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혀(재갈, 키, 불)를 다스리는 하늘의 지혜, 우리의 말이 예배입니다. (야고보서 3장)

혀를 다스리는 하늘의 지혜- 내 말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야고보서 3장) 우리의 말이 씨앗이며 예배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은 입에서 나가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말은 나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열매를 맺고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축복의 말도 돌아오고, 저주의 말도 돌아옵니다.
격려의 말도 돌아오고, 비난의 말도 돌아옵니다.
믿음의 말도 우리의 삶을 움직이고, 불신의 말도 우리의 삶을 끌고 갑니다.
그래서 오늘 야고보서 3장은 우리에게 아주 무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입에서는 무엇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리고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당신의 입에서 그것이 나오고 있습니까?”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의 문제를 단순한 말투의 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혀의 문제는 영혼의 문제입니다.
말의 방향은 결국 내가 어떤 지혜를 따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지표입니다.
야고보서는 3장 13절에서 묻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리고 지혜 있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한 행실로 지혜를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지식의 양이 아닙니다. 지혜는 삶의 방향입니다. 지혜는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1. 왜 야고보는 혀를 이렇게 심각하게 다루는가?
야고보서 3장은 1절부터 매우 엄중하게 시작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왜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습니까?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말을 사용합니다.
교사는 말을 사용합니다.
부모는 말을 사용합니다.
지도자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2절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여기서 야고보는 말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모두 말에서 넘어집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가 무너집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오랜 우정이 깨집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가정에 냉기가 흐릅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갈라집니다.
반대로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이 살아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다시 일어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포기하려던 사람이 다시 꿈을 꿉니다. 그러므로 말은 작지만 작지 않습니다. 혀는 작지만 인생을 움직입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세 가지 그림으로 설명합니다.
재갈, 키, 불입니다.
2. 혀는 말의 재갈입니다
야고보서 3장 3절입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말 한 마리의 입에 작은 재갈 하나를 물립니다. 그 작은 재갈이 말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말의 몸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장치가 아닙니다. 작은 재갈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작은 혀 하나가 우리의 삶 전체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사실상 자기 인생의 방향을 함부로 정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절제하는 사람은 인생을 절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혀가 통제되지 않으면 감정도 통제되지 않고, 관계도 통제되지 않고, 행동도 통제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영적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혀를 통제하려면 먼저 마음이 하나님께 통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혀만 붙잡으려고 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잠깐 참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분노가 그대로라면 어느 순간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마태복음 12:34
그리고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우리의 말은 마음의 창문입니다.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면, 내 입에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 관리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마음 관리입니다.
입을 고치는 것보다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혀를 세척하는 것보다 영혼을 씻어야 합니다.
말투를 바꾸는 것보다 주인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실 때 언어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3.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야고보서 3장 4절을 보면 큰 배가 등장합니다.
배는 거대합니다. 바람도 강합니다. 파도도 큽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주 작은 키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크기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때로 거대한 사건이 아닙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말입니다.
매일 아침 내가 나에게 하는 말.
배우자에게 하는 말.
자녀에게 하는 말.
동료에게 하는 말.
성도에게 하는 말.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말. 그 말들이 쌓여 우리의 방향을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오늘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매일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안 돼.”
“나는 안 될 거야.”
“저 사람 때문에 안 돼.”
“우리 교회는 안 돼.”
“우리 가정은 안 돼.”
“나는 늦었어.”
“이제 끝났어.”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그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
“오늘도 하나님이 길을 여신다.”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주님이 나를 붙드신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물론 이것을 단순한 긍정적 사고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의 믿음의 언어는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언어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4. 혀는 불입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은 가장 강력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그리고 이어서 혀를 불에 비유합니다. 왜 불입니까? 불은 작게 시작하지만 크게 번집니다.
말 한마디가 작은 불씨가 됩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해석이 붙고, 감정이 붙고, 오해가 붙으면 어느 순간 공동체 전체를 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말로 만들어지는 불입니다.
성경은 공동체를 세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가는 곳마다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그 사람이 들어가면 평안이 사라집니다.
그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서로 의심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편이 갈립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땅의 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그리고 16절은 말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이것은 매우 무서운 말씀입니다. 시기와 다툼은 혼란과 악한 일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의 원료가 무엇입니까?
비교입니다. 교만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입니다. 자기 의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결국 말로 나옵니다.
5. 말의 가장 무서운 점은 남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죽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말조심하라고 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 맞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메시지는 더 깊습니다.
악한 말은 남을 해치는 동시에 나 자신을 파괴합니다.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상대방만 다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손도 다칩니다.
불을 던지는 사람이 남의 집만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주변도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를 불이라고 부릅니다.
말 한마디가 내 인간관계를 불태우고, 내 평안을 불태우고, 내 신뢰를 불태우고, 내 영적 감각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기 전에 질문해야 합니다.
“이 말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 말이 사람을 살리는가?”
“이 말이 공동체를 세우는가?”
“이 말이 내 영혼에도 유익한가?”
이 네 가지 질문만 습관화해도 우리의 언어생활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6. 그런데 인간은 혀를 스스로 길들일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3장 7–8절은 인간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사람은 온갖 동물을 길들입니다. 그러나 혀는 아무도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의 깊은 차원을 발견합니다. 야고보서는 단순히 “혀를 잘 다스리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만으로 혀를 완전히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통치가 필요합니다. 말씀의 지배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말의 문제는 결국 혀만 관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관리하는 문제이며,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말씀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야고보서의 신학적 깊이입니다.
혀를 고치려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복음이 들어와야 합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가치가 달라집니다.
가치가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말이 달라집니다.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관계가 달라지면 공동체가 달라집니다.
결국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온 복음이 공동체의 언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7. 같은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서 3장 9–10절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야고보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람을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잘못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를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월요일에는 “저 사람은 왜 저래?” 라고 사람을 짓밟는다면, 야고보는 묻습니다.
“그것이 마땅하냐?” 주님을 찬송하는 입으로 형제를 저주하는 것은 언어의 이중성입니다.
칼빈도 이 대목에서 매우 강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악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 자체를 모순되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예배는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말이 예배입니다.
배우자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자녀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직장 동료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예배가 드러납니다.
8. 생명의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동시에 나올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은 묻습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그리고 12절에서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예로 듭니다.
나무가 무엇인지 열매를 보면 압니다. 샘이 무엇인지 물을 보면 압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입을 억지로 막는 것만이 아닙니다.
샘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의 샘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쓴물이 가득하다면 아무리 “좋은 말 해야지” 해도 어느 순간 쓴물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마음에 채워야 합니다. 기도로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회개로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며, 넘어질지라도 은혜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성화는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온유해지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말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축복하는 것입니다. 넘어졌다면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은혜를 붙드십시오.
9. 그러면 야고보는 참된 지혜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야고보서 3장 13절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성경에서 지혜는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세상은 말 잘하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이기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을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행실의 태도가 무엇입니까? 온유함입니다.
참된 지혜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참된 지혜는 자기 의를 과시하지 않습니다.
참된 지혜는 남을 눌러서 자기를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유합니다. 양보합니다. 경청합니다. 용서합니다. 화평을 만듭니다. 이것이 하늘의 지혜입니다.
10. 땅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결과가 다릅니다
야고보서 3장 14–16절은 땅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 특징은 무엇입니까? 시기와 다툼입니다. 시기란 무엇입니까?
“왜 저 사람에게는 저것이 있고 나에게는 없는가?”
“왜 저 사람이 인정받는가?”
“왜 저 사람이 성공하는가?”
“왜 저 사람이 더 주목받는가?” 라는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시기는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잠언 14장 3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시기하면 상대방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먼저 썩습니다.
그래서 시기심이 들어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입으로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기도하다 보면 마음도 따라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심으로 축복하게 됩니다. 그때 내 영혼이 자유로워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비교의 감옥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입니다.
11. 하늘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3장 17절은 오늘 본문의 절정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이 없고 거짓이 없나니.”
하늘의 지혜에는 일곱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성결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깨끗합니다. 계산하지 않습니다. 위장하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성결을 하늘의 지혜의 첫 번째 특징으로 제시하며, 인간의 노력만으로 성결을 완성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성결은 우리의 자랑이 아닙니다. 은혜의 열매입니다.
둘째, 화평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싸움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사람을 갈라놓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평을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9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에 가든 화평을 심어야 합니다.
내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싸우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화해하는가?
내가 말을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닫히는가? 아니면 마음이 열리는가?
이것이 영적 건강을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입니다.
셋째, 관용입니다.
관용은 사람의 약점을 참아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래 참으셨던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입니다.
넷째, 양순입니다.
양순을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는 태도”로 설명합니다.
참된 지혜는 항상 자기 뜻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당신의 말을 먼저 듣겠습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약함입니까? 아닙니다. 영적 강함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긍휼입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잘못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처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죄보다 회복을 선택합니다.
여섯째, 선한 열매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말만 아름답지 않습니다.
삶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직장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달라집니다.
관계가 달라집니다.
일곱째,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하늘의 지혜는 사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다르게 말하고 뒤에서는 다르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습니다. 진실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12. 결국 하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더 깊은 신학적 결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하늘의 지혜는 단순한 인간의 도덕적 지혜가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지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
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지혜는 힘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약해 보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지혜는 경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셨습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지혜는 자기 것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지혜는 원수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세상 지혜의 관점에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가장 위대한 지혜입니다.
십자가의 지혜를 품은 사람의 언어가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은 함부로 저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쉽게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자기를 과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13. “내 말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내 말은 다시 내게 돌아옵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은 씨앗입니다.
오늘 내가 사람의 마음에 무엇을 심었는가?
두려움을 심었습니까? 아니면 믿음을 심었습니까?
상처를 심었습니까? 아니면 위로를 심었습니까?
절망을 심었습니까? 아니면 소망을 심었습니까?
저주를 심었습니까? 아니면 축복을 심었습니까?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내가 심은 말은 언젠가 열매가 되어 돌아옵니다.
오늘 자녀에게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니?” 라고 말하면 그 말이 아이의 내면에 박힐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것이 있다.”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라고 말하면 그 말이 아이의 영혼에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14. 자기 자신에게 복음의 말을 하십시오
혹시 오늘 마음속으로 “나는 끝났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복음의 말을 들으십시오.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혹시 “나는 너무 많이 실패했다.” 라고 생각합니까?
실패보다 은혜가 큽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습니다. 혹시 “나는 너무 늦었다.” 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에게 늦은 인생은 없습니다.
모세는 80세에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늦은 나이에 약속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계산보다 큽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복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 이것은 자기최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15. 그렇다면 오늘부터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아주 실제적으로 다섯 가지를 실천해 보십시오.
첫째, 말하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주님, 지금 제가 하려는 말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입니까?” 라고 물으십시오.
잠언 10장 19절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침묵이 지혜입니다.
둘째, 분노할 때 말하지 마십시오.
감정이 폭발한 순간에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마십시오.
화가 났을 때 보내는 문자 한 통이 관계를 몇 년 동안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잠시 멈추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셋째,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비판하고 싶습니까? 먼저 기도하십시오.
욕하고 싶습니까? 축복하십시오.
미워하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것이 하늘의 지혜입니다.
넷째,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오늘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당신 때문에 힘이 납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말은 무료이지만 가치가 큽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빈 마음에서는 세상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채워진 마음에서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태복음 4:4
우리 안에 말씀을 채우십시오.
기도를 채우십시오.
찬양을 채우십시오.
감사를 채우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입에서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들어온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16.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혀를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능력은 인간의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 있습니다. 복음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입을 고쳐 주십시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 제 안에 있는 시기를 없애주십시오.”
“주님, 제 안에 있는 교만을 없애주십시오.”
“주님, 제 안에 있는 분노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해주십시오.”
“주님, 제 안에 하늘의 지혜를 부어주십시오.”
그때 우리의 혀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가정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에 화평이 시작됩니다.
결론 — 말의 사람이 아니라 말씀의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야고보서 3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혀는 작지만 인생을 움직입니다.
혀는 재갈과 같습니다.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혀는 불과 같습니다.
혀는 우리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저주 대신 축복을 선택하십시오.
비난 대신 격려를 선택하십시오.
분열 대신 화평을 선택하십시오.
교만 대신 겸손을 선택하십시오.
시기 대신 축복을 선택하십시오.
정죄 대신 긍휼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땅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5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야고보서 3장 18절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오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화평을 심는 사람이 됩시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됩시다.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치유를 남기는 사람이 됩시다.
분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 됨을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에서 이런 고백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말이 바뀌고,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우리의 가정이 바뀌고,
우리의 공동체가 바뀌고,
마침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늘의 지혜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야고보서의 말씀 앞에 우리의 입술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우리는 너무 쉽게 말했습니다.
너무 쉽게 판단했고,
너무 쉽게 비판했고,
너무 쉽게 화를 냈으며,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시고, 시기와 교만과 분노와 자기 의를 내려놓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이 사람을 죽이는 불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나오게 하시고,
비난이 아니라 격려가 나오게 하시고,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 나오게 하시고,
분열이 아니라 화평이 나오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옵소서.
성결하게 하시고,
화평하게 하시고,
관용하게 하시고,
양순하게 하시고,
긍휼이 넘치게 하시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하시며, 편견과 거짓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가 먼저 화평하게 하시고,
우리의 직장에서 우리가 먼저 섬기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가 먼저 하나 됨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주님, 우리의 말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오늘부터
축복의 씨앗을 심게 하시고,
감사의 씨앗을 심게 하시고,
믿음의 씨앗을 심게 하시고,
사랑의 씨앗을 심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말이
우리 자신을 살리고,
우리의 가정을 살리고,
우리의 자녀를 살리고,
우리의 공동체를 살리고, 이 시대를 살리는 생명의 언어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혀를 길들여 주옵소서. 그러나 혀만 고치지 마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의 왕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앉아 계시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입술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흘러나오게 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게 하시고,
예수님의 용서가 흘러나오게 하시고,
예수님의 소망이 흘러나오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가 땅의 지혜를 거절하고 하늘의 지혜를 붙들게 하시며, 시기와 다툼이 아니라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이 바뀌고,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바뀌고,
우리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의 인생이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말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이 말씀을 평생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오늘도 생명의 말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