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돈을 나를 위해서만 쓰는데 왜 만족하지 못합니까?(야고보서 5장 1–12절)

knowledgeplatform100 2026. 10. 6. 09:53

돈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라 (야고보서 5장 1–12절)

우리는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더 많이 벌고 싶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돈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야곱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도 많은 소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역시 막대한 재물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묻는 질문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가 아닙니다. 

성경이 묻는 질문은 “그것을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입니다.

 

야고보서 5장은 바로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들으라 너희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 야고보서 5장 1절

 

굉장히 강한 말씀입니다.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게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했을까요? 부자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재물의 양이 아니라 재물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야고보가 책망하는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재물을 축적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치하며, 노동자의 정당한 품삯을 주지 않고, 힘없는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의 부를 늘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고보서에 대한 주요 주석 연구에서도 5장 1–6절의 부자들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부유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람들로 설명됩니다. 특히 5장 4절의 임금 체불과 5절의 사치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니까 이 말씀과 관계없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내 통장에 얼마가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의 주인이 누구냐이기 때문입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진짜 부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밭에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창고를 더 크게 지어야겠다.” 그리고 말합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누가복음 12장 21절

 

여기에 성경적 부자의 정의가 나옵니다.

부자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하나님께 대하여 가난할 수 있습니다.

집은 큰데 마음은 좁을 수 있습니다. 

통장은 두꺼운데 영혼은 가난할 수 있습니다.

재산은 많은데 나눌 줄 모를 수 있습니다.

명품은 많은데 사랑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야고보서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너는 무엇을 쌓고 있느냐?”

 

2. 첫 번째 걸림돌 — 쌓아두는 재물

야고보서 5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재물은 쌓아두기만 하면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원래 재물은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냉장고에 좋은 음식이 있는데 먹지 않고 계속 넣어두면 결국 상합니다.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옷을 가지고 있는데 한 번도 입지 않으면 결국 시대가 지나가고 몸에 맞지 않게 됩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오직 축적만 한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축복이 아니라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차이​입니다.

“아무리 목말라도 고인 물을 먹으면 안 된다. 흐르는 물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으로 생각해 보면 놀라운 통찰이 있습니다. 생명은 흐를 때 건강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성령은 흐르게 하십니다.

사랑이 흐르게 하십니다.

용서가 흐르게 하십니다.

은혜가 흐르게 하십니다.

재물도 흘러가게 하십니다.

시간도 흘러가게 하십니다.

재능도 흘러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자기 안에만 가두어 놓으면 영적으로 고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인 물에 독이 생기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도 자기중심적으로 축적되면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3. “하늘에 쌓으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렇다면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늘은행에 돈을 입금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것.

복음을 위해 사용하는 것.

다음 세대를 위해 사용하는 것.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 교회를 섬기는 것.

가정과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재물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마음의 방향을 보여주는 영적 지표입니다.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보면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 시간을 사용하는지를 보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지를 보면 나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4. 존경받는 부자는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자가 되면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돈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걱정을 합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면 더 좋은 것을 찾게 됩니다.

더 좋은 차를 사면 더 좋은 차가 눈에 들어옵니다.

더 좋은 집에 살면 더 좋은 집이 보입니다.

더 좋은 음식을 먹으면 평범한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소유는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소유하는 존재”로 살아갈 때 만족할 수 없고, 존재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고는 이것을 “Being for others”, 타자를 위한 존재​라는 개념으로 연결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자기를 내어주신 분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타자를 위한 존재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적 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제게 주셨으니 어떻게 하면 이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까?”

이것이 진짜 부자의 질문입니다.

 

5. 두 번째 걸림돌 — 사치와 자기중심적 소비

야고보서 5장 5절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찌게 하였도다.”

 

여기서 야고보가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것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중심성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만족.

내 즐거움.

내 체면.

내 욕망.

내 과시.

내 편안함.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깊이가 인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더 가지고 싶습니다.

 

이것이 탐욕입니다. 탐욕은 “돈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할 때 생깁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무서운 말씀입니다. 탐욕의 본질은 돈이 아닙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것입니다.

 

6. 돈을 나를 위해서만 쓰면 왜 만족하지 못합니까?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작은 불편에 더 민감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있으면서도 땅콩을 어떻게 가져왔는지를 가지고 화를 내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남깁니다.

중요한 것은 땅콩이 아니라 소유가 인간의 만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등석에 앉아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많습니다. 편안한 좌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것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노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소유가 많아진다고 마음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기중심성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감사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쁨의 근원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풍부할 때도 하나님.

궁핍할 때도 하나님.

배부를 때도 하나님.

배고플 때도 하나님.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입니다.

 

비즈니스석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시편 23편의 고백이 그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자가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7. 세 번째 걸림돌 —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

야고보서 5장 4절은 더욱 직접적으로 말씀합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경제윤리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노동자의 눈물을 들으십니다.

사람은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모른 척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는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야고보는 “품꾼의 삯이 소리 지른다”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그 임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그 사람의 가족이 걸려 있습니다.

자녀의 식사가 걸려 있습니다.

병원비가 걸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을 정당하게 지급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회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의의 문제입니다.

 

야고보서 5장의 부자에 대한 심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학문적 주석들도 야고보의 핵심 비판을 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불의하게 획득하고 자기 쾌락을 위해 사용하는 부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직업윤리는 단순합니다.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8. 크리스천에게 사업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닙니다

BAM, 즉 Business as Mission은 사업을 선교적 사명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사업의 목적이 이윤 창출만은 아닙니다.

 

물론 사업에는 이윤이 필요합니다. 이윤이 있어야 지속가능합니다. 

직원에게 임금을 줄 수 있습니다.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재투자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윤 자체를 악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윤이 목적의 전부가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크리스천의 사업은 질문이 달라야 합니다. 

“얼마를 벌 것인가?” 뿐 아니라, “누구를 살릴 것인가?” 

“누구에게 일자리를 줄 것인가?”

“어떻게 정직하게 벌 것인가?”

“이 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창조질서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청지기 정신입니다.

 

9. 예수님의 오병이어는 “나누는 부”의 모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한 아이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오천 명을 먹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것이 크냐 작으냐보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느냐를 보십니다.

내가 가진 돈이 많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도 됩니다.

재능이 크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흘려보내십시오.

잠언 11장 24절은 놀라운 역설을 말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가지고 있어야 부자다.” 복음은 말합니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부자다.”

세상은 말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라.” 복음은 말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라.”

세상은 말합니다. “나를 위해 쌓아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쌓으라.”

 

10. 그렇다면 어떻게 존경받는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쌓아두는 사람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십시오.

필요한 것은 준비하십시오. 가족을 책임지십시오. 미래를 계획하십시오. 노후도 준비하십시오.

성경은 무책임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십시오.

내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흘려보낼 것인가?” 를 질문하십시오.

둘째, 나를 만족시키는 소비보다 사명을 이루는 소비를 하십시오.

돈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누리십시오. 가족과 여행도 하십시오. 좋은 음식도 먹으십시오. 문화생활도 하십시오.

그러나 모든 소비의 중심에 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가족을 살리는가?

이웃에게 유익한가?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는가? 이 질문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소비가 달라집니다.

셋째, 돈을 버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만들지 마십시오.

내가 성공하기 위해 누군가가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 누군가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편의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고 있지는 않은가?

야고보서 5장 4절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억울한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으십니다.

 

11. 그런데 야고보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서 부자의 탐욕과 착취를 심판한 다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뀝니다.

7절부터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악한 사람들이 지금 당장 심판받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의를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복수에 인생을 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신뢰하면서 인내합니다.

야고보서 연구에서도 5장 7–12절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인내할 것을 촉구하는 부분으로 이해됩니다.

 

12.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인내는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능력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은 농부를 예로 듭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기다립니다. 오늘 씨를 뿌리고 내일 수확하지 않습니다.

비를 기다립니다. 때를 기다립니다. 열매를 기다립니다.

 

그렇다고 농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아야 합니다.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돌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이것이 성경적 인내입니다.

일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순종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으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13. 믿음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깊어집니다

“벼락부자는 있어도 벼락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은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를 통해 굳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믿음은 시련을 통과하면서 깊어집니다.

농부에게 시간이 필요하듯이, 사람의 영혼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즉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이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너를 먼저 만들어 가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14. 마음을 굳건하게 하십시오

야고보서 5장 8절입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인내의 핵심은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인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마음을 굳건하게 합니까?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세상의 언어에 쉽게 오염됩니다.

“끝났다.” 

“나는 안 된다.”

“나는 실패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들이 나보다 앞서간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

이런 언어가 마음을 지배하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 언어를 마음에 심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마음을 바꾸고, 마음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15.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이 끝까지 갑니다

사람의 약속은 변할 수 있습니다. 경제 상황도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합니다. 직장도 변합니다. 건강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은 말씀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상황을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디모데후서 4장 7–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출발이 아닙니다. 끝입니다.

처음에는 뜨거웠는데 마지막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충성했는데 마지막에 돌아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간적인 열정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믿음입니다.

 

16. 존경받는 부자의 마지막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을 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돈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집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명품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주식계좌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부동산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습니다.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이 남습니다.

우리가 살렸던 사람이 남습니다.

우리가 세운 다음 세대가 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사용했던 재물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로 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17. “죽은 다음에 헌신하겠다”가 아니라 지금 헌신하십시오

“죽고 나면 하나님을 위해 재산을 쓰겠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녀들이 상속을 받으면서 계획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유산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청지기 정신은 내가 죽은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오늘 한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오늘 선교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오늘 직원에게 정당한 대가를 줄 수 있습니다.

오늘 가족에게 시간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자녀에게 믿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날입니다.

 

18. 존경받는 부자는 “얼마를 남겼는가”보다 “얼마나 흘려보냈는가”로 평가됩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재산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삶을 계산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정직했는가.

얼마나 섬겼는가.

얼마나 나누었는가.

얼마나 사람을 살렸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했는가.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진짜 재산입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부자는 돈을 움켜쥔 사람이 아니라, 돈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부자는 자기만을 위해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자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부자는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직하게 벌고 기쁨으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부자는 미래를 두려워하여 쌓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9.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부터는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이것은 놀라운 결론입니다.

재물의 문제도 결국 기도로 돌아옵니다. 고난도 기도로 돌아옵니다. 질병도 기도로 돌아옵니다.

공동체의 문제도 기도로 돌아옵니다.

야고보서의 마지막은 인간의 능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5장 14–15절은 병든 자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함께 기도하도록 합니다.

즉 야고보에게 신앙은 개인주의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돌보고, 함께 회복되는 공동체적 신앙​입니다.

 

야고보서 연구에서도 5장 13–20절은 기도와 찬양, 장로들의 돌봄, 죄의 고백, 치유와 회복을 통해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는 절정으로 이해됩니다.

 

결론 —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쌓고 있느냐?”

돈입니까?

집입니까?

명예입니까?

경력입니까?

자녀의 성공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우리의 인생은 결국 두 방향 중 하나로 흘러갑니다.

나를 위해 쌓는 인생이거나, 하나님을 위해 흘려보내는 인생입니다.

한쪽은 창고가 커집니다.

다른 한쪽은 영혼이 커집니다.

한쪽은 통장이 두꺼워집니다.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한쪽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놓아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죽음 이후에도 열매가 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존경받는 부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부자가 되십시오.

돈이 많아도 교만하지 마십시오.

돈이 적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많이 벌었다면 많이 나누십시오.

많이 받았다면 많이 섬기십시오.

좋은 것을 가졌다면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재물보다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소유보다 존재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존재가 되십시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재물은 우상이 아니라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소명이 됩니다.

우리의 사업은 단순한 이윤 창출이 아니라 섬김이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됩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마지막까지 정직하십시오.

마지막까지 사랑하십시오.

마지막까지 나누십시오.

마지막까지 충성하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얼마나 많이 모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맡긴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말씀하시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야고보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돈을 하나님보다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재물을 하나님처럼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재물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의 도구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다면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적다면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나누게 하시고,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섬기게 하시고, 많은 재능을 받은 사람은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창고만 커지게 하지 마시고 우리의 마음이 커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통장만 풍성하게 하지 마시고 우리의 사랑이 풍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집만 아름답게 하지 마시고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썩어 없어질 땅의 보물만 쌓지 않게 하시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울음소리를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정당한 대가를 빼앗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성공 때문에 누군가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옵소서.

 

사업을 하는 자에게 정직함을 주시고, 직장에 있는 자에게 성실함을 주시고,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지혜를 주시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청지기의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인생이 고인 물이 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생수가 흘러가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흘러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재물이 흘러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흘러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복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야고보의 말씀처럼 길이 참게 하시고, 농부가 귀한 열매를 기다리듯

주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옵소서. 

 

흔들릴 때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두려울 때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마음이 무너질 때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은혜를 주옵소서. 

 

처음만 뜨거운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섬겼는가, 얼마나 나누었는가,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했는가” 를 돌아보게 하시고,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우리의 돈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시간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직업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가정도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생명도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 우리를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나를 위해 쌓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소유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한 일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돈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