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칼럼] 교회의 영적 질병 '욕심과 정욕'에 대한 처방전(야고보서 4장 1–17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는 욕심의 뿌리를 제거하라!
욕심을 버려라, 그러면 도리어 다 얻는다 (야고보서 4장 1–17절)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욕심이 많다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의 뿌리에는 하나의 착각이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많이 가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이 모든 착각을 하나씩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복음의 진리를 세웁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필요를 아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라.”
“그리고 오늘 선을 행하라.” 이것이 야고보서 4장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처방입니다.
1. 야고보서 4장은 교회의 영적 질병을 진단합니다
야고보서는 매우 현실적인 책입니다. 야고보는 추상적인 신학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싸웁니다. 서로 시기합니다. 경쟁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툽니다. 기도하지만 응답받지 못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를 동시에 붙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형제를 비방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듯 교회의 상태를 진단합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참으로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왜 싸우느냐?” 우리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 사람이 잘못해서요.”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해서요.” “저 사람이 내 것을 빼앗아서요.”
그러나 야고보는 문제의 방향을 밖에서 안으로 돌립니다. “너희 안에 있는 정욕을 보라.”
문제의 근원은 상대방만이 아닙니다. 내 안에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마음에 분노가 생깁니다.
분노가 시기가 되고,
시기가 경쟁이 되고,
경쟁이 다툼이 되고,
다툼이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외적인 갈등 밑바닥에 개인의 정욕과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욕심은 왜 우리를 다투게 합니까?
야고보서 4장 2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욕심입니다. 욕심은 단순히 많이 가지고 싶다는 마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깊은 곳에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덴동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충분히 주셨느냐?”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보다 하나님이 금하신 하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것까지 가져야 한다.” 욕심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까지 움켜쥐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욕심은 언제나 부족함의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부족합니다.
충분히 먹었는데도 부족합니다.
성공했는데도 부족합니다.
인정받았는데도 부족합니다.
돈이 있는데도 부족합니다.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부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욕심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3. 욕심의 뿌리에는 불신앙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리고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결론을 주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여기에 삶의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4. 욕심은 가진 것을 잃게 만듭니다
욕심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욕심 때문에 이미 가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돈을 얻으려고 사람을 잃습니다.
성공하려고 가정을 잃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친구를 잃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평화를 잃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습니다.
결국 손에는 무엇인가 쥐었는데,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곡식을 쌓아 둔 부자를 말씀하십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왜 어리석습니까?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많이 가지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욕심의 착각입니다.
5. 욕심은 기도까지 오염시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기도한다고 반드시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도조차 욕심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
“하나님, 저 사람보다 성공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내가 더 높아지게 해주세요.”
“하나님,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 주세요.”
겉으로는 기도인데, 실제로는 하나님께 내 욕망을 관철시키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기도는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주세요” 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깊은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기도의 절정입니다. 기도의 성숙은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데 있지 않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변화되는 데 있습니다.**
6.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여기서 야고보서 4장의 가장 아름다운 반전이 등장합니다. 6절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야고보는 우리의 죄를 폭로한 다음 정죄로 끝내지 않습니다. 은혜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이 한 단어가 복음입니다.
욕심이 있지만, 그러나 은혜가 있습니다.
교만이 있지만, 그러나 은혜가 있습니다.
실패했지만, 그러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지만, 그러나 돌아올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길은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7.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능력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자신을 높여라.” “네 능력을 보여라.” “남보다 앞서라.” “네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라.”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야고보서 4장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서 겸손은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무가치하다.” 이것이 성경적 겸손은 아닙니다.
성경적 겸손은 “나는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이 필요하다.” 라는 고백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 마음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나는 나 자신도 완벽하게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8. 겸손한 사람에게는 왜 더 큰 은혜가 있습니까?
그릇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릇이 뒤집혀 있으면 아무리 비가 내려도 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릇이 깨져 있으면 담은 것이 새어 나갑니다. 그릇이 더럽다면 좋은 것을 담아도 오염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실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열린 마음입니다.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아들이는 그릇과 같습니다. 교만은 자신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을 공간이 없지만,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 저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계속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문제를 모두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 은혜가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 아무 문제도 없게 해주세요” 에서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은혜가 충분하게 하옵소서” 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야고보서 4장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순서를 보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복종합니다. 그 다음 마귀를 대적합니다.
영적 전쟁은 내가 주인이 된 상태에서 마귀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들어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실 때마다 무엇으로 대응하셨습니까?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7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부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 말씀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귀가 말합니다. “더 가져야 안전하다.” 말씀은 말합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마귀가 말합니다. “네가 너 자신을 높여야 한다.” 말씀은 말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결국 누구의 말을 믿느냐의 싸움입니다.
10. 하나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이 말씀은 야고보서 4장의 심장과 같습니다.
욕심을 이기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욕심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빈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오.
돈이 아니라 하나님.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세상이 작아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욕심이 작아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내 자랑이 작아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커집니다.
11.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은 회개입니다
야고보서 4장 8–9절은 이어서 말합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왜 이렇게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데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뜻도 따르고 내 욕심도 따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내 뜻을 붙듭니다. 이것이 두 마음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내 뜻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욕심에서 사명으로.
소유에서 청지기 정신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경쟁에서 섬김으로.
12. 회개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계속해서 회개하는 삶입니다.
날마다 내 안에서 발견되는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날마다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날마다 자기중심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절망이 아닙니다. 은혜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이 우리의 완벽함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13. 겸손한 사람은 형제를 비방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의 교만은 대부분 말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높아지려면 누군가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옳아 보이려면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합니다.
비교합니다.
비판합니다.
정죄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말합니다. 12절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것은 진리를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최종적인 재판관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
권면하되, 회복을 위해 해야 합니다.
책망하더라도, 정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 해야 합니다.
14. 공동체의 영적 건강은 말에서 드러납니다
교회가 정말 건강한지 알고 싶다면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지를 보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십시오.
뒤에서 어떻게 말합니까?
실수한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까?
넘어진 사람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성공한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까?
나보다 잘되는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까?
나보다 인정받는 사람을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공동체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하늘의 지혜는 야고보서 3장에서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3장과 4장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땅의 지혜는 경쟁과 시기에서 다툼을 만들어내지만, 하늘의 지혜는 겸손과 화평을 만들어냅니다.**
15. 이제 야고보는 또 하나의 착각을 제거합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계획도 있습니다. 사업 계획도 있습니다. 시간 계획도 있습니다. 수익 계획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갈 것이다.” “우리가 머물 것이다.” “우리가 장사할 것이다.” “우리가 이익을 얻을 것이다.” 모든 문장의 주어가 “우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합니다. 14절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의 주인이십니다.
16. 계획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계획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획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잠언 1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계획해야 합니다. 그러나 계획하면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이루어 주십시오.”
야고보서 4장 15절입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이것이 신앙의 언어입니다. “내가 반드시 한다.” 가 아니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은 소극적인 인생관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17.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시간입니다.
우리는 내일도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약속된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만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시편 90편 12절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오늘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랑하십시오.
오늘 기도하십시오.
오늘 예배하십시오.
오늘 용서하십시오.
오늘 선을 행하십시오.
오늘 복음을 전하십시오.
오늘 충성하십시오.
18. “오늘”을 미루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4장 17절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여기에는 적극적인 죄뿐 아니라 해야 할 선을 하지 않는 죄도 있습니다.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는 것.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하지 않는 것.
도와야 하는데 외면하는 것.
기도해야 하는데 미루는 것.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내일로 미루는 것.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움켜쥐는 것.
선교해야 하는데 나중으로 미루는 것.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의 신앙입니다. 믿음은 생각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19. 결국 야고보서 4장의 모든 문제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이제 전체를 연결해 보십시오.
왜 싸웁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왜 욕심을 냅니까? 하나님이 충분하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해도 받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정욕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과 벗이 됩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의 가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만합니까?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마귀에게 흔들립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왜 형제를 비방합니까? 자기가 재판관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미래를 자랑합니까? 내일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보다 나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라.” “하나님께 가까이하라.” “주 앞에서 낮추라.” “주의 뜻이면.”
20. 욕심을 버리면 왜 도리어 다 얻게 됩니까?
“욕심을 버려라. 그러면 도리어 다 얻는다.” 이 말은 욕심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번영주의적 약속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야 행복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자유를 얻습니다.
사람을 얻습니다.
공동체를 얻습니다.
사명을 얻습니다.
감사를 얻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얻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의 세상적 자랑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잃은 것이 아니라 얻었습니다.
세상의 자랑을 내려놓았더니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자기 의를 내려놓았더니 그리스도의 의를 얻었습니다.
자기 영광을 내려놓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21. 욕심에서 사명으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인생은 욕심으로 사는 인생에서 사명으로 사는 인생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욕심은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더 가질 수 있는가?”
사명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은 무엇인가?”
욕심은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인정하는가?”
사명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사용하시는가?”
욕심은 묻습니다. “얼마나 많이 쌓을 수 있는가?”
청지기 정신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욕심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명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22. 그래서 단순하게 사는 것이 영적으로 강한 삶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습니다.
불필요한 경쟁을 내려놓습니다.
불필요한 비교를 내려놓습니다.
불필요한 자랑을 내려놓습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내려놓습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긴장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합니다.
하나님.
말씀.
기도.
가족.
교회.
사명.
복음.
삶이 단순해질수록 영혼은 오히려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에너지가 욕심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23. 우리가 정말 버려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재산을 가지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재산이 나의 안전이 되면 문제가 됩니다.
직업이 나의 정체성이 되면 문제가 됩니다.
성공이 나의 가치가 되면 문제가 됩니다.
사람의 인정이 나의 생명이 되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돈을 사용할 수 있지만 돈에게 지배받아서는 안 됩니다.
소유할 수 있지만 소유에 소유당해서는 안 됩니다. 가지고 있지만 가진 것이 나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합니다.
2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청지기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면 목적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돈도 사명입니다.
내게 주신 시간도 사명입니다.
내게 주신 재능도 사명입니다.
내게 주신 직업도 사명입니다.
내게 주신 건강도 사명입니다.
내게 주신 관계도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이 시작되면 욕심이 사명으로 바뀝니다.
소유가 청지기직으로 바뀝니다.
성공이 섬김으로 바뀝니다.
직업이 소명으로 바뀝니다.
삶이 예배로 바뀝니다.
25.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안개 같은 인생”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현실을 보게 합니다. 14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 인생은 길어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짧습니다.
어린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청년의 시간도 지나갔습니다. 중년의 시간도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모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유명했느냐도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인정했느냐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맡긴 것을 어떻게 살았느냐?”
그러므로 오늘 살아야 합니다.
오늘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예배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26. 결론 —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은혜가 시작됩니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일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옳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람을 내가 판단할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더욱 큰 은혜가 임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리고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그리고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 세 문장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더 큰 은혜. 더 가까운 하나님. 더 깊은 겸손.
그러므로 이제 욕심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경쟁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섬기십시오.
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겸손하십시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충성하십시오.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내 뜻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주의 뜻이면.”
27. 오늘의 영적 선언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이 고백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내일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남과 경쟁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겠습니다.
나는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주 앞에서 낮아지겠습니다.
나는 세상의 가치에 끌려가지 않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겠습니다.
나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재판장이심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내일을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주의 뜻이면”이라고 고백하겠습니다.
오늘 선을 행하겠습니다.
오늘 사랑하겠습니다.
오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예배하겠습니다.
오늘 충성하겠습니다.
28. 마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착각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교만을 내려놓게 하시고, 내가 내일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내려놓게 하시며,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욕심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안에 있는 정욕 때문에 사람과 다투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비교와 시기와 경쟁심을 깨뜨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보다 내 욕심을 이루어 달라고 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옵소서.
교만한 마음 대신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욕심 대신 만족을 주시고,
경쟁 대신 사랑을 주시고,
정죄 대신 긍휼을 주시고,
불안 대신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말씀으로 가까이 가게 하시고,
기도로 가까이 가게 하시며,
예배로 가까이 가게 하시고,
순종으로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마귀의 거짓말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기록되었으되.” 이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키고,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우리의 교회를 지키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주신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직업과 관계와 삶 전체를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드리게 하옵소서.
욕심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사명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내일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안개와 같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을 충성되게 살게 하옵소서.
오늘 사랑하게 하시고,
오늘 용서하게 하시고,
오늘 기도하게 하시고,
오늘 예배하게 하시고,
오늘 선을 행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지막 날에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자랑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삶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살았는가”를 고백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손에서 욕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그 빈손에 은혜를 채워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에서 교만을 내려놓게 하시고 그 빈 마음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계획을 주님의 손에 맡기게 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주님의 뜻 안에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일터가 살아나고, 다음 세대가 살아나며,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욕심의 인생에서 사명의 인생으로,
경쟁의 인생에서 섬김의 인생으로,
교만의 인생에서 겸손의 인생으로,
자기 영광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평생에 이 한마디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주의 뜻이면.”
주님이 허락하시면 살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일하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섬기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욕심보다 크신 하나님,
우리의 계획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의 실패보다 크신 은혜의 하나님,
우리의 인생보다 크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마지막 호흡까지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욕심을 버리고 은혜를 붙들며,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오늘 충성하고,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인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