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에베소서 4장 7–16절)

knowledgeplatform100 2026. 9. 22. 10:58

다름이 풍성함이 되고, 모두가 일꾼이 되는 교회 (에베소서 4장 7–16절)

“그리스도의 교회는 똑같아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자라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은사를 받아 서로를 세우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왜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셨는가?

둘째, 그 은사는 어디에서 오는가?

셋째,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가?

 

1.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리고 4절부터 6절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반복해서 “하나”를 말합니다.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아버지. 교회의 출발점은 하나 됨입니다. 

 

그런데 7절에 가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뀝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모두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인데 다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신비입니다. 

하나 됨과 다양성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 됨 안에서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첨부하신 강의에서도 바로 이 지점을 강조합니다. 


7절의 “그러나”를 통해 앞부분의 하나 됨과 뒤에 나오는 은사의 다양성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 됨을 획일성으로 착각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생각이 모두 같아야 한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성격도 같아야 한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모두 같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하나 됨이 아닙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눈과 귀가 다릅니다. 손과 발이 다릅니다. 심장과 폐가 다릅니다. 손가락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몸은 하나입니다.

 

오히려 모두 똑같다면 몸이 될 수 없습니다. 눈이 손가락처럼 생겼다면 이상합니다. 발이 눈처럼 생겼다면 걸을 수 없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몸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것이 은사의 신학입니다. 다름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름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2. 하나님은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용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영적 진리를 발견합니다. “나는 왜 저 사람 같지 않을까?”  이 질문을 많이 합니다.

“저 사람은 말을 잘하는데 나는 왜 말을 못할까?”

“저 사람은 찬양을 잘하는데 나는 왜 못할까?”

“저 사람은 성경을 잘 가르치는데 나는 왜 못할까?”

“저 사람은 사람을 잘 섬기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서툴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사람이 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통해 하나님의 몸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엄지와 검지와 중지와 약지와 소지는 길이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지만 모두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말합니다.

누군가는 뒤에서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기도합니다.

누군가는 재정을 관리합니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누군가는 찬양합니다.

누군가는 음식을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아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누군가는 선교지를 연결합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헌금합니다.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눈물로 중보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위대함입니다.

 

3. 은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받은 것입니다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여기서 은사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자랑하기 위한 능력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은사가 있다면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사가 없다며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고린도전서 12장 역시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출발점은 경쟁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것을 맡기셨다.” 이것입니다.

 

4. 그리스도는 승리하신 왕으로서 교회에 선물을 주십니다

여기서 바울은 놀랍게도 시편 68편을 인용합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이 말씀은 시편 68편 18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신학적 논점이 있습니다.

시편 68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왕으로 묘사되며, 에베소서에서는 그 승리의 이미지가 승천하신 그리스도에게 적용됩니다.

 

특히 “받으셨다”는 시편의 표현과 “주셨다”는 에베소서의 표현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어서 학자들이 오래 연구해 온 본문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신 왕으로서 자기 몸 된 교회에 필요한 은혜와 사역자를 주십니다. 11절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인간의 야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물에서 출발합니다. 목회자도 선물입니다. 교사도 선물입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도 선물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소비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를 발견하고 사용하도록 서로를 세워 주는 공동체입니다.

 

5. 은사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주어집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지만 동시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잘하는 것이 있지만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지만 잘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 고백이 부끄러운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부족함을 가지고 와서 그리스도의 충만 안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목표를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입니다. 한 사람만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만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몇 명의 리더만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다 함께 성장합니다.

교회의 성숙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공동체적 성숙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대한 현대 주석들도 이 본문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하나 됨과 성숙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6. 교회는 구경꾼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일꾼을 만드는 곳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12절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이 드러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 그리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따라서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가 설교하고,

목회자가 심방하고,

목회자가 전도하고,

목회자가 상담하고,

목회자가 교육하고,

목회자가 봉사하고,

성도는 앉아서 보는 것. 그것은 바울이 그리는 교회의 모습과 거리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의 핵심적인 해석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지도자들을 주신 목적이 성도들을 준비시키고,

성도들이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여 몸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혼자 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세워서 성도들이 함께 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축구팀을 생각해 보십시오. 감독이 혼자 경기장에 들어가서 뛰면 어떻게 됩니까?

감독은 작전을 세우고 선수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뛰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Let them play. 성도들이 뛰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전도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선교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돌보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강함은 몇 명의 스타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가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실제로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7. 그러나 은사는 반드시 말씀의 토대 위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일꾼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과 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숙한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분별력입니다.

은사가 많다고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활동이 많다고 성숙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많다고 성숙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깊어지고 진리 안에 굳게 서는 것이 성숙입니다.

그래서 은사와 말씀은 함께 가야 합니다. 은사 없는 말씀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없는 은사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은사의 방향을 잡고, 은사는 말씀을 삶으로 드러냅니다.

 

8. “사도와 선지자”에 대한 신학적 균형

11절의 “사도와 선지자”를 오늘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약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의 증언,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독특한 역할을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성경과 동일한 수준의 새로운 계시로 주장한다면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성경 위에 새로운 성경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복음 전도, 말씀 교육, 선교적 사명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의 교회는 사도적 복음 위에 서서 그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직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 복음에 충실한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가? 하는 것입니다.

 

9. 교회의 목표는 “내가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아닙니다

13절에서 바울은 목표를 다시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에서 우리 신앙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이것을 많이 했다.”

“나는 몇 년 동안 봉사했다.”

“나는 헌금을 많이 했다.”

“나는 선교를 많이 했다.”

 

물론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최종적으로 보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

얼마나 유명한가보다,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앞에 서는가보다,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세우는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보다, 그 능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10. 어린아이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숙하지 않은 성도는 쉽게 흔들립니다.

어떤 말을 들으면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하면 따라갑니다. 어떤 영상이 조회 수가 높으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앙적 유행이 생기면 그것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질문합니다.

“이것이 정말 성경적인가?”

“이것이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이것이 복음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는 은사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열정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필요합니다. 활동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숙이 필요합니다.

 

11. 성숙한 교회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합니다”

15절은 오늘 말씀의 절정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진리와 사랑이 만납니다. 진리만 강조하면 차가워질 수 있습니다. 사랑만 강조하면 진리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진리를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사랑하면서 진리를 붙드십시오. 진리를 포기하지 말되 사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사랑하되 진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성숙입니다.

 

12. 마지막은 연결입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여기에 교회의 아름다운 그림이 있습니다. 연결입니다.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됩니다. 서로 도움을 줍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웁니다. 서로의 은사를 인정합니다. 서로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몸이 자랍니다. 생명은 연결됩니다. 죽음은 끊어집니다. 

교회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가 연결되고,

가정과 교회가 연결되고,

교회와 지역사회가 연결되고,

교회와 선교지가 연결되고,

다음 세대와 기성세대가 연결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지체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세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십시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인가?”

잘하는 것만 보지 마십시오. 좋아하는 것만 보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옳은 것만 보지도 마십시오.

잘할 수 있고, 기쁨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 이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분량이 있습니다. 그 분량을 충성되게 사용하십시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그 은사를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은사는 자기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자기 이름을 높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구경꾼인가, 일꾼인가?”

예배를 보는 사람에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평가하는 사람에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역을 구경하는 사람에서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를 듣는 사람에서 선교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14.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유람선에서는 몇 명이 일하고 많은 사람이 구경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에서는 모든 지체가 기능합니다.

손이 손의 일을 하고,

눈이 눈의 일을 하고,

귀가 귀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지체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4장의 교회론입니다. 다르지만 하나입니다.

은사는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역할은 다르지만 주님은 한 분입니다.

분량은 다르지만 은혜의 근원은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결국 한 방향으로 갑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15. 결론 — “나의 다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십시오”

혹시 지금까지 자신의 다름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습니까?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못하지?”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복사본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몸을 구성하는 독특한 지체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기보다,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사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다름을 차별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름을 경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름을 열등감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름을 풍성함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은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숨기지 말고 사용하십시오. 독점하지 말고 나누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십시오. 왜냐하면 마지막 16절이 말하는 교회의 성장 방식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사랑으로 자랍니다.

교회는 연결될 때 건강해집니다.

교회는 모두가 일할 때 풍성해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맺는 기도

주님, 우리에게 하나 됨을 주셨고 동시에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음을 믿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며 비교하고 판단했던 우리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에게 없는 것을 바라보며 내게 주신 은사를 작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게 하시며
그 은사를 나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가 구경꾼의 교회가 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성도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기도하고, 섬기고, 전도하고, 가르치고, 사랑하게 하옵소서. 

 

목회자는 성도를 잘 세우게 하시고 성도는 받은 은사로 충성하게 하시며 모든 지체가 서로를 존중하고 세워 주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진리와 사랑이 함께 있게 하시고, 진리를 말할 때 사랑하게 하시며 사랑할 때 진리를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세상의 유행과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게 하옵소서.

 

우리의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살리고,

우리의 섬김이 누군가를 일으키며,

우리의 사랑이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세상 가운데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시며,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