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17–32절)

knowledgeplatform100 2026. 9. 23. 09:36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고, 새 사람답게 사는 그리스도인.”

새 사람을 입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에베소서 4장 17–32절)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변화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름만 하나 더 입고 있는가?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봉사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안에 있는 옛 성품은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화를 잘 내던 사람이 여전히 화를 잘 냅니다. 말로 다른 사람을 상처 주던 사람이 여전히 말로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욕심이 많던 사람이 여전히 욕심을 붙들고 삽니다. 자기중심적이던 사람이 여전히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면서 그 위에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 더 얹습니다.

그것은 새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옛 옷 위에 새 옷을 껴입은 것일 수 있습니다.

 

먼저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4장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1. 복음은 우리에게 옷 하나를 더 입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부터 24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에는 세 가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벗으라. 새롭게 되라. 입으라. 이것이 복음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미 1장에서부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하셨고, 죄 사함을 주셨고, 성령으로 인치셨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렇게 살아라.”

 

신분이 먼저입니다. 생활은 그 신분에서 나옵니다. 칭의가 먼저이고 성화가 뒤따릅니다.

구원이 먼저이고 변화는 그 구원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는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자”​입니다. 이 차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칼빈도 에베소서 4장을 해석하면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을 아담 안의 인간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옛 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단순히 몇 가지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삶의 지배 방식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외형적인 옷 갈아입기가 아닙니다. 존재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2. 벗어야 할 첫 번째 옷은 ‘허망함’입니다

에베소서 4장 1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옛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허망함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목적 없이 사는 것입니다.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고,

남들이 성공하니까 나도 성공하려 하고,

남들이 자녀를 그렇게 키우니까 나도 그렇게 키우고,

남들이 돈을 좇으니까 나도 돈을 좇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멈춰 서서 질문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목적은 없는데 속도는 빠릅니다. 배는 큰데 목적지가 없습니다. 엔진은 좋은데 방향이 없습니다. 그것이 표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옛 사람은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존재 방식 자체입니다.

이 허망함은 “목적이 없는 삶”, 주변 사람을 바라보며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첫 번째 회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만 보지 말고, 제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를 보게 해주십시오.”

돈을 위해 삽니까?

명예를 위해 삽니까?

사람의 인정 때문에 삽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까?

새 사람은 행동만 달라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이 달라진 사람입니다.

 

3. 두 번째로 벗어야 할 옷은 ‘굳어진 마음’입니다

18절은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여기서 굳어진 마음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반대로 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많이 아는데, 사랑은 줄어듭니다.

설교는 많이 들었는데, 회개는 줄어듭니다.

기도 제목은 많은데, 용서는 줄어듭니다.

신앙의 연륜은 깊어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딱딱해집니다. 이것은 위험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식을 추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피부는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굳어집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래 믿는 것 자체를 성숙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오래 믿으면서 더 부드러워지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더 쉽게 회개합니까?

더 빨리 용서합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에 더 민감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더 잘 울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새 사람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이 많아지고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원래 성격이 이래.” 

“나는 원래 화가 많아.”

“나는 원래 말을 직설적으로 해.”

“나는 원래 사람을 못 믿어.”

 

그런데 여러분, 복음은 “원래 그랬으니까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다.”

 

4.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어색함’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면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왜냐하면 옛 사람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참는 것은 어색합니다.

비난하는 것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축복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양보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나누는 것은 어색합니다.

상처받았다고 공격하는 것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용서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 사람을 입다가 포기합니다.

“이건 나하고 안 맞아.” “나는 이렇게 못 살아.” 그러나 여러분, 어색하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모든 새로운 것이 어색합니다.

운동도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새로운 직장도 어색합니다.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도 어색합니다. 새로운 언어도 어색합니다.

 

신앙의 새로운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신발이 처음에는 발에 맞지 않지만 계속 신으면 발 모양에 맞게 편해집니다.

 

새벽기도와 같은 신앙의 훈련도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지속하면 삶의 일부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성화는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말과 행동이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처음부터 자연스럽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것입니다.

 

5. 성화는 ‘하지 않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화를 내어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도둑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독과 분냄과 비방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라고 합니다.

거짓말하지 말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것을 말하라.”

도둑질하지 말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

분노를 버리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라.”

 

이것이 에베소서 4장의 놀라운 구조입니다.

벗음과 입음입니다. 죽임과 살림입니다. 비움과 충만입니다. 소극적 금지와 적극적 사랑입니다. 신약의 윤리는 단순한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5–32는 옛 삶의 행동을 단순히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정직한 노동·덕을 세우는 말·친절·긍휼·용서라는 새로운 공동체적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구조로 설명됩니다.

 

6. 첫 번째 적극성은 ‘말’에서 나타납니다

25절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그런데 왜 말이 먼저 나옵니까? 말은 마음의 방향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말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이 달라집니다.

 

물론 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할까 말까 하는 말이라면 하지 않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침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말의 기준을 “내가 하고 싶은가?”로 정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상대를 세우는가?” 이것을 묻습니다. 

내 말이 맞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내 말이 사람을 살리는가?

옳은 말도 사랑 없이 하면 칼이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으로 말하면 생명의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예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정죄로 끝내지도 않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것이 복음의 언어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진리를 말하지만 은혜를 잃지 않습니다.

 

7. 두 번째 적극성은 ‘분노를 다루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성경은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단순하게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죄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27절은 아주 무섭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가 오래 머물면 마음에 자리를 잡습니다.

처음에는 사건이었는데, 

나중에는 감정이 되고,

감정이 반복되면 기억이 되고,

기억이 반복되면 원망이 되고,

원망이 굳어지면 미움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오늘의 상처를 내일의 무기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아서 남을 살리고, 버려서 나를 살리라.”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원리입니까? 분노를 참는다고 내가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 안에서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은 분노가 혼자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분노가 깊어지면 말이 거칠어지고,

말이 거칠어지면 관계가 깨지고,

관계가 깨지면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32절이 복음의 반전을 제시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분노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단순한 참음이 아닙니다. 용서와 친절입니다.

 

8. 용서는 내가 큰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울까요?

내가 받은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잊으면 작은 상처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얼마나 많이 용서받은 사람인가?”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붙잡습니다.

자신은 엄청난 용서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의 작은 빚을 놓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말합니다. “너는 이것만큼은 절대 용서받으면 안 돼.”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바꿉니다.

 

나는 피해자이기 전에 은혜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심판자가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나는 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큰 사람은 작은 일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큰 사람은 모든 말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큰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나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9. 세 번째 적극성은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나타납니다

28절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 일해야 합니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경제적 삶을 변화시키는 방식입니다.

 

옛 사람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가질 수 있는가?”

새 사람의 질문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는가?”

옛 사람은 움켜쥡니다.

새 사람은 나눕니다.

옛 사람은 소비합니다.

새 사람은 섬깁니다. 옛 사람은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반드시 악한 것도 아니고, 돈이 적은 것이 반드시 거룩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누구의 주인이 되었느냐입니다.

 

내가 돈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돈이 내 주인이 되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셨다면 물질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10. 신앙은 진공이 아니라 충만입니다

“진공이 아니라 충만을 추구하라.” 이것이 오늘 말씀을 아주 잘 설명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나쁜 것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비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을 벗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분노를 버리고 친절해야 합니다.

도둑질을 버리고 수고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을 버리고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악독을 버리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충만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황홀한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의 문맥에서 성령 충만은 삶의 방향이 성령께 지배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말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분노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고,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용서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성령 충만은 예배당 안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확인됩니다. 직장에서 확인됩니다.

배우자에게 어떻게 말하는가에서 확인됩니다.

자녀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서 확인됩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서 확인됩니다. 내가 손해를 보았을 때 어떤 말을 하는가에서 확인됩니다.

 

11.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30절은 오늘 본문의 중심에 놓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왜 이 말씀이 거짓말과 분노와 도둑질과 말과 용서 사이에 들어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윤리적 행동이 단순한 인간관계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성령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거짓말할 때 단순히 사람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분노를 품을 때 단순히 내 기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악한 말을 할 때 단순히 언어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모든 삶의 방향이 성령을 기쁘시게 하느냐, 근심하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앞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구원의 날까지 인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버림받을까 두려워 떨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치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구원이 확실하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어색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처음 용서할 때 어색합니다.

처음 기도할 때 어색합니다.

처음 새벽기도에 나올 때 어색합니다.

처음 직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말할 때 어색합니다.

처음 화가 났는데 침묵할 때 어색합니다.

처음 나를 공격한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어색합니다.

처음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눌 때 어색합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을 통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색함을 견디는 시간이 성화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왜 이렇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계속하십시오.

그러다 어느 날, 화를 내려고 했는데 기도가 나옵니다.

험담하려고 했는데 침묵하게 됩니다.

비난하려고 했는데 축복하게 됩니다.

받으려고 했는데 나누게 됩니다.

상처를 붙들려고 했는데 용서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내가 변하고 있구나.” 

처음에는 내가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앙이 나를 만들어 갑니다.

처음에는 내가 말씀을 붙듭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씀이 나를 붙듭니다.

처음에는 내가 용서하려고 애씁니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용서가 내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13. 신앙은 ‘연기’가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는 골리앗의 크기만 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래서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자기 자신을 크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나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입니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랑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행동을 결정합니다.

 

14. 오늘 우리가 벗어야 할 옛 옷은 무엇입니까?

이제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내가 아직 벗지 못한 옛 옷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욕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분노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음란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의 인정에 대한 집착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중심성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옷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옷을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가 아니라 “하나님, 제 안에는 무엇이 아직 남아 있습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15. 그리고 그 옷을 벗으십시오

여러분, 옛 사람을 그대로 둔 채 예수님의 옷만 껴입지 마십시오.

교회 직분을 입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성경 지식을 입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경건한 말을 입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입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옛 사람을 벗으십시오.

그리고 씻으십시오.

그리고 심령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그 새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바울은 새 사람을 단순히 ‘착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새 사람의 모델은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내가 누구를 닮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닮아가면 세상의 욕망이 나를 지배합니다.

사람을 닮아가면 사람의 평가가 나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16. 결론 — 벗고, 씻고, 입고, 견디고, 살아내십시오

오늘 말씀을 다섯 단어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벗으십시오. 옛 사람을 벗으십시오.

씻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가운데 마음을 씻으십시오.

입으십시오.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견디십시오. 새로운 삶이 어색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아내십시오.

 

진리를 말하십시오.

분노를 다스리십시오.

선한 일을 하십시오.

덕을 세우는 말을 하십시오.

친절하십시오.

긍휼히 여기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이것이 적극적인 신앙입니다. 신앙은 “나는 이것을 안 합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합니다.”

진리를 말합니다.

사랑합니다.

섬깁니다.

나눕니다.

용서합니다.

세웁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냅니다.

 

에베소서 4장의 마지막은 결국 5장 1절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이것이 결론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거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았기 때문에 거룩하게 삽니다.

이미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이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베풉니다.

이미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새 사람답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선포합시다.

“나는 옛 사람을 껴입지 않겠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옛 욕심을 포장하지 않겠다.”

“나는 벗어야 할 것을 벗겠다.”

“나는 성령 안에서 씻김을 받겠다.”

“나는 새 사람을 입겠다.”

 

그리고 새 사람의 삶이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견디겠습니다.

계속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붙들겠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섬기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날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예전과 달라졌구나.”

“예전 같으면 화냈을 일을 이제는 기도하는구나.”

“예전 같으면 욕했을 사람을 이제는 불쌍히 여기는구나.”

“예전 같으면 내 것이라고 움켜쥐었을 것을 이제는 나누는구나.”

“예전 같으면 상처를 품고 살았을 텐데 이제는 용서하는구나.”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변화시키셨구나. 성화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껴입지 마십시오. 벗어야 할 것은 벗으십시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그 새 옷이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색함을 견디십시오.

그 어색함이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되고,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이 이렇게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계시는 것 같다.” 그것이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런데 주님, 우리는 때때로 새 옷을 입었다고 말하면서 옛 옷을 벗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옛 욕심을 붙들고 있었고, 은혜를 말하면서도 분노를 내려놓지 못했고, 용서를 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을 보여 주옵소서.

우리의 교만을 보여 주시고,
우리의 욕심을 보여 주시고,
우리의 분노를 보여 주시고,
우리의 자기중심성을 보여 주시고, 우리가 붙들고 있는 상처와 미움을 보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 벗게 하옵소서. 씻게 하옵소서. 그리고 새 사람을 입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언어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물질관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목적을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 새 사람을 입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어색하고,
참는 것이 어색하고,
사랑하는 것이 어색하고,
섬기는 것이 어색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색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색함을 견디게 하옵소서.

처음에는 힘들어도 계속하게 하시고,
처음에는 불편해도 순종하게 하시고, 처음에는 자연스럽지 않아도 말씀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어느 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기도가 우리의 습관이 되고,
말씀이 우리의 생각이 되고,
사랑이 우리의 성품이 되고,
용서가 우리의 반응이 되고,
섬김이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입술에서 거짓을 벗겨 주시고 진리를 말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에서 분노를 벗겨 주시고 친절과 긍휼을 입혀 주옵소서.

우리의 손에서 움켜쥠을 벗겨 주시고 나눔과 섬김을 입혀 주옵소서.

우리의 입에서 더러운 말을 벗겨 주시고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에서 악독과 미움을 벗겨 주시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입혀 주옵소서.

 

성령님,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빚어 주옵소서.

우리가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변화되게 하시고, 우리의 직장이 변화되게 하시고, 우리의 공동체가 변화되게 하시고, 우리의 말 한마디를 통해 누군가 살아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고, 어둠 속에서 빛이 되게 하시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고,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