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선물, 은혜로 빚어진 인생 (야고보서 1장 9-18절)
낮은 자는 높음을, 부한 자는 낮아짐을 자랑하라
여러분, 살면서 언제 가장 기가 죽습니까? 돈이 없을 때입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해 보일 때입니까?
사업이 잘되지 않을 때입니까? 자녀가 원하는 만큼 성공하지 못했을 때입니까?
혹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앞서가는 것을 볼 때입니까?
반대로 언제 교만해집니까? 돈이 많을 때입니까?
직분이 높아졌을 때입니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때입니까? 내가 성공했다고 느낄 때입니까?
그런데 오늘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
야고보서 1장 9–10절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세상의 가치관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돈이 많으면 높다.” “학벌이 좋으면 높다.” “직장이 좋으면 높다.”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다.” “사람들이 알아주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복음은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네 가치의 기준인가?” 야고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기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의 신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은 돈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돈도 잠시 맡겨진 것이며, 결국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존재로 서기 때문입니다.
1. 가난 때문에 기죽지 마십시오
야고보서가 먼저 말씀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
여기서 ‘낮은 형제’는 당시 사회적·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던 성도를 포함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볼 때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영향력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기죽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입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입니다.
2. 질그릇만 바라보지 말고 그 안의 보배를 바라보십시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표현합니다. 질그릇은 귀한 그릇이 아닙니다. 깨지기 쉽습니다. 약합니다.
값비싼 도자기처럼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질그릇 안에 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을 바라볼 때 질그릇만 보면 안 됩니다.
“나는 돈이 없어.”
“나는 배운 것이 부족해.”
“나는 집안이 좋지 않아.”
“나는 능력이 부족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못해.”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인생의 질그릇만 바라보면 평생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안에 보배가 있지 않느냐?”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죽지 마십시오.
성도의 가치는 통장 잔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가치는 집의 평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가치는 직급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가치는 사람들의 평가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가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됩니다.
3. 어린양을 바라보십시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무엇이 될지를 결정합니다.
내 결핍만 바라보면 결핍의 사람이 됩니다.
내 실패만 바라보면 실패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의 평가만 바라보면 사람의 종이 됩니다.
돈만 바라보면 돈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부활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자랑하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바울은 세상의 자랑을 버렸습니다. 왜입니까? 더 큰 자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진짜 자랑은 이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진짜 자랑입니다.
4. 부한 자도 기죽어야 합니다 —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그런데 야고보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10절에서 부한 사람에게도 말씀합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 말씀은 부자가 돈을 죄악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재산 자체를 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재산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면 우상이 됩니다.
돈이 목적이 되면 사람이 돈의 종이 됩니다.
돈이 나의 정체성이 되면 돈이 사라지는 순간 나도 무너집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부한 자에게 말합니다. “너의 낮아짐을 자랑하라.” 무슨 뜻입니까?
“나는 돈이 많지만 돈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성공했지만 성공이 나의 신이 아니다.”
“나는 높은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피조물이다.”
“나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안다.” 이것이 낮아짐입니다.
5. 돈이 많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참 잘산다.” 그런데 돈이 많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지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지만 평안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지만 기도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지만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지만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러므로 진짜 잘 사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사는 사람이 진짜 잘 사는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이 받았으면 많이 흘려보내야 합니다.
많이 가졌으면 많이 섬겨야 합니다.
많이 누렸으면 많이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적 부요는 축적만이 아니라 청지기적 책임입니다.
칼빈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재물을 개인의 절대적 소유가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위해 맡겨진 선물로 이해했습니다.
풍부함을 누리더라도 절제하고,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랑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은 사람의 질문은 “얼마나 더 가질까?”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왜 나에게 맡기셨을까?” 가 되어야 합니다.
6. 돈은 은사입니다 — 그러나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돈을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으로 이해한다면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돈은 가지고 있을 때보다 바르게 사용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청지기 정신을 가르칩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돈은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돈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돈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 문제입니다.
돈을 어디에 쓰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가?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하는가?
복음을 위해 사용하는가?
가족을 책임 있게 돌보는가? 이것이 모두 신앙의 문제입니다.
7. 부는 풀의 꽃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 10–11절은 부유함의 한계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이 말씀은 부 자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의 일시성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름답던 꽃이 내일 시듭니다.
오늘 높았던 사람이 내일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오늘 가지고 있던 것을 내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건강하던 사람이 내일 병상에 누울 수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박수치던 사람이 내일 잊힐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공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있는 사람도 기죽지 말고, 돈이 없는 사람도 기죽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둘 다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은혜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8. 성공보다 섬김입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세상은 성공을 묻습니다.
“얼마나 높아졌습니까?”
“얼마나 많이 벌었습니까?”
“얼마나 유명해졌습니까?”
“얼마나 인정받았습니까?”
그러나 복음은 묻습니다.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얼마나 섬겼습니까?”
“얼마나 희생했습니까?”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위대함은 섬김에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자기희생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교회가 건물로 유명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유명해야 합니다.
기도로 유명해야 합니다.
선교로 유명해야 합니다.
섬김으로 유명해야 합니다.
희생으로 유명해야 합니다.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 돈 많아.” 이것보다 “저 사람 기도를 많이 해.” “저 사람 정말 잘 섬겨.” “저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
“저 사람 때문에 교회가 따뜻해졌어.” 이 말을 듣는 것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9. 실패했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실패했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기도했는데 응답이 늦어졌습니까? 기죽지 마십시오.
사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기죽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까? 기죽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기대했던 자리에 오르지 못했습니까? 기죽지 마십시오.
한 번 넘어졌습니까? 기죽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도 우리를 빚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시련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원고에서도 시련을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인내와 성숙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10. 시험(Test)과 유혹(Temptation)을 분별하십시오
이제 야고보서 1장의 두 번째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시험과 유혹을 분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에는 ‘시험’이라는 개념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헬라어 페이라스모스(peirasmos)는 문맥에 따라 시험, 시련, 유혹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방향입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숙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죄로 끌고 갑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 빠뜨리기 위해 유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십니다.
11. 유혹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야고보서 1장 14절은 놀라운 진단을 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유혹은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유혹이 힘을 갖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유혹의 힘도 약해집니다. 사탄이 던지는 미끼가 문제가 아니라, 그 미끼를 먹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문제를 마귀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영적 대적의 실재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인간의 책임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여기에는 영적 과정이 나옵니다. 욕심 → 잉태 → 죄 → 장성 → 사망
처음에는 작은 생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방치하면 죄가 됩니다. 죄를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굳어지면 성품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결국 삶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가 행동으로 나타난 다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마음에 자리 잡을 때 끊어내는 것입니다.
12.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십시오.
배가 고프셨습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두 번째 유혹이 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세 번째 유혹이 옵니다.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자기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3. 유혹을 이기는 방법 — 욕심 대신 감사하십시오
여기서 오늘 말씀을 실제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욕심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습니까? 감사입니다.
욕심은 말합니다. “더 가져야 해.” 감사는 말합니다. “이미 받은 것이 많습니다.”
욕심은 말합니다. “왜 나는 이것밖에 없어?” 감사는 말합니다. “하나님, 이것도 은혜입니다.”
욕심은 말합니다. “남보다 더 가져야 해.” 감사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의 무기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욕심의 뿌리를 자릅니다.
감사는 비교를 끊습니다.
감사는 불평을 약화시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14. 욕심 대신 자족을 배우십시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배웠다”입니다. 자족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닙니다. 훈련입니다.
가난할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입니다.
풍부할 때 하나님을 잊지 않는 훈련입니다.
성공했을 때 교만하지 않는 훈련입니다.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않는 훈련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훈련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가치를 잃지 않는 훈련입니다.
칼빈이 기독교인의 자기부인을 설명하면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성도는 풍부함과 궁핍 어느 쪽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15. 형통도 시험입니다
우리는 고난만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형통도 시험입니다.
고난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처럼, 형통을 통과하기도 어렵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찾는데, 형통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는 기도하는데, 형통하면 기도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는 예배하는데, 형통하면 일이 바빠서 예배를 뒤로 미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다윗의 광야는 다윗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했지만, 왕궁의 형통은 오히려 다윗에게 치명적인 유혹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부와 영광을 주셨지만, 그 형통 속에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형통해도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잘되어도 예배를 놓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돈을 벌어도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높아져도 낮아질 줄 알게 해주십시오.” 이 기도가 훨씬 성경적입니다.
16. 너무 잘되어서 하나님을 잃는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사업 때문에 예배를 잃는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기도를 잃는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승진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승진 때문에 하나님을 잊는다면 그것은 위험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공부 때문에 하나님을 버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잘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잘되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17. 모든 좋은 것은 위로부터 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은 오늘 말씀의 절정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생명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구원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은혜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믿음도 은혜입니다.
재능도 은혜입니다.
기회도 은혜입니다.
건강도 은혜입니다.
가족도 은혜입니다.
물질도 은혜입니다.
교회도 은혜입니다.
사역의 기회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때도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 7절에서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이어서 묻습니다.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이것이 성경적 겸손입니다.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고백을 하는 순간 감사가 시작됩니다.
18.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생명을 향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의 빛은 움직입니다. 해가 뜨고 집니다. 달이 차고 기웁니다. 별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3장 6절입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돈은 변합니다.
사람도 변합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건강도 변합니다.
직장도 변합니다.
인기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19.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선언합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거듭남
"자기의 뜻을 따라", 우리의 구원과 거듭남은 인간의 공로, 의지, 혹은 행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기뻐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신앙의 시작을 '출생(생물학적 탄생)'에 비유함으로써, 영적인 삶은 인간의 결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거듭남, Regeneration)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2. 구원의 도구인 '진리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낳으실 때 "진리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의 말씀이 단순한 교훈이나 지식이 아니라, 영적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합니다.
3. '첫 열매'가 가진 구속사적 의미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구약 성경에서 '첫 열매(초실절)'는 하나님께 가장 먼저 드려지는 거룩한 몫이자, 이후에 거둘 대풍작을 보증하는 보증수표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영적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주적 구속의 보증,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된다는 것은, 우리를 시작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온 피조세계가 궁극적으로 회복되고 구원받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대리적·대표적 의미를 지닙니다.
4. 새로운 창조와 윤리적 삶의 기초
야고보서는 흔히 '행함의 서신'으로 불리며 윤리적 실천을 강조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선한 행함과 거룩한 삶은 율법주의적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생명(새로운 창조)'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로 맺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어받은 존재이므로, 삶 속에서
그에 걸맞은 경건과 실천을 보여야 한다는 신학적 당위성을 제공합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은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자기의 뜻)와 말씀(진리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영적 출생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에서 가장 소중한 첫 열매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복음의 본질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론 — “기죽지 마십시오. 당신의 가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9절부터 18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가난하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진 것처럼 보인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반대로 많이 가졌다고 교만하지도 마십시오.
성공했다고 자신을 높이지도 마십시오.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그것을 자신의 궁극적인 가치로 삼지도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야고보서 1:9–10
세상은 사람을 비교합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가?
누가 더 성공했는가?
누가 더 인정받는가?
그러나 복음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세상의 평가가 나를 낮추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시면 나는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이 나를 높여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잃어버린다면 그 높음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저울이 아니라 복음의 저울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시험과 유혹을 분별하라고 말씀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더욱 성숙하게 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시련 자체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목적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는 과정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어떤 때에는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비워 놓으신 자리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때에는 닫힌 문 때문에 울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 문이 닫힌 것이 나를 살린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시야는 부분적이지만 하나님의 시야는 완전합니다.
우리는 오늘만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함께 보십니다.
우리는 한 장면을 보지만 하나님은 전체 이야기를 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선언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야고보서 1:13
여기서 우리는 시험과 유혹을 구별해야 합니다. 시험과 유혹은 같은 단어에서 나오지만 방향과 목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은 믿음을 연단하여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나 유혹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죄에 빠뜨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상황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가?”
이 질문이 영적 분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유혹 앞에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만 탓해서도 안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일어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때로는 기가 죽고, 때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낙심하고, 때로는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게 여기며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알게 하시고,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내가 누구의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하시며, 내가 얼마나 높아졌는가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겸손히 살아가는가를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주님, 가난하다고 기죽지 않게 하시고,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충분하다는 믿음을 주옵소서.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게 하시고,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게 하시며,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낮아져 섬기는 것을 기뻐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분별의 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앞에 찾아오는 모든 어려움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게 하시고,
또한 모든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고 성숙하게 하시는 섭리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그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된 사람으로 세워 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 우리 안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유혹은 단호하게 물리치게 하옵소서.
욕심을 합리화하지 않게 하시고, 죄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게 하시며, 마귀의 유혹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지켜 주시고, 우리의 생각을 지켜 주시고, 우리의 입술을 지켜 주시고, 우리의 손과 발을 지켜 주옵소서.
유혹이 찾아올 때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고 묻기보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라고 묻게 하옵소서.
욕심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 감사를 회복하게 하시고, 불평이 올라올 때 이미 받은 은혜를 세어 보게 하시며, 없는 것만 바라볼 때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주님, 야고보서 1장 17절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 주옵소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우리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숨 쉬는 것도 은혜요, 믿음을 가진 것도 은혜요,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은혜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은혜요,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은혜요,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받은 것을 자랑하기보다 주신 분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성공을 자랑하기보다 은혜를 자랑하게 하시고, 소유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 향하게 하옵소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봉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 때문에 섬기게 하옵소서.
알아주지 않아도 섬기게 하시고, 칭찬받지 못해도 충성하게 하시며, 열매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에 어떤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그 시련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 시련 속에서 나를 더욱 깊은 믿음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눈물 가운데서도 기도하게 하시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에서 형통할 때에도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기죽지 않게 하옵소서.
높아졌을 때에는 낮아짐을 기억하게 하시고, 낮아졌을 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참된 높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부터 우리의 인생을 세상의 저울로 재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의 평가라는 저울도 내려놓고, 돈이라는 저울도 내려놓고, 성공이라는 저울도 내려놓고, 비교라는 저울도 내려놓게 하옵소서.
오직 십자가 앞에 서게 하시고, “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이 한 가지 사실로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를 발견하는 눈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믿음을 주옵소서.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도 그렇게 하시고, 우리의 직장도 그렇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도 그렇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관계와 삶의 현장도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주님,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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