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구원의 하나님을 잊는가?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책 가운데 하나가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영웅들이 등장하여 적군을 물리치는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비극입니다.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넜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세대가 지나간 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가르쳤던 시대가 지나갑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영광의 시대가 아니라 쇠퇴의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2장 10절은 그 비극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 이것이 사사기의 비극을 여는 문장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달됩니까?
신앙의 유산은 어떻게 계승됩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경험한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을 모르는 공동체로 변할 수 있습니까?
사사기는 이 질문에 대한 매우 엄중한 답을 줍니다. 신앙의 유산은 자동으로 계승되지 않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믿었다고 자녀가 저절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한 세대의 영적 경험이 다음 세대의 인격적 믿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아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그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사기는 바로 이 왕의 자리가 비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끝에는 놀라운 소망도 있습니다.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폐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의 어두운 역사 뒤에는 사무엘상과 다윗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성경 전체의 구속사 속에서 우리는 다윗보다 더 위대한 왕, 죄와 죽음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기의 어두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실상을 살펴보고,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겠습니다.
1. 약속의 땅에서 시작된 영적 붕괴
여호수아 이후, 무엇이 무너졌는가?
사사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여호수아서와의 연결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여호수아 21장 43–4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좋은 일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땅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과 그 땅에서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얻었지만, 그 땅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데 실패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 1장은 각 지파가 가나안의 여러 지역을 차지하는 과정과 함께, 정복하지 못한 성읍과 쫓아내지 못한 주민들을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사사기 1장 19절은 유다 지파가 산지는 차지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었으므로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도 여러 지파의 실패가 나타납니다.
사사기 1장 27–36절을 읽어 보면 므낫세,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 단 지파가 가나안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거주하거나 그들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군사적 작전의 실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다는 사실과 연결하여 읽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레위기 18장과 신명기 7장, 12장은 가나안의 우상숭배와 그들의 종교적 관습을 경계합니다.
특히 신명기 12장 31절은 가나안 사람들이 자기 신들을 섬기며 행하는 가증한 일들을 이스라엘이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다른 민족과 이웃하여 산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을 잊고, 주변 문화의 우상과 가치관을 받아들여 언약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누리는 일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장, 가정, 재산, 재능, 지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도시를 차지했지만, 가나안의 가치관이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세상의 성공 기준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실제 결정은 돈과 권력과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다른 왕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첫 번째 경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서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2. 타협은 어떻게 배교가 되는가?
사사기 2장, 죄의 악순환이 시작되다
사사기 2장에 이르면 이스라엘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사기 2장 1–3절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약속하신 땅으로 데려오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합니다.
그 결과 가나안 주민들은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구원과 언약을 기억하게 하시고, 백성의 불순종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사사기 2장 10절은 한 세대의 영적 단절을 기록합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사람들이 죽은 뒤,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성경 지식이 부족했다는 의미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와 그분의 언약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 결과 사사기 2장 11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을 섬겼다고 기록합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종교에서 비와 풍요, 농경의 생산성과 관련된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농사를 짓고 풍요를 누리면서, 그 풍요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다른 신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깊은 모순입니까?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면서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7–18절은 이스라엘이 풍요를 누릴 때 자신의 능력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경고합니다.
사사기는 이 경고가 현실에서 무시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사기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오늘날의 민족적 증오나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은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과 심판이라는 역사적·신학적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들은 이스라엘 자신도 불순종하면 동일하게 심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사사기 2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결과, 주변 민족들에게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핵심 구조가 등장합니다.
사사기 2장 11–19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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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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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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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압제 가운데 신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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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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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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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가 죽으면 백성은 다시 하나님을 떠납니다.
이것은 흔히 사사기의 반복되는 순환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순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죄의 깊이가 점점 더 심해집니다.
구원자로 등장하는 사사들의 모습도 점점 더 불완전해집니다. 마지막에는 백성 전체가 폭력과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사사기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영적 하향곡선을 그립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백성이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백성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백성을 계속 구원하십니까?
사사기 2장 18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음과 압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의로움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가 작아서 구원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사사기를 관통하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가볍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압제에서 구원하시면서도 그들의 불순종을 책망하십니다.
은혜는 죄를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건져내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죄와 압제, 부르짖음과 구원
사사기의 반복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사사기의 반복되는 구조를 조금 더 깊이 묵상해 봅시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순종을 심판하십니다.
셋째, 이스라엘은 압제 가운데 부르짖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십니다.
다섯째,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고난 속에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은 뒤에는 그 응답을 자기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지 고난을 경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그 구원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2장 19절은 그들의 반복적인 배교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사사가 죽은 뒤 다시 돌아서서 다른 신들을 섬기며, 조상들보다 더 타락한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 외적인 상황의 변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압제자가 물러갔다고 해서 마음의 우상이 제거된 것은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참된 회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사사들은 완전한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그들 자신의 죄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사기의 구원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 가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실제로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 지도자들이 그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에게 더 깊은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구원은 단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죄로 굳어진 마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구원입니다.
4. 구원자는 왜 점점 무너지는가?
여섯 사사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
사사기에는 여러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는 책의 중심부를 이루며, 이스라엘의 타락이 점점 심화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사사라는 말은 오늘날의 법정 재판관과 정확히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사사들은 대체로 하나님께서 위기 때 세우신 지역적·정치적·군사적 지도자이며, 백성을 압제에서 구해 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4-1. 옷니엘 — 구원의 시작
사사기 3장 7–11절에 등장하는 옷니엘은 사사기의 첫 번째 주요 구원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십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갈렙의 조카 옷니엘을 세우십니다.
사사기 3장 10절은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옷니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그 땅은 사십 년 동안 평온합니다.
사사기의 첫 번째 구원 이야기는 비교적 간결하고 안정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시고, 그에게 영을 주시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사기의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장이 아닙니다.
이후의 사사들은 점점 더 복잡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4-2. 에훗 — 약한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사사기 3장 12–30절에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압제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에훗이 등장합니다.
에훗은 왼손잡이로 소개됩니다. 그는 에글론을 죽이고 모압의 지배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전쟁과 암살이라는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오늘의 도덕적 모범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강력한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약해 보이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강한 자의 권세를 무너뜨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방식이 이후 모든 시대에 그대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사기의 전쟁 서사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과 언약적 심판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4-3. 드보라 — 말씀으로 공동체를 일으키는 지도자
사사기 4–5장에는 드보라가 등장합니다.
드보라는 여선지자이며 이스라엘의 사사입니다. 그는 바락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며 시스라의 군대와 맞서도록 이끕니다.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드보라는 함께 가지만, 전쟁의 영광은 한 여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실제로 시스라는 야엘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사사기 5장의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을 찬양합니다.
드보라의 이야기는 사사기에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남성 전사들의 힘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선지자 드보라를 통해 말씀하시고, 공동체를 일으키십니다.
이 본문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지위와 능력의 기준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사사기 4–5장은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믿음으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칩니다.
4-4. 기드온 —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우상으로 끝나는 지도자
사사기 6–8장은 기드온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로 고통받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농작물을 약탈하고, 백성은 산속으로 피신합니다.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를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약함과 집안의 보잘것없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여러 차례 표징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그를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드온은 미디안의 대군과 맞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군사의 수를 줄이십니다. 삼만 이천 명이었던 군대는 삼백 명으로 줄어듭니다.
사사기 7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뜻을 밝히십니다.
삼백 명의 군사는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을 가지고 미디안 진영을 공격합니다. 하나님께서 적의 진영에 혼란을 일으키시고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둡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이야기는 승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사기 8장에 이르면 기드온의 어두운 면이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잔인하게 징벌합니다. 전쟁에서 얻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고,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됩니다.
기드온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그 에봇을 음란하게 섬기며 다시 바알들을 따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성공과 영적 성숙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 큰 일을 이루셨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행동과 판단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구원자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권력과 종교적 상징으로 바꾸어 버릴 위험을 보여 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사기의 비극은 지도자가 백성을 구원한 뒤, 그 백성을 다시 우상숭배로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4-5. 입다 —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는 사람
사사기 10–12장에는 입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입다는 길르앗 출신으로, 가족과 공동체에서 배척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쫓겨나 돕 땅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의 압제를 받게 되자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와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그의 이야기는 매우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사사기 11장 30–31절에서 입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께 서원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 집 문에서 나오는 자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은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의 서원은 결국 딸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이 본문을 해석할 때는 몇 가지 신학적 쟁점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일부 해석은 입다의 딸이 실제로 제물로 바쳐졌다고 이해하고, 다른 해석은 평생 처녀로 성별되어 살게 되었다고 이해합니다.
본문은 딸이 처녀로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사건의 구체적인 성격을 둘러싼 해석적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석을 취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입다의 서원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뢰와 순종을 보여 주는 모범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우상들처럼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명기 12장 31절은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는 방식 가운데 자녀를 불태워 제물로 드리는 행위를 분명하게 금지합니다.
레위기 18장 21절도 자녀를 몰렉에게 넘기는 행위를 금합니다.
그러므로 입다의 서원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희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을 이방의 신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을 내 욕망을 이루어 주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래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 대가로 무엇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4-6. 삼손 — 강한 몸과 무너진 마음
사사기 13–16장의 삼손은 사사기의 타락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사사기 13장 5절은 그가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며,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삼손에게는 특별한 힘이 주어집니다. 그는 사자를 찢고,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며, 여러 차례 이스라엘의 적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성적인 욕망과 충동, 분노, 폭력으로 얼룩집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부르심에 합당한 성숙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사기 16장에서 삼손은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그를 붙잡습니다.
삼손은 눈이 뽑히고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블레셋의 신전에서 하나님께 힘을 구하고,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립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지만, 자신도 그들과 함께 죽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그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자동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은사를 가진 사람은 여전히 말씀 앞에서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삼손은 강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욕망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는 적을 무너뜨릴 힘을 가졌지만, 자기 마음의 무너짐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깊은 역설입니다.
사사기의 구원자들은 이스라엘의 외부 적을 물리쳤지만, 이스라엘의 내부 죄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힘은 일시적인 구원을 가져왔지만, 영원한 회복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5. 하나님의 영은 불완전한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의 책임
사사기를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셨다면, 그들의 잘못된 행동도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사기 3장 10절은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6장 34절은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감싸셨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11장 29절과 14장 6절, 19절에도 하나님의 영이 입다와 삼손에게 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특정한 사역을 위해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서 도덕적으로 승인하셨다는 주장은 서로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죄를 하나님의 선하심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의 우상숭배는 우상숭배입니다. 입다의 비극적인 서원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한 행동입니다. 손의 욕망과 폭력은 그가 받은 부르심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선한 것으로 바꾸어 부르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행한 악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셔서 많은 사람을 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형들의 악한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구별됩니다.
사사기의 이야기에서도 같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사사들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의 불완전함을 최종적인 구원의 모델로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사들의 능력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사의 인격적 완전성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자기 죄에 대한 면허증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사사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사용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계속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든, 설교자든, 선교사든, 성도든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의 열매가 크다고 해서 인격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은 감사의 이유이지, 교만의 이유가 아닙니다.
6.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이 왕이 되었다
사사기 17–21장, 공동체 전체의 붕괴
사사기의 마지막 다섯 장은 앞부분의 사사 이야기와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줍니다.
이제 문제는 한 명의 사사가 타락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무너졌습니다.
사사기 17장과 18장은 미가라는 사람과 단 지파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미가는 개인적인 신당을 만들고, 우상을 제작하며, 자기 집에 레위인을 두어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그는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에 따라 종교를 만들어 갑니다.
단 지파는 새로운 거주지를 찾는 과정에서 미가의 신당을 약탈하고, 그곳에 있던 우상과 제사장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평화롭게 살던 라이스를 공격하여 그 주민들을 죽이고 그 성읍을 불태웁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사사기의 도덕적 붕괴를 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종교적 권위를 사유화하고, 힘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습니다.
종교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사사기 19–21장에서는 더욱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기브아에서 한 레위인의 첩이 성폭력과 폭력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의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사사기 19장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 피해자의 고통을 단순히 전쟁의 원인이나 이야기의 장치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그 폭력의 참혹함을 숨기지 않습니다.
기브아의 주민들이 행한 악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런데 그 사건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행동 역시 비극적입니다.
지파들은 전쟁을 벌이고, 수많은 사람이 죽으며, 베냐민 지파는 거의 멸절될 위기에 처합니다.
마지막에는 살아남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기 위해 또 다른 폭력적인 행동들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악을 처벌하려 하면서도 악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정의를 말하지만, 정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불의를 행합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마지막이 보여 주는 깊은 비극입니다.
죄는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공동체의 제도와 문화와 관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우상숭배가 가정의 종교를 왜곡하고, 한 지파의 탐욕이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며, 한 지역의 성폭력이 나라 전체를 내전으로 몰아넣습니다. 죄는 고립된 사건이 아닙니다. 죄는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폭력은 폭력을 낳으며, 불의는 더 큰 불의를 만들어 냅니다.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반복되는 선언이 등장합니다. 사사기 17장 6절, 18장 1절, 19장 1절, 21장 25절입니다.
그 가운데 사사기 21장 25절은 책 전체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문장은 사사기의 결론이면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요약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왕이 없었다’는 말은 단순히 정치적인 통치자가 없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사사기의 신학적 문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셨지만, 백성은 자신의 욕망과 판단을 최종 권위로 삼았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것은 각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욕망과 감정이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가는 자기 신당을 세우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단 지파는 자기들의 안전과 생존을 확보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기브아의 주민들은 자기들의 욕망을 따라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떠난 자기 판단은 결국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향한 중요한 질문을 발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왕이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최종적인 권위로 인정합니까? 아니면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욕망에 맞추어 해석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묻습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습니까?
우리는 진리를 따라 우리의 생각을 교정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리를 선택적으로 사용합니까?
사사기는 종교적 형식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의 왕권을 거부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과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사사기는 바로 이 차이를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7. 사사기의 마지막이 가리키는 왕
다윗의 왕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사기의 마지막 문장은 절망적인 선언처럼 들립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다음에 이어질 성경 이야기의 문을 열어 줍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고, 사울이 왕으로 세워집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세우시고, 다윗의 왕권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물론 다윗도 완전한 왕은 아닙니다.
그 역시 죄를 지었고, 그 죄는 자신의 가정과 나라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성경은 인간 왕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인간 왕의 한계를 감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소망은 단순히 왕이라는 제도가 생기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백성을 공의와 의로 다스리며,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할 참된 왕이 필요했습니다.
이 소망은 구약의 예언을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사야 9장 6–7절은 한 아기가 태어나고,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며, 다윗의 왕좌에서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레미야 23장 5–6절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일어나 공의와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에스겔 34장 23절은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워 자기 백성을 돌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약성경은 이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누가복음 1장 32–33절은 예수께서 다윗의 왕위를 받으시고 영원히 왕 노릇 하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사들과 다른 방식으로 왕이십니다.
사사들은 때로 폭력으로 적을 물리쳤지만,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사들은 백성을 외부의 압제에서 구원했지만,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사사들은 불완전한 인간이었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사들의 구원은 일시적이었지만, 예수님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사사기 2장의 반복되는 구원과 실패는 우리에게 더 깊은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단지 환경이 바뀌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레미야 31장 33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법을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6–27절은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자기 영을 백성 가운데 두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 약속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로마서 8장 1–4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이루어 가게 된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사사기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단지 “좋은 지도자를 세우자”는 교훈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도력만으로는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참된 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죄를 용서하시며,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는 왕이 필요합니다. 그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8.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사사기의 거울 앞에 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는 오래전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사사기의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신앙이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교회 건물과 종교적 행사와 전통을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 6장 4–9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다음 세대는 부모의 신앙을 구경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응답하며,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믿음으로 자라야 합니다.
두 번째 교훈은 타협이 작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편의와 필요를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타협이 결국 공동체 전체의 배교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에 대한 작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합리화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미루며, 세상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이는 일이 반복되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교훈은 지도자의 은사와 인격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우상의 올무를 남겼습니다. 삼손은 강력한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사역의 성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 정직, 겸손, 사랑, 책임 있는 삶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옳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네 번째 교훈은 공동체의 죄를 개인의 문제로만 축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17–21장은 우상숭배와 폭력과 불의가 공동체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개인의 회개를 강조해야 할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불의를 바로잡으며, 책임 있는 지도력을 세워야 합니다.
성폭력과 권력의 남용과 탐욕을 종교적 언어로 감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라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사기는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줍니다.
이스라엘이 반복해서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고, 마침내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얼마나 강한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무너질 때에도 하나님은 회복의 길을 여십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회개와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를 자기 소견의 왕좌에서 내려오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참된 왕으로 모시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내 마음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나의 욕망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세상의 성공 기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 놓은 종교적 우상입니까?
사사기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줍니다.
자기 소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 자기 욕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길, 자기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립니다.
맺음말 — 왕이 없는 시대를 넘어, 왕이신 그리스도께로
사사기는 인간의 실패를 감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도자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형식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도 폭력과 불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는 인간의 실패만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그 실패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마침내 우리에게 더 완전한 구원자를 기다리게 합니다.
사사기에는 옷니엘이 있었고, 에훗이 있었고, 드보라와 기드온과 입다와 삼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참된 왕을 향한 기다림으로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왕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 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를 읽는 우리의 마지막 고백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제 소견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제 욕망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저의 왕이 되게 하소서. 저의 실패보다 크신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소서.”
사사기의 어두운 역사는 우리에게 참된 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 왕이 이미 우리에게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론의 기도 — 내 소견의 왕좌를 비우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게 하소서
거룩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사기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말씀으로 인도하셨음에도 우리는 주님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의 선물을 누리면서도 선물을 주신 주님을 잊었고,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소견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우상을 드러내 주시고, 세상의 가치와 욕망에 물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님의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가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곳이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가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믿음의 책임을 맡겨 주옵소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신앙을 전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 삶에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진실하게 증언하게 하옵소서.
불완전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되, 우리의 은사를 자랑하거나 죄를 합리화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진 능력과 직분과 사역이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우상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 마음의 왕좌를 비우고,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다스리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소견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시고,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실패할 때에도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거룩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사사기의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우리의 의로움에 있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참된 왕이시며 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