생의 무게 중심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한 시간 동안 찬양하고 설교를 듣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 당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무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보다 높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 욕망보다 높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제대로 드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예배는 통제권을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15. 그렇다면 사울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는 무엇입니까?

사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렵다.”

그런데 여러분, 사울이 진짜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람의 모욕을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그의 비극입니다.

 

사람에게는 무겁고, 하나님에게는 가벼웠습니다.

사람의 평가에는 민감하고, 하나님의 평가에는 둔감했습니다.

사람의 박수에는 목말랐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뎠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자기 무게에 짓눌렸습니다.

 

16. 반대로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과 정반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사울은 자기 왕권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사울은 자기 이름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사울은 사람의 수치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치를 담당하셨습니다.

사울은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무거운 짐이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가벼움’은 값싼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가벼움입니다. 죄의 짐을 예수님께 맡긴 사람의 가벼움입니다.

자기 의의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가벼움입니다.

사람의 평가라는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가벼움입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가벼움입니다.

 

17. 여러분의 인생에서 지금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 질문을 여러분 자신에게 던져 보십시오. “내 인생에서 지금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

돈입니까?

자녀입니까?

건강입니까?

직장입니까?

교회입니까?

사람의 평가입니까?

과거의 실패입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무엇보다도 ‘내가 반드시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까?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하나님보다 더 무겁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주님, 그것을 내려놓게 해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을 가장 무겁게 여기게 해주십시오.”

 

18. 그리고 여러분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내 인생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그 가시를 바라보면서 오늘부터 다른 질문을 해보십시오. “왜 하나님은 이것을 없애주시지 않습니까?”

에서 “하나님, 이 가시 가운데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로 질문을 바꾸십시오.

 

“하나님, 이 가시를 통해 제가 더 겸손해져야 합니까?”

“더 기도해야 합니까?”

“누군가를 용서해야 합니까?”

“어떤 죄를 끊어야 합니까?”

“어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가시가 없어지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가시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9. 바울은 가시가 있는데도 승리했습니다

바울은 가시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왜입니까?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선언합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강해야 승리한다고.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약함이 진짜 강함이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가시가 없어야 행복하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가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모든 것을 통제해야 안전하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참된 안식을 얻는다고.

 

20.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결단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 인생의 무게를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지지 않게 하십시오.

내 명예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내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내 성공보다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내 생명보다 하나님을 더 높이십시오.

 

둘째, 내 삶의 가시와 싸우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가시를 저주하기 전에 말씀을 돌아보십시오.

문제를 원망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순종은 모든 가시가 즉시 사라진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순종은 가시가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멍에를 메십시오.

내 멍에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십시오.

내 방식 대신 예수님의 방식을 배우십시오.

내 힘 대신 은혜를 의지하십시오.

내 통제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내 자랑 대신 십자가를 자랑하십시오.

 

21. 마지막으로, 사울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을 비교해 보십시오

사울은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사울은 사람에게 당할 수치를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수치를 담당하셨습니다.

 

사울은 자기 이름을 지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이름보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사울은 자기 자신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사울의 죽음은 실패한 왕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왕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사울의 마지막 장으로 사무엘상이 끝나지만, 하나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사울이 죽었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십니다.

 

사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우리의 부족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큽니다. 우리의 가시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큽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삶을 무겁게 만들지 마십시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모든 결과를 통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가시와 싸우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순종할 것이 있으면 순종하십시오.

기다리라고 하시면 기다리십시오.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십시오.

가라고 하시면 가십시오.

그리고 가시가 사라지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바울에게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이 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가시보다 은혜가 큽니다.

상처보다 은혜가 큽니다.

실패보다 은혜가 큽니다.

과거보다 은혜가 큽니다.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큽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거운 짐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큽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나를 가볍게 하소서.”

“내가 나를 붙들지 않게 하소서.”

“내 명예를 붙들지 않게 하소서.”

“내 성공을 붙들지 않게 하소서.”

“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무겁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무겁게 여기게 하소서.”

“내 인생의 모든 무게를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 내 인생의 가시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가시가 없어지게 해주셔도 감사하고,

가시가 그대로 있어도 주님의 은혜가 충분함을 믿게 하소서.”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무겁게 여기면 내가 내 무게에 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십니다.

그리고 가시와 싸우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오늘도 삶의 무게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오늘도 예수님의 멍에를 메십시오.

오늘도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오늘도 가시보다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가볍지만 깊은 사람,

약하지만 강한 사람,

가시는 있지만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

자기 자신은 작아지고 하나님은 커지는 사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무엘상 31장의 사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무겁게 여기며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시선을 하나님보다 두려워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인정과 박수와 성공과 명예를 붙들고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려고 했던 교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 이제 우리의 삶의 모든 무게를 주님께 맡깁니다.

자녀도 맡깁니다.

가정도 맡깁니다.

건강도 맡깁니다.

직장도 맡깁니다.

재정도 맡깁니다.

미래도 맡깁니다.

우리의 관계도 맡깁니다.

우리의 사역도 맡깁니다.

우리의 실패와 상처와 눈물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성되게 하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 우리 인생의 가시를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가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약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옵소서.

 

우리의 상처가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눈물이 기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실패가 겸손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시가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사울처럼 자기 자신을 붙들다가 자기 무게에 눌리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고, 다윗처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가벼워지게 하옵소서.

그러나 얕아지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되 우리의 믿음은 깊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손은 가벼워지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은 더욱 굳세어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가시가 있어도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약함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과 함께 걷게 하옵소서.

 

마침내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사울처럼 사람의 평가를 붙들고 서는 것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