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에 숨지 말고 빛의 자녀로 살라 (에베소서 5:1–21)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제목은 “유령 크리스천이 아니라 빛의 자녀가 되자”입니다.
유령은 존재하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리는 들리는 것 같은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다닙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면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똑같이 생각하고,
세상의 욕망을 따라가고,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세상의 방식으로 경쟁하고,
세상과 똑같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세상과 똑같이 탐욕을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에베소서 5:8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너희가 어둠 속에 있었으니 빛을 찾아라”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빛이다.” 존재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다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빛이라면 빛처럼 살아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에베소서 5장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나는 예수님의 복사본으로 살고 있는가?
둘째, 나는 죽은 자의 말을 하는가, 산 자의 말을 하는가?
셋째, 나는 어둠에 숨어 있는가, 빛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그 결과로 네 번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1. 예수님의 카피(COPY)로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5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여기서 “본받는다”는 말은 단순한 흉내가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나옵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희생으로 증명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삶은 결국 자기중심성에서 그리스도 중심성으로 이동하는 삶입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얼마나 인정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살릴 수 있는가?”
“내가 얼마나 편안할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이것이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이미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5장에 와서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닮아가라.
성화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화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과 관계와 시간과 돈과 욕망이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질문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닮았는가?” 입니다.
2. 크리스천은 파트타임 신자가 아니라 삶 전체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정도가 우리의 헌신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먼저 은혜입니다.
우리가 헌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율법주의가 됩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헌신은 그 은혜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한 거래가 아닙니다.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시간,
내 직업,
내 가정,
내 관계,
내 재정,
내 재능,
내 계획,
내 미래, 내 삶 전체입니다.
예수님은 일요일의 주님만이 아닙니다.
월요일의 주님이시고,
화요일의 주님이시고,
직장의 주님이시고,
가정의 주님이시고,
재정의 주님이시고,
내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있을 때에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크리스천은 교회 안에서만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도 예수님을 닮는 사람입니다.
3. 죽은 자의 말을 버리고 산 자의 말을 하십시오
이제 에베소서 5장 3–4절로 갑니다.
바울은 음행과 더러움과 탐욕을 말하고,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주 놀라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여기에는 굉장히 깊은 신학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언어는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죽음에 속한 사람은 죽음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생명에 속한 사람은 생명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음행, 더러움, 탐욕, 누추한 말과 희롱의 말을 버리고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것이 에베소서 5장의 중요한 변화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분의 말에는 무엇이 많이 들어 있습니까?
불평입니까?
원망입니까?
비교입니까?
조롱입니까?
탐욕입니까?
남을 무너뜨리는 말입니까? 아니면
감사입니까?
소망입니까?
격려입니까?
축복입니까?
복음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 3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입이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말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면 말이 달라집니다.
4. 감사는 상황의 결과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범사에.” 좋은 일만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에서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악을 악이라고 부릅니다.
고난을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눈물을 눈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이것이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감사는 현실 부정이 아닙니다. 감사는 현실보다 더 큰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이 일이 힘들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나는 지금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것이 감사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도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기분이 아닙니다. 훈련된 믿음의 태도입니다.
5. 빛의 자녀는 어둠에 숨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주 안에서”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아닌 달은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합니다.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해서 우리가 빛의 근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시고 우리는 그 빛을 반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빛은 자기 과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비추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은 빛의 열매를 세 가지로 말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함. 의로움. 진실함.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에베소서 5:8–14를 단순히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도덕적 명령으로만 읽지 않고, 새로운 정체성을 받은 사람들이 그 정체성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유령 크리스천이란 무엇입니까?
유령 크리스천은 교회에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에는 있는데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은 숨기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왜 등불을 켭니까? 보이게 하려고 켭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직장에서 정직한 사람이 하나 있으면 주변의 부정직이 드러납니다.
친절한 사람이 하나 있으면 불친절이 드러납니다.
성실한 사람이 하나 있으면 게으름이 드러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불평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납니다.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부정직이 드러납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복수의 문화가 드러납니다.
빛은 말하지 않아도 어둠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빛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불편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세상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빛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빛으로 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크리스천이 세상을 정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너희가 세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가 아닙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의 목적은 내가 빛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 “너희는 왜 그렇게 사느냐?” 라고 먼저 묻기보다, “나는 예수님처럼 살고 있는가?” 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복음의 질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용서하지?”
“저 사람은 왜 손해를 보고도 정직하지?”
“저 사람은 왜 그렇게 감사하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람을 존중하지?”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복음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8. 빛의 사람은 세월을 아낍니다
이제 에베소서 5장 15–16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엑사고라조(exagorazō)는 주어진 기회를 붙잡고 최대한 활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주석가들은 이것을 “시간을 절약한다”기보다 “기회를 사들인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의 질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시간.
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시간.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시간.
선교할 수 있는 시간.
기도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에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9. 기회를 최고로 만드는 첫 번째 원칙 — 하나님의 뜻과 나를 묶으십시오
에베소서 5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기회를 잘 사용하는 첫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기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설득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조율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세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원하게 해주십시오.”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환상을 본 후 이렇게 반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사람은 계속 자기 욕망과 협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순종합니다.
10. 기회를 최고로 만드는 두 번째 원칙 —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에베소서 5장 18절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이 일회적 감정 폭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문법상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한 번 뜨거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충만해야 합니다.
내일도 충만해야 합니다.
다음 주에도 충만해야 합니다.
왜 성령 충만이 중요합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단순히 방언하고 눈물을 흘리고 뜨거운 찬양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말이 바뀝니다.
관계가 바뀝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돈을 사용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분노를 다루는 방식이 바뀝니다.
용서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11.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증거
바울은 성령 충만 다음에 세 가지를 연결합니다.
첫째, 찬송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둘째, 감사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셋째, 겸손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혼자 황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살립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찬송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감사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만 높이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령 충만하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무시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감사보다 불평을 쏟아내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을 다시 성경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12. 찬송은 환경을 바꾸기 전에 나를 바꿉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십시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
그런데 한밤중에 무엇을 합니까?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납니다. 문이 열립니다. 차꼬가 풀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주 “찬송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환경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기적이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기 전에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찬송은 상황을 하나님보다 크게 보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놓습니다.
“문이 닫혔다.” “길이 없다.”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 “나는 실패했다.” 이렇게 말하던 사람이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 영혼의 감옥이 먼저 열립니다.
13.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의 해석자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사건을 만나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겨?” 다른 사람은 말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어떤 사람은 “나는 가진 것이 없다.” 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너무 많다.” 라고 말합니다.
감사는 환경을 바꾸기 전에 해석을 바꿉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같은 현실 속에서도 다른 세계를 살아갑니다.
에베소서 5장의 “범사에 감사”를 강조하면서, 감사가 단순히 감사할 일이 생겼을 때의 반응이 아니라 삶의 태도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강조합니다.
14. 유령 크리스천에게서 깨어나십시오
이제 에베소서 5장의 절정으로 갑니다. 14절입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닙니다. 깨어나라는 부르심입니다.
잠들어 있는 신앙에서 깨어나십시오.
습관적인 신앙에서 깨어나십시오.
교회 안에서만 살아 있는 신앙에서 깨어나십시오.
세상의 가치관 속에 숨어 있는 신앙에서 깨어나십시오.
그리고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빛을 비추십시오.
에베소서 5:14의 메시지를 “깨어나라,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라는 세 가지 명령으로 압축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5. 하나님은 유령 같은 크리스천을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숨어 있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5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보십시오. “빛들로 나타내며.” 숨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인정받는 것입니다.
내가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16.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아주 실제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오늘 제가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처럼 만나게 하소서.”
둘째, 말하기 전에 질문하십시오.
“이 말은 사람을 살리는가?”
“이 말은 진리를 세우는가?”
“이 말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가?”
셋째, 불평이 올라올 때 감사 하나를 찾으십시오.
“하나님, 이것도 감사합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감사의 훈련을 시작하십시오.
넷째, 매일 시간을 점검하십시오.
오늘 내가 사용한 시간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다섯째,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십시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가 아니라 “주님, 오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십시오.
여섯째,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님, 오늘 제 생각을 지배해 주십시오.
제 감정을 지배해 주십시오. 제 말을 지배해 주십시오. 제 선택을 지배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십시오.
일곱째, 찬송하십시오.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찬송하십시오.
17. 오늘의 핵심 질문
오늘 하나님 앞에서 네 가지를 점검합시다.
나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나는 산 자의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빛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보이는 사람인가?
혹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숨어 있지 않았습니까?
예배할 때는 그리스도인인데 직장에서는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았습니까?
교회에서는 감사하는데 집에서는 불평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을 말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탐욕을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인정이 없으면 불안해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 깨어납시다. 유령 크리스천으로 살지 맙시다.
18. 결론 — 빛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세상은 어둡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둠이 얼마나 깊은지를 먼저 계산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빛을 켜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불평한다고 우리까지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거짓말한다고 우리까지 거짓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탐욕스럽다고 우리까지 탐욕스러울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미워한다고 우리까지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절망한다고 우리까지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죽은 자의 말을 버리고 산 자의 말을 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빛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깨어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빛을 비추십시오.
그리고
세월을 아끼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찬송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서로를 섬기십시오.
이것이 에베소서 5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빛의 자녀의 삶입니다.
한 사람이 빛으로 살아가면 가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빛으로 살아가면 직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빛으로 살아가면 교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빛으로 살아가면 다음 세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빛으로 살아가면 그 사람을 통해 누군가가 예수님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고백합시다.
“나는 숨지 않겠습니다.”
“나는 유령 크리스천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닮겠습니다.”
“나는 산 자의 말을 하겠습니다.”
“나는 빛의 자녀로 살겠습니다.”
“나는 주어진 기회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성령으로 충만하겠습니다.”
“나는 찬송하고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빛나게 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짜 크리스천입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세상 속에 숨어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교회에서는 빛인 것처럼 말하면서 삶에서는 어둠의 방식을 따라갔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안에 있는 유령 같은 신앙을 깨뜨려 주옵소서.
죽어 있는 신앙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습관적인 예배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말뿐인 믿음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세상의 눈치를 보며 숨어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예수님의 카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용서하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섬기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내어주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죽은 자의 말을 버리게 하시고 산 자의 말을 하게 하옵소서.
불평 대신 감사를,
절망 대신 소망을,
비난 대신 축복을,
탐욕 대신 나눔을,
거짓 대신 진실을, 상처 주는 말 대신 살리는 말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빛의 자녀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가정에서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직장에서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에서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관계 속에서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과 선택을 통해 빛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하지 않게 하시고 세월을 아끼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오늘 만나는 한 사람을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오늘 전할 수 있는 복음을 미루지 않게 하시고, 오늘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시고,
오늘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님, 우리를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 주시고,
우리의 감정을 다스려 주시고,
우리의 욕망을 다스려 주시고,
우리의 시간을 다스려 주시고,
우리의 말을 다스려 주시고,
우리의 선택을 다스려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찬송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더 이상 세상 속에 숨어 있는 유령 같은 크리스천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깨어나게 하시고, 일어나게 하시고,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빛을 본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시고,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사랑으로 살고, 말로 살리고, 빛으로 드러나고, 지혜롭게 시간을 사용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찬송과 감사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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