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3편)]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 악마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는가?

knowledgeplatform100 2026. 6. 11. 07:33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3편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 악마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기도하려고 앉았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생각납니다. 말씀을 읽으려고 하면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떠오릅니다.

교회에 가면 은혜보다 사람들의 단점이 먼저 보입니다.

가족에게는 가장 사랑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가장 상처 주는 말을 내뱉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겠습니다. 정말 이것이 단순한 성격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C.S. 루이스의 고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악마가 성도의 삶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C.S. 루이스는 누구인가?

C.S. 루이스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대표작으로는

  •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

등이 있습니다.

원래 무신론자였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후 평생 복음을 변증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복잡한 신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은 매우 독특합니다. 천사의 편지가 아닙니다. 목사의 편지도 아닙니다.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 워무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악마가 인간을 어떻게 유혹하는지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은 악마를 연구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가 어떻게 넘어지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만드는 책입니다.

마치 적군의 작전 지도를 입수한 것과 같습니다. 적의 전략을 알면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두려움의 책이 아니라 깨어 있음의 책입니다.


편지 1

악마는 큰 죄보다 분주함을 더 좋아한다

스크루테이프는 조카에게 인간이 영원한 진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위험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끊어 버리기 위해 아주 평범한 것들을 사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점심 식사. 버스 시간. 신문 기사. 해야 할 일. 사소한 걱정거리.

악마는 인간을 술 취하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바쁘게만 만들면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반드시 악하게 만들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죄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소음을 사용합니다. 유혹보다 먼저 분주함을 사용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무서운 우상은 금송아지가 아니라 스마트폰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보지만 정작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삶의 적용

하루에 10분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머무십시오.

기도를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 앞에 있으십시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영적 전쟁의 시작입니다.


편지 2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라

첫 번째 공격에 실패하면 악마는 교회를 공격합니다.

교회 자체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을 보게 만듭니다.

찬양대의 실수. 목회자의 부족함. 성도의 연약함. 봉사자의 미숙함. 이것들만 보게 만듭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평가하러 온 소비자가 됩니다.

스크루테이프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가 왜 이래?" 이 한마디가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라."
(에베소서 4:2)

 

교회는 천국이 아닙니다. 교회는 천국으로 가는 순례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의 흠을 보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피 흘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판 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평가 대신 섬겨야 합니다. 불평 대신 중보해야 합니다.


삶의 적용

목사님이 부족해 보입니까? 기도하십시오.

성도가 실망스럽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공동체가 문제입니까? 그 공동체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악마는 비판하는 성도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보하는 성도를 사용하십니다.


편지 3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는 가정이다

스크루테이프는 세 번째 편지에서 가정을 공격합니다.

놀랍게도 살인이나 간음 같은 큰 죄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짜증. 무심한 말투. 반복되는 불평. 자기중심성. 이런 것들을 사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가정은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는 천사처럼 행동하면서도 집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는 쉽게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바꾸려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바꾸려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보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악마의 전략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에베소서 4: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예수님은 먼저 자신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가정 회복은 상대방이 변할 때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회개할 때 시작됩니다.


삶의 적용

오늘 집에 돌아가면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우리 가족을 바꿔 주세요." 라고 기도하기 전에, "주님, 저를 먼저 바꿔 주세요." 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 한마디. 감사 한마디. 이 작은 순종이 가정을 살립니다.


세 편지의 공통점

여러분,

1편은 일상을 공격했습니다.

2편은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3편은 가정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세 편지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으려 합니다.

분주함으로. 비판으로. 이기심으로.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시선을 다시 예수님께 돌리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결국 영적 승리의 비결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매일 바라보는 것입니다. 끝까지 바라보는 것입니다.


맺음말

오늘 여러분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분주함에 묻혀 있습니까?

교회에 실망하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지쳐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바라보라."

스크루테이프는 시선을 빼앗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시선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시선이 회복될 때 우리의 일상도, 교회도, 가정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분주함 속에서 주님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소음이 주님의 음성을 덮어 버렸고, 비판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을 이겨 버렸으며,
이기심이 섬김을 밀어내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의 시선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하게 하옵소서.

일상 속에서도 주님을 찾게 하시고, 교회 안에서는 형제자매를 사랑하게 하시며,
가정 안에서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악한 자의 계략을 분별하게 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시선 맞춘 순종의 삶이 되게 하시고, 교회와 가정이 주님의 사랑으로 회복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