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부르짖으면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우리의 삶을 고치십니다.

knowledgeplatform100 2026. 7. 2. 10:27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기적을 여는 문입니다 (본문 : 시편 107편 1–43절)

때로는 형통도 시험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시편 107:19)

들어가는 말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는 정말 방법이 없다."

사람에게 기대어 보았습니다. 돈으로 해결하려고도 했습니다. 경험과 지식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인간은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합니다.

하나는 절망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이 언제나 두 번째 길을 우리에게 권한다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보다 고난 속에서 더 깊은 기도가 나옵니다. 건강할 때보다 병상에서 더 진실한 믿음이 나옵니다.

풍요할 때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분명하게 듣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고난 자체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지만,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07편은 단순히 고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1.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모든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시 107:1-3)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편은 감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형편이 좋아서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현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폐허가 된 성읍. 무너진 성전. 가난한 삶.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왜입니까?

 

상황보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인자"(히브리어 헤세드)는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은 약속을 잊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배신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 3:22-23)

 

복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입니다.

2.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학교입니다 (시 107:4-9)

첫 번째 사람들은 광야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물도 없습니다. 방향도 없습니다. 이 광야는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닙니다.

영적인 광야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직장은 있지만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가정은 있지만 행복을 잃었습니다. 돈은 있지만 평안을 잃었습니다.

성공은 했지만 하나님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광야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광야를 제거하시기보다 광야에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광야는 버려진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계시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광야가 끝난 뒤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광야 한가운데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길을 다 아는 사람의 보고가 아닙니다. 기도는 길을 잃은 사람이 하나님께 손을 내미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하나님은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을 넘어, 길 자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3. 죄는 사람을 묶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자유하게 합니다 (시 107:10-16)

두 번째 장면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입니다.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죄는 언제나 자유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결국 더 큰 속박을 가져옵니다.

탐욕은 사람을 돈의 노예로 만들고, 음란은 영혼을 무너뜨리며, 교만은 하나님과 사람을 모두 잃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편은 놀라운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에 그들이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은 "네가 자초한 일이니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쇠문을 깨뜨리시고 쇠빗장을 꺾으십니다.

 

이 장면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십자가와 부활로 깨뜨리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떤 죄의 사슬에 묶여 있든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주님은 자유를 허락하십니다.

 

4.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 (시편 107:17-22)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107:17-20)

시편 기자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미련함은 지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잠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잠 9:10)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삶은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해 보여도 성경은 그것을 미련함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속 사람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그들은 음식조차 싫어하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갑니다. 죄는 처음에는 달콤합니다. 그러나 결국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죄는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양심을 무디게 만들며, 기도를 멈추게 하고, 예배를 형식으로 바꾸며,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풍요로운 시대지만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평안은 사라졌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리는 잃어버렸으며, 연결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더욱 외로워졌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코 참 생명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편 107편은 다시 한번 놀라운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이 말씀은 시편 107편에서 반복되는 후렴구입니다.

광야에서도, 감옥에서도, 질병 가운데서도, 풍랑 가운데서도, 동일한 문장이 반복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회개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셨다."

 

치유의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에스겔에서는 말씀으로 마른 뼈를 살리셨으며,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로고스)"이라고 소개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 14)

 

시편 107편에서 "말씀을 보내어 고치셨다"는 선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되어 죄로 병든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희생이 아닙니다. 인류의 영적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죄인을 정죄하는 소식이 아니라, 죄인을 살리시는 기쁜 소식입니다.

 

5.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다스리신다 (시편 107:23-32)

이제 시편은 마지막 장면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이번에는 광야도 아니고 감옥도 아닙니다.

바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다는 혼돈과 죽음을 상징했습니다.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광풍이 일어납니다.

배는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골짜기로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본문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위험 때문에 녹는도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평탄하기만 할 것 같던 삶에 갑자기 폭풍이 찾아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 사업의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자녀의 문제. 경제적 위기. 신앙의 침체.

우리는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합니다.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고 계십니다.

오히려 풍랑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무대가 됩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도 잔잔하게 하셨다."

 

이 장면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갈릴리 바다가 떠오릅니다.

제자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외쳤을 때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순간 모든 풍랑이 멈추었습니다.

 

복음서는 시편 107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에서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한 위대한 선생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 인생의 풍랑을 다스리십니다.

때로는 풍랑을 멈추시고, 때로는 풍랑 속에서 우리 믿음을 붙드십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6. 하나님은 광야를 샘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07:33-38)

시편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께서 자연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강이 광야가 되기도 합니다. 옥토가 염전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광야가 샘이 되고 메마른 땅이 강이 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Sovereignty) 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환경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좋은 환경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 좋은 건강, 좋은 관계, 좋은 재정….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환경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믿음은 이것입니다.

광야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질병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경제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그리고 죄보다 십자가가 더욱 큽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선합니다

우리 눈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광야를 허락하셨을까요?

왜 질병을 허락하셨을까요? 왜 풍랑을 허락하셨을까요? 

 

성경은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 자신을 보여 줍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에는 성공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실패도 포함됩니다. 눈물도 포함됩니다. 질병도 포함됩니다. 배신도 포함됩니다.

십자가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마저 구원의 재료로 사용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7. 형통도 시험입니다

시편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말합니다. 우리는 고난만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형통도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보다 가나안에서 더 많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는 겸손했지만 왕궁에서는 넘어졌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 시작했지만 풍요 속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신명기 8장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복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복은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 손에 있는 것을 흔드십니다.

우리를 벌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다시 가까이 이끄시기 위해서입니다.

 

8. 시편 107편의 중심은 '부르짖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편의 핵심이 "부르짖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시편에는 같은 후렴이 계속 반복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 말씀이 무려 네 번 반복됩니다. 왜입니까? 사람의 부르짖음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반복해서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복해서 용서하십니다.

 

사람은 반복해서 길을 잃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복해서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9. 시편 107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시편 107편에 등장하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길 잃은 사람. 죄로 묶인 사람. 병든 사람. 풍랑 가운데 있는 사람. 놀랍게도 예수님은 바로 이 네 종류의 사람들을 찾아가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시편 107편은 예수님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의 길이 되셨고, 감옥의 자유가 되셨고, 병자의 치유가 되셨고, 풍랑 가운데 평강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가장 큰 풍랑을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죽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혹시 지금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혹시 죄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회개하며 주님께 나오십시오.

혹시 병들고 지치셨습니까? 말씀 앞에 서십시오.

혹시 풍랑 속에 계십니까?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시편 107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을 보내어 고치십니다.

오늘도 길을 여십니다. 오늘도 풍랑을 잠잠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메마른 광야를 생명의 샘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상황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찾아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길이 막혀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시작을 만드십니다.

 

광야에서도, 감옥에서도, 병상에서도, 풍랑 가운데서도, 십자가 너머에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언제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부르짖으십시오.

 

그분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언약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성 깊은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편 107편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방황했고, 죄의 사슬에 묶여 자유를 잃었으며, 영혼의 병으로 신음하고,

인생의 풍랑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 가운데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보내어 고치시며,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의 눈이 환경보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형통할 때에는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서는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가장 큰 풍랑을 대신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키시며, 우리의 교회를 성령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증언하는 살아 있는 간증이 되게 하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안내해드립니다. 더 편하고 유익하게 콘텐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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