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선물 같은 사람 (사도행전 18–19장)

힘들고 지칠 때 만난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흥(사도행전 18–19장)
“하나님의 사람도 지칠 수 있는가?” '선물 같은 사람'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
그렇습니다. 지칠 수 있습니다. 낙심할 수 있습니다. 두려울 수 있습니다. 혼자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생각할 때 위대한 사도, 복음의 영웅, 성령 충만한 전도자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8장에 나타난 바울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빌립보에서 매를 맞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베뢰아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복음을 전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열매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고린도에 혼자 들어옵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어떤 도시입니까?
당시 고린도는 국제적인 교역과 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만큼 문화와 종교와 가치관도 복잡했고, 도덕적 타락으로 악명 높은 도시였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육체도 지쳤고, 마음도 지쳤고, 영적으로도 눌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전서 2장 3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여러분, 이것이 위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약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떨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바울을 만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할 때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약할 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지쳤을 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친 바울에게 먼저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 위로가 바울을 다시 일으켰고, 그 위로가 결국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1. 지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사람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사도행전 18장 2–3절은 그들이 로마에서 추방되어 고린도에 왔고, 바울과 같은 생업인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보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신들이 왜 로마에서 쫓겨났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왜 삶의 터전을 잃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왜 고린도에 와야 하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고린도에서 지친 바울을 위해 너희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이해하기 전에 먼저 움직입니다. 우리는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십니다.
우리는 오늘의 고난만 보지만 하나님은 내일의 만남까지 보십니다.
우리는 지금의 실패만 보지만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하여 만들어질 미래의 사역까지 보십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지친 바울에게 “선물 같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까?
왜 내가 이곳에 와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왜 이 사람을 만났는지 모르겠습니까?
왜 내 계획이 무너졌는지 모르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이해하기 전에 이미 일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에서 쫓겨난 일이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고난이 만남이 되었습니다. 추방이 사명이 되었습니다.
실패처럼 보였던 사건이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일을 즉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은 모르지만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잠언 1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2.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지친 영혼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천사를 보내어 위로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말씀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격려가 하나님의 위로가 됩니다.
때로는 한 통의 전화가 하나님의 음성이 됩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식사 한 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됩니다.
때로는 “괜찮습니다. 함께 갑시다”라는 한마디가 한 사람을 살립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단순히 바울의 동료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6장 3,4절에서 그들을 자신의 동역자라고 부르며, 자기 목숨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까지 내놓았다고 증언합니다.
신약교회에서 이 부부가 얼마나 중요한 동역자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나를 만나면 사람이 살아납니까?
아니면 나를 만나면 사람이 더 지칩니까?
나의 말이 사람을 살립니까? 아니면 사람의 영혼을 무너뜨립니까?
잠언 12장 18절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선물 같은 사람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위로는 사역의 열매를 통해서도 옵니다
지친 바울에게 또 하나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사역의 열매였습니다.
바울은 혼자 고린도에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라와 디모데가 합류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다른 지역 교회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 안에서 굳게 서 있다는 소식입니다.
바울이 떠난 뒤에도 복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칠 때 가장 위험한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내가 심은 씨앗이 땅속에서 자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을 누군가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열매로 바꾸고 계실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주 안에서의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당장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가 헛되지 않습니다.
눈물이 헛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한 것이 헛되지 않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한 것이 헛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섬긴 것이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열매를 보여 주십니다.
4.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위로는 사람도 열매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8장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의 절정을 봅니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첫째, “두려워하지 말라.”
둘째,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셋째,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넷째,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이 네 가지가 지친 영혼을 다시 일으킵니다.
5. “침묵하지 말라” — 지친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두 번째 말씀은 더욱 놀랍습니다.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나님은 바울에게 쉬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단순한 감정적 위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다시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쳤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시고 다시 보내십니다.
엘리야가 지쳤을 때 하나님은 먹이시고 쉬게 하신 다음 다시 사명의 길로 보내셨습니다.
베드로가 실패했을 때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쳤느냐?” “그렇다면 끝내라.” 가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계속 말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6.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 사명의 능력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사도행전 18장 10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 근거는 내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말을 잘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많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의 언변을 먼저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약의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선교의 가장 큰 자원은 돈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기술도 아닙니다.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7.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이것이 놀랍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고린도가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 도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바울이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교회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이미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주권은 선교를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내 백성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바울은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게으름을 위한 핑계가 아니라 복음 전파의 확신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8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뭅니다.
8. 말씀에 붙잡히는 순간, 지친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다
여기서 사도행전 18장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등장합니다.
신라와 디모데가 도착하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했다고 기록합니다.
바울이 말씀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바울을 붙잡았습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는, 말씀이 나를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생각을 지배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 감정을 해석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 미래를 결정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선택을 다스려야 합니다.
말씀이 내 두려움보다 커야 합니다.
말씀이 내 상처보다 깊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생각이 바뀝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가치관이 바뀝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방향이 바뀝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뀝니다.
9. 말씀에 붙잡힌 사람에게 부흥이 시작됩니다
이제 사도행전 18장에서 19장으로 넘어갑니다. 고린도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는 에베소에서 더욱 확장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9장은 사도 바울의 사역 가운데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에서 복음이 깊이 뿌리내리고 넓게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0.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장 2절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들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 말씀은 오늘 교회에도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성경도 알고 있습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성령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사도행전 19장의 이 사람들은 완전히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알고 있었습니다. 회개를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완성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새 시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가르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며 성령께서 임하시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원칙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열심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생명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의 사건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동일한 외적 체험을 반복해야 한다는 공식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요한의 준비 단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복음과 성령의 새 시대 안으로 들어가는 전환입니다.
11. 복음의 핵심은 “예수”이고, 복음의 능력은 “성령”입니다
사도행전 18–19장을 통해 강조하는 핵심은 매우 선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성령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빼면 복음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빼놓고 인간의 노력만 이야기해도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중심입니다.
성령님은 그 복음을 우리 안에 실제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러므로 교회의 사역은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성. 그리고 성령의 능력. 예수 없는 성령 체험은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성령 없는 예수에 대한 지식은 실제 삶의 능력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성령, 그리스도와 성령, 진리와 능력 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12. 아볼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충격
사도행전 18장 후반부에는 아볼로가 등장합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습니다.
성경에 능했습니다. 말에도 능했습니다.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즉, 성경적 지식과 종교적 열정은 있었지만 복음에 대한 이해가 아직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설명합니다.
이 장면은 교회의 제자훈련에 대한 매우 중요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열정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필요합니다.
아볼로는 잘못된 사람이라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 준비된 사람이 더 정확한 복음 안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고린도에서 힘 있게 사역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람을 정죄해서 버리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더 온전한 복음으로 세우는 교회.
13. 에베소의 부흥은 “날마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8–10절은 에베소 사역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회당에서 석 달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완고하게 반대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성경은 놀라운 결과를 기록합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여기서 부흥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부흥은 한 번의 이벤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부흥은 말씀의 지속적인 공급을 통해 깊어집니다.
에베소 사역의 핵심을 “성령을 받고, 날마다 말씀으로 양육받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교회가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주일예배 한 번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매일 먹어야 합니다. 기도를 매일 해야 합니다. 복음을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매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도 매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하루만 굶어도 힘듭니다.
그런데 영혼은 굶겨 놓고 강건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14. 말씀과 성령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함께 역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만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은 체험만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둘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말씀이 선포되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확장됩니다.
말씀이 폭발적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고,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열매 맺기 위해서는 말씀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성령은 말씀과 분리되어 역사하지 않으시며, 말씀은 성령의 조명 없이 생명을 낳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4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단순한 감정의 고조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15. 진짜 부흥은 사람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흥을 흔히 숫자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부흥. 헌금이 많아지면 부흥. 건물이 커지면 부흥.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부흥.
그러나 사도행전의 부흥은 훨씬 깊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이 퍼집니다.
사람의 가치관이 변화됩니다. 죄와 우상이 무너집니다.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복음이 도시의 문화를 흔듭니다.
이것이 진짜 부흥입니다.
16. 에베소에서는 복음이 우상의 경제체계와 충돌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의 후반부에 가면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여신 숭배가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가자 사람들이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술과 관련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책을 공개적으로 불태웁니다.
사도행전 19장 19절은 그들이 그 책값을 계산해 보니 은 5만이나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결단이 아닙니다. 복음이 삶의 주인을 바꾸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옛 삶을 붙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영혼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바꿉니다. 돈의 사용을 바꿉니다. 가치관을 바꿉니다. 관계를 바꿉니다. 습관을 바꿉니다. 우선순위를 바꿉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9장 20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여기에서 사도행전 19장의 절정이 나옵니다.
말씀이 흥왕했습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주목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브랜드가 커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흥왕했습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17. 진짜 부흥은 복음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는 것보다 먼저, 말씀이 커져야 합니다.
예배가 많아지는 것보다 먼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커져야 합니다.
사역이 많아지는 것보다 먼저, 성령의 통치가 우리 안에 깊어져야 합니다.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져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 3장 30절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부흥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커지고 나는 작아지는 것.
내 욕심은 작아지고 하나님의 뜻은 커지는 것.
내 자랑은 작아지고 십자가가 커지는 것.
내 계획은 작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커지는 것.
18. 그런데 부흥이 일어나면 반드시 저항도 일어납니다
에베소에서 복음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자 반대도 나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단순한 종교적 정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상의 지배를 깨뜨립니다.
복음은 죄의 지배를 깨뜨립니다.
복음은 탐욕의 지배를 깨뜨립니다.
복음은 인간이 스스로 왕이 되려는 욕망을 깨뜨립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들어가면 어둠이 저항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어떤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왜 문제가 더 생기는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붙들었더니 갈등이 생깁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했더니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했더니 손해를 봅니다. 선교하려고 했더니 반대가 생깁니다. 그럴 때 기억하십시오.
저항이 있다는 것이 반드시 실패의 증거는 아닙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드러납니다.
생명이 들어오면 죽음이 반응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우상이 흔들립니다.
19. 바울이 지쳤던 고린도에서 하나님은 부흥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18장과 19장을 하나로 연결해 봅시다.
18장에서는 바울이 지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 말씀을 전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함께했습니다.
신라와 디모데가 합류했습니다.
사역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보와 그의 집안이 믿었습니다.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장으로 가면 에베소에서 더 깊은 양육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말씀이 날마다 선포됩니다.
제자들이 세워집니다.
복음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우상숭배의 영역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경은 선언합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것이 하나의 흐름입니다. 위로 → 말씀 → 성령 → 양육 → 변화 → 복음 확장 → 부흥
20. 그러므로 부흥의 출발점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흥을 말하면 강력한 지도자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8장의 시작은 강한 바울이 아닙니다.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었던 바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3–5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의 능력은 바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오늘 지쳤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약하다면 숨기지 마십시오.
두렵다면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2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살아나는 은혜”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지쳐 있습니까?
기도가 잘되지 않습니까?
예배가 힘듭니까?
사역이 부담스럽습니까?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습니까?
가정 때문에 힘듭니까?
사업 때문에 무너집니까?
자녀 때문에 눈물이 납니까?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사도행전 18장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침묵하지 말라.”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여러분이 아직 보지 못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보지 못한 열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22. 우리의 교회가 에베소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사람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프로그램만 많아지는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건물만 커지는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날마다 말씀을 먹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가 복음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가 흘러나가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우리의 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순간에도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23.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사람.”
말씀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에 붙잡힌 사람. 성경구절을 많이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씀 때문에 삶의 방향이 바뀌는 사람.
말씀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사람. 말씀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 굴복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말씀의 사람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은 우리의 길을 비춥니다.
더 깊이 말하면, 말씀은 우리 자신이 길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붙잡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24.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바울이 던진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해 봅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여러분은 성령을 알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합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도록 내어드리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합니까?
성령께서 가라고 하실 때 갑니까?
멈추라고 하실 때 멈춥니까?
용서하라고 하실 때 용서합니까?
사랑하라고 하실 때 사랑합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실 때 전합니까?
성령 충만은 단순히 예배 시간의 감정적인 뜨거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삶의 주권을 성령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의 성령 역사는 결국 복음 증언과 연결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처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 충만은 증인됨으로 나타납니다.
25.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명령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세 문장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지쳤다면 하나님께 위로받으십시오.
사람에게만 기대지 마십시오.
환경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 능력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둘째, 말씀에 붙잡히십시오.
말씀을 읽는 데서 끝나지 마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붙들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선택을 결정하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교회를 다스리게 하십시오.
셋째, 성령으로 충만하여 다시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지쳤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실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았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떠났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업이 무너졌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지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에베소에서 복음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결론 — 하나님은 지친 사람을 다시 부흥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이것입니다. 지친 바울이 부흥의 바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지쳤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떨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보내셨습니다. 신라와 디모데를 보내셨습니다. 사역의 열매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에베소에서 말씀이 날마다 선포되었습니다. 복음이 도시를 변화시켰습니다. 우상이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여러분, 이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죽어가던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
“하나님, 내 안에 말씀이 살아나게 하십시오.”
“하나님, 성령으로 나를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 나의 가정에서 말씀이 흥왕하게 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교회에서 복음이 폭발하게 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지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오늘 힘들고 지친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낙심한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다시 붙들기를 바랍니다.
오늘 영적으로 메마른 분이 계십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다시 생명의 강을 흐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침묵하지 말고 계속하라.”
오늘 우리의 삶이 다시 살아나고,
우리의 가정이 다시 살아나고,
우리의 교회가 다시 살아나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다시 살아나고,
우리의 선교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의 말씀이 힘 있게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지쳤을 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었을 때 찾아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주님,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여 주옵소서.
사람 때문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환경 때문에 무너진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미래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에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 주시고,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선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이 다시 말씀에 붙잡히게 하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붙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의 가정을 다스리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의 교회를 다스리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에베소와 같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 날마다 선포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제자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가정이 변화되게 하시고,
다음 세대가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이 우리의 지역과 민족과 열방으로 흘러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에서 우상이 무너지게 하시고, 죄의 습관이 끊어지게 하시고,
복음이 우리의 생각과 돈과 관계와 시간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는 사도행전의 역사가 오늘도 계속되게 하옵소서.
지친 자가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낙심한 자가 다시 소망을 갖게 하시고, 넘어진 자가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침묵하던 자가 다시 복음을 말하게 하시고, 죽어가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