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담을 넘는 크리스천 (에베소서 2장 1–22절)

knowledgeplatform100 2026. 9. 17. 09:34

담을 넘는 크리스천, 에베소서 2장이 보여주는 구원의 완성

크리스천은 담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담을 넘는 사람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1–22절, 창세기 49장 22절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 담을 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웁니다.
성경을 읽는 법을 배웁니다.
예배드리는 법을 배웁니다.
봉사하는 법을 배웁니다.
헌금하는 법을 배웁니다.
전도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어떤 담을 넘고 있는가?”

왜냐하면 성경이 보여주는 구원은 단순히 “내가 천국 가게 되었다”는 개인적인 신분 변화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달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에 넘지 못했던 담을 넘기 시작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담을 넘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는 담을 넘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이라는 담을 넘습니다.

내가 손해 볼까 봐 두려운 마음이라는 담을 넘습니다.

나와 다른 세대라는 담을 넘습니다.

나와 다른 문화와 배경이라는 담을 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복음을 들고 내가 익숙하지 않은 곳까지 넘어갑니다.

크리스천은 담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담을 넘는 사람입니다.

 

1. 구원의 시작은 내가 담을 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인간의 상태를 아주 충격적으로 선언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울은 인간을 단순히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죽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입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내가 조금 더 착해지면 하나님께 갈 수 있다.”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아닙니다.

 

바울은 먼저 인간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죽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개선이 아닙니다. 부활입니다. 필요한 것은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에베소서 2장에는 복음의 위대한 반전이 등장합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을 보십시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인간의 이야기는 1절에서 3절까지 계속 어두워집니다.

죽었습니다.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랐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 살았습니다.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문장이 뒤집힙니다. “그러나 하나님.”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 내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칼빈도 에베소서 2장 8–10절을 설명하면서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이며, 선행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원인이

아니라 은혜로 새롭게 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목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6절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놀라운 말씀입니다. 살리셨습니다. 일으키셨습니다. 앉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7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오는 여러 세대.” 하나님의 은혜는 나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복음이 나에게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경험한 은혜가 내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갑니다. 다음 사람에게, 다음 세대에게, 다음 공동체에게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나만 살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통해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사건입니다.

 

4.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10절은 구원의 가장 명확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절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리고 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서가 있습니다. 은혜 → 믿음 → 구원 → 새 창조 → 선한 일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합니다.

행위가 구원의 뿌리가 아닙니다. 은혜가 뿌리이고 선한 삶은 열매입니다.

칼빈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새롭게 지음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행조차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열매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선한 일은 결코 한 가지 행동으로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용서하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삶이 선한 일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삶의 가장 중요한 열매 중 하나가 바로 담을 넘는 것입니다.

 

5. 성경은 왜 요셉을 “담을 넘는 사람”으로 보여주는가?

창세기 49장 22절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라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그 가지가 담을 넘었습니다.그런데 이 말씀을 단순히 “요셉이 성공해서 더 많이 차지했다.”

“담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가졌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의 “담을 넘음”은 욕심의 담을 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특히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한 요셉의 이야기를 연결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셉에게 가장 큰 담은 무엇이었습니까?

애굽의 성벽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의 벽도 아니었습니다. 형들과 자기 사이에 있던 상처의 담이었습니다.

 

배신의 담이었습니다. 분노의 담이었습니다. 복수의 담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나에게 이렇게 했는데 내가 왜 너희를 용서해야 하느냐?” 라는 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담을 넘었습니다.

 

6.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담은 무엇입니까?

돈의 담입니까? 

학력의 담입니까?

신분의 담입니까?

문화의 담입니까? 아닙니다. 때로는 가장 높은 담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

나와 세대가 다른 사람.

나보다 성공한 사람.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 이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벽 안에서 살아갑니다.

“저 사람하고는 안 맞아.”

“저 사람은 원래 그래.”

“나는 저 사람과 절대 가까워질 수 없어.”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이유가 없어.”

그렇게 마음속에 벽을 세웁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은 그 벽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던 담을 허무셨기 때문입니다.

 

7. 에베소서 2장 후반부에서 복음은 놀랍게 확장됩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시고”

 

여기에 오늘 메시지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담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입니다. 문화의 담입니다. 종교적 정체성의 담입니다. 사회적 담입니다.

 

그리고 그 담을 십자가로 허무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18절을 연구한 주석들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와 장벽을 무너뜨리고 “한 새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이 화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담을 허무셨으니 나도 담을 쌓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하셨으니 나도 사람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8. 그러므로 진짜 크리스천은 “담을 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래 다닌 것이 크리스천의 증거는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질문해 보십시오. “내가 예수님을 믿은 이후 어떤 담이 무너졌는가?”

 

예전에는 용서하지 못했는데 이제 용서하게 되었습니까?

예전에는 미워했는데 이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까?

예전에는 나와 다른 사람을 피했는데 이제 먼저 다가가게 되었습니까?

예전에는 나만 생각했는데 이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예전에는 내 세대만 생각했는데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까?

예전에는 교회 안에서만 믿음을 이야기했는데 이제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드러내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서 복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9. 담을 넘는다는 것은 무조건 상대방의 잘못을 허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담을 넘는다는 것은 악을 방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의를 묵인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상처를 없었던 것으로 만든다는 뜻도 아닙니다. 용서는 죄가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값을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 담을 넘는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너에게 받은 상처를 가지고 너를 영원히 묶어놓지 않겠다.” 라는 것입니다.

 

복수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감옥에서 나 자신도 해방되는 것입니다.

 

10. 그래서 담을 넘는 첫 번째 단계는 “용서”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이 요셉을 팔았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런데 훗날 요셉은 형들을 만납니다.

요셉은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여기서 우리는 담을 넘는 신앙을 발견합니다. 요셉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의 악을 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악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담을 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힘들어졌다.”

“저 사건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저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 물어보십시오. “주님, 제가 이제 그 담을 넘게 해주십시오.”

 

11. 두 번째 담은 “차이”의 담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달랐습니다. 문화가 달랐습니다. 역사가 달랐습니다. 종교적 배경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한 새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대가 다릅니다.

문화가 다릅니다.

성격이 다릅니다.

은사가 다릅니다.

삶의 경험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차이를 이유로 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

“젊은 사람들은 우리를 몰라.”

“어른들은 시대를 몰라.”

“저 사람은 내 방식과 달라.”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담을 쌓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2. 세 번째 담은 “세대”의 담입니다

에베소서 2장 7절은 “오는 여러 세대” 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이 다음 세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강력한 방향성을 줍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그 은혜는 내 인생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내가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면 은혜가 흘러갑니다. 그래서 진짜 크리스천은 다음 세대를 향해 담을 넘습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청년들에게 다가갑니다. 젊은 세대의 언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들의 질문을 듣습니다.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본질은 타협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기꺼이 담을 넘습니다.

 

13. 네 번째 담은 “선교”의 담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말합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그리고 7절은

“오는 여러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안에 복음을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밖으로 나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면 나도 누군가를 찾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담을 넘으셨다면 나도 누군가의 담을 넘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셨다면 나도 누군가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선교는 단순히 먼 나라에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 때문에 한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도 선교입니다.

 

14.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넘어야 할 담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질문을 피하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 어떤 담 앞에 서 있는가?”

혹시 가족과의 담입니까?

배우자와의 담입니까?

자녀와의 담입니까?

부모와의 담입니까?

교회 안의 누군가와의 담입니까?

직장의 동료와의 담입니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의 담입니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담입니까?

젊은 세대와의 담입니까?

나와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과의 담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피하게 만드는 두려움의 담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 담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을 것이냐?”

 

15. 담을 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담을 넘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도 담을 만드는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피해자이고 상대방은 가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하고 상대방은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담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을 향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격 없는 자였는데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은혜를 깊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16.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계속 담을 쌓습니다

마귀는 사람 사이에 담을 만들고 관계를 깨뜨리고 이간질합니다.

반대로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그 담을 허물고 사람들을 다시 하나 되게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영적 분별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갈라집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하나가 됩니까?

내가 가는 곳마다 상처가 깊어집니까?

아니면 상처가 치유됩니까?

내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의심합니까?

아니면 서로 신뢰하게 됩니까?

내가 있는 곳에서 세대가 갈라집니까?

아니면 세대가 연결됩니까?

그리스도인은 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담을 허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7. 에베소서 2장의 구원은 결국 교회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에베소서 2장은 1–10절에서 개인의 구원을 이야기한 후 11–22절에서 공동체의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 아주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지어져 갑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함께 지어져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누가 옳으냐?” 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갈 것인가?” 입니다.

 

18. 담을 넘는 사람은 “내가 옳다는 것”보다 “복음이 드러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진리는 중요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차이를 진리의 문제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내가 옳으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맞으면서도 사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으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참된 것을 하여…”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가야 합니다. 진리는 담을 허물어야지 담을 쌓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9.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담을 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무엇입니까? 담을 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허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해된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도 허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 → 화해 → 공동체 → 선교 가 연결됩니다.

내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화해합니다. 화해했기 때문에 공동체를 세웁니다. 

 

공동체가 세워졌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달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의 큰 흐름입니다.

 

20. 오늘 여러분의 “담 하나”를 정하십시오

오늘 집에 돌아가면서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넘어야 할 담 하나를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 담을 생각하십시오.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한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한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한 세대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그 담을 넘게 해주십시오.”

 

21. 요셉처럼 담을 넘으십시오

요셉에게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형들을 미워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복수할 이유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담을 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담을 넘으십시오.

용서의 담을 넘으십시오.

화해의 담을 넘으십시오.

사랑의 담을 넘으십시오.

복음의 담을 넘으십시오.

선교의 담을 넘으십시오.

다음 세대를 향해 담을 넘으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담을 넘는 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22. 결국 담을 넘는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담을 넘으셨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죄인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높으신 분이 낮아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원수 되었던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생 자체가 담을 넘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23. 오늘의 결론

에베소서 2장 8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그리고 10절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그리고 14절은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시고”

 

이 세 말씀을 하나로 연결해 보십시오.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 새롭게 지음받았습니다. 그리고 담을 허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담을 넘는 크리스천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담을 넘으십시오.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담을 넘으십시오.

상처의 담을 넘으십시오.

세대의 담을 넘으십시오.

문화의 담을 넘으십시오.

두려움의 담을 넘으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들고 세상이라는 담을 넘어가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담 하나가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담 하나가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 담 하나가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에서 담 하나가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한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한 세대가 복음을 듣고, 한 공동체가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가 끝난 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오늘 어떤 담을 넘었는가?”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는 담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담을 넘는 크리스천입니다.”

“나는 사람을 가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크리스천입니다.”

“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은혜를 흘려보내는 크리스천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허무신 담을 다시 쌓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딛으십시오.

그 한 걸음이 용서일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일 수 있습니다.

먼저 건네는 인사일 수 있습니다.

손을 내미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품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작은 한 걸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담 하나를 무너뜨리는 거룩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리에서 살려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잘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신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살리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은혜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담을 넘게 하여 주옵소서.

내 마음속의 미움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상처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용서하지 못하는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교만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편견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두려움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세대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문화의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복음을 막고 있는 모든 담을 넘어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로 허무신 담을 우리가 다시 세우지 않게 하옵소서.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요셉처럼 사람의 악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크게 보게 하시고, 상처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보게 하시고,

과거보다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가정에서 담을 허물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회에서 담을 허물게 하옵소서.

우리의 일터에서 담을 허물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담을 허물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사람과 사람이 화해하고,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고, 교회가 하나 되고, 복음이 다음 세대로 흘러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에게 담을 넘는 믿음을 주옵소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누군가를 먼저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누군가에게 먼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고,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은 담을 넘었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라는 요셉의 축복이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여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오는 여러 세대에 전해지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담을 쌓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담을 넘는 크리스천,

사람을 가르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크리스천,

은혜를 받기만 하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은혜를 흘려보내는 크리스천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핵심 메시지 한 문장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허무신 담을 다시 쌓지 않고, 은혜의 힘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넘어 복음과

화해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