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영성 칼럼] 첫 번째 '그리스도인' 바울과 바나바 (사도행전 13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8. 08:35

거절을 통해 더 선명해진 사명!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사도행전 13장)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사도행전 13장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을 이끄시는 성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어려운 일을 쉽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을 대충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가 사라진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별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 작은 일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길이다”라고 말씀하시면 아무리 큰 일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은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은 능력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린 사람입니다.

 

1.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정체성을 압니다

 

사도행전 13장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행동도 흔들립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고, 환경에 흔들리고, 성공과 실패에 흔들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성도의 정체성은 세상이 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나의 최종적인 정체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부르시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증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 충만과 증인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나는 복음을 흘려보내는 증인이다.

 

여러분, 이것이 분명해지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받은 은혜를 나 혼자 가지고 있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냅니다.

받은 위로를 흘려보냅니다.

받은 복음을 흘려보냅니다.

받은 은사를 흘려보냅니다.

받은 물질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흘려보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막힌 사람이 아니라 흐르는 사람입니다. 죽은 바다는 물이 들어와도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강은 물을 받으면 흘려보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도 그렇습니다.

 

받고, 흘려보내고, 또 받고, 또 흘려보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자신 안에 은혜를 가두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과 은혜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2. 성령이 주도한 선교, 성령의 통치를 받은 사도들의 연합, 선교전략

사도행전 13장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배경도 다릅니다. 경력도 다릅니다. 문화적 배경도 다릅니다. 사회적 위치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성령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여기에서 선교의 출발점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도 아닙니다. 바나바도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의 전략회의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시작하셨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선교 전략을 먼저 짤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예산은 얼마인가?

누가 책임자인가?

몇 명을 보낼 것인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인가? 

 

물론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선교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성령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시작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가 아니라 “성령께서 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입니다.

 

3.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예배와 금식으로 방향을 찾았습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배와 금식입니다.  금식은 하나님을 조종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내가 사흘 금식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것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금식이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합니다.”

“내 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금식의 영성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금식은 인간의 힘을 자랑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힘의 한계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금식은 배만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습니다.

내 계산을 내려놓습니다.

내 통제 욕구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이것이 사도행전 13장의 핵심입니다. 예배하는 교회가 방향을 얻습니다.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쉬워진 것이 아니라 방향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유명한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보면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지금 우리에게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유명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4장 36절에서 바나바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사람으로 알려집니다.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바나바의 인생은 이름값으로 증명된 인생이 아닙니다.

순종의 열매로 증명된 인생입니다. 

성도의 진짜 이력서는 직함이 아닙니다. 명함도 아닙니다. 학위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붙여주는 타이틀도 아닙니다.

순종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고, 나는 어떻게 순종했는가?

어디에서 섬겼는가?

누구를 살렸는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는가?

누구를 위로했는가?

어떤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했는가?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남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순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광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들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나바에게는 섬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복음과 고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타이틀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리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이 부르시면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때에 사용하십니다.

 

5. 그런데 하나님의 길에는 반드시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순종해서 출발하자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사도행전 13장 6절부터 12절에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구브로 섬의 바보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바예수, 곧 엘루마라는 마술사이자 거짓 선지자를 만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런데 엘루마가 방해합니다.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여기에서 복음의 특징을 발견합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영적 저항도 나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사람을 생명으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단순히 사람과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모든 인간적인 갈등을 무조건 마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적 전쟁을 말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죄와 교만과 지혜 없는 판단도 다룹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가로막는 거짓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엘루마를 향해 매우 강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엘루마에게 일시적인 어둠이 임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그 일을 보고 믿습니다. 12절입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무엇이 중요합니까? 말씀의 전파와 영적 대적을 이기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가로막는 거짓과 악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6.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싸움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 등장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복음을 거절합니다.

 

이것은 복음 사역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2절을 보면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44절에는 온 시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45절에 반대가 일어납니다.

질투가 생깁니다. 비방이 생깁니다. 그리고 결국 박해가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복음이 진짜로 선포되면 반응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영접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뻐합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했는데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잘못했나?”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거절당하셨습니다. 사도들도 거절당했습니다. 바울도 거절당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률이 아닙니다.

충성입니다.

 

7.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거절까지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6절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그리고 47절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나타납니다. 사람의 거절이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거절을 통하여 복음의 방향을 더 넓히십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28절과 연결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에는 무엇이 들어갑니까?

성공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도 들어갑니다.

거절도 들어갑니다.

실망도 들어갑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 전환도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서 거절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거절당하는 모든 일이 자동으로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거절조차 하나님의 목적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거절을 만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끝났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이것을 통해 무엇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8. 거절을 당했을 때 상처에 머물지 말고 다음 사명으로 가십시오

사도행전 13장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박해를 받고 그 지역에서 쫓겨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놀랍습니다. 그들은 상처를 붙들고 주저앉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고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다음 지역으로 갑니다.

그리고 52절입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이 말씀은 사도행전 13장의 절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박해를 받았습니다. 거절을 경험했습니다.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기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황이 기쁨의 근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기쁨의 근원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짜 영성입니다.

 

환경이 좋아야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를 인정해야 기뻐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획대로 되어야 기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9.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려운 일 속에서도 “다음”을 바라봅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습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상처도 있습니다. 거절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사역하다가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나 자신에게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발에 먼지를 털었다는 것은 과거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과거에서 배우되 과거에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상처를 기억하되 상처가 나의 정체성이 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를 인정하되 실패가 나의 이름이 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절을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말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을 준비하십니다.

다음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 사명이 있습니다.

다음 문이 있습니다.

다음 은혜가 있습니다.

다음 지역이 있습니다.

다음 영혼이 있습니다.

 

10. 바울의 사명은 거절을 통해 더 선명해졌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바울의 선교 방향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갑자기 생겨난 계획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 사람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런데 바울 자신도 사명을 걸어가면서 그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인생에서 처음부터 모든 세부사항이 공개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한 걸음씩 보여주십니다. 한 번의 순종 뒤에 다음 길을 보여주십니다.

한 번의 믿음 뒤에 다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보여주신 만큼 순종하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말씀보다 내 감정을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신앙에는 두 가지 기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에 기반한 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감정에 기반한 신앙입니다.

 

감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기분이 좋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마음이 무겁다고 하나님이 떠나신 것도 아닙니다.

오늘 기도가 잘된다고 하나님이 더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기도가 잘 안 된다고 하나님이 멀어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준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을 보십시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말씀은 환경보다 큽니다. 감정보다 큽니다. 사람의 평가보다 큽니다. 오늘 내 기분보다 큽니다. 

“너는 내 것이라.” 이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이 입맛에 맞을 때만 읽지 마십시오.

말씀이 나를 위로할 때만 읽지 마십시오.

말씀이 나를 칭찬할 때만 읽지 마십시오.

말씀이 나를 책망할 때도 읽으십시오.

말씀이 나의 계획을 깨뜨릴 때도 붙드십시오.

말씀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도 순종하십시오.

왜냐하면 신앙의 목표는 내가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말씀에 맞추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2. 결국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둡니다

사도행전 13장의 바울 설교를 보십시오. 바울은 자기 이야기를 중심에 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한 뒤 결국 어디로 갑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13장 38–39절은 복음의 핵심을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우리의 열심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우리의 감동적인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죄 사함입니다.

칭의입니다.

은혜입니다.

믿음입니다.

새 생명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운 시대를 이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선명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설교도, 우리의 전도도, 우리의 교회도, 우리의 인생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야 합니다.

 

13.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네 가지 질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네 가지 질문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세상의 평가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증인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둘째, 누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

내가 주인입니까?

환경이 주인입니까?

돈이 주인입니까?

사람의 평가가 주인입니까?

아니면 성령 하나님이 주인이십니까? 사도행전 13장의 안디옥 교회는 성령이 주도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셋째, 나는 거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거절당했다고 끝났습니까?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모든 것이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절을 통해서도 길을 여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막힌 문을 통해 다른 문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거절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넷째, 나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과거입니까?

상처입니까?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박해를 받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엇으로 충만했습니까?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의 마지막 문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환경 때문에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결론 —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 이제 우리는 그 뜻을 알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은 문제를 쉽게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합니다. 예배합니다. 기도합니다. 필요하면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리면 순종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영적 전쟁을 분별합니다. 거절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털어냅니다. 다음 사명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엇으로 충만합니까?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3장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혹시 지금 인생이 너무 복잡합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까?

사람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습니까?

거절 때문에 상처받았습니까?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모든 답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예배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붙드십시오. 필요하다면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물으십시오. “주님, 지금 제가 순종해야 할 한 걸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한꺼번에 보여주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걸어야 할 한 걸음은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한 걸음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다음 걸음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 걸음이 열립니다.

 

마침내 뒤돌아보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길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내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9절의 말씀처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오늘도 새 일을 행하십니다.

막힌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십니다.

거절당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문을 여실 수 있습니다.

상처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명의 이야기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방향을 잃었습니까? 성령께서 다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나는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겠습니다.”

“나는 내 뜻보다 성령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겠습니다.”

“나는 거절 때문에 멈추지 않겠습니다.”

“나는 상처에 머물지 않고 다음 사명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지만 하나님 때문에 쉽게 걸어가는 사람,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

거절을 당해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상처를 안고 주저앉지 않고 다음 사명으로 나아가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정체성이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임을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우리 안에 가두지 않고 가정으로, 교회로, 이웃으로,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앞서지 않게 하시고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듣게 하시며 성령께서 보내실 때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찾아올 때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거절을 당했을 때 상처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그 거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길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과거의 실패와 상처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시고 발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일어나 다음 사명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감정보다 말씀이 커지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커지게 하시며 우리의 능력보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사역과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게 하옵소서.

죄 사함의 복음, 의롭다 하심의 은혜, 부활의 생명, 성령의 능력을 붙들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도 안디옥 교회처럼 성령께서 쓰시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이 성령의 통치를 받게 하시며,

우리의 삶이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거룩한 순종의 발걸음이 되게 하옵소서.

 

마침내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