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 예정, 경륜(에베소서 1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16. 14:55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 안에 있는 인생, 배달된 은혜와 평강, 그리고 찬송의 사명 (에베소서 1장 1–14절)

 

오늘은 에베소서 1장의 말씀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영적인 슬럼프를 경험합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습니다.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믿음으로 살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고, 건강의 문제가 생기고, 관계가 흔들리고, 자녀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직장과 사업의 문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운동선수들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합니까?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축구 선수는 다시 달리기부터 합니다. 기본적인 패스와 킥을 연습합니다. 야구 선수도 다시 러닝을 하고, 배팅을 하고, 공을 잡는 기본 동작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본이 무너지면 기술이 아무리 많아도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법이 아닙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1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신앙의 기본을 다시 세워 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려고 합니다.

첫째, 나는 어디에 있는 사람인가?

둘째, 나는 누구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셋째,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은 결국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기본은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는 놀라울 정도로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입니다.

3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말씀합니다.

4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합니다.

7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11절과 13절에서도 계속해서 “그 안에서”라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기 전에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실패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병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외로움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문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정체성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정체성은 이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에베소서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는 사람이 감옥의 언어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감옥보다 높습니다. 환경보다 높습니다. 상황보다 높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바라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보다 더 큰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질병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도 압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도 압니다.

눈물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바울은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가?”보다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 안에 있는가?”

 

2.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새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1장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단순히 종교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존재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조금 도와주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생에 하나 더 추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삶이 같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고, 직장에서는 세상 사람이고, 가정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인터넷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또 다른 사람이 된다면, 우리 안에는 너무 많은 “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integrity, 즉 “일치하는 삶”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을 교회와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일치”의 삶으로 설명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1절에서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한데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웃는데 가정에서는 폭언합니다. 성경을 들고 다니는데 정작 약속은 지키지 않습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직장에서는 부정직합니다. 기도는 하는데 사람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분열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신앙은 통합된 신앙입니다.

교회에서의 내가 나이고, 가정에서의 내가 나이고, 직장에서의 내가 나이고, 혼자 있을 때의 내가 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에게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혼자 있는 방에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감시 카메라가 필요 없는 정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여기서 에베소서 1장의 두 번째 핵심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의지로 구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여기서 중요한 단어 “모든 신령한 복.”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부만 주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은 단순히 돈이 아닙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건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은 훨씬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 구원하신 것 자체가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복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복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것이 복입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되는 것이 복입니다.

에베소서 1:3–14의 “신령한 복”을 단순한 내면적 위안으로 보지 않고 성령의 역사와 연결된 구원의 총체적 선물로 설명합니다.

 

4. 하늘의 복은 “선택·예정·경륜”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습니다

여기서 에베소서 1장의 매우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선택 예정 경륜 입니다. 이 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면 에베소서 1장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첫째, 선택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성경은 구원의 출발점에 하나님을 놓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우리에게 교만할 이유를 주는 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할 이유를 주는 교리입니다.

“내가 잘나서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붙드셨다.” 이것이 선택의 복입니다.

둘째, 예정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정을 숙명론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에베소서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목적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어 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고, 그 목적을 향하여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정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게 만드는 교리입니다.

내 인생이 내 손에만 달려 있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오늘 잘못하면 끝입니다.

오늘 넘어지면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압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셋째, 경륜입니다.

에베소서 1장 9–10절은 하나님의 뜻의 비밀과 때가 찬 경륜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경륜의 핵심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에베소서의 거대한 시야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나 하나 잘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구원은 나만 천국에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더 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진 것을 회복하시고, 원수 된 것을 화목하게 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시고,

마침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내 인생에서 지금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경륜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보고 계십니다.

 

5. 그래서 우리는 “배달된 은혜”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오늘 제목의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배달된 은혜와 평강. 물론 “배달된 은혜”는 에베소서의 문자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실제 삶의 현장에 도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기도해서 버티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믿음이 강해서 견딘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은혜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길을 찾아낸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때로 하나님은 문제를 없애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은 문제를 없애지 않고 문제를 통과할 힘을 주십니다.

때로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 때로는 이길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6. 은혜와 평강은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붙드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는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왜입니까?

환경이 평안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바울과 실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발에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무엇을 합니까? 

 

사도행전 16장 25절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보통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면 원망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사람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보통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야 찬송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찬송합니다.

 

찬송은 기분이 아닙니다. 찬송은 사명입니다. 에베소서 1장의 반복되는 “찬송”을 근거로 찬송을 그리스도인의 사명으로 설명합니다.

 

7. 찬송은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의 응답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14절까지를 자세히 보면 반복되는 목적이 있습니다.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6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12절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14절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목적은 단지 “너 잘 살아라.” “네 인생 편하게 살아라.” “네가 원하는 것 많이 가져라.” 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예배 순서의 하나가 아닙니다.

찬송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입니다. 기쁠 때만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도 찬송합니다. 

 

답을 알 때만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답을 모를 때도 찬송합니다. 길이 열렸을 때만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 막혔을 때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찬송의 근거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8. 욥에게서 우리는 “찬송의 신학”을 배웁니다

욥을 보십시오. 재산이 사라졌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건강도 무너졌습니다. 인생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런데 욥기 1장 21절에서 욥은 말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슬프지 않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아프기 때문에 울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만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9. 성령은 우리에게 장차 올 '복'을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의 마지막에 아주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13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리고 14절에서는 성령을 “우리 기업의 보증”​이라고 말씀합니다.

보증이라는 말은 장차 받을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오늘 우리에게 미리 맛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아직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아직 모든 눈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위로를 경험합니다.

아직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아직 부활의 몸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미와 아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의 완성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업의 완전한 실현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소망으로 삽니다.

 

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끝나는 삶”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십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찬송입니다.

성부의 선택 때문에 찬송합니다.

성자의 십자가 때문에 찬송합니다.

성령의 인치심 때문에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찬송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기업 때문에 찬송합니다.

그리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찬송합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11.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세 문장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문제가 나를 규정하게 하지 마십시오. 실패가 나를 규정하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평가가 나를 규정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바라보십시오.

“나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을 회복하십시오.

둘째, “나는 어디서나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사업장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인터넷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혼자 있을 때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나는 은혜와 평강을 받아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힘들 때,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만 묻지 마십시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이 상황에서도 제게 필요한 은혜를 보내 주십시오.”

“제 마음에 평강을 보내 주십시오.”

“제가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십시오.”

“제가 이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은혜는 내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평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상황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상황을 넘어섭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12. 마지막으로 기억하십시오 — 하늘의 복은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은 돈이 아닙니다.

건강도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명예도 아닙니다. 가장 큰 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됩니다.

버림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외인이 가족이 됩니다. 소망 없는 사람이 기업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죽음을 향해 가던 사람이 영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찬송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신앙의 기본은 이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십시오. 그리고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고 배달된 은혜와 평강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찬송을 멈추지 마십시오.

 

결론

 

혹시 오늘 여러분 가운데 

“나는 너무 힘듭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기도할 힘도 없습니다.”

“나는 찬송할 힘도 없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에베소서 1장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드십니다.

여러분의 구원이 여러분의 능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의 계산에만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셨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고백합시다. 

“나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나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업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찬송합니다.”

환경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문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십시오.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직장으로 돌아가십시오.

사업장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서 이렇게 묻게 하십시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힘든데도 무너지지 않을까?”

“저 사람은 왜 손해를 보면서도 정직할까?”

“저 사람은 왜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할까?”

그때 우리의 대답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베드로전서 3장 15절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부러워할 성공만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소망을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평안할 때 평안한 것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폭풍 속에서도 평안하다면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마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베소서 1장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주신 하늘의 복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환경만 바라보았습니다.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실패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람의 평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우리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주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시고,

성공할 때에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시고,

실패할 때에도 예수 안에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회 생활과 세상 생활이 분리되지 않게 하시고,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게 하시며, 

사람이 볼 때와 보지 않을 때가 다르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거룩한 일치의 삶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보내 주옵소서.

 

우리에게 필요한 평강을 보내 주옵소서. 

때로는 피할 길을 열어 주시고, 때로는 이길 힘을 주시고, 때로는 기다릴 믿음을 주시고,

때로는 눈물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 돈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고백이 “주님, 왜 이것을 주셨습니까?”가 아니라 “주님,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노래가 “찬송하리로다.” 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수 안에 살게 하시고, 은혜 안에 살게 하시며, 평강 안에 살게 하시고,

마침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