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혈과 육 - 인생의 씨름,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으로 싸우라(에베소서 6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27. 09:48

영적 전쟁을 아는 자의 인생의 차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으로 서라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의 제목은 “영적 전쟁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있고, 가정의 갈등이 있고, 직장의 갈등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건강의 문제도 있고 관계의 상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한 차원 더 깊은 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에베소서 6장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남편이 적이 아닙니다.
내 아내가 적이 아닙니다.
내 자녀가 적이 아닙니다.
내 부모가 적이 아닙니다.
내 직장 상사가 적이 아닙니다.
내 동료가 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대상과 눈에 보이는 사람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 하나님 앞에서 싸우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관계가 무너질 때 사람을 끊어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알아야 한다.” 영적 전쟁을 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1. 믿음은 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말씀은 씨앗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 누가복음 8:11

 

그리고 로마서 10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삶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를 생각해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사랑은 혼자 있을 때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만날 때 드러납니다.

희락도 관계 속에서 나타납니다.

화평도 관계 속에서 나타납니다.

오래 참음도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할 때 나타납니다.

온유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을 때 나타납니다.

용서도 관계가 깨졌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관계 속에서 검증됩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가정에 돌아가면 화를 냅니다.

예배 때는 은혜를 받았는데 직장에서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성경은 많이 아는데 가까운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받은 말씀은 어디에서 열매를 맺고 있느냐?” 영적 전쟁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2.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은 관계 속에서 일어납니다

에베소서는 매우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5장에서 남편과 아내를 이야기합니다. 6장 앞부분에서는 부모와 자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종과 주인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6장 10절부터 영적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의 영적 전쟁이 추상적인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의 실제 삶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영적 전쟁은 밤마다 무서운 환상을 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은 때로는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부부가 서로 말하지 않는 것.

부모와 자녀가 마음의 문을 닫는 것.

직장에서 분노와 경쟁심이 커지는 것.

사소한 오해가 깊은 미움으로 발전하는 것.

용서할 수 없다고 마음을 닫는 것.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에베소서 6장 12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궁극적인 적이 아닙니다.

 

3. 가정에서 시작되는 영적 전쟁

에베소서 6장 1–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리고 2절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그리고 4절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에는 매우 놀라운 균형이 있습니다.

자녀에게는 순종을 말씀합니다.

부모에게는 사랑과 책임을 말씀합니다.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녀를 마음대로 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해서 부모가 자녀의 인격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성경적 권위는 지배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책임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가정의

첫 번째 무기는 큰소리가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두 번째 무기는 통제가 아닙니다. 말씀입니다. 

 

세 번째 무기는 비난이 아닙니다. 용서입니다.

 

네 번째 무기는 자녀를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강력하게 줄 수 있는 신앙교육은 무엇입니까?

부모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부모는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말보다 행동을 배웁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서 부모가 말씀을 무시한다면 아이는 말보다 삶을 배웁니다.

사랑하라고 하면서 부모가 서로 미워한다면 아이는 설교보다 관계를 배웁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작은 교회와 같습니다. 가정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가정의 주인이 되시느냐입니다.

 

4. 죄책감과 정죄의 공격을 분별하십시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잘못된 책임감을 갖고 말을 잃어버렸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통찰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사건이 잘못된 해석과 결합하여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과거를 해석하는 우리의 시선을 바꿉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여기서 매우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성령의 책망과 사탄의 정죄는 다릅니다.

성령의 책망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갑니다. “네가 잘못했다. 그러니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러나 정죄는 말합니다. “너는 끝났다.” “너는 용서받을 수 없다.” “너는 가치가 없다.” “하나님도 너를 버렸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사탄을 가리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라고 표현합니다.

참소한다는 것은 고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성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서 분별합니다. “이 생각이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가?”

 

5. 일터도 영적 전쟁의 현장입니다

에베소서 6장 5절부터 9절은 일터의 관계를 다룹니다. 특히 6절과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주께 하듯.” 사람이 보고 있느냐가 기준이 아닙니다. 상사가 보고 있느냐가 기준이 아닙니다. 칭찬받느냐가 기준이 아닙니다.

돈을 얼마나 받느냐가 궁극적인 기준도 아닙니다.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의식이 기준입니다.

 

사람이 볼 때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사람의 종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주님의 종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하면 인정이 사라지는 순간 마음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듯 일하면 사람의 평가가 흔들려도 우리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여기에서 직업윤리와 영성이 만납니다.

직장생활도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회의도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6. 그러나 일터에서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영적 전쟁을 안다고 하면서 직장 사람들을 모두 마귀의 도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영적 오해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오히려 반대로 말씀합니다.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이 세상의 방식과 다른 방식입니다.

세상은 나를 공격하면 나도 공격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기도하라.”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싸움은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악에 맞서 진리와 사랑을 지키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7.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사기 2장과 3장을 보면 매우 중요한 세대의 차이가 등장합니다.

사사기 2장 7절은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본 세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사사기 3장 2절은 이와 대조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몸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여기에서 고난의 신학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징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고난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훈련하시고 믿음을 성숙시키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입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고난이 우리를 망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전쟁을 겪어본 사람은 평화를 소중히 압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한 사람은 기도의 가치를 압니다.

 

절망의 밤을 지나온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8.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핵심입니다.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은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듭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성령을 의지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것이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나는 강하다.”가 아닙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9.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1절입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 힘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인간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복음의 무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신갑주를 하나씩 살펴보아야 합니다.

 

10. 첫째, 진리의 허리띠를 띠십시오

에베소서 6장 14절입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전쟁에서 군인의 허리띠는 장비를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적으로 진리는 우리 삶을 붙잡아 줍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네 감정이 진리다.”

“네 욕망이 진리다.”

“사람들의 평가가 진리다.”

“돈이 진리다.”

“성공이 진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요한복음 17:17

 

영적 전쟁에서 첫 번째 싸움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사탄의 공격은 종종 거짓말로 시작됩니다.

창세기 3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모르면 거짓말을 진리처럼 믿게 됩니다.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감정을 해석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십시오.

 

11. 둘째, 의의 흉배를 붙이십시오

에베소서 6장 14절입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흉배는 심장을 보호합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얻는 의입니까?

물론 성경은 거룩한 삶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출발점은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습니다. 그리고 그 의를 입은 자답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이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내가 잘 살아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이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에 감사하여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셋째,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으십시오

에베소서 6장 15절입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신발은 움직이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목적은 싸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은 갈등을 확대하지 않습니다.

화해의 통로가 됩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절망한 사람에게 소망을 전합니다.

미움 가운데 사랑을 전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

 

13. 넷째, 믿음의 방패를 드십시오

에베소서 6장 16절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불화살은 갑자기 날아옵니다. 두려움도 갑자기 들어옵니다. 의심도 갑자기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이 일이 정말 회복될까?”

“내 인생은 끝난 것 아닐까?”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닌가?”

이것이 불화살입니다. 그때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절도 붙드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4. 믿음의 방패는 혼자 들지 않습니다

전쟁은 개인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철저히 공동체적이었습니다.

성도는 혼자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군가 넘어지면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낙심하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 흔들리면 말씀으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전도서 4장 9–10절은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는 공동체입니다.

 

15.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에베소서 6장 17절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투구는 머리를 보호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았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의 정체성은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있다.”

 

로마서 8장 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것이 구원의 투구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흔듭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직업이 나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내 재산이 나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내 성공이 나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칭찬도 나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16. 여섯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에베소서 6장 17절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것은 전신갑주 가운데 특별히 공격적 성격을 가진 무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무엇으로 대적하셨습니까?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사탄의 시험 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모르면 영적 전쟁에서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성경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성경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책장에 성경이 있는 것과 내 심령에 말씀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시편 119편 11절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을 마음에 두십시오.

 

17. 그런데 전신갑주는 기도로 완성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놀라운 것은 전신갑주의 목록을 마친 다음 바울이 곧바로 기도를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빠지면 전신갑주는 단순한 상징이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의존하는 행위입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주님, 제 가정을 지켜 주십시오.”

“주님,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주님, 제 직장을 지켜 주십시오.”

“주님, 교회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 다음 세대를 지켜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18. 영적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상태는 기도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인생의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영성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 중 하나는 너무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가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사람에게 전화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전문가를 찾습니다.

돈을 찾습니다.

계획을 세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가장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일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싸워야 합니다.

 

19. 영적 전쟁은 환경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이 그의 사명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환경이 바뀌어야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으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옥에서도. 가난 속에서도. 병 가운데서도.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도. 가정의 문제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도. 주님 안에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 성령으로 옷 입으십시오

원문에서 마지막으로 매우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3장 27절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잘 안 됩니다. 그래도 겸손을 입습니다.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입습니다.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용서를 입습니다.

온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온유를 입습니다.

친절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친절을 입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1. 성령으로 옷 입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성령으로 옷 입은 사람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 살면 나의 크기만큼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확장됩니다.

내가 가진 재능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내가 가진 직업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내가 가진 재정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내가 가진 지식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내가 가진 경험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내가 받은 상처까지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2.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서 있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서라.”

11절.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3절.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절.

“그런즉 서서…”

 

여기에서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항상 무엇인가를 공격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무너지지 않고 서서 버티고 있는 것이 승리입니다.

 

시험이 왔는데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받았는데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이 왔는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는데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는데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23.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의 7가지 특징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을 궁극적인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둘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셋째, 기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넷째, 가정의 관계를 영적 영역으로 이해합니다.

 

다섯째, 일터에서도 주께 하듯 살아갑니다.

 

여섯째, 공동체와 함께 믿음의 방패를 듭니다.

 

일곱째,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입니다.

 

24. 반대로 영적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사사기의 비극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점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사사기 2장 10절은 말합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기서 두 가지가 끊어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

그러므로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일은 단순히 교회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아빠가 힘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단다.”

“엄마가 절망했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단다.”

“우리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단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셨단다.” 이 간증이 다음 세대의 영적 기억이 됩니다.

 

25.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영적 전쟁을 알고 있습니까? 혹시 보이는 것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환경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황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

“의의 흉배를 붙이라.”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으라.”

“믿음의 방패를 들라.”

“구원의 투구를 쓰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26. 영적 전쟁의 최종 승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복음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승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그리스도께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패배를 승리로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서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은 “싸워서 승리하라”만 말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말합니다.

“서라.” 왜 서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승리 위에 서는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오늘 다시 일어나십시오

혹시 가정에서 무너진 관계가 있습니까? 오늘 다시 기도하십시오.

혹시 부모님과 풀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화해의 길을 여십시오.

혹시 자녀와 마음의 문이 닫혀 있습니까? 먼저 기도하십시오.

혹시 직장에서 상처를 받았습니까?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혹시 과거의 죄책감에 묶여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음을 붙드십시오.

혹시 미래가 두렵습니까?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혹시 유혹과 싸우고 있습니까? 말씀의 검을 드십시오.

혹시 마음이 무너지고 있습니까? 믿음의 방패를 드십시오.

혹시 하나님이 멀게 느껴집니까? 기도를 다시 시작하십시오.

 

결론 — 영적 전쟁을 아는 자로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은 단순합니다. 영적 전쟁을 아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영적 전사가 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는 영적 전사가 되십시오.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사탄의 간계를 분별하십시오.

관계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십시오.

가정에서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일터에서 주께 하듯 섬기십시오.

공동체에서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십시오.

말씀으로 생각을 지키십시오.

믿음으로 불화살을 막으십시오.

구원의 확신으로 정체성을 지키십시오.

성령의 검으로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8–20절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리고 바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옥에서 풀어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주님, 문제가 없어지게 해주십시오.”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주님, 문제가 있는 가운데서도 제가 믿음을 지키게 해주십시오.”

“주님, 환경이 바뀌기 전에 제가 먼저 변화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제 삶을 통해 복음이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주님, 제가 성령으로 옷 입게 해주십시오.”

“주님, 오늘도 굳게 서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 전쟁을 아는 사람.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 성령으로 옷 입은 사람. 기도로 깨어 있는 사람.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영적 싸움의 본질을 분별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승리 위에 굳게 서는 사람. 그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성 깊은 마무리 기도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 싸움을 사람과 사람의 싸움으로 오해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 남편을 적으로 보지 않게 하시고,
내 아내를 적으로 보지 않게 하시며,
내 부모를 원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게 하시고,
내 자녀를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게 하옵소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게 하시고, 갈등 속에서도 진리를 지키되 사랑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안에 있는 분노를 다스려 주시고,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며,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을 만져 주시고,
과거의 죄책감과 정죄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사탄의 참소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혀 주옵소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게 하시고,

의의 흉배를 붙이게 하시며,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게 하시고,

믿음의 방패를 들게 하시며,

구원의 투구를 쓰게 하시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게 하옵소서.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말씀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며,

예배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공동체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영적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고 굳게 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환경이 우리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시고, 사람의 평가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시며,

돈과 성공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지켜 주옵소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주옵소서.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상처로 굳어진 마음을 녹여 주시며, 서로에게 다시 사랑의 말을 건넬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일터를 지켜 주옵소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정직하게 하시고, 아무도 칭찬하지 않을 때에도 충성하게 하시며,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께 하듯 일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회를 지켜 주옵소서.

성도들이 서로의 믿음의 방패가 되게 하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며, 낙심한 자를 위로하고, 상처받은 자를 품으며,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아름답게 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사사기 시대와 같은 영적 무지가 반복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행하신 큰일을 기억하게 하시고,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게 하옵소서.

“내가 살아온 모든 날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셨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서 길을 여셨다.” 이 믿음의 간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가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진리 위에 서게 하시고, 복음 위에 서게 하시며, 믿음 위에 서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두려울 때 믿음을 주시며, 낙심할 때 소망을 주시고, 시험 가운데 인내하게 하시며,

전쟁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가정이 살아나고, 일터가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며, 다음 세대가 살아나고,

복음이 다시 힘 있게 증거되게 하옵소서.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마지막까지 기도하게 하시며,

마지막까지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마지막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에 새기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을 아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자가 되게 하시며, 성령으로 옷 입은 자가 되게 하시고,

기도로 깨어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