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생각'의 회심 (사도행전 10장)

생각의 회심 -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믿음(사도행전 10장 1–48절)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10장을 통해 아주 중요한 영적 질문 하나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내 생각을 믿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기도도 합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봉사도 합니다. 때로는 놀라운 은혜도 경험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병자를 고쳤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놀라운 일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십니다.
왜입니까? 아직 베드로 안에 깨져야 할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열심도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경력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인 동시에, 아니 더 깊은 의미에서는 베드로의 생각이 회심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초대교회의 세계관을 어떻게 변화시키셨는지를 보여주는 데 중요한 초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고넬료만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도 준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고넬료입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이방인입니다. 군인입니다.
로마의 권력 체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기도만 들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만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만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도 준비시키셨습니다.
고넬료에게는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고넬료에게는 사람을 보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에게는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넬료의 마음을 열어 놓으시고, 동시에 베드로의 마음도 열어 놓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한쪽에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저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만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너도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우리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십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0장의 깊은 메시지입니다.
2. 하나님께서 깨뜨리신 것은 베드로의 음식관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경계였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환상을 봅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옵니다.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이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립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 일이 세 번 반복됩니다. 왜 세 번입니까? 베드로는 쉽게 설득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확신이 너무 강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오래 믿어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원래 이렇게 합니다.”
“성경은 원래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는 맞지 않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말씀보다 앞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에 대해 만들어 놓은 생각을 믿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하신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음식을 먹어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세계를 넓히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을 때 분명해집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그제야 베드로가 깨닫습니다.
“아, 이것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구나.”
환상의 핵심은 음식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대상과 공동체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도 사도행전 10장의 핵심은 이 지점에 있습니다.
이 환상은 음식 규례 자체 변경보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사람을 사람이 부정하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방향으로 해석됩니다.
3.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내가 더럽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복음의 원리가 등장합니다. 거룩함의 최종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사람을 분류합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우리 편. 남의 편. 깨끗한 사람. 더러운 사람.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 교회 밖에 있어야 할 사람.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판단보다 더 높은 곳에서 선언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죄의 심각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교회는 죄를 없애기 위해 사람을 제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죄인을 건져내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 사람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사람을 내 집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4. 베드로의 진짜 회심은 생각의 회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에서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이것은 단순한 지식의 증가가 아닙니다.
베드로의 세계관이 바뀐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미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도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심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사야도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베드로도 오순절에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모든 육체”에 성령이 부어질 것을 이미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것은 다릅니다. 베드로는 이론적으로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를 만나기 전까지 그 진리가 자신의 인간관계와 선교의 실제 속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입니다.
말씀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과 말씀이 나를 지배하는 것은 다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믿음의 완성은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내가 깨지는 것이 믿음의 성장입니다.
5. 믿음은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믿음.” 저는 이것이 사도행전 10장을 설명하는 핵심 표현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가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주님, 제가 옳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 제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이 옳습니다.”
“주님, 제 경험보다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주님, 제가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보다 주님의 뜻이 옳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설득당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동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생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계관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교회를 바라보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각의 회심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시기 위해 때로는 불편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단순히 환상만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고넬료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고넬료가 당신을 청합니다.”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갑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환상을 본 것만으로 변화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변화가 실제가 됩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름이 생깁니다. 고넬료입니다.
그리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함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마침내 성령을 함께 받는 형제가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 하는 일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자기와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몸이 되게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은 초기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공동체가 되는 전환점으로 이해됩니다.
7.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셔서 교회의 역사를 바꾸십니다
사도행전 10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넬료와 그의 가족이 복음을 듣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이 사건은 11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됩니다. 결국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복음은 본격적으로 이방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바꾸시는 것은 나 하나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더 큰 일을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편견 하나를 내려놓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나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8. 고넬료는 기다렸고,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두 가지 아름다운 영성이 함께 나타납니다.
기다림과 순종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도착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태도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겠습니다.” 이것이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반면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일어납니다. “함께 가라.” 그리고 갑니다. 이것이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말씀을 들었으면 움직이는 것.
오늘 우리의 문제는 둘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기다리기만 합니다.
“하나님, 보여주시면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빨리 움직입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말씀도 확인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합니다.
성령의 인도는 조급함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기다리고, 말씀을 깨달으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9. 기도하는 두 사람이 만나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고넬료도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도 기도했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도가 만났습니다. 그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전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삶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야를 넓히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보내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닫힌 문을 여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세요.” 에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제 생각을 바꾸어 주세요.” 로 바뀌어야 합니다.
10. 하나님은 교회를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흘러가는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합니다. 유대로 갑니다. 사마리아로 갑니다. 그리고 땅끝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한 민족 안에 가두어 두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은 흘러가야 합니다.
은혜도 흘러가야 합니다.
사랑도 흘러가야 합니다.
교회도 흘러가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 담을 쌓습니다.
“우리끼리.”
“우리 방식대로.”
“우리 전통대로.”
“우리 사람들만.”
그러나 성령께서는 담을 허무십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담 안에 가두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흘러가도록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그래서 교회의 거룩함은 사람을 배제하는 거룩함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거룩함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그러니까 아무것이나 괜찮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거룩함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거룩함을 회복합니다.
거룩함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상처받은 자를 품으십니다. 죄인을 회복시키십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이 사람을 미워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거룩함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은 죄를 미워하지만 죄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악에 묶여 있는 사람을 건져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그냥 없던 것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죄의 값을 자신이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12. 베드로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더 깊은 순종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얼마나 강한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베드로의 생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경험이 신앙의 기준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전부터 이렇게 해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원래 이렇습니다.” “나는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경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험이 말씀 위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전통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통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 안 됩니다.
신학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자기 확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혁된 신앙의 핵심은 끊임없이 말씀 앞에서 개혁되는 것입니다.
13.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생각의 회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같은가?” 이 질문을 피하지 마십시오.
나는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을 처음부터 판단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싫어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전통을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붙들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경험 때문에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이 이것을 하실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베드로에게 주셨던 말씀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그리고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4. 생각이 회심하면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생각의 회심이 일어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문제가 보였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보입니다.
전에는 단점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입니다.
전에는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 무엇을 하시려고 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저 사람은 교회에 적합하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주님, 제가 틀렸다면 말씀으로 고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높은 권위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15. 결국 사도행전 10장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반드시 이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의 목적은 단순히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냅시다”가 아닙니다.
복음의 중심은 사회적 화합이 아닙니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무엇을 전합니까?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전합니다. 십자가를 전합니다. 부활을 전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선언을 합니다.
“그가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예수님은 유대인의 주님만이 아닙니다.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십자가는 모든 장벽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부활은 예수님의 주권이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장의 마지막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아직 설교를 다 마치기도 전에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십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방인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교를 교회가 따라간 것입니다.
16.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를 기도하기 전에 제 생각을 바꾸어 주십시오.”
“주님, 다른 사람의 완고함을 지적하기 전에 제 안의 완고함을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 옳다는 것을 믿게 하십시오.”
“주님, 제가 가진 경계를 넘어가게 하십시오.”
“주님, 제가 불편해하는 사람에게도 복음의 눈으로 다가가게 하십시오.”
“주님, 제 안의 베드로를 깨뜨려 주십시오.”
“주님, 제 생각의 회심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내 생각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내 경험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내 고집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내 편견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내 두려움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내 욕심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말씀으로 나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성령으로 나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결론 —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 10장의 가장 큰 변화는 고넬료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눈이 열렸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베드로의 집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교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이 회심하자 교회의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생각을 내려놓아라.”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지 말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네가 미워하지 말라.”
“내가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라.”
“내가 만나게 하는 사람을 만나라.”
“내가 열어 놓은 문을 네가 닫지 말라.”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언제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내 고집입니다.
내 편견입니다.
내 경험입니다.
내 전통입니다.
내 욕심입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제 생각을 회심시켜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의 눈길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손길이 되고,
하나님의 발걸음이 우리의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러 있던 좁은 세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드로를 준비하신 하나님,
베드로의 생각을 깨뜨리시고 교회의 문을 여신 하나님,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편견을 깨뜨리시고, 우리의 경계를 허무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셔서,
복음이 나를 넘어 이웃에게, 교회에서 세상으로,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흘러가게 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