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네비게이션

[성경통독 네비게이션 - 제 6권 여호수아]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knowledgeplatform100 2026. 10. 23. 10:59

프롤로그 — 약속은 다음 세대에게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는 한 시대가 끝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를 이끌어 주었던 사람이 떠나고, 익숙했던 환경이 사라지고, 이제는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낸 사람이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며, 광야에서 수많은 위기와 불평 속에서도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뒤에는 광야의 시간이 있고, 앞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성읍은 견고했고, 군대는 강했으며, 이스라엘 앞에는 두려운 현실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증명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여호수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여호수아서를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지도자가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그리고 그 약속을 받은 백성이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의 핵심은 땅을 얻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여호수아서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따라가며 세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약속을 이루시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

그리고 약속이 성취된 후, 우리는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

 

 

1. 모세의 시대가 끝나도, 하나님의 약속은 끝나지 않는다

여호수아 1장 — 사명을 이어받은 사람

여호수아 1장은 모세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계획이 중단되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 여호수아
1:2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정복해야 했지만, 그 땅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자기 능력으로 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12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삭과 야곱의 시대를 지나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시간을 지나며, 광야의 긴 세월을 거쳐 이제 여호수아의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생애보다 길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일을 내 생애 안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아니었지만, 모세를 통해 시작하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특정한 사람에게 종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고,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며, 때가 되면 다음 사람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떠나도 복음은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선교사가 사역을 마쳐도 선교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그가 자녀에게 심어 준 믿음의 씨앗은 하나님 안에서 계속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의 위대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어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권위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할 책임도 함께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7–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여호수아의 담대함은 말씀을 떠난 자기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해야 했습니다.

세상은 지도자에게 결단력과 추진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도자에게 먼저 말씀 앞에 서라고 요구합니다.

 

말씀을 떠난 결단은 자기 욕망을 이루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씀에 뿌리내린 결단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요단강 앞에 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사명, 가정의 변화,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역할의 변화, 그리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가 우리 앞에 놓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믿음이며,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입니다.

 

 

2.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먼저 언약의 백성으로 돌아오라

여호수아 2–5장 — 믿음은 강을 건너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냅니다. 이 장면은 민수기 13–14장의 정탐 이야기와 대조됩니다.

모세 시대에 열두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열 명은 그 땅의 거인들과 견고한 성읍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두려움에 굴복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 시대에 다시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리고의 라합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수아 2장 11절에서 라합은 말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라합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언약의 공동체 밖에 있던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자신의 생명을 그분께 맡겼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단지 마음속의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정탐꾼들을 숨겨 주고,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야고보서 2장 25절은 라합의 행동을 믿음의 실천으로 언급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 역시 라합이 믿음으로 멸망하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 예상하는 경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라합은 과거의 신분이나 출신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믿음의 사람에게 은혜의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넙니다.

 

여호수아 3장에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으로 들어갑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임재의 표징이었습니다. 

 

물이 먼저 완전히 사라진 뒤 제사장들이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발을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 강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의 홍해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 시대에는 홍해를 건너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났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하나님이셨고, 동시에 새로운 세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중요한 일을 합니다.

 

그들은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킵니다.

여호수아 5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할례와 유월절을 행했을까요?

이스라엘은 먼저 자신들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부르신 백성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표징이었고,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기 전에 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 순서는 오늘 우리의 신앙에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기 전에 먼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이루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은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신앙은 이미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3. 여리고의 침묵과 아이성의 패배: 승리는 은혜이며 순종은 필수다

여호수아 6–8장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여리고는 견고한 성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군사 전략만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앞세우고,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 주위를 돌았습니다.

 

여섯 날 동안 침묵하며 돌았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때에 백성이 외쳤습니다.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여호수아 6장의 중심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여리고의 승리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벽을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의 승리 바로 다음에 아이성의 패배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대조입니다.

여리고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아이성에서는 아간의 불순종으로 패배했습니다.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취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명령보다 앞세웠습니다.

여호수아 7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은 죄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아간의 죄를 다루기 전까지 아이성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모든 실패가 특정한 개인의 숨은 죄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욥의 고난이 그랬듯, 성경은 의로운 사람에게도 고난이 찾아올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아이성 사건은 하나님께서 명시적으로 언약 위반을 드러내신 특별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본문을 다른 사람의 고난을 정죄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에도 내 안에 아간과 같은 욕망이 남아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내가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내 이익을 위해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리고와 아이성의 대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은혜를 핑계로 불순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순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며, 그 구원은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삶으로 이어진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행위의 대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4. 하나님의 편에 서는 사람: 여호와의 군대 대장과 거룩한 전쟁의 의미

여호수아 5:13–15 —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여리고 전투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칼을 든 한 사람을 만납니다.

여호수아가 묻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그 사람은 자신을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합니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여호수아서 전체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편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주님이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업이 잘되기를, 가정이 평안하기를, 교회가 부흥하기를, 내가 세운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기도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보여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전쟁을 맡기셨습니다.

이 전쟁을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영토 확장이나 민족주의의 승리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주권과, 이스라엘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책임입니다.

동시에 여호수아서의 전쟁 이야기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무거운 신학적 질문을 남깁니다.

 

 

5. 라합과 기브온: 심판의 이야기 속에서도 열려 있는 은혜의 문

여호수아 2장, 9장 —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 은혜가 열립니다

여호수아서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심판 이야기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라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정탐꾼들을 보호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화친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접근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들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여호수아 9장 14절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양식을 취하면서도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불완전함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일을 정확하게 판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의 실수보다 크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는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실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라합과 기브온의 이야기를 근거로 가나안 정복의 모든 윤리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이야기는 분명한 사실을 드러냅니다.

 

여호수아서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소유물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르셨지만, 그분의 주권과 은혜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라합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합니다(마태복음 1:5).

이것은 은혜가 과거의 실패와 출신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받아들이며, 그 사람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6. 가나안 정복의 난제: 하나님의 심판과 폭력에 관한 성경적 성찰

여호수아 10–12장 —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가나안 정복과 전쟁에 관한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0장과 11장에는 가나안 성읍들을 공격하고, 주민들을 진멸했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 본문을 읽는 현대의 독자는 묻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과, 가나안 정복을 명령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신앙이 약해서 생기는 질문이 아닙니다.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성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너무 쉽게 설명해서도 안 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첫째, 본문은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말합니다

신명기 9장 4–5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이유를 이스라엘 자신의 의로움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나안 민족들의 악함과 하나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언급합니다.

 

레위기 18장과 신명기 12장, 18장은 가나안의 종교적·도덕적 관습 가운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행위들을 다룹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을 무조건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경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이스라엘 자체가 도덕적으로 완전한 민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서 후반부는 이스라엘도 언약을 어기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은 심판을 독점하는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 아래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둘째, 고대 전쟁 문학의 표현과 서사적 특징을 살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적들을 완전히 무찔렀다는 전면적인 승리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같은 책의 다른 본문에서는 여전히 가나안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10장과 11장의 정복 선언을 여호수아 13장, 15장, 16장, 17장의 잔존 세력 기록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10장 40절의 광범위한 승리 선언과, 여호수아 15장 63절의 예루살렘 거주 여부에 관한 기록은 긴장 관계를 형성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고대 전쟁 기록의 관습적인 승리 언어와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본문이 실제 폭력과 심판을 분명히 서술하므로, 문학적 표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윤리적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이 논쟁은 현대 성서학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대 전쟁 문학의 관습을 고려하는 것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문에 나타난 인간의 고통과 폭력의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셋째, 이 본문을 오늘날의 폭력에 대한 허가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서의 전쟁은 특정한 역사적·언약적 맥락에서 서술됩니다.

오늘날 어떤 민족이나 종교 집단도 여호수아서를 근거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제거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적대감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거룩과 심판을 배워야 하지만, 그 본문을 자기 집단의 우월성이나 종교적 폭력의 정당화에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과 구원의 의미를 더 깊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이 동시에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5–26절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심판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거룩을 기억하되, 그 거룩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은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의 전쟁을 오늘 우리의 영적 싸움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적으로 삼는 싸움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죄와 불의, 우상숭배, 교만, 탐욕, 거짓과 싸우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거부하고 진리와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7. 땅을 나누시는 하나님: 약속은 공동체의 삶으로 구체화됩니다

여호수아 13–21장 — 하나님은 약속을 추상적인 말로만 남겨 두지 않으십니다

여호수아서의 후반부에는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경계선과 성읍 이름, 산과 골짜기의 이름이 길게 등장합니다.

 

현대 독자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실제 삶의 터전으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서에서 그 땅은 각 지파의 기업으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순한 감동이나 마음의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 약속은 공동체의 삶과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21장 43–45절은 여호수아서 전체의 중요한 결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서의 핵심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물론 여호수아서에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과 남아 있는 가나안 사람들도 언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을 모든 지역과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의미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 13장 1절은 아직 차지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21장의 완결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 시점에 주신 약속과 안식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가 완전한 순종과 평화로 끝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신앙의 현실을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셨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가 그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모든 상황이 완벽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이 신뢰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서의 땅 분배는 또한 공동체의 책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은 한 사람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각 지파는 자신에게 맡겨진 땅에서 살아가야 했고, 공동체는 서로의 기업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개인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도록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오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면, 그 은사는 공동체를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재정을 맡기셨다면, 그 재정은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지도력을 주셨다면, 그 권한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가 아니라 섬기는 책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은 언제나 사명을 동반합니다.

 

 

8. 승리 이후의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여호수아 22–24장 — 약속의 땅에서 언약을 새롭게 하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은 전쟁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다룹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으며, 광야를 지나게 하셨고, 적들을 물리치시며 땅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24장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낸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백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여호수아 24장 14–15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은혜를 경험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다른 신들을 섬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를 누리면서, 그 풍요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그 위험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 재정, 가정, 직장, 재능을 누리면서도 그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남습니다.

“너희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돈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사람들의 인정과 성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면서도, 그 은혜를 주신 분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십시오.

 

 

9. 그리스도 안에서 읽는 여호수아: 참된 안식과 더 큰 약속

여호수아의 이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바라보다

여호수아의 히브리어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과 어원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이름 모두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 여호수아와 예수님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는 역사 속의 지도자이며,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 안에서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더 큰 구원을 바라보게 하는 인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준 안식은 최종적인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8–9절은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참된 안식을 주었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수아의 시대에도 안식이 있었지만, 그 안식은 더 큰 안식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십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연결을 통해 가나안 땅을 단순히 천국의 지도처럼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땅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언약 안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동시에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확장되며, 궁극적인 소망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새 창조의 소망을 선포합니다.

여호수아서가 보여 주는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신실하심이 궁극적으로 완성될 날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미 받은 은혜와 아직 기다리는 소망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지만, 여전히 죄와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만, 그 약속의 완전한 성취를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 담대함은 세상을 정복하려는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10. 결론 —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약속의 주인을 섬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서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약속을 이루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시대가 끝나도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의지합니다.

 

그리고 약속이 성취된 후 우리는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

우리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서의 여리고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 줍니다.

아이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불순종의 위험을 보여 줍니다.

라합은 은혜가 민족과 과거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기브온은 하나님의 백성도 분별에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땅의 분배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공동체의 삶으로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여러분은 지금 어떤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까?

두려워서 건너지 못하는 강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능력만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면서 하나님보다 선물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여호수아서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십시오.

여호수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마침 기도 — 약속의 하나님,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모세를 통해 구원하시며,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시대가 끝나고, 우리의 힘이 약해지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가 다가와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음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 앞에 놓인 요단강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담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 때문에 담대하게 하소서.

여리고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던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아이성의 실패를 기억하며 우리 안의 교만과 탐욕과 불순종을 살피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기의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자기 소유처럼 움켜쥐지 않게 하소서.

라합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도 과거와 출신과 상처 때문에 사람을 배제하지 않게 하소서.

 

가나안 정복의 어려운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과 심판을 두려워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자비를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재능과 재정을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기업으로 사용하게 하소서.

약속을 받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이 여호수아의 고백을 이어 가게 하소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시며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