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 자원하는 백성의 찬양 (사사기 5장 1–31절)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사사기 5장입니다.
사사기 5장은 사사기 4장의 전쟁이 끝난 뒤 드보라와 바락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사사기 4장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야빈 왕이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었고,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철 병거 900대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5장에 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쟁이 노래가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찬양이 되었습니다. 압제가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경험한 승리는 인간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에는 자원하는 백성이 일어나며, 그 승리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첫째,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찬양하지 못하는가?
둘째, 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어떤 사람은 뒤에 머무는가?
셋째,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1. 승리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5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합니까? 승리한 장군을 칭찬합니다.
군사력을 자랑합니다. 전략을 분석합니다.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웠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쟁의 결과보다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철 병거를 이겼다.” “우리가 시스라를 무너뜨렸다.” “우리의 전략이 탁월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첨부하신 원고에서도 바로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높이고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일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자기 업적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기도하고 일이 잘되면 “내가 기도해서 되었다.” 헌신하고 열매가 나타나면 “내가 수고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잘되면 “내가 잘 키웠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하면 “내가 잘해서 그렇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것이 은혜의 신학입니다.
인간의 수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수고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도할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섬길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도의 자랑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먼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 5장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깨어라.” 12절입니다. “깨어라 깨어라 드보라여 깨어라 깨어라 노래할지어다.” 왜 이렇게 반복합니까?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데 사람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은 단순히 육체적인 수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 무감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는데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시는데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을 읽지만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으로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적 잠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외칩니다. “깨어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라.” 그리고 다시 “노래하라.”
여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깨어남 → 일어남 → 참여함 → 찬양함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봅니다. 하나님의 일을 본 사람은 움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사람은 결국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단순히 노래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입니다.
3.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십니다
사사기 5장 4–5절은 놀라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시인은 전쟁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묘사합니다.
특히 20절은 더욱 강력합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으며.”
그리고 21절에서는 기손 강물이 적군을 휩쓸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전쟁에 개입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사기 4장과 5장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사기 4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줍니다.
사사기 5장은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여줍니다.
학자들도 사사기 5장을 사사기 4장의 사건을 시적으로 해석한 본문으로 이해합니다.
특히 기손 강의 범람과 가나안 철 병거의 무력화가 하나님의 개입을 강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시스라는 철 병거 900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철 병거는 최첨단 군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철 병거가 가장 강력해지는 환경을 뒤집어 버리십니다.
비가 내립니다. 강물이 범람합니다. 땅이 진흙탕이 됩니다. 철 병거가 오히려 적군에게 장애물이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 때문에 일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의지하는 강함을 무력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은 철 병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승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입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 싸우신다고 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싸우신다고 해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사기 5장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기 때문에 백성이 자원하여 참여합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이것이 신학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응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헌신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13절을 함께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5.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사사기 5장 14–18절에는 여러 지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 스불론, 잇사갈, 그리고 납달리. 이들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스불론과 납달리에 대해서는 놀라운 평가가 나옵니다. 18절입니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고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그런데 모든 지파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르우벤은 고민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양 우리 가운데 앉아서 양 떼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었느냐?”
단과 아셀은 바다와 항구에 머물렀습니다. 기록상 그들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인가?”
물론 여기서 모든 성도를 똑같은 방식의 사역으로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와 다른 부르심을 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에서 가장 큰 일을 하라.” 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네 몸을 드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섬김일 수 있습니다. 기도일 수 있습니다.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는 일일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낙심한 사람을 찾아가는 일일 수 있습니다.
교회의 한 영혼을 돌보는 일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일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졌느냐가 중요합니다.
6.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사기 5장의 무서운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어떤 지파는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23절은 메로스를 향해 매우 강한 저주를 선언합니다.
“여호와의 일을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일을 도우러 용사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오늘 교회에 그대로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한 방식으로 군사 전쟁을 수행하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혈과 육에 대하여 싸우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오늘의 영적 전쟁은 사람을 적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거짓과 싸우는 것입니다.
유혹과 싸우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로막는 어둠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안의 옛사람과 싸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입니다.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그러므로 영적 전쟁의 첫 번째 전장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입니다.
7. 야엘은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예상 밖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사기 5장의 또 하나의 놀라운 인물은 야엘입니다.
24절입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사사기 4장에서는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5장에서는 그 사건을 노래로 다시 해석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시스라는 군대 장관입니다. 철 병거 900대를 가진 강력한 군사 지도자입니다. 반면 야엘은 군사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엘을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예상하는 방식으로만 일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왕이 아니라 목동이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말이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평범한 젊은 여인이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통하여 강한 자를 무너뜨리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9절입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8. 그러나 야엘의 이야기를 오늘 그대로 폭력의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은 신학적으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사사기 5장의 야엘은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가나안의 압제와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고대 전쟁 상황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 장면을 그대로 가져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 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신약의 영적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아니라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전쟁입니다.
십자가는 그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죽이심으로 승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전쟁은 사람을 쓰러뜨리는 전쟁이 아니라 죄를 쓰러뜨리는 전쟁입니다.
미움을 이기는 사랑의 전쟁입니다.
거짓을 이기는 진리의 전쟁입니다.
절망을 이기는 소망의 전쟁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전쟁입니다.
9. 시스라의 어머니와 야엘의 대조는 두 종류의 삶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5장 후반부는 매우 독특합니다. 한쪽에는 야엘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시스라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야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행동합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창문에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28절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창살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녀는 아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녀가 기다리는 것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전리품, 화려한 옷, 그리고 전쟁에서 얻을 것들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두 세계를 대조합니다.
야엘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전쟁을 통해 얻을 자기 집안의 영광을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 왕국을 바라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아니면 내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아니면 내 가정의 성공만입니까?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돌보는 것도 귀합니다.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먼저가 중요합니다.
10.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영적 전쟁의 현장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도 영적 전쟁에 포함될 수 있지만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신학적으로 확장해 봅시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두 영역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이고 이것은 세속적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삶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직업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가정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자녀 교육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재정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시간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휴식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말 한마디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러므로 먹고사는 것도 영적 전쟁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돈을 신뢰할 것인가, 정직을 선택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 염려할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합니다.
11. 자녀에게도 영적 전쟁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사기 5장은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잘 싸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기록합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좋은 대학에 가는 법만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을 많이 버는 법만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좋은 직업을 얻는 법만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유혹을 거절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실패했을 때 하나님을 붙드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공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도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교육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먼저 살아내야 합니다.
자녀에게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부모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힘을 잃습니다.
자녀에게 말씀을 읽으라고 하면서 부모가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그 말은 공허해집니다.
자녀에게 교회를 사랑하라고 하면서 부모가 교회를 비판하기만 한다면 자녀는 교회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교육은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2. 하나님은 혼자 싸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사기 5장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영웅주의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함께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움직입니다.
베냐민이 움직입니다.
잇사갈이 움직입니다.
스불론이 움직입니다.
납달리가 움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이것은 교회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교회는 관객석이 아닙니다.
교회는 함께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눈만으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손만으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발만으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각 지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청소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새가족을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재정으로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작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일이 있을 뿐입니다.
13. 결국 승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사기 5장의 절정은 31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기록됩니다.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이것이 사사기 5장의 결론입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평안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평안은 인간이 만들어낸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구약의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원수가 무너지고 땅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깊은 원수를 다루십니다. 죄입니다. 사망입니다. 사탄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사기 5장의 전쟁은 지역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주적 구원의 사건입니다.
사사기에서 기손 강물이 적군을 쓸어버립니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인을 씻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잠시 평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원한 화평이 주어집니다.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미 승리하신 왕의 백성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종말론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 싸웁니다.
십자가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부활도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왕으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갑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든 원수가 완전히 굴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면서도 싸웁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합니다.
눈물이 있어도 소망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히브리서 10장 35–36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15. 매일 승리하지 않아도 매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항상 사사기 5장 같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하는 날도 있지만 패배하는 날도 있습니다.
응답받는 날도 있지만 기다리는 날도 있습니다. 기쁜 날도 있지만 눈물 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매일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승리의 사건보다 인내의 시간이 더 많지만, 하나님의 때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때문에 매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좋아서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양합니다.
오늘 응답받지 못해도 찬양합니다. 오늘 병이 낫지 않아도 찬양합니다. 오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환경을 보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16.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사사기 5장 2절은 다시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하나님은 억지로 끌려오는 사람보다 기쁨으로 자신을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억지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해서 예배하고 있습니까?
억지로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해서 섬기고 있습니까?
누가 알아주기 때문에 봉사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을 믿기 때문에 봉사합니까?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헌신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헌신합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인정은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를 다시 일으킵니다.
17.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깨어라, 일어나라”
사사기 5장 12절의 외침을 다시 들으십시오. “깨어라 깨어라 드보라여 깨어라 깨어라 노래할지어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깨어라.” 영적으로 잠들지 마십시오. 세상의 소리에만 반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일어나라.” 하나님의 일을 구경만 하지 마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십시오.
“노래하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찬양하십시오.
결론 — 나는 어느 지파에 서 있습니까?
사사기 5장은 단순히 오래된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하나님의 역사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 백성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가정을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다음 세대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깨어라.”
“일어나라.”
“나를 찬양하라.”
“내가 싸우는 전쟁에 믿음으로 참여하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결국 자신의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충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왕의 나라에 참여하는 특권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습니다.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확장하고 계십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날에는 모든 전쟁이 끝날 것입니다. 모든 눈물이 닦일 것입니다. 모든 죽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하나님의 승리를 노래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6절입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오늘의 작은 충성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의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의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자녀에게 건네는 한마디의 믿음의 말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누군가에게 베푸는 사랑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렇게 고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깨어서,
일어나서,
자원하여,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노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사기 5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우리의 힘과 능력만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영적 잠을 깨워 주옵소서. “깨어라”는 말씀 앞에 깨어나게 하시고, “일어나라”는 말씀 앞에 일어나게 하시며,
“노래하라”는 말씀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르우벤처럼 고민만 하다가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단과 아셀처럼 자신의 자리와 이익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삶을 드리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가정을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성공만 가르치지 않게 하시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시며, 말씀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시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법을 가르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의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죄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며,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시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나 사람을 우리의 적으로 삼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승리가 우리의 능력에서 나오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오늘도 우리를 주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백성으로 불러 주옵소서.
마지막 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옵소서”라는 사사기 5장 3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이 어둠 가운데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이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빛나게 하시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복음의 빛 가운데 서게 하옵소서.
그리고 모든 승리의 순간마다 우리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평생의 찬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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