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전산책

오스왈드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1권 3장. 사명에 충실하십시오!

knowledgeplatform100 2026. 6. 10. 09:17

사명에 충실하십시오!

구원받은 신자를 넘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제자의 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도행전 1: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습니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는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신앙생활의 수준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을 묻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구원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사명에 대한 확신은 없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천국은 원하지만 십자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받고 싶지만 헌신은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순히 죄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우리를 파송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원의 종착역은 사명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6)

 

우리는 종종 구원을 신앙의 최종 목적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유는 광야를 거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워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이유도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으로 파송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출발선입니다.


주님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만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반복해서 묻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아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마태복음 23:37)

 

예수님의 눈물은 개인적인 상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때문이었습니다.

사명이란 단순한 활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선교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때 비로소 사명은 짐이 아니라 특권이 됩니다.


'복음'은 유용성을 따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현대인은 모든 것을 효율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사랑으로 움직입니다.

마리아는 향유 한 병을 깨뜨렸습니다. 제자들은 계산했습니다.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면..."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4:6)

 

십자가 자체가 비효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손익계산서를 버리는 순간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역보다 사람을 먼저 만드신다

우리는 결과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성품을 원하십니다.

모세는 40년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다윗은 오랜 도피생활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말합니다.

"끝없이 지루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충성하라."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 우리를 다듬고 계십니다.

광야는 버려진 장소가 아니라 준비되는 장소입니다.


사명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거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20)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성공의 길이 아니라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세례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사명의 본질은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능보다 우리의 죽음을 사용하십니다.


말씀과 하나가 된 사람, '말씀을 살아내는 사람'

챔버스는 단순히 성경을 읽는 신앙을 넘어 말씀과 하나 되는 삶을 강조합니다.

성경을 아는 것과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14)

 

참된 제자는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말씀은 정보를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두십시오

챔버스 영성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부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사역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5)

 

하나님이 최고가 될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하늘 비전에 순종하는 사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사도행전 26:19)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비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부족한 것입니다.

순종은 이해한 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설명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합니다.

평안.

성공.

응답.

축복.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 자체를 갈망합니다.

모세는 가나안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천국보다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은 왕권보다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신앙의 가장 높은 단계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오스왈드 챔버스의 묵상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해서 묻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신자인가, 아니면 사명에 충실한 제자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히 교회 출석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속으로 파송된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사명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기도문

주님,

저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것에만 머물러 있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나의 구주로만 알았지,
나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던 순간들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눈물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아픔을 느끼게 하시며,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효율과 성공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선택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
주님께 충성된 종이 되게 하옵소서.

 

광야 같은 시간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충성하게 하시며,
끝까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제 안에 있는 교만과 자기중심성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고백이 저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하늘의 비전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 주님의 말씀과 하나 된 사람,
주님의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