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야고보가 묻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결심만 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9–27절)

knowledgeplatform100 2026. 9. 30. 11:09

야고보가 묻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야고보서 1장 19–27절)

결심만 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뜻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여 주시면 믿겠습니다.”

“하나님, 길을 보여 주시면 가겠습니다.”

“하나님, 확신을 주시면 순종하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때때로 정반대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순종해 보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말씀대로 살아 보아라.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보일 것이다.”

“한 걸음 걸어 보아라. 그러면 다음 걸음이 보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너무 많은 신앙적인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많이 들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살아 보았느냐​입니다.

 

야고보는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야고보서 1:22

 

오늘 말씀은 단순합니다.

듣기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기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동만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심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살아 보면 비로소 말씀의 깊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1. 말씀을 듣는 태도가 인생을 결정합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여기에는 세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

말하기는 더디 하라.

성내기도 더디 하라.

원문의 핵심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처세술만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21절에서 야고보는 곧바로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영적 태도와 연결됩니다.

내 입이 너무 크면 내 귀가 작아집니다.

내 생각이 너무 크면 하나님의 말씀이 작아집니다.

내 경험이 너무 크면 성경이 작아집니다.

내 자존심이 너무 크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먼저 우리에게 말합니다. “들어라.” 신앙의 시작은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듣는 데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0절에서 사무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미 답을 가지고 왔습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십시오”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비유에서 네 종류의 밭을 말씀하셨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씨는 동일합니다. 말씀은 동일합니다. 문제는 씨가 아닙니다. 밭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깨닫고, 받아들이고, 결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단순히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의해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2. 내 뜻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19절에서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합니다. 왜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까?

말이 나쁜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이 많으면 내 안에 있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3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우리 입은 마음의 출구입니다. 그래서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이 무엇으로 가득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랑으로 가득하면 자기 자랑이 나옵니다.

불평으로 가득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분노로 가득하면 분노가 나옵니다.

말씀으로 가득하면 말씀이 나옵니다.

기도로 가득하면 기도가 나옵니다.

은혜로 가득하면 은혜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단순히 말을 적게 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자주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께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설명합니다.

“하나님,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했는지 아시죠?”

“하나님, 이 사람은 틀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 말할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가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칼빈도 야고보서 1장 19절을 해석하면서 이 말씀을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와 연결합니다. 인간의 교만과 성급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의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3.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20절입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가 나옵니다.

분노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방법은 아닙니다.

 

왜 우리가 화를 냅니까? 대부분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계획이 무너졌습니다.

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시당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결국 분노의 뿌리에는 종종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합니다. 분노가 올라올 때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지금 제가 화가 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하나님의 의 때문입니까?”

“아니면 제 자존심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너져서 화가 난 것입니까?”

“아니면 제 뜻이 무너져서 화가 난 것입니까?”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4. 말씀을 온유하게 받아야 합니다

21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심어진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 밖에서 계속 맴도는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으십니다. 씨가 땅에 심기면 어떻게 됩니까?

뿌리를 내립니다. 자랍니다. 줄기가 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깨달음처럼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 보면 뿌리가 내려갑니다.

한 번 순종하면 다음 순종이 쉬워집니다.

한 번 용서하면 다음 용서가 조금 더 쉬워집니다.

한 번 내려놓으면 다음 내려놓음이 쉬워집니다.

한 번 기도하고 순종하면 다음 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순종하면서 깊어집니다.

 

5. 결심만 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2절은 오늘 말씀의 중심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 말씀은 매우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가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을 책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설교를 듣습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공부를 합니다. 신학 강의를 듣습니다. 유튜브 설교를 찾아봅니다. 좋은 책도 읽습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묻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말씀을 들은 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용서했습니까?

도와야 할 사람이 있는데 도왔습니까?

끊어야 할 죄가 있는데 끊었습니까?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사과했습니까?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을 드렸습니까?

기도해야 할 일을 실제로 기도했습니까?

말씀은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6. “결심”보다 “순종”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심을 잘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기도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성경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이번에는 화내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용서하겠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심과 순종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결심은 마음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순종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에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결국 갔습니다. 다른 아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습니까? 실제로 간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름다운 말보다 우리의 순종을 보십니다.

 

7. 믿음은 말씀을 내 안에서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여기서 놀라운 표현이 있습니다. “말씀이 역사하느니라.”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서 일합니다.

우리를 책망합니다.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칩니다.

우리의 방향을 바꿉니다.

우리의 욕망을 정화합니다.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가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서 얼마나 일하고 있는가?” 로 가야 합니다.

 

8. 더 많이 해 보라. 그러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보여 주신 다음 순종하게 하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등은 한꺼번에 인생 전체를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걸어갈 길을 비춥니다.

그래서 믿음은 한 걸음씩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갔습니다. 그러자 길이 보였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길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여셨고 백성이 걸어갔습니다.

 

요단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 3장에서 제사장들이 물에 발을 담그자 물이 끊어졌습니다.

물이 갈라진 다음 발을 담근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발을 내딛자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식입니다.

 

9. 말씀을 실험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17장 11절의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날마다”​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다음 그것이 그러한가 살폈습니다.

즉 말씀을 삶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것입니다.

말씀을 실험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정말 용서하면 자유가 오는지 제가 살아 보겠습니다.”

“하나님, 정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지 제가 기도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정말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지 살아 보겠습니다.”

“하나님, 정말 사랑으로 섬기면 내 삶이 변화되는지 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불신앙적 실험이 아닙니다. 순종을 통한 믿음의 검증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해서 검증하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삶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10. 말씀은 거울입니다

23절부터 25절은 놀라운 비유를 사용합니다. 거울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말씀은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거울은 나를 꾸짖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 줍니다.

얼굴에 무엇이 묻었으면 보여 줍니다. 

머리가 헝클어졌으면 보여 줍니다.

옷이 흐트러졌으면 보여 줍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얼굴에 묻은 것을 그대로 가지고 나갑니다. 말씀도 같습니다. 

 

말씀이 “용서하십시오.” 라고 했는데 나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기도하십시오.” 라고 했는데 기도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사랑하십시오.” 라고 했는데 사랑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섬기십시오.” 라고 했는데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보기는 했지만 말씀대로 살지는 않은 것입니다.

칼빈은 이 거울의 이미지를 매우 중요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단순히 외형적으로 바라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나를 남을 판단하기 위해 주신 책이 아닙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 주신 책입니다.

 

11. 설교를 들은 후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사람은 나입니다

이 부분은 목회자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자동으로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으면서 자꾸 다른 사람을 떠올립니다.

“저 말씀은 우리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

“저 말씀은 우리 아내가 들어야 하는데.”

“저 말씀은 저 집사님이 들어야 하는데.”

“저 말씀은 저 사람에게 꼭 필요한데.”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먼저 나를 보고 계십니다. “너는 어떠하냐?” 이 질문입니다.

 

12. 말씀을 실천하면 지혜가 됩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지혜로운 것은 다릅니다. 정보가 지혜가 되려면 삶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용서에 관한 말씀을 백 번 들었다고 합시다. 용서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용서에 관한 설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해 보지 않았다면 아직 용서의 깊이를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책을 백 권 읽었다고 해서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섬김에 관한 설교를 백 번 들었다고 해서 섬김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누군가의 발을 닦아 보아야 합니다.

말씀은 살아낼 때 지혜가 됩니다.


13. 참된 경건은 말에서 삶으로 내려옵니다

26절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여기서 야고보는 아주 구체적으로 들어갑니다.

혀입니다. 신앙의 진짜 여부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험담합니다.

말로는 겸손하다고 하면서 계속 자기 자랑을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를 재갈 물리라고 합니다. 말을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4장 29절은 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여러분, 경건은 예배당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나타납니다.

직장에서 나타납니다.

전화할 때 나타납니다.

SNS에서 나타납니다.

누군가 나를 비판했을 때 나타납니다. 내가 손해를 보았을 때 나타납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나타납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경건이 드러납니다.

 

14. 가짜는 진짜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짜 신앙의 가장 무서운 점은 가짜라는 사실이 아닙니다. 가짜인데도 진짜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부족합니다.

처음에는 기도가 서툽니다.

처음에는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나는 지금 부족하지만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고 말씀합니다.

 

경건은 훈련됩니다. 반복됩니다. 몸에 배어갑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했던 사랑이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집니다.

처음에는 힘들었던 기도가 나중에는 숨 쉬는 것처럼 됩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하던 섬김이 나중에는 성품이 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성령의 역사 가운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끝내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사람을 바꾸십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고린도후서 5장 17절도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진짜가 될 수 있습니다.

 

15.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은 약한 자에게 내려갑니다

27절은 참된 경건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의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여기에서 우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야고보는 경건을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경건이 무엇인지 논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합니다.

 

당시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고아와 과부 두 종류의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랑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참된 경건은 위로 올라가는 동시에 아래로 내려갑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사랑은 사람에게 내려갑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립니다. 섬김은 이웃에게 흘러갑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경건입니다.

 

16.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을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27절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여기에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도망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13–16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소금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역할을 합니다.

 

빛도 어둠 속에서 빛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방식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속에 있으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긴장입니다.

 

17. 예수님의 경건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경건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세리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소외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하면서 죄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곳마다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재물을 나누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입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동화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직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회로 들어가야 합니다.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18. 살아 있으면 오염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속에서 삽니다.

그러나 물속에 산다고 해서 바닷물이 그 물고기의 몸 안에 그대로 들어가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을 만납니다. 인터넷도 사용합니다. SNS도 합니다. 경제생활도 합니다. 문화를 접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살아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내 안의 생명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19. 더 많이 순종하면 더 많이 보입니다

“더 많이 해 보라. 그러면 보인다.” 우리는 자꾸 모든 것을 알고 난 다음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다음 장면을 보여 주십니다.

한 걸음 순종하면 다음 한 걸음이 보입니다.

한 사람을 용서하면 마음에 자유가 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한 번 나누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한 번 섬기면 섬김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한 번 기도하면 기도의 세계가 열립니다.

한 번 말씀대로 살아 보면 말씀이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설명만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순종을 통해 성장합니다.

 

20.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25절을 다시 보십시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

야고보는 율법을 “자유의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은 자유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자유는 다릅니다.

 

성경적 자유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죄는 처음에는 자유처럼 보입니다.

“네 마음대로 해.”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그러나 결국 사람을 묶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에는 나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용서해라.”

“정직해라.”

“사랑해라.”

“절제해라.”

“섬겨라.”

 

그런데 그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자유가 옵니다.

분노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욕심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자기중심성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사람의 인정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말씀은 우리를 묶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로 인도합니다.

 

21. 신앙의 마지막 열매는 “보이는 삶”입니다

결국 야고보서 1장 19–27절은 한 가지 질문으로 모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디에서 보이는가?” 말에서 보입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행동에서도 보입니까? 예배에서 보입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도 보입니까? 기도에서 보입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관계에서도 보입니까? 성경 지식에서 보입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약한 사람을 대할 때도 보입니까? 

 

야고보는 믿음을 삶의 자리로 끌고 내려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받고, 말씀을 행하고, 혀를 다스리고, 약한 자를 돌보고,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경건입니다. 26–27절을 “말로 포장하는 경건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는 경건”으로 정리하며, 소외된 사람을 실제로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을 강조합니다.

 

22. 오늘 한 가지 말씀만이라도 실제로 해 보십시오

오늘 말씀을 듣고 또 다른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늘 들은 말씀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해 보십시오.

오늘 누군가를 용서하십시오.

오늘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십시오.

오늘 미뤄 놓았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오늘 성경 한 장을 천천히 읽으십시오.

오늘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오늘 나를 자랑할 기회를 한 번 내려놓으십시오.

오늘 화낼 상황에서 한 번 멈추십시오.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십시오.

오늘 어려운 사람을 실제로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더 많이 해 보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살아 보면 말씀의 깊이가 보입니다.

기도해 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입니다.

용서해 보면 복음의 자유가 보입니다.

섬겨 보면 사랑의 기쁨이 보입니다.

순종해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입니다.

 

23. 결론 — 말씀을 들은 사람에서 말씀을 사는 사람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27절은 우리에게 신앙의 전체 여정을 보여 줍니다.

먼저 들으십시오.

말하기를 더디 하십시오.

성내기를 더디 하십시오.

자기 안의 더러움을 버리십시오.

말씀을 온유하게 받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행하십시오.

거울을 보고 돌아서지 마십시오.

말씀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말씀 안에 머무르십시오.

혀를 다스리십시오.

고아와 과부를 돌보십시오.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게 지키십시오. 이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칼빈은 야고보서의 이 본문을 해석하면서 말씀을 행하는 자를 단순히 율법을 외적으로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믿음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사람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순종이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구원의 값을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의 순서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의 메시지는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믿음은 반드시 삶의 열매를 맺는다는 복음의 열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살아내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모든 것을 보여 주신 다음 순종하겠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먼저 순종하겠습니다.”

“한 걸음 걷겠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한 가지 말씀이라도 살아 보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셨구나.

아! 말씀이 정말 살아 있었구나.  아! 내가 한 걸음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음 길을 보여 주셨구나.

 

듣기만 하지 마십시오.

결심만 하지 마십시오.

해 보십시오.

순종해 보십시오.

사랑해 보십시오.

용서해 보십시오.

기도해 보십시오.

섬겨 보십시오.

말씀대로 살아 보십시오.

 

그러면 보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보입니다. 복음의 생명이 보입니다.

내가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말씀을 붙들고 산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붙들고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들었지만 너무 적게 순종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감동은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았고, 결심은 많이 했지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의 고집을 깨뜨려 주시고, 우리의 자기중심성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게 하옵소서.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죽지 않게 하시고,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옵소서.

주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들은 말씀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실제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게 하시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고, 섬겨야 할 사람을 섬기게 하시고,

도와야 할 사람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기도해야 할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혀에 재갈을 물려 주옵소서.

상처 주는 말을 멈추게 하시고, 

험담하는 말을 멈추게 하시고,

자랑하는 말을 멈추게 하시고,

대신 살리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고아와 과부와 같은 연약한 자를 돌아보게 하시고, 소외된 사람의 곁으로 가게 하시며,

우리의 손과 발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동시에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을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세상의 어둠을 닮는 사람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한 걸음 순종하게 하옵소서.

한 걸음 순종하면 다음 길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 

한 번 기도하면 다음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한 번 용서하면 복음의 자유를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

한 번 섬기면 섬김의 기쁨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말씀을 살아 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살아 있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능력이 있구나.”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시구나.”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가짜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진짜가 되기를 갈망하게 하옵소서.

처음에는 힘들어도 훈련하게 하시고,

처음에는 눈물이 나도 순종하게 하시고,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배어들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게 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말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행동이 되게 하옵소서.

 

마침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더 많이 해 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 데서 멈추지 않게 하시고,

결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게 하시고, 오늘 한 걸음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증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이 말씀이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며,

우리의 일터와 사회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복음의 빛을 보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제가 얼마나 많이 알았습니까”가 아니라

“주님, 제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시고,

말씀으로 깨우시며,

말씀으로 고치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우리의 남은 삶을 온전히 주장하여 주옵소서.

 

듣는 자에서 행하는 자로,

구경하는 자에서 순종하는 자로,

말하는 자에서 살아내는 자로,

가짜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진짜의 모습으로 날마다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