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절한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믿음으로 광야를 지나 왕의 자리까지
오늘은 “처절한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무엘상 21장부터 31장까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다윗의 도망자 시대입니다.
다윗은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골리앗도 이겼습니다. 백성들의 환호도 받았습니다.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군대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인생이 탄탄대로로 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집을 떠나야 합니다. 가족과 떨어집니다. 친구 요나단과도 헤어집니다. 왕궁을 떠납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데 도망자가 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1장부터 31장까지 다윗은 광야와 동굴과 타국을 떠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울이 죽고 다윗은 왕의 길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놀라운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고 해서 현실에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긴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현실은 왕이 아니라 도망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셨는데 현실에서는 칼을 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셨는데 현실에서는 동굴에 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1. 처절한 현실은 믿음의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생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건강 때문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 문제 때문에 마음이 찢어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런데 성경은 다윗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난이 반드시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광야에 있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기름 부음은 한순간이었지만 왕의 성품은 광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왕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왕다운 사람은 광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사람으로 우리를 빚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의 현실이 처절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그렇게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때로는 바로 그 광야가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시는 학교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왕궁에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왕이 될 사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 믿음은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견디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면서도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현실은 말합니다. “너는 끝났다.”
믿음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끝내지 않으셨다.”
현실은 말합니다. “네 앞에는 길이 없다.”
믿음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실 수 있다.”
현실은 말합니다. “너는 도망자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기름 부은 자다.”
바로 이 사이에 믿음이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은 이 간격을 통과하는 이야기입니다.
고난 가운데 필요한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92절에서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다윗은 “고난이 없어서 살았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말씀이 나를 살렸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고난을 없애 달라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고난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광야의 첫 번째 시험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들어가면 다윗은 노브로 갑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갑니다. 왜 노브입니까?
그곳은 제사장들이 있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였습니다.
다윗이 위기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자리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예배가 귀찮아집니다. 기도가 잘 안 됩니다.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싫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위기의 시작에서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것이 돌파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문제가 생길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예배는 문제가 없는 사람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예배는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해석하는 사건입니다.
예배를 드리면 문제가 당장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가 하나님보다 커 보였는데, 예배하고 나면 하나님이 문제보다 커 보입니다.
두려움이 하나님보다 커 보였는데, 예배하고 나면 하나님이 두려움보다 커 보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우리를 살립니다.
4. 그러나 다윗도 광야에서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성경의 정직함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을 영웅으로만 만들면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흔들렸습니다. 사무엘상 21장에서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하고 블레셋 왕 아기스도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칼을 의지했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칼을 붙든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좋은 직장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은행 잔고가 많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도 두려워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불안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궁극적인 안전은 환경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편 56편 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5. 광야에서는 입술을 지켜야 합니다
처절한 현실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입술을 지키는 것입니다.
시편 141편 3절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왜 다윗이 이런 기도를 했겠습니까?
고난이 깊어지면 말이 거칠어지기 때문입니다. 억울하면 욕하고 싶습니다. 배신당하면 폭로하고 싶습니다.
상처받으면 상대를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함부로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을 “내 주”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사울의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악을 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의 악과 자신이 악해지는 것을 구별했습니다.
사울이 나에게 악을 행했다고 해서 내가 사울처럼 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6.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다윗은 놀라운 기회를 얻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왔다가 다윗이 숨어 있는 동굴에 들어옵니다.
부하들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당신 손에 넘기셨습니다.” 죽이면 됩니다.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도망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24장 6절에 “내가 손을 들어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믿음입니다. 다윗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도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왜 원수를 내가 갚으면 안 됩니까?
원수를 갚는 것 자체가 언제나 잘못된 감정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의에 대한 갈망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내가 최종 심판자가 되려고 하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억울한 것을 아십니다.
제가 받은 상처를 아십니다.
제가 당한 일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직접 심판자의 자리에 앉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이것이 영적 자유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준 것은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살려준 것입니다.
사울의 생명까지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는 사무엘상 24장과 26장에서 반복됩니다.
7. 고난 중에도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신앙의 덕목이 있습니다. 존중입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서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것은 예배당에서만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특별히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나에게 친절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존중했습니다. 사울의 악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울을 인간 이하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적용됩니다.
SNS에서 누군가를 조롱하지 마십시오.
댓글로 사람을 죽이지 마십시오.
뒤에서 험담하지 마십시오.
상대가 틀렸다고 해서 인격까지 파괴하지 마십시오.
특히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의 표현처럼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진리가 있다고 해서 잔인해질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8.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일하십니다
다윗에게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미래를 맡기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려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겠다.” 이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때를 기다리겠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조급함 때문에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성취됩니다.
9. 그러나 다윗도 다시 흔들렸습니다
사무엘상 27장에 가면 다윗이 또 흔들립니다.
다윗이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다윗이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판단을 먼저 붙듭니다. 그리고 블레셋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윗을 무조건적인 영웅으로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윗도 자기 계산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윗도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7장의 행동은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이며, 여러 주석가들은 다윗이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지 못하고 블레셋으로
피신한 것을 신앙적 후퇴의 가능성이 있는 행동으로 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나는 왜 믿음이 이렇게 약하지?” 다윗도 약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지?” 다윗도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10. 하나님은 실패한 다윗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상 27장부터 29장까지 다윗은 아주 복잡한 상황에 빠집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신임을 얻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하려고 합니다.
다윗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십니다.
블레셋 지도자들이 다윗을 전쟁에서 제외시킵니다. 다윗은 돌아갑니다. 그리고 30장에서 시글락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읍이 불타 있습니다. 가족들이 사로잡혀 갔습니다.
재산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가 정말 처절한 현실입니다.
사울에게 쫓겼습니다. 블레셋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불안합니다. 이제 돌아왔더니 집까지 불탔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인간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30장 6절은 놀라운 한 문장을 기록합니다.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영어로 흔히 “David strengthened himself in the LORD his God”라고 표현되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11. 처절한 현실의 절정에서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여기서 다윗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원망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하를 탓한 것도 아닙니다. 자포자기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힘을 얻은 후 다시 움직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힘을 얻고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울었습니다. 하지만 울면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움직였습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예배와 행동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를 현실로부터 도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합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대한 전통적인 주석도 다윗이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은 것이 단순한 감정적 격려가 아니라 기도와 신뢰를
통해 힘을 얻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것으로 설명합니다.
12. 믿음은 1% 영감과 99%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흔히 에디슨의 말을 빌려 “천재는 1% 영감과 99%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것을 성경의 공식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원리로 적용하면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방향 없는 노력은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가지 못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달리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달리는가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의 자랑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예배는 우리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듣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현실을 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현실을 돌파할 방향을 받는 시간입니다.
13. 다윗은 마침내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추격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되찾습니다.
가족도 되찾습니다. 재산도 되찾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내면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만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진짜 회복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가장 큰 회복은 물질의 회복이 아닙니다. 가족의 회복만도 아닙니다. 군대의 회복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다시 찾은 것이 가장 큰 회복입니다.
14. 사무엘상 31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때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엘상 31장에 이르면 사울이 죽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았는데 사울은 죽습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때가 되자 왕권의 문을 여십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기 손으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광야는 실패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기 전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울의 마지막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을 따라간 왕의 끝을 보여줍니다.
반면 다윗은 수많은 약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상 31장의 사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선언하신 심판이 역사 속에서 현실화되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21장에서 31장까지를 하나의 큰 이야기로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21장 — 도망자가 됩니다.
24장 — 원수를 죽일 기회를 내려놓습니다.
26장 — 다시 한번 하나님께 심판을 맡깁니다.
27장 — 두려움 때문에 흔들립니다.
30장 — 하나님 안에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
31장 — 하나님의 때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다윗은 왕으로 세워집니다.
15. 처절한 현실은 나를 망가뜨릴 수도 있고 성숙시킬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자체가 우리를 자동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난을 당한다고 모두 성숙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원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사람을 미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떠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냉소적 인간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해 더 깊은 믿음을 갖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난과 믿음이 만날 때 연단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은 믿음의 시련을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질문은 “왜 나에게 고난이 왔는가?” 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통하여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시려 합니까?”
16. 사랑스러운 사람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다윗은 젊었을 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고 난 다윗은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과 존경받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받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억울할 때 말을 조심합니다.
힘이 있을 때 복수하지 않습니다.
약할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실패했을 때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기회를 잡을 수 있어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이런 사람이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올라가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17. 우리 인생의 진짜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진짜 싸움은 골리앗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골리앗은 눈에 보이는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했습니다.
두려움. 분노. 복수심. 조급함. 자기 의지. 절망. 외로움. 이것이 더 무서운 적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칼보다 마음속의 미움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공격보다 사울을 미워하는 내 마음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다윗이 배운 것은 “적을 어떻게 죽이는가”가 아니라 “내 영혼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기는가”였습니다. 이것이 왕의 훈련이었습니다.
18. 오늘 여러분의 시글락은 어디입니까?
오늘 여러분에게도 시글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집에 들어갔는데 마음이 무너지는 분이 있습니까?
병원에서 들은 한마디 때문에 인생이 흔들리는 분이 있습니까?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까?
자녀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있습니까?
직장 문제로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까?
사람에게 배신당했습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다윗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에게는 현실이 바뀌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계셨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가족을 되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19. 처절한 현실을 돌파하는 세 가지 믿음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현실보다 약속을 크게 보십시오.
현실은 오늘의 상황입니다.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현실이 하나님의 약속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도 기다렸습니다.
요셉도 기다렸습니다.
다윗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늦어 보인다고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 고난이 깊어질수록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문제가 생겼다고 예배를 떠나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 예배하십시오.
기도가 안 될수록 기도의 자리에 나오십시오.
말씀이 안 들어올수록 말씀 앞에 앉으십시오.
눈물이 나더라도 예배하십시오.
감정이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셋째,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가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람을 무너뜨려야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20. 그리고 마침내 광야가 끝납니다
광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윗에게도 광야가 끝나는 날이 왔습니다.
사울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다윗의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때 다윗에게 가장 큰 선물은 왕관만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하나님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기도였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절제였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기다림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긍휼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예배였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하나님 의존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된 이후에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 — 처절한 현실을 믿음으로 돌파하십시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현실은 처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실보다 크십니다.
내가 지금 광야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도망자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나를 빚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자존심이 아닙니다.
더 많은 돈만도 아닙니다.
더 큰 힘만도 아닙니다.
더 좋은 환경만도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예배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말씀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기도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 제가 지금 처절한 현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게 하옵소서.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두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억울할 때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 입술을 지키게 하옵소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까지도 함부로 멸시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를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다윗처럼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광야를 통과한 뒤 더 깊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 광야가 여러분의 끝이 아닙니다. 시글락이 여러분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동굴이 여러분의 최종 주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붙들고 계십니다.
오늘 눈물로 지나가는 그 길이 훗날 여러분이 하나님을 증언하는 간증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광야가 내일의 왕관을 준비하는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입술을 함부로 열지 마십시오.
복수하지 마십시오.
예배를 떠나지 마십시오.
말씀을 놓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사무엘상 30장 6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오늘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처절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며,
예배로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고,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자리까지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