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위기, 다른 행동 ― 풍랑 속에서 믿음으로 버티고 사람을 살리는 사람 (사도행전 27장 1–44절)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풍랑이 옵니다
여러분, 인생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인생을 여행이라고 말합니다.어떤 사람은 인생을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27장을 읽으면 인생은 어쩌면 항해와 가장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가 언제나 잔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햇빛이 비치고 바다가 잔잔합니다.
바람도 적당합니다. 배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풍랑이 몰아칩니다.
내가 잘못해서 오는 풍랑도 있지만, 내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오는 풍랑이 있습니다.
건강의 풍랑이 있습니다.
관계의 풍랑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풍랑이 있습니다.
자녀의 풍랑이 있습니다.
직장의 풍랑이 있습니다.
신앙의 풍랑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풍랑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풍랑은 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같은 풍랑이 왔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오늘 사도행전 27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위기를 만났지만 사람들의 행동은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망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만 살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붙들었고, \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것입니다. “같은 위기, 다른 행동.”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 질문입니다.
“풍랑이 나를 무너뜨리는가, 아니면 풍랑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는가?”
1. 풍랑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속사람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해 갑니다. 겉으로 보면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배에는 백부장이 있습니다. 선장이 있습니다. 선주가 있습니다. 숙련된 선원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죄수입니다.
사회적인 위치로 보면 바울은 가장 약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유라굴로라는 거대한 광풍이 불기 시작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도행전 27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기서 놀라운 장면이 시작됩니다. 평소에는 선장이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불자 선장의 전문성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백부장이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풍랑 앞에서는 백부장의 권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돈이 있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풍랑 속에서는 돈으로 바다를 잠잠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가진 직책, 경력, 학력, 재산, 명예가 풍랑 앞에서 하나씩 벗겨집니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이 있습니다. 속사람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중심을 중요하게 봅니다. 잠언 4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람은 평안할 때 자기 마음을 잘 모릅니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기가 오면 알게 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가?” 평소에는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공격하면 알게 됩니다. “내 안에 분노가 얼마나 있었는가?”
평소에는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알게 됩니다. “내 안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컸는가?”
평소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손해가 발생하면 알게 됩니다.
“나는 정말 사랑했는가, 아니면 이익을 위해 관계를 맺었는가?” 그래서 풍랑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영적인 거울이 됩니다.
풍랑이 나를 만든다기보다 풍랑이 내 안에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풍랑이 왔다고 해서 무조건 이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습니까?”
물론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이 풍랑 가운데서 제가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내 안에 무엇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습니까?”
“제가 누구를 주인으로 삼고 살았습니까?”
풍랑은 우리의 인생을 흔들지만 동시에 우리의 신앙을 점검합니다.
2. 하나님은 풍랑을 없애기 전에 우리를 풍랑 속에서 사용하십니다
사도행전 27장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풍랑이 오지 않도록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로마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23장 11절에서 주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길에도 풍랑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해서 풍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탔지만 풍랑을 만났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에서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을 이렇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환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담대할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배는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배는 부서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절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
3.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23절부터 25절이 본문의 중심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여기서 바울의 믿음은 현실 부정이 아닙니다. 바울은 풍랑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배는 부서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면서도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맞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관계가 깨졌습니다.” 맞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것을 더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마디가 믿음입니다.
4. 같은 위기에서 첫 번째 사람들은 도망쳤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서로 다른 세 부류의 행동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도망치는 사람들입니다.
선원들이 육지가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자기들만 살려고 합니다.
구명보트를 내리고 도망가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27장 30절의 상황입니다. 이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공동체를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자기 보존 본능 때문입니다.
“나는 살아야 한다.”
“나만 살면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것이 죄의 오래된 본성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죄는 언제나 공동체적 책임을 거부합니다. “나는 내 인생만 책임지면 됩니다.” “다른 사람은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복음은 나를 살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으로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신앙은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5. 두 번째 사람들은 자기만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더 무서운 장면이 있습니다. 배가 난파되자 군인들은 죄수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죄수가 도망가면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위기 속에서 이들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저 사람이 죽으면 내가 산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사고방식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경쟁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이 탈락해야 합니다.
내가 올라가려면 누군가 내려가야 합니다.
내가 성공하려면 누군가 실패해야 합니다.
내가 인정받으려면 다른 사람이 무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세상의 방식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복음의 방식은 “내가 희생함으로 네가 산다.” 십자가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인생 방향은 분명합니다. 죽이는 쪽이 아니라 살리는 쪽입니다.
6. 세 번째 사람, 바울은 살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나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려고 할 때 백부장은 그들의 뜻을 막습니다. 결과는 놀랍습니다.
배에 있던 모든 사람이 살아납니다. 사도행전 27장 44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이것이 본문의 영적 원리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직장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다음 세대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7. 위기에서 진짜 리더십은 직함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은 공식적인 지도자가 아닙니다. 선장도 아닙니다. 백부장도 아닙니다. 죄수입니다.
그런데 위기가 오자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바울의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에게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리더십은 직책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영향력은 명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진짜 권위는 사람을 살리는 데서 나옵니다.
처음에는 백부장이 결정했습니다. 선장이 결정했습니다. 선주가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모든 인간적인 권위를 무너뜨리자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 중심에 서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영향력입니다. 위기가 오면 진짜 사람이 드러납니다.
8. 바울은 영적인 사람인 동시에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있다고 해서 현실적인 판단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우 현실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31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모두를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바울은 선원들이 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이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결과를 약속하셨다고 해서 인간의 행동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단을 통해 목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농부에게 열매를 약속하셨다고 해서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수칙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해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믿음은 무책임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하면서도 정보를 사용합니다. 위험을 판단합니다.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합니다.
배를 가볍게 합니다. 닻을 끊습니다. 육지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9. 믿음은 때로 “버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즉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때 믿음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어떤 때 믿음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 믿음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풍랑을 당했습니다.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배를 운전할 수도 없었습니다.
풍랑을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성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은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맡긴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붙드는 것입니다.
10. 풍랑 속에서도 먹고 감사하십시오
사도행전 27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게 하는 장면입니다.
14일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아직 배는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육지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풍랑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감사는 문제가 끝난 다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사하자 사람들도 안심하고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배에 있던 사람의 수가 276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모두 먹고 난 후 남은 밀을 바다에 버립니다. 즉, 믿음으로 채우고, 불필요한 것은 내려놓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랑 속에서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원망을 버려야 합니다.
통제하려는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를 붙들고 사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11. 풍랑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만나게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위기에서 도망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리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붙들까요?
그 안에 이미 형성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위기가 왔을 때 갑자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무엇을 마음에 쌓았는지가 위기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풍랑이 오기 전에 내면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약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나를 붙드십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나의 존재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나를 칭찬해도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사람이 나를 무시해도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성공해도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실패해도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건강해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아파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평안할 때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말한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
바울은 먼저 자기의 소속을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것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풍랑이 바울의 정체성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12. 풍랑 속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시대의 대안”으로 세우셨습니다
처음에는 바울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모두가 바울의 말을 듣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방식입니다.
세상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약해 보이는 사람을 붙드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질그릇입니다. 죄수입니다. 풍랑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풍랑이 깊어질수록 바울의 영향력은 커집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세상이 평안할 때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교회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절망할 때, 교회는 소망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 할 때, 교회는 생명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만 살려고 할 때, 교회는 섬김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거짓을 붙들 때, 교회는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방향을 잃을 때, 교회는 말씀으로 방향을 보여줘야 합니다.
13. 하나님은 배를 구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도행전 27장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배가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배는 깨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복음의 그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배”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항상 보존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재산이 항상 보존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직장이 항상 보존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명예가 항상 보존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세운 인생의 배가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를 부수면서 우리를 살리십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무너져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던 것이 사라져야 진짜 보배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하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가 부서지는 것이 반드시 인생이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중요한 곳으로 옮기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흐름에서 바울의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장 로마에 가지 못합니다.
몰타라는 섬에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때때로 중간 정거장이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에는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에는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몰타에 있다고 해서 로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 중간에 멈춰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계획과 다른 곳에 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때로 우회로를 통해 목적지로 인도하십니다.
14.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입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로마라는 장소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시편 23편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다윗은 골짜기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골짜기에 혼자 있지 않습니다.
주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풍랑을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도 나와 함께 풍랑을 통과하고 계신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풍랑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풍랑을 견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언제 풍랑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풍랑이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는 지금 준비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읽으십시오.
평소에 기도하십시오.
평소에 예배하십시오.
평소에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평소에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평소에 용서하십시오.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십시오.
그래야 풍랑이 왔을 때 그 믿음이 나타납니다. 신앙은 위기 때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쌓인 신앙이 위기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16.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세 가지 행동
오늘 말씀을 아주 실제적으로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도망치지 마십시오
위기가 오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모든 도망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어떤 문제는 장소를 바꾸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뀌어야 해결됩니다.
어떤 관계는 사람을 바꾸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야 해결됩니다.
어떤 상처는 잊어버리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가져가야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시는 자리라면 믿음으로 머무십시오.
둘째, 자기만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위기일수록 공동체를 생각하십시오. 가정을 생각하십시오.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다음 세대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자원을 나만 살기 위해 사용하지 마십시오.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다른 사람도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말씀을 붙들고 살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은 풍랑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습니다.
배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권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적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는 자리에서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결론 — 같은 위기, 다른 행동
276명의 사람이 같은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같은 바람을 맞았습니다. 같은 파도를 만났습니다. 같은 어둠을 경험했습니다. 같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살렸습니다. 백부장도 바울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배는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배가 반드시 보존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보존됩니다.
우리 인생의 배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면 우리는 살아남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풍랑을 없애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풍랑 속에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를 보게 하시고, 그 모습을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게 하소서.”
“내 속사람을 말씀으로 강건하게 하소서.”
“위기가 왔을 때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자기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인생의 배가 부서질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부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이 이렇게 말하게 하십시오.
“저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학력이 아닙니다. 경력이 아닙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영성 깊은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의 바다가 언제나 잔잔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풍랑을 만납니다. 때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해도 보이지 않고, 별도 보이지 않고, 마침내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 그때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옵소서.
우리가 사람의 능력을 의지했는지, 돈을 의지했는지, 경력을 의지했는지, 사람의 인정을 의지했는지,
나 자신의 힘을 의지했는지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환경이 우리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시고, 사람의 평가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시고,
실패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시고, 풍랑이 우리의 믿음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이 고백이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바울의 믿음을 주옵소서.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배가 흔들려도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계획이 무너져도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사람이 떠나도 주님을 붙들게 하시고, 길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의 손을 붙들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살리는 사람으로 세워 주옵소서.
내가 죽어야 네가 산다는 세상의 논리를 버리고, 내가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가정에서 사람을 살리게 하시고, 교회에서 사람을 살리게 하시고, 직장에서 사람을 살리게 하시고, 다음 세대를 살리게 하시고,
이 시대의 절망 속에서 복음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인생의 배가 부서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부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게 하옵소서.
몰타에 멈춰 선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목적지는 여전히 우리 앞에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계획보다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게 하시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우회로에서도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손에서 두려움을 내려놓습니다. 원망을 내려놓습니다.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붙듭니다. 십자가를 붙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성령님,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셔서 풍랑이 오기 전에도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 풍랑이 왔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풍랑이 지나간 후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다”는 간증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에게 좋은 환경만 물려주게 하지 마시고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믿음을 물려주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나 하나 잘되는 인생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살리고, 한 공동체를 살리고,
한 시대를 살리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마침내 우리 인생의 마지막 항구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항해를 끝까지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