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왜 레위기를 우리에게 주셨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다가 가장 자주 건너뛰는 책이 무엇입니까? 많은 분이 레위기를 꼽으실 것입니다.
동물을 잡고, 피를 뿌리고, 제물을 태우고, 제사장의 옷과 정결 규례를 설명하는 장면들. 오늘 우리에게는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책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읽어 보십시오.
레위기는 단순히 옛날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레위기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간과 함께 거하실 수 있는가? 그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인간이 어떻게 다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고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여전히 이기심이 있고, 분노가 있고,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이 있습니다.
예배하는 입술과 실제 삶 사이에 간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어떻게 받아 주실까요?
레위기는 그 답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비에서 찾습니다.
오늘 우리는 레위기를 통해 세 가지를 깊이 묵상하려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왜 거룩을 요구하시는가?
둘째, 하나님은 죄인을 어떻게 정결하게 하시고 자신의 임재 안으로 부르시는가?
셋째,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가?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의 궁극적인 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닫힌 성막 앞에서 시작되는 은혜
레위기의 배경은 출애굽 직후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셨으며,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통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단순히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의 관계로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을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곧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깨뜨리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다고 해서 죄의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막을 세우게 하셨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은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에서 놀라운 장면이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40장 35절입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조차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죄와 거룩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인간은 그 임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긴장 속에서 레위기가 시작됩니다. 레위기 1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출애굽기 마지막 장에서 모세는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레위기의 첫 번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인간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여 열어 놓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고, 그분께 나아갈 길을 마련하시는 은혜의 길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만나 주시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책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2. 거룩,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
레위기를 이해하는 열쇠는 ‘거룩’입니다.
레위기 19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하라고 하셨을까요?
거룩은 단순히 종교적인 분위기를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분은 피조물과 동일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완전한 선하심과 순결하심, 죄와 악에 대한 절대적인 반대, 그리고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영광을 포함합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언약의 표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허락하는 임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드러내고, 죄를 심판하며, 죄로 오염된 것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렇다고 거룩이 하나님을 차갑고 접근할 수 없는 분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레위기 전체가 보여 주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랑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을 버리지 않는 거룩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레위기의 제사와 정결 규례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제단에서 배우는 은혜의 문법 — 다섯 제사
레위기 1장부터 7장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주요 제사를 설명합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 제사들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 다른 목적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의 여러 측면을 보여 줍니다.
3-1. 번제 —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
번제는 제물 전체를 제단에서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레위기 1장 3절은 흠 없는 수컷 제물을 드리도록 규정합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일부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번제는 단순히 헌금이나 예배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시간과 재능, 가정과 직장, 계획과 미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이 정신을 신약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그리스도인은 제물을 다시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응답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3-2. 소제 — 일상의 수고를 감사로 드리는 삶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예물입니다. 레위기 2장은 곡식과 기름, 유향 등을 예물로 드리는 규례를 설명합니다.
소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과 노동의 열매를 감사로 돌려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이 아닙니다.
밭을 갈고, 음식을 만들고, 직장에서 일하고, 가족을 돌보는 모든 수고가 하나님의 선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3. 화목제 — 하나님과 이웃의 교제를 회복하는 삶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 감사와 서원, 자원하는 헌신을 표현하는 제사였습니다.
화목제의 중요한 특징은 제물의 일부가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 돌아가 함께 나누는 식사와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공동체의 교제로 이어집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이웃과 나누는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3-4. 속죄제 — 죄와 부정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다루는 제사
속죄제는 죄와 부정으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레위기 4장은 제사장과 회중, 지도자와 일반 백성이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를 설명합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사람과 공동체를 상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제사를 통해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시고, 정결과 회복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3-5. 속건제 —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삶
속건제는 특히 하나님의 거룩한 것이나 이웃의 재산과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 관련됩니다.
레위기 5장과 6장은 죄를 인정하는 것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배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신앙입니다.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하나님께 용서받았습니다”라는 말만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가능한 경우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를 배상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이 부당하게 취한 것을 갚겠다고 고백합니다.
은혜는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할 새로운 마음을 줍니다.
다만 제사가 모든 고의적인 범죄의 법적 책임을 자동으로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의 제사와 배상 규례는 죄를 진지하게 다루며, 범죄에 대한 공적 책임과 정의의 문제를 별도로 남겨 둡니다.
이 다섯 제사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헌신과 감사, 회개와 배상, 그리고 교제가 함께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4.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거룩 — 제사장의 소명과 경고
레위기 8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장의 위임과 직무, 그리고 그들의 거룩함을 다룹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고,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거룩은 개인적인 경건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전체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0장에서 무서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불을 드렸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레위기 10장 3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이 사건은 하나님의 거룩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중심은 우리의 감정이나 취향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오늘 교회도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직분이 있다고 해서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더 겸손해야 합니다.
5. 정결은 생명을 기억하는 훈련
레위기 11장부터 15장은 음식과 출산, 피부 질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 등 여러 정결 규례를 다룹니다.
오늘날 독자들에게 이 부분은 가장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중요한 구별을 해야 합니다.
레위기에서 의식적으로 부정한 상태에 놓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출산이나 특정한 신체적 상태, 시체와의 접촉은 사람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악하거나 개인적인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한 부정은 일정한 기간과 정결 절차를 거쳐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이 규례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 정결과 부정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왜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 부정의 상징으로 나타날까요?
성경의 큰 흐름에서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십니다. 죄는 죽음과 연결되고, 죽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충만함과 대조됩니다.
그러나 이 상징을 모든 질병이나 장애를 죄의 결과라고 단정하는 방식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9장에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정결 규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심을 가르치는 언약적이고 예배적인 질서였습니다.
음식 규례와 거룩한 구별
레위기 11장은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지 못하는 동물을 구별합니다.
이 규례가 왜 특정 동물들을 부정한 것으로 분류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성경 본문은 모든 동물의 분류 이유를 하나씩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단순히 위생적인 이유나 특정 문화에 대한 편견으로 환원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먹고 마시는 일상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기억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의 음식 규례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언약 아래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음식 규례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가복음 7장 18–19절, 사도행전 10장, 골로새서 2장 16–17절을 함께 읽어 보십시오.
그러나 음식 규례가 가르쳐 주는 영적 교훈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돈을 사용하는 것,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몸을 돌보는 것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거룩은 예배 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6. 예배가 삶의 언어가 될 때 — 레위기 19장
레위기 18장부터 20장은 이스라엘의 도덕적 거룩을 다룹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주변 민족들의 악한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은 성적인 순결을 지켜야 했고,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했으며, 이웃을 억압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9장은 놀라운 방식으로 거룩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은 성막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19장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일, 품꾼의 임금을 미루지 않는 일, 재판에서 불의를 행하지 않는 일, 장애가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일,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 일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3절은 품꾼의 삯을 다음 날까지 미루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19장 15절은 재판에서 가난한 사람이라고 편들거나 권력자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레위기 19장 18절은 이 책의 중심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가장 중요한 계명 가운데 하나로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이웃 사랑을 하나님 사랑과 함께 율법의 핵심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거룩은 세상과 단절된 종교적 고결함이 아닙니다. 거룩은 이웃의 삶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십시오.
직장에서 부하 직원의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지는 않습니까?
인터넷에서 타인을 비방하고 조롱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가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을 억압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예배의 제단뿐 아니라 우리의 사무실과 가정, 거래와 대화의 자리에서도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진실하다면, 그 예배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7. 책의 심장, 대속죄일 — 죄를 짊어지고 멀리 옮기는 은혜
레위기 16장은 책의 중심을 이루는 중요한 장입니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전체의 죄와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위해 속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위해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날 두 마리의 염소가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드려집니다. 다른 한 마리에는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그 염소를 광야로 내보냅니다.
레위기 16장 21–22절은 대제사장이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의 죄악과 허물을 고백한 뒤, 그 염소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가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장면은 죄를 단지 마음속에서 후회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시키며,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사람을 얽매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죄의 짐을 백성에게서 옮기시는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중요한 그림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없는 것처럼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다루시고, 속죄의 길을 마련하시며, 죄인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대속죄일의 제사도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대제사장 역시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더 완전한 대제사장과 더 온전한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9장과 10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레위기를 읽습니다.
구약의 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습니다.
8. 반복되는 제사에서 단번의 십자가로
레위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할 때 우리는 중요한 신학적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레위기의 모든 세부 규례를 하나씩 예수님의 삶에 직접 대응시키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분명히 제사와 대제사장, 속죄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합니다.
히브리서 9장 11–12절은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1–14절은 제사장들이 반복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리신 것을 대조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과 함께, 그 제사 자체가 최종적이고 완전한 구속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분은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셨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이것이 레위기가 바라보던 구속의 완성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열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은 이 사건을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9–22절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 하나님을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위기에서 대제사장은 정해진 때에만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얻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줍니다.
둘째,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에게서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만들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9. 거룩의 마지막 질문 —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레위기는 제사와 정결의 책인 동시에 언약의 책입니다.
레위기 26장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에게 주어지는 복과, 불순종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판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주신 언약의 땅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불의를 행했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거룩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렇다면 레위기의 메시지는 실패한 이스라엘을 향한 정죄로 끝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기 26장 44–45절은 하나님께서 심판 가운데서도 자기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의 불순종보다 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죄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면서도 자기 백성을 회복하실 길을 마련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이루지 못한 순종을 이루셨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죄의 심판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은 레위기의 거룩 명령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합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 거룩은 완벽한 사람인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이웃에게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날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거룩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 레위기는 은혜의 문을 보여 주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레위기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책에서 동물의 피와 제단, 제사장과 정결 규례를 읽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장면의 중심에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 많은 인간과 함께 거하실 수 있는가?
레위기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마련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인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제사를 통해 속죄를 가르치셨고, 정결 규례를 통해 거룩한 임재를 기억하게 하셨으며, 대속죄일을 통해 죄를 정결하게 하고
멀리 옮기는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이십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읽을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죄를 짓는 사람인지 깨닫고, 동시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십시오.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가정에서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직장에서 정직하십시오.
약한 이웃을 보호하십시오.
잘못을 저질렀다면 회개하고 책임을 다하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열렸습니다.
이제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레위기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은혜를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죄로 가득한 존재이며, 우리의 힘과 의로움으로는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예배가 입술의 고백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모든 관계 속에서 거룩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불의한 일을 바로잡게 하시고, 상처 입은 이웃을 돌보게 하시며,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레위기의 제사들이 바라보았던 완전한 속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며, 끝까지 우리를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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