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성령이 임하면 (사도행전 1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1. 15:36

성령이 임하면 달라지고, 달라진 사람은 담대해집니다 (사도행전 1장 4–8절, 4장 29–31절)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달라짐이 담대함입니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왜 믿는데도 두려울까?”
“나는 왜 말씀을 아는데도 쉽게 흔들릴까?”
“나는 왜 예배를 드리는데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 앞에서 입을 열기가 어려울까?”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이 먼저 담대해져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달라지고, 달라진 사람이 담대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달라지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삶의 방향이 달라지면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높은 수준으로 이끄실 때 먼저 “명령”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증인이 되어라”가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먼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장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세상을 변화시켜라.” “당장 복음을 전해라.” “너희 힘으로 교회를 세워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떠나지 말라. 기다리라.” 왜입니까?

제자들에게 사명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다고 능력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이 있다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기적도 보았습니다. 십자가도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성령의 권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의 명령은 “증인이 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이며,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다림은 무기력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새 힘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멈추게 하십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힘으로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다르게” 만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여기서 중요한 순서가 있습니다. 성령 → 권능 → 증인 입니다. 

우리는 자꾸 순서를 거꾸로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증인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능력을 주세요.” 그런데 성경은 먼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그리고 권능이 옵니다. 그리고 증인이 됩니다.

 

이 순서를 “성령–권능–증인”으로 정리하면서, 증언의 능력을 구하기 전에 그 뿌리인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기독교는 자기계발이 아닙니다.

“내가 더 강해져야지.”

“내가 더 담대해져야지.”

“내가 더 거룩해져야지.”

 

물론 우리의 순종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행하시는 변화에서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관계가 달라집니다.
욕망이 달라집니다.
목표가 달라집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돈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단순한 감정의 고조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인격의 변화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말씀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서 “변화”가 중요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남겨놓지 않습니다.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므로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달라짐입니다.

 

3. 첫 번째 능력은 “거룩함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단순히 “깨끗하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표정과 눈빛과 삶의 태도와 목표가 달라진다고 강조합니다.

 

성령 충만은 예배 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 유익만 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디가 편한가?”만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사용하기 원하시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편한 곳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곳을 찾으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건강한 사람보다 병든 사람에게 가셨습니다.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보다 죄인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빛은 밝은 곳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빛은 어두운 곳에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의 가치는 어둠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어디가 편한가?”에서 “어디에서 하나님께 가장 잘 쓰임 받을 수 있는가?”로 질문이 바뀝니다. 이것이 거룩함의 능력입니다.

 

4. 두 번째 능력은 “담대함의 능력”입니다

달라짐이 담대함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여기 중요한 연결이 있습니다. 기도 → 성령 충만 → 담대함 → 말씀 증거 입니다.

담대함은 성격이 강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커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도 아닙니다.

 

성경적인 담대함은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임하시면 두려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에는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협박합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마라.”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사도행전 4장 19절입니다.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그리고 20절에서 선언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이 담대함입니다.

무모함이 아닙니다. 교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5. 담대함은 두려움뿐 아니라 “거짓”도 이깁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고 고통을 감당하게 한다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왜 사람이 거짓말합니까? 항상 악해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손해 볼 것 같습니다. 관계가 깨질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내 자리가 흔들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실 대신 거짓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담대함을 주시면 달라집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선택하겠습니다.”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시면 됩니다.”

“관계가 깨질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겠습니다.” 이것이 담대함입니다.

 

담대함은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도 그랬습니다. 골리앗은 거대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서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6. 세 번째 능력은 “집중하는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세 번째 능력은 집중의 능력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것을 붙드는 사람이 됩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궁금한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언제입니까?”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합니까?”가 중요합니다.

“언제 세상이 바뀝니까?”가 아니라 “지금 나는 무엇에 순종해야 합니까?”​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영적 집중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합니다

우리 인생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닙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씁니다. 

사람의 평가 때문에 너무 많은 마음을 씁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씁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조명하시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가?”

“이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이것이 나에게 맡겨진 사명인가?”

“이것이 영원한 것인가?”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삶이 정리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영이 아니라 진리 가운데 집중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께서 진리를 보여주시면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7.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달라진 질문”을 합니다

성령이 없을 때 우리는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성령이 없을 때는 “어디가 편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어디가 가장 필요한 곳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성령이 없을 때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를 묻습니다.

 

성령이 없을 때는 “내가 손해 보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달라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달라짐에서 담대함이 나옵니다.

 

8. 순종하면 영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순종하면 영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기다리라.” 그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2절 이하를 보면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입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기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무엇이 일어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붙들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본능대로 움직이지 않고 “떠나지 말라, 기다리라”는 말씀에 순종했으며, 그 순종과 기도 가운데 다음 단계의 하나님의 뜻이 드러났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여주셔야 순종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오늘 순종할 것부터 순종하십시오.

오늘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오늘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사과하십시오.

오늘 끊어야 할 죄가 있다면 끊으십시오.

오늘 기도해야 한다면 기도하십시오.

오늘 말씀을 전해야 한다면 전하십시오.

오늘 섬겨야 한다면 섬기십시오.

왜냐하면 작은 순종이 다음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기도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합니다

제자들이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가룟 유다의 문제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20절은 시편 109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그들은 단순한 감정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말씀으로 확정하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영적 분별입니다.

기도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말씀만 안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지식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은 말씀과 기도와 순종의 자리에서 분별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빛입니다.

기도하면 죄가 보입니다.

기도하면 부족함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야 할 사람이 생각납니다.

기도하면 내가 피하고 싶었던 문제가 떠오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순종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시는 시간입니다.

 

10. 그러나 모든 체험을 말씀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한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느낌이나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믿지만 동시에 성경의 최종적 권위를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성경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체험이 생겼다면 물어야 합니다.

“성경적인가?”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복음의 열매를 맺는가?”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사랑과 진리의 열매를 맺는가?”

 

성경 안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을 만났을 때 성급하게 “성경이 틀렸다”고 결론 내리지 않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겸손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내 경험을 성경보다 높이지 않는 것,

내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이지 않는 것,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11. 결국 성령 충만의 목적은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다시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리고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한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과시하기 위한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의 결과는 결국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업적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기보다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자기의 능력을 말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말하기보다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말합니다.

 

12. “달라짐”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세 가지 질문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첫번째, 나는 이전과 달라졌습니까?

예수 믿기 전과 지금이 똑같습니까? 말이 똑같습니까? 욕심이 똑같습니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똑같습니까?

죄를 대하는 태도가 똑같습니까? 용서하는 방식이 똑같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똑같습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면 반드시 변화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성령의 열매가 그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성령 충만은 반드시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두번째, 나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때문에 멈춰 있지는 않습니까?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손해 보면 어떻게 하지?” 때문에 진실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성령의 담대함을 구하십시오. “성령님,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세번째, 나는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지나가 버릴 것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에게 맡겨진 것에 집중하라.”

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구하십시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물론 성공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능력을 주십시오.” 물론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나를 다르게 만들어 주십시오.”

“성령님, 나를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성령님, 두려움을 넘어설 담대함을 주십시오.”

“성령님,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결론 — 달라지면 담대해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면 담대해집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십자가 앞에서는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임하신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위협해도 말했습니다. 감옥에 가도 찬송했습니다. 

 

매를 맞아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입니까? 그들의 성격이 갑자기 바뀐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 안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거룩해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용기가 아닙니다. 성령입니다.

담대함만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담대함의 근원이신 성령을 구하십시오.

능력만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을 구하십시오.

사명을 감당하게 해달라고만 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달라지면 담대해집니다.
담대해지면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자신감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거룩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에 집중하는 지혜입니다.

 

우리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말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이 달라졌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나오게 하십시오. “왜 달라졌지?”

그때 우리의 삶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힘으로 달라지려고 하지 않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내려놓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했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손해 볼까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순종하지 못했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성령님, 우리에게 거룩함의 능력을 주옵소서. 죄와 세상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우리에게 담대함의 능력을 주옵소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게 하시고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게 하시며
거짓보다 진리를 선택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우리에게 집중의 능력을 주옵소서.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마음과 시간과 힘을 집중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끝까지, 우리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이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의 행동이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의 사랑이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의 희생이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성령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달라지면 담대해집니다. 담대해지면 순종합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이 믿음을 붙들게 하시고, 오늘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거룩하고 담대하며 집중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