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 조선선교 이야기] 내 손안의 성경은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내 손안의 성경은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교회보다 먼저 조선에 도착한 하나님의 말씀,
번역하다가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말씀을 번역하다가 말씀이 그들을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경이 우리를 소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사야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서론
우리는 너무 쉽게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도 있습니다. 교회에도 있습니다. 휴대폰에도 있습니다. 앱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성경 한 권이 우리 민족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피와 순교가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한 권이 조선에 들어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교회를 먼저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선교사를 먼저 보내지도 않으셨습니다.
먼저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왜일까요?
왜 하나님은 교회보다 성경을 먼저 보내셨을까요? 오늘 그 하나님의 깊은 뜻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순교자의 피 위에 말씀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씨앗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1866년.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으로 옵니다.
그의 손에는 무기가 아니라 성경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배는 불탔습니다. 조선군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예수" "야소" 를 외치며 성경을 건네주려 했습니다.
결국 그는 순교합니다.
세상은 실패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건네준 성경이 사람을 변화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죽였던 박춘권은 훗날 회개하여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성경으로 벽지를 만들었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가 됩니다.
그 교회는 장대현교회로 이어지고, 장대현교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의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순교자의 피를 헛되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언제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영적 통찰
사람은 죽였지만 말씀은 죽일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죽였지만 복음은 더 멀리 퍼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지만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2. 하나님은 선교사가 아니라 말씀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세계선교 역사상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하기 전 이미 조선에는 성경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미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교회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씨를 뿌리러 왔는데 추수를 하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이유는 존 로스 선교사가 만주에서 한글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선에 한 번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다면 성경이 들어가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람은 막을 수 있지만 말씀은 막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말씀은 국경도 넘습니다. 감옥도 넘습니다. 죽음도 넘습니다. 시대를 넘습니다.
3.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성경 번역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존 로스 혼자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로스 선교사의 조선어 선생이었던 고려문에서 무역을 하던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서상륜 등 수많은 이름 없는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돈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일 때문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번역하다가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말씀을 번역하다가 말씀이 그들을 번역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우리를 읽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4. 성경은 첩보영화 주인공 서상윤을 통해 조선을 넘어왔습니다.
서상륜은 성경 수백 권을 가지고 국경을 넘다가 붙잡힙니다. 그는 놀라운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성경을 낱장으로 찢어 새끼줄 안에 말아 넣었습니다.
국경을 통과한 후 다시 꺼내어 사람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공동체가 소래교회입니다.
건물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목사가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예배당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먼저였습니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교회는 건물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5. 하나님은 한글 성경으로 민족을 깨우셨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백성은 한자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존 로스는 순한글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번역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한 영적 혁명이었습니다.
말씀은 신앙만 바꾸지 않았습니다.
교육을 바꾸었습니다. 여성을 일으켰습니다. 의료를 바꾸었습니다. 민족의 의식을 깨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새롭게 하셨고, 사람을 통해 사회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6. 이수정, 조선의 마게도냐 사람이 되다
사도행전 16:9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1883년. 이수정은 세계선교평론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 주십시오."
이 한 장의 편지가 조선 선교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세례를 받고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며 성경 보급에 자신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의 요청을 계기로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왔고,
의료와 교육, 복음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수정은 복음을 위한 명예를 택했고, 세상의 높은 자리는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성경 번역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7. 말씀은 버려진 호남 땅에서 사랑으로 꽃피었습니다.
양림동, 전주 그리고 광주에 세워진 '복음의 도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하나님께서 조선에 성경을 보내신 목적은 단지 책 한 권을 전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며, 도시를 변화시키고, 결국 한 민족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능력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현장이 바로 호남 선교였습니다.
1. 전주는 복음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1893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전주를 호남 선교의 중심지로 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큰 도시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던 행정 중심지였고, 호남 전역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성경공부가 시작되었고, 권서인들이 성경을 들고 마을마다 다녔으며, 사람들은 글을 배우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호남 교회의 부흥도 말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고, 믿은 사람들이 다시 성경을 들고 이웃을 찾아갔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2. 광주 양림동은 '살아 있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광주 양림동을 걸어보면 100년이 넘은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양림동은 단순한 선교사촌이 아닙니다. 말씀이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관입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이곳에 와서 먼저 교회를 크게 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병원을 세웠습니다. 학교를 세웠습니다. 고아를 돌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삶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성경은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나갔습니다. 환자의 침상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의 교실로 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밥상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진리를 선교사들은 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3. 양림동은 '말씀이 교육이 된 곳'입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반드시 학교를 세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을 읽으려면 글을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곧 선교였습니다.
양림동에 세워진 숭일학교와 수피아학교는 단순한 근대식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을 가르쳤습니다.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신분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가치였습니다.
성경이 인간관을 바꾸자 교육이 바뀌었고, 교육이 바뀌자 사회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4. 양림동은 '말씀이 의료가 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선교사들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광주에 세워진 제중원과 이후 발전한 선교병원은 단순한 의료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복음을 실천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했지만, 복음은 영혼을 치료했습니다. 병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강단이었습니다.
5. 말씀은 교회를 넘어 도시를 바꾸었습니다.
전주도, 광주도, 양림동도 처음부터 큰 교회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경이 들어왔습니다. 그다음 사람이 변했습니다.
사람이 변하자 가정이 변했습니다. 가정이 변하자 학교가 생겼습니다.
병원이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도시가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단지 천국 가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고, 한 도시의 문화를 바꾸며, 한 민족의 미래를 바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토마스 선교사는 피로 씨앗을 심었습니다.
존 로스는 말씀을 번역했습니다. 서상륜은 성경을 국경 너머로 옮겼습니다.
이수정은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호남의 선교사들은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 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말씀은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학교가 되어야 하고, 병원이 되어야 하며, 가정이 되어야 하고, 교회가 되어야 하며,
도시를 변화시키는 생명의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손에 있는 성경도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읽고, 말씀이 우리를 살아 있는 복음으로 만들어 갈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시대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워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우리는 너무 쉽게 성경을 펼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순교자의 피로, 선교사의 눈물로, 번역자들의 헌신으로, 권서인들의 목숨 건 순종으로,
우리 손에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경이 우리를 소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읽는 데서 멈추지 말고, 순종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먼저 거할 때, 가정이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며, 한 민족이 새로워집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조선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보다 먼저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순교보다 강한 것이 말씀입니다.
국경보다 강한 것이 말씀입니다.
권력보다 강한 것이 말씀입니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손에 들린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의 헌신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가정에 먼저 들어가고, 우리 마음에 먼저 뿌리내리며,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능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는 말씀 위에 세워지고, 한 민족의 미래도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영성 깊은 기도
"말씀의 하나님, 오늘 제 손에 들린 성경이 얼마나 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전해졌는지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존 로스의 번역, 서상륜과 권서인들의 헌신, 이수정의 결단을 통해 이루신 당신의 섭리를 깊이 묵상하게 하시고, 저 또한 말씀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가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시며, 우리를 이 시대에 말씀을 전하는 살아 있는 성경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안내해드립니다. 더 편하고 유익하게 콘텐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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