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죽음 앞에서 얼굴을 하나님께로 돌리라 (이사야 37–38장)
위기의 종류는 달라도 믿음의 방향은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위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위기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붙드는 것입니다.
1. 들어가는 말씀 — 사람에게는 두 가지 큰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여러 가지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사야 37장과 38장을 보면 인간이 경험하는 위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밖에서 나를 공격하는 위기입니다. 또 하나는 내 안에서 나를 무너뜨리는 위기입니다.
이사야 37장의 히스기야에게는 앗수르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산헤립 왕이 위협했습니다.
랍사게가 유다 백성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외부에서 밀려오는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38장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적군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이 찾아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말합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37장에서는 적군의 군대가 히스기야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38장에서는 죽음이 히스기야의 침상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37장과 38장은 함께 읽을 때 매우 깊은 메시지를 줍니다.
인생에는 내가 밖에서 싸워야 하는 위기도 있고, 내가 아무리 싸워도 피할 수 없는 위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두 장에서 히스기야가 취한 행동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37장에서는 위기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38장에서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위기의 종류는 달랐지만, 히스기야가 바라본 방향은 같았습니다. 하나님입니다.
2. 이사야 37장 — “위기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라”
이사야 37장 14절을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그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이 장면은 이사야 37장의 중심입니다.산헤립의 편지가 왔습니다.그 편지에는 유다의 멸망을 선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우리에게 무너졌다.” “그 나라들의 신들도 자기 백성을 구하지 못했다.” “너희 하나님도 너희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들고 사람들에게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펼쳐 놓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없는 정보를 알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기도는 내가 붙잡고 있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제 문제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주님 앞에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3.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옷을 찢었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그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했습니다.
시편 56편 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날에 누구를 의지하는가?”
를 묻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제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4. 히스기야의 믿음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나님만 의지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앗수르의 압박 앞에서 조공을 바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히스기야를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열왕기하 18장 5절입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여기에 복음적인 위로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실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습니다.
두려울 때 사람부터 찾기도 합니다.
돈부터 계산하기도 합니다.
정보를 검색하기도 합니다.
인맥을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십니다.
5. 히스기야의 기도 — 문제보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다
히스기야의 기도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자기 문제부터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7장 16절입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히스기야는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합니다.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문제만 바라보면 문제가 하나님보다 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문제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앗수르가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산헤립의 군대가 강력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주가 아닙니다.
하나님만 창조주이십니다. 앗수르는 제국을 움직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앗수르는 군대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천군천사를 거느리십니다. 앗수르는 성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의 기도는 문제를 크게 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기도입니다.
6. 기도의 목적 — “나를 살려주세요”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 주세요”로
히스기야는 20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을 알리이다.”
여기에서 기도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천하 만국이 하나님을 알게 해 주세요.”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물론 우리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기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성숙해지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그러나 무엇보다 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도 같은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리고
“나라가 임하시오며”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다음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7.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37장 2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대하여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기도하였으므로”
이 한 구절은 기도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네가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까 기도할 필요가 없다” 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인간의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여시키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8. 앗수르의 문제는 군사력이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헤립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이 누구냐?”
산헤립의 가장 큰 죄는 단순히 유다를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군사력과 정복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것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허락한 것이다.” 이것은 이사야서의 중요한 섭리 신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이방 제국까지 자신의 역사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도구가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무서운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셨다고 해서 내가 교만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공을 주셨다고 해서 그 성공이 나의 능력 때문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입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9. “남은 자”는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사야 37장 31절은 말씀합니다.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여기서 이사야의 남은 자 신학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남은 자를 보존하십니다. 그런데 그 남은 자의 모습이 뿌리와 열매로 표현됩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열매는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를 묻기 전에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 를 물으십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돈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사람의 인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골로새서 2장 7절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열매는 뿌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시대일수록 말씀에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10. 그리고 38장 — 이번에는 적군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38장으로 넘어가면 놀라운 장면이 나타납니다. 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38장에서는 히스기야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립니다. 이사야 38장 1절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개혁했던 왕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선고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죽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고난이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삶입니다.
11. 히스기야는 이번에도 하나님께 얼굴을 돌립니다
2절입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장면을 37장과 연결해 보십시오. 37장에서는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쳤습니다. 38장에서는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37장에서는 국가적 위기였습니다. 38장에서는 개인적 죽음의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방향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12.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여기에는 두 가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호소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를 근거로 하나님께 호소하려는 인간적인 한계입니다.
일부 주석 전통도 이 구절에서 히스기야가 자신의 종교개혁과 경건을 근거로 호소하는 듯한 자기의식이 드러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의 차이를 봅니다.
신약의 성도는 “하나님, 제가 잘했으니 살려 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소망은 나의 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13.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4–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56편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아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못한 슬픔도 아십니다.
우리가 밤에 혼자 흘린 눈물도 아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게 된 것은 히스기야의 눈물이 하나님을 움직이는 공로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과 구속사의 계획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14. “15년 연장”을 복음의 공식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본문을 “열심히 기도하고 많이 울면 하나님께서 수명을 15년 연장해 주신다.” 라고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본문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모든 성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동일한 방식으로 응답하신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서 회복됩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병과 싸우다가 주님께 갑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한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떤 사람은 해결되지 않은 채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다” 가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든, 무엇을 거두시든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다” 입니다.
15. 히스기야의 15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15년을 더 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성경은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복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히스기야가 더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이후의 모든 일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생명의 길이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많이 가지는 것보다 누구를 위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영원을 향해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16. 히스기야의 찬양 — 죽음의 문에서 생명의 하나님을 발견하다
38장 9절부터 20절에는 히스기야의 노래가 나옵니다.
이 부분은 열왕기하 20장에는 나오지 않고 이사야서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주석 연구에서는 이를 회복 이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 곧 ‘감사 찬양’의 성격을 가진 시로 이해합니다.
히스기야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돌아봅니다. 그는 죽음을 “스올” 과 연결하여 표현합니다.
죽음은 그에게 실제적이고 무서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내셨습니다. 17절에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이것은 놀라운 신앙의 통찰입니다. 고통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17. 하나님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38장의 중심적인 이미지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 전체의 복음 구조와 연결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인간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의 15년 연장은 궁극적인 구원이 아닙니다. 그는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15년을 더 살았지만 영원히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히스기야가 받은 것은 죽음을 잠시 연기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18. 그래서 이사야 37장과 38장은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37장의 문제는 “누가 우리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할 것인가?” 였습니다.
38장의 문제는 “누가 나를 죽음에서 건져낼 것인가?” 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이 두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건지십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죄의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십자가에서 해결되었습니다.
19.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사명으로 주어진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오늘을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셨습니다.
오늘의 가정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일터를 주셨습니다.
오늘의 교회를 주셨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적 선물입니다. 시편 90편 12절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20. “하나님이 시간을 연장하셨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보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10년을 더 주신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5년을 더 주신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1년만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한 달이라면요? 하루라면요?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게 됩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21. 37장과 38장을 함께 읽으면 발견되는 네 가지 믿음
이제 두 장을 하나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위기가 오면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37장에서는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쳤습니다. 우리도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야 합니다.
둘째, 죽음의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십시오.
38장에서는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던 얼굴을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셋째,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37장의 기도는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에서 끝나지 않고 “천하 만국이 주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주세요” 라고 나아갑니다.
넷째, 주어진 시간을 사명으로 살아가십시오.
38장에서 15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늘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입니다.
22. 위기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앗수르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죽음의 선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압박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십시오. 또 여러분 안에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는 절망이 있습니까?
그때 얼굴을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위기보다 크십니다.
우리의 문제보다 크십니다.
우리의 미래보다 크십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크십니다.
심지어 죽음보다 크십니다.
23. 그러나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균형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 는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놓지 않겠다” 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24. 예수님의 겟세마네가 최고의 모델입니다
이 모든 신앙의 완성은 겟세마네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도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정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가장 큰 선이기 때문입니다.
25. 오늘의 적용 — 여러분의 편지를 펼쳐 놓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편지를 펼쳐 놓으십시오.
첫 번째 편지는 두려움의 편지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문제의 편지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가정의 편지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자녀의 편지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건강의 편지일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미래의 편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에게는 죽음과 인생의 의미에 관한 편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제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저를 살려 주셔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저를 다른 길로 인도하셔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옵소서.”
26. 결론 —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사야 37장과 38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십시오.
37장에서는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38장에서는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두 장 모두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문제가 없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죽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까지 넘어서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최종 소망은 히스기야의 15년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종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렇게 고백합시다.
“위기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죽음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큽니다.”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이 선합니다.”
“내가 가진 시간보다 그 시간을 주신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십시오.
오늘의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위기를 만났을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는가?
둘째, 나는 하나님 앞에 내 문제를 실제로 펼쳐 놓고 있는가?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오늘이라는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사야 37장과 38장을 통해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도 산헤립의 편지와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외부에서 공격해 오는 위기가 있고, 때로는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과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때 사람을 먼저 찾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물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에서 끝나지 않게 하옵소서.
“천하 만국이 주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히스기야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위해 살아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소망을 히스기야의 15년 연장에 두지 않게 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두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도 고백합니다. 위기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죽음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큽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선합니다.
우리의 모든 편지를 주님 앞에 펼쳐 놓고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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