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10. 08:33

성령에 매여,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달려간 사람 - 사명자의 세 가지 실력 (사도행전 20장)

오늘 본문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무려 약 3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공중 앞에서 말씀을 전했고, 각 집에서 가르쳤습니다.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헬라인에게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매우 중요한 말을 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 20:22–24

 

여기에 바울의 인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바울에게 인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성공했느냐도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았느냐도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이루었는가?”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도 바로 이것입니다.

 

1. 인생에는 반드시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맞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목적지가 잘못되어 있다면 빨리 도착할수록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마라톤 선수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코스를 이탈하면 그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열심히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그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바울은 자기 인생을 ‘달려갈 길’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달려갑니까?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포기하지 않습니까?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을 견딥니까? 방향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은 방향 없는 열심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달려가는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사명이 없는 열심은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사명이 있는 열심은 우리를 견디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마태복음 6:33

 

먼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먼저 구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돈이 먼저입니까?

성공이 먼저입니까?

자녀의 성공이 먼저입니까?

건강이 먼저입니까?

명예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2. 사명자는 성령에 매인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보통 우리는 자유를 좋아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겠다.” 세상은 이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다른 차원의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욕망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성령께 매인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령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바울에게 무엇을 알려주셨습니까? “가면 편안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반드시 편안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고 해서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다가 고난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고난이 있는가, 없는가?” 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였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미성숙한 신앙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 길이 편합니까?” 성숙한 신앙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3. 사명자는 고난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복음을 보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앞으로 환난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갑니다. 왜입니까? 24절 때문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바울은 생명을 경시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생명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생명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적 자기 이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마태복음 16:24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목적 없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감당하는 대가입니다.

 

4. 바울에게 사명은 말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 사역을 회상합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를 섬겼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9절입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여기서 우리는 사명자의 세 가지 실력을 발견합니다.

첫째, 겸손  둘째, 눈물  셋째, 인내

사도행전 20장 19절과 24절을 연결하면서 이 세 가지를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실력으로 강조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별설교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겸손과 눈물과 인내입니다.

 

5. 첫 번째 실력 — 겸손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겸손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 요한복음 3:30

 

이것이 겸손입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위대하신가?” 를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겸손한 사람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의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했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6. 두 번째 실력 — 눈물

사명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단순한 조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영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이별의 순간,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라고 기록합니다.

사역에 눈물이 없으면 사람은 결국 숫자가 됩니다. 교회가 숫자가 됩니다. 성도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습니다. 한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주님에게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왜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울고 있습니까?

내 자녀를 위해서입니까?

내 가족을 위해서입니까?

교회를 위해서입니까?

복음을 위해서입니까?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서입니까?

한국교회를 위해서입니까?

다음 세대를 위해서입니까?

사명자는 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7. 세 번째 실력 — 인내

바울은 수많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의 문맥에서 바울의 사역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사역은 열매가 풍성했던 만큼 반대와 위협도 컸습니다.

 

바울 자신도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겸손과 눈물과 시험”이라는 언어로 회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시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는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4절은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문제를 제거해 주시는 대신 그 문제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8. 사명자는 말씀을 선택적으로 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 사도행전 20:27

 

여기서 “다”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값싸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회개도 전했습니다.

믿음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십자가도 전했습니다.

성도의 책임도 전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회자는 사람의 기분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말씀으로 세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설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충실하게 전하는 설교” 입니다.

 

9. 사명자는 자기 자신부터 지킵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 사도행전 20:28

 

놀랍습니다. “양 떼를 잘 돌보라.” 라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먼저 자신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목자가 무너지면 양 떼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관리하기 전에 자기 영혼을 관리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가르치기 전에 자기 자신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자신의 삶이 복음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사명은 직분보다 먼저 사람을 요구합니다.

 

10. 교회는 사람이 만든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놀라운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교회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것도 아닙니다. 장로의 것도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의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값은 은과 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성도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내가 구원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자기 피로 사신 교회”로 강조하면서 교회의 가치와 지도자의 책임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론의 핵심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11. 그래서 사명자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매우 엄중한 경고를 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 사도행전 20:29

그리고 더 무서운 말을 합니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 사도행전 20:30

 

교회의 위험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말한다고 다 성경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복음적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말한다고 다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열심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분별력입니다.

바울은 그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깨어 있으라.

둘째, 말씀에 맡기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 사도행전 20:32

 

여기에서 중요한 신학적 원리가 나옵니다. 교회를 지키는 최종 주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십니다.

 

따라서 교회의 안전은 사람의 카리스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습니다.

 

12. 사명자는 돈보다 복음을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 사도행전 20:33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일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역자는 반드시 사례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바울 자신도 다른 서신에서는 복음 사역자의 생활을 교회가 책임지는 원리를 인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바울은 돈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돈이 복음을 섬기게 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면 성도가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복음이 목적이 되면 돈은 수단이 됩니다.

 

교회 안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사용해야지, 사람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은사를 사용하여 관계와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13. 사명자의 성공 기준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 말씀은 기독교적 성공의 정의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세상은 많이 가진 사람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이 주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영향력을 많이 가진 사람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자신의 영향력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사람을 귀하게 봅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이 얻었는지를 묻습니다. 복음은 묻습니다.

“얼마나 많이 흘려보냈는가?”

내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냈습니까?

내가 받은 은혜를 흘려보냈습니까?

내가 받은 물질을 흘려보냈습니까?

내가 받은 복음을 흘려보냈습니까?

내가 받은 시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했습니까? 그것이 사명자의 삶입니다.

 

14. 결국 바울의 사명은 ‘다음 사람에게 사명을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납니다. 그러나 복음은 떠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말씀은 남습니다. 

 

바울의 시대가 끝나갑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사명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0장의 매우 중요한 구조입니다.

사명자는 자기 자신을 영구적으로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목표는 한 사람의 위대한 목회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가 복음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의 목표도 자녀가 부모에게 계속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붙잡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그리스도께 연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5. 바울의 마지막 장면은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은 아주 아름답게 끝납니다. 바울은 말을 다 마친 후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합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그리고 그들은 울었습니다. 서로 껴안았습니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배까지 바울을 전송했습니다.

이 장면은 사명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명자는 사람을 떠날 수 있지만 기도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끝내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주인은 바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맡깁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마지막 자세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지막 자세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명자의 마지막 자세입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나머지는 주님께 맡깁니다.”

 

16.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질문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 20장의 바울을 보면서 우리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어디를 향해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방향이 틀렸다면 속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 방향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소서.”

둘째, 나는 무엇에 매여 있는가?

돈에 매여 있습니까?

사람의 평가에 매여 있습니까?

자녀의 성공에 매여 있습니까?

과거의 상처에 매여 있습니까?

내 자존심에 매여 있습니까?

내 욕망에 매여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께 매여 있습니까?

바울은 성령께 매였기 때문에 자유로웠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생명까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돈만 남기고 있습니까?

집만 남기고 있습니까?

명예만 남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남기고 있습니까?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남기고 있습니까?

자녀에게 기도의 유산을 남기고 있습니까?

교회에 사랑을 남기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까?

바울은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남겼습니다.

 

17. 오늘 우리의 인생도 ‘사명’으로 다시 해석하십시오

인생을 다시 해석하십시오.

내 직업도 사명으로 보십시오.

내 가정도 사명으로 보십시오.

내 재정도 사명으로 보십시오.

내 건강도 사명으로 보십시오.

내 시간을 사명으로 보십시오.

내 은사를 사명으로 보십시오.

내가 만나는 사람도 사명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자리입니다.

가정은 단순히 쉬는 공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전수하도록 맡기신 자리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내 인생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18. 결론 —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리고 또 하나입니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생명을 미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는 뜻입니다.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소비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인생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지막 날이 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 라고 먼저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유명했느냐?” 라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너를 인정했느냐?” 라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맡긴 것을 어떻게 살았느냐?”

그때 우리가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했습니다. 많이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붙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내 계획을 이루는 것이 성공인 줄 알았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복인 줄 알았으며,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으며, 주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성령에 매인 바울처럼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편안한 길만 찾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옵소서.

 

고난이 있다고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사명의 방향을 분명하게 하시고 그 방향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겸손의 실력을 주옵소서.

나를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을 높이게 하시고 내 이름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눈물의 실력을 주옵소서.

 

영혼을 사랑하게 하시고 가정을 위해 울게 하시며 교회를 위해 울게 하시고 다음 세대를 위해 울게 하시며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울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인내의 실력을 주옵소서.

기도의 응답이 늦어도 기다리게 하시고 사역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충성하게 하시며 사람에게 오해받아도 복음을 붙들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를 지켜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귀중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게 하시고 어그러진 말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언제나 주님의 은혜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깨어 있는 마음을 주시고 성도들에게도 책임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세우며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물질도 주님의 것이요,
우리의 시간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건강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자녀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모든 은사도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게 하시고, 누군가가 믿음을 갖게 하시며, 누군가가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가 복음을 이어가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하게 하옵소서. “주님께 받은 사명을 다 마쳤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가정의 사명, 직장의 사명, 교회의 사명, 선교의 사명, 복음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하며 나의 생명을 주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작도 주님이시고
우리의 과정도 주님이시며
우리의 마지막도 주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성령에 매여 살게 하시고 복음에 붙들려 살게 하시며 말씀에 뿌리내려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을 위한 삶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교회를 세우는 삶,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삶,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삶
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게 하시고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완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사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