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knowledgeplatform100 2026. 6. 22. 07:59

복음(말씀)이 없으면 미로 같은 상황에 갇힌 인생으로 산다

제1부. 왜 사람은 말씀을 잃으면 미로를 걷게 되는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오늘날 우리는 길을 잃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있고, 휴대전화에는 지도가 있으며, 인공지능은 가장 빠른 길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인생의 길을 잃은 세대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길을 찾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생의 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을 경제적인 실패나 건강의 상실로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길을 잃은 이유도 환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죄란 단순히 선악과를 먹은 사건이 아니라 말씀보다 상황을 더 믿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던 존재에서 자신의 판단과 계산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이라는 미로의 시작입니다.


미로 속에 있는 사람의 특징

미로는 길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길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길이 맞는지 알지 못하는 곳이 미로입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업도 많습니다. 방법도 많습니다. 정보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느 길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왜 이렇게 불안합니까?"

"왜 이렇게 두렵습니까?"

문제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등불은 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길을 비추는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인생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보게 하는 빛입니다.


다윗은 왜 방황하기 시작했는가?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습니까?

왕이 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윗은 약속보다 현실을 더 크게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안전지대를 찾아 계속 이동합니다.

 

놉으로 갑니다. 블레셋 가드로 갑니다. 그리고 결국 아둘람 굴로 들어갑니다. 겉으로 보면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더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보다 상황이 그의 결정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상황이 전부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은 광야에서도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나 상황을 붙드는 사람은 궁궐 안에서도 두려워합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이 삶을 결정합니다.


믿음이 무너지면 계산이 시작된다

"계산과 꾀 그리고 생각의 반대말은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은 묵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계산입니다. 믿음이 무너지면 사람은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이 말을 하면 손해 볼까?"

"이 길이 안전할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계산은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모르는 사람이 미래를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산은 점점 두려움을 낳습니다.

반대로 믿음은 계산을 멈추게 합니다.

믿음은 미래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왜 복음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가?

"믿음이란 단순해지는 것이다. 계산이 없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합니다.

복음이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이유는 복음이 우리를 전능하신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단순합니다. 순종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예"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계산하는 신앙은 결국 미로를 만든다

계산은 인간의 지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계산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는 안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계산하며 움직일수록 더욱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아둘람 굴이라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다윗을 새롭게 빚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바꾸십니다.

우리는 궁궐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굴에서 예배자를 만드십니다.

우리는 성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믿음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환경의 복음이 아니라 존재의 복음입니다.


영적 통찰과 적용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광야가 아닙니다.

문제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라지는 순간, 상황이 왕이 됩니다.

 

상황이 왕이 되면 두려움이 시작됩니다.

두려움이 시작되면 계산이 시작됩니다.

계산이 시작되면 우리는 미로 속을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다시 들리는 순간, 광야는 더 이상 미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에도 길을 만드시며, 사막에도 강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지도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은 상황을 따라가는 인생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제2부. 하나님은 왜 다윗을 아둘람 굴로 인도하셨는가?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사무엘상 22:1)


하나님은 왜 다윗을 궁궐이 아닌 굴로 보내셨는가?

사람은 누구나 안전한 곳을 원합니다.

고난보다 평안을, 광야보다 궁궐을, 십자가보다 영광을 원합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안전지대를 찾아 헤맸습니다. 놉으로 갔고, 블레셋 가드로 갔으며, 결국 아둘람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지붕이 있는 곳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빈 들과 굴로 이끄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이것이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왕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관을 씌우기 전에 먼저 예배자의 심장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환경보다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신다

우리는 환경이 바뀌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이 바뀌면...

경제가 좋아지면...

건강이 회복되면...

사람이 바뀌면...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환경보다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왕궁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아둘람 굴로 보내셨습니다.

왜입니까?

 

굴은 계산이 끝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선택지가 많을 때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는 하나님 외에는 붙들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은혜 외에는 살 수 없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아둘람은 '피난처'가 아니라 '영적 훈련학교' 입니다.

아둘람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빚으시는 영적 훈련학교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긴 용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목자의 심장과 왕의 영성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것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아둘람은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는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가장 깊은 은혜를 가르치십니다.


계산이 끝날 때 믿음이 시작된다

"신뢰하면 계산이 사라진다."

 

믿음은 미래를 계산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능력입니다.

다윗은 놉에서도 계산했습니다. 가드에서도 계산했습니다.

"여기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이 방법이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계산은 언제나 또 다른 계산을 낳았습니다.

 

결국 그는 미친 사람인 척해야 했고,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계산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복잡한 거짓말과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반대로 복음은 단순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라." 이 한 문장이 인생을 바꿉니다.


요셉은 왜 흔들리지 않았는가?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 앞에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그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며, 불의한 일이며, 하나님 앞에 죄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요셉이 결과를 계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거절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과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결과보다 하나님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은 감옥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총리의 학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단순하고 그 곳에는 생명의 아름다움이란 향기가 깃듭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닙니다. 복음이 만들어 내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왜 요셉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을까요?

왜 다윗 곁에는 사람들이 모였을까요?

왜 초대교회는 핍박 가운데서도 계속 성장했을까요?

 

생명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계산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생명력 있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성공보다 생명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있는 곳에는 소망이 있고, 말씀이 있는 곳에는 회복이 있습니다.


당신은 빨대 인생인가? 깔때기 인생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은 빨대 인생을 삽니다.

계속 빨아들입니다.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 하고, 세상에서 성공을 빼앗으려 하고, 환경에서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빨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믿음의 사람은 깔때기 인생을 삽니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은혜가 위에서 내려옵니다. 말씀이 내려옵니다. 성령께서 부으십니다.

 

은혜는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것입니다.

예배는 바로 이 깔때기를 하나님께 향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세상을 빨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영적 통찰과 적용

아둘람은 실패의 동굴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이 다시 들리는 동굴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계산을 내려놓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편안한 곳으로 먼저 인도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아둘람에서 말씀하십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라."

 

그때 미로 같던 인생은 하나님의 길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제3부. 예배는 어떻게 미로를 하나님의 길로 바꾸는가?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시편 142:3)


하나님은 다윗을 굴속에서 무엇으로 회복시키셨는가?

아둘람 굴은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장소였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영웅은 사라졌습니다. 백성들의 환호성도 사라졌습니다. 왕궁의 영광도 사라졌습니다.

친구도 떠났고, 안전도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차가운 동굴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둘람에서 다윗에게 두 가지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첫째는 예배자의 회복이고,

둘째는 목자의 회복입니다.

 

이 두 가지는 훗날 이스라엘 왕 다윗의 정체성이 됩니다.

하나님은 먼저 왕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예배자를 만드셨습니다.


예배는 상황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를 종교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배는 전혀 다릅니다. 예배는 시선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에 의해 지배됩니다.

상황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비교가 시작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놋뱀을 바라볼 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4-15)

보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예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계산은 예배 가운데 무너진다

"예배는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계산입니다.

예배는 계산을 멈추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시간입니다.

 

예배가 깊어질수록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은 줄어듭니다.

대신 "주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까?" 라는 믿음이 자랍니다.

그래서 예배는 문제를 없애는 시간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다윗은 굴속에서 찬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왜 나입니까?"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원망 대신 찬양을 선택했습니다.

설교는 시편 57편과 142편이 바로 아둘람 굴에서 기록된 시라고 설명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시편 57:7)

 

놀라운 것은 환경이 바뀌어서 찬양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굴은 여전히 춥고 어두웠습니다. 미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말합니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환경의 확정이 아니라 마음의 확정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목자로 다시 세우셨다

아둘람에는 약 400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문제투성이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들을 다윗에게 맡기셨습니다.

 

왜입니까?

왕은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이기 전에 사람을 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양 한 마리를 위해 사자와 곰과 싸웠던 목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400명의 상처 입은 사람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목자가 되어 갑니다.

복음은 사람을 이용하는 지도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목자를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습니다. 다윗은 아둘람에서 바로 그 목자의 마음을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학교다

우리는 광야를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광야를 하나님의 학교라고 말합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준비되었습니다.

엘리야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사명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광야에서 왕이 되기 전에 예배자가 되고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광야도 헛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있는 광야는 미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장이 됩니다.


영적 통찰과 적용

복음은 우리의 상황을 즉시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의 시선을 바꾸십니다.

시선이 바뀌면 마음이 바뀝니다.

마음이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삶이 바뀌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열어 가십니다.

 

아둘람 굴은 다윗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위대한 왕을 준비시키신 거룩한 학교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아둘람이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장소가 아니라, 예배자와 목자로 빚어 가시는 은혜의 장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4부. 복음은 어떻게 미로를 하나님의 길로 바꾸는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복음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길이 되어 주신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오해합니다. 복음을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을 가르쳐 주겠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요한복음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만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 길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내가 너와 함께 걸어가겠다." 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있는 사람은 광야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길 자체이신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상황 중심의 삶과 말씀 중심의 삶

"믿음이 없으면 상황이 전부인 인생을 산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학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입니다.

상황 중심의 사람

상황이 좋으면 감사합니다. 상황이 나쁘면 원망합니다.

사람의 평가에 따라 기뻐하고, 환경에 따라 낙심합니다.

축복을 환경으로 측정합니다. 그래서 늘 흔들립니다. 마치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습니다.


말씀 중심의 사람

말씀이 좋으면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기에 상황도 그를 흔들지 못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양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으면서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왜 가능했을까요?

그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믿음은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도 감옥에 갇힌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매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해석했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영적인 눈입니다.


하나님은 왜 광야를 허락하시는가?

광야에는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빈 들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훈련하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만나를 배웠습니다.

다윗도 광야에서 예배를 배웠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광야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오늘 우리의 아둘람은 어디인가?

우리에게도 아둘람이 있습니다.

병상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관계의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사역의 침체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아둘람은 끝이 아닙니다. 왕이 되기 전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하나님의 교실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목자로 빚으십니다.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때때로 미로처럼 보입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고, 앞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미로를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은 왕관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을 붙들었던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상황을 믿겠느냐? 아니면 나의 말씀을 믿겠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미로에서 끌어내는 지도가 아니라,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는 너무 자주 말씀보다 상황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광야를 만나면 두려워했고, 막힌 길을 만나면 낙심했으며, 사람들의 말과 환경의 변화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예배를 회복했던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광야에서 예배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계산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단순한 영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요셉처럼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상황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두려움이 아니라 복음을 붙들게 하시며,
환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아둘람 굴이 절망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는 거룩한 학교가 되게 하시고,

우리도 다윗처럼 예배자로 살게 하시며, 상처 입은 영혼을 품는 목자로 세워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으로 비추시고, 
미로 같은 세상 속에서도 길 되신 예수님만 따라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길을 이미 알고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며,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걷는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