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전산책

오스왈드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1권 2장.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knowledgeplatform100 2026. 6. 9. 10:17

제 2장. 당신은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 자신의 의무감이나 유익에 매일 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물으신 질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가장 먼저 물으신 질문은 의외였습니다.

“왜 나를 세 번 부인했느냐?”
“왜 실패했느냐?” “왜 끝까지 충성하지 못했느냐?”

주님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베드로에게만 던져진 질문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배할 수 있습니다. 봉사할 수 있습니다. 헌금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역 이전에 '관계'의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태복음 4:19)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직분이나 사명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모세를 부르실 때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먼저 관계가 있었고 그 다음에 사명이 있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일을 위해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해 사람을 부르신다.”

오늘날 교회는 종종 사역자를 양성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습관'만 남아버린 '앙상한 의무감'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8)

 

신앙생활이 오래될수록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주님을 위한 의무 수행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니까 기도하고, 예배해야 하니까 예배하고, 봉사해야 하니까 봉사합니다.

겉으로는 신앙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사랑은 사라지고 습관만 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종교적이었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랑 없는 헌신은 종교생활에 머물지만, 사랑이 있는 헌신은 예배가 됩니다.


유익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닌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한복음 6:26)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예수님보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사랑합니다.

응답받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을 받기 위해, 형통하기 위해 주님께 나아갑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복음의 중심은 축복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단계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찌꺼기 같은 우리를 부르신 은혜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13)

 

바울은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복음은 강한 자를 위한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실패자를 위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있는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실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는 사랑받은 사람이다”에 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린도후서 5:14)

 

사람은 반드시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돈, 명예, 인정, 성공, 심지어 종교적 열심까지도 사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만듭니다.

참된 거룩은 규칙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붙들리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율법적 긴장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입니다.


낮아짐과 닳아짐의 영성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마가복음 10:45)

 

예수님의 삶은 내려감의 삶이었습니다. 말구유, 나사렛, 종의 형체, 십자가.

모든 길이 낮아짐의 길이었습니다.

챔버스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먼저 깨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밀알은 썩어야 열매를 맺고, 향유옥합은 깨져야 향기를 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의 깊이로 측정됩니다.


낙심은 믿음의 훈련장입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2)

 

우리는 낙심을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낙심을 훈련장으로 사용하십니다.

엘리야는 낙심했고, 모세도 낙심했고, 예레미야도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믿음을 빚으셨습니다.

낙심은 믿음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 끝나는 곳입니다.


영적 기갈과 우상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예레미야 2:13)

 

영혼이 메마른 이유는 활동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상은 단순한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사역도 우상이 될 수 있고, 가족도, 성공도, 심지어 교회 생활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회복은 우상을 제거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사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요한복음 10:27)

 

챔버스는 반복해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합니다.

목회자의 설교가 중요합니다. 신앙서적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도의 가장 큰 특권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신앙의 마지막 질문

신앙의 마지막 평가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사랑했느냐입니다.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울려 퍼집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역보다 먼저, 헌신보다 먼저, 열심보다 먼저,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결국 천국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분은 사역이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의 손보다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축복보다 주님 자신을 기뻐하게 하소서.

의무감으로 섬기는 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순종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