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구할 것과 팔아야 할 것

knowledgeplatform100 2026. 7. 16. 14:55

구할 것과 팔아야 할 것 (마태복음 13:44-46)

본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들어가는 말씀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합니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 더 큰 성공, 더 많은 인정이 행복이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얻기 위해서는 먼저 팔아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세상은 더 붙잡으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더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덜 귀한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 가운데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력한 비유입니다.

 

단 두 개의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신앙생활 전체를 요약하십니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존재 전체를 향한 질문입니다.

1. 하나님은 먼저 '발견'하게 하신다.

본문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발견하였다."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얻는 첫 번째 단계가 노력이 아니라 발견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보화를 돌멩이로 보면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진주를 유리구슬로 보면 절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치의 발견이 헌신을 결정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학벌이 보화였습니다. 율법이 보화였습니다. 명예가 보화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모든 가치 체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를 발견하는 순간 세상의 보화는 보화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우리가 붙드는 것이 곧 우리의 신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예배를 얼마나 드렸는가보다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바꾸신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상황보다 사람의 눈을 먼저 바꾸십니다.

엘리사는 종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왕하 6:17)

 

눈이 열리자 불말과 불병거가 보였습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변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시려는 은혜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영적인 시력입니다.

2. 발견한 사람은 반드시 선택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둘 다 다 팔았습니다. 조금 판 것이 아닙니다. 절반도 아닙니다. 모든 것입니다.

 

왜입니까? 천국의 가치가 그 이상의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비싸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은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가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팔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발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억지 희생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감격이 있는 헌신만 지속됩니다. 

그래서 참된 회심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본문도 말합니다. "기뻐하며 돌아가서..." 그는 울면서 팔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팔지 않았습니다.

기뻐하며 팔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큰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너무 큰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너무 작은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문제다."

 

사람들은 죄를 사랑해서 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죄가 더 가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죄를 선택합니다.

복음은 더 큰 기쁨으로 더 작은 기쁨을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3. 천국은 거래가 아니라 교환이다.

많은 사람이 이 비유를 오해합니다. "모든 것을 팔아야 천국을 산다."

이 말은 행위구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행위로도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만 받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다 팔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서 '판다'는 것은 공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얻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얻은 사람이 나타내는 반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삶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돈보다 하나님. 명예보다 하나님. 성공보다 하나님. 자존심보다 하나님. 이것이 회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묻는 질문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느냐?"

그것이 당신의 보화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 (마태복음 6:21)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하나님 앞에 '팔아야 할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은 애굽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팔아" 보화를 샀다고 말씀하신 원리는 구약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하나님께서는 먼저 떠남을 요구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새로운 축복은 언제나 새로운 순종 위에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나자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의 계산을 앞세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12:10).

애굽은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이었습니다. 풍요가 있었습니다.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안전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많은 재산을 얻습니다. 가축도 많아지고 은과 금도 풍성해집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성공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실패였습니다. 

재산은 늘었지만 믿음은 약해졌습니다. 풍요는 얻었지만 평안을 잃었습니다. 부는 얻었지만 예배를 잃었습니다.

애굽에서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함이었다

창세기 13장은 놀라운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을 떠납니다. 그리고 어디로 갑니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에 이르러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13:4)

 

여기가 핵심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얻은 재산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삶의 방식을 버렸습니다.

돈보다 더 위험한 것은 돈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애굽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애굽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세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마음속에 품는 것입니다.

칼빈은 창세기를 주해하면서 아브라함의 귀환을 "신앙의 회복"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지 단순히 장소를 옮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애굽은 어디입니까?

오늘날의 애굽은 반드시 어떤 나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보다 더 붙잡는 모든 것이 애굽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SNS의 좋아요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존심입니다.

 

겉으로는 교회를 다니지만, 마음속에서는 애굽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돌아오라."

5. 팔아야 하는 것은 재산보다 '우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을 읽으며 "예수님은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인가?"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핵심은 재산이 아닙니다.

 

우상입니다.

예수님은 재산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재산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문제 삼으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부자 청년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그는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왜 그 청년에게만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돈이 그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돈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되찾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아니라 마음을 원하신다

사람은 손으로 돈을 잡지만 실제로는 돈이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둘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한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6. C. S. 루이스가 말한 '더 큰 기쁨'

C. S. 루이스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천국을 목표로 삼으면 땅도 얻는다. 그러나 땅만 목표로 삼으면 둘 다 잃는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의 핵심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천국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은 세상도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은 세상도 잃고 하나님도 잃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 6:20)

 

하늘의 보화는 도둑도 훔칠 수 없고, 좀도 먹지 못하며, 시간도 빼앗지 못합니다.

7.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본문의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닙니다. 먼저 "무엇을 구할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닙니다. 건강만도 아닙니다. 성공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여기서 '먼저'는 단순한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실 때 나머지 삶의 질서도 바로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은 무엇을 더 많이 가지는 인생이 아니라 무엇을 가장 먼저 구하는 인생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얻으려고 살아가는가?" 그리고 또 질문하십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천국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얻은 사람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참된 복음은 가치관을 바꾸고, 가치관의 변화는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며, 우선순위의 변화는 반드시 결단을 낳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영원한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8. 사람은 왜 쉬지 못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생활은 풍요로워졌으며, 이동은 빨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여기서 '수고하다'는 단어는 단순히 육체적인 피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원어(κοπιῶντες, kopiōntes)는 지칠 때까지 애쓰는 삶을 뜻합니다.

 

또한 "무거운 짐 진 자"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노동이 많은 사람보다 인생을 자기 힘으로 책임지려는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현대인의 가장 무거운 짐

오늘 우리의 짐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돈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입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입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짐보다 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 자체보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마음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죄란 단순히 나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래서 죄는 사람을 끊임없이 피곤하게 만듭니다.

9. 예수님은 쉼보다 먼저 '멍에'를 말씀하신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직후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9)

 

우리는 보통 쉼과 멍에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멍에는 일입니다. 쉼은 휴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멍에를 메야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의 멍에는 '함께 메는 멍에'였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농경 문화에서는 멍에를 한 마리의 소에게만 메우지 않았습니다.

경험 많은 큰 소와 아직 미숙한 어린 소를 하나의 멍에로 함께 묶었습니다.

경험 많은 소가 대부분의 무게를 감당하고, 어린 소는 옆에서 배우며 걸어갑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네 짐을 혼자 지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옆에서 함께 걸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짐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 져 주시는 분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폭풍을 없애기보다 폭풍 가운데 함께 계셨습니다.

광야를 없애기보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불시험을 없애기보다 풀무불 속에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없애기보다 친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복음은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건입니다.

10. 결국 팔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오늘 본문의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라는 말씀은 단순히 재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내려놓기를 원하시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려는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참된 회심은 죄 몇 가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왕좌를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던 자리에 예수님이 왕으로 앉으시는 것입니다.

11.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내려놓게 하신다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자꾸 내려놓으라고 하실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린아이가 깨진 유리조각을 붙잡고 있을 때 부모는 그것을 빼앗습니다. 왜입니까?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빼앗으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주시는 것입니다.

죽음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팀 켈러의 통찰

팀 켈러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상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최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가정도 좋은 것입니다. 직업도 좋은 것입니다. 건강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우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마음의 첫 번째 자리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12. 진짜 보화를 가진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팔면서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말합니다.

"기뻐하며 돌아가서…"

왜 기뻤을까요? 잃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복음은 손해가 아닙니다. 복음은 가장 큰 이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시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주십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투자자입니다.

영원을 위해 잠시를 내려놓는 사람, 썩을 것을 내려놓고 썩지 않을 것을 붙드는 사람, 이것이 천국 백성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초청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주인을 바꾸라는 복음의 초청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우기 시작할 때, 

비로소 천국의 보화를 소유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참된 쉼과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13. 결국 인생은 '무엇을 구하는가'의 싸움이다

오늘 우리는 처음부터 한 가지 질문을 붙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세상의 성공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돈 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직업을 버리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먼저'라는 말씀은 단순히 시간의 순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삶의 중심과 우선순위를 의미합니다.

인생은 결국 무엇을 가장 먼저 사랑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가장 먼저 구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시간,

우리의 관심,

우리의 기도,

우리의 헌신,

우리의 소비,

우리의 생각을 보면 내 보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4. 복음은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귀한 것을 발견하는 삶'이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더 가져라." "더 높아져라." "더 인정받아라."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더 귀한 것을 발견하라."

 

왜냐하면 더 귀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덜 귀한 것을 내려놓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환경보다 그리스도가 더 귀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생명보다 예수님이 더 귀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재산을 기꺼이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소유보다 하늘의 기업을 더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은 의무가 아니라 가치의 혁명입니다.

15. 십자가는 가장 위대한 '팔아야 할 것'의 사건이다

오늘 본문의 궁극적인 성취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천국을 얻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셔서 우리를 얻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가장 완전하게 성취됩니다.

우리가 천국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판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원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고,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입니다.

16. 오늘 우리는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오늘 우리에게 "팔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교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미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욕심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염려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에 대한 집착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에 대한 중독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 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왕좌를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보상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떠났지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왕궁을 버렸지만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렸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겼지만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29)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아버지이십니다.

18. 삶의 적용

오늘 말씀을 세 가지 질문으로 마음에 새겨 봅시다.

첫째,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기도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내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내 마음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입니까?

둘째,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지 못하는가?

혹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오늘 내려놓아야 할 '우상'입니다.

셋째, 나는 예수님을 보화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은 단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내 인생 최고의 보화이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신앙을 결정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결국 두 가지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무엇을 구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지나갑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젊음도, 건강도, 결국은 모두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십니다. 복음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영원한 것을 위해 일시적인 것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보다 더 귀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화로 선택하는 믿음의 결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썩어질 것을 붙들고 영원한 것을 놓치며 살아왔는지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화로 보게 하옵소서.

세상의 성공과 물질과 명예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있다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기쁨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어떤 형편에서도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며, 우리의 남은 생애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화로 증언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