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왕이 되다 — 일상 속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 아래 세워지는 사람” (사무엘상 9–10장)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왕이 되다, 하나님의 섭리, 소명, 성령, 회개 그리고 말씀
일상 속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 아래 세워지는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9장과 10장입니다.
“우리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울은 왕이 되려고 집을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왕관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습니다.
왕의 자리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이 나귀를 찾으러 걸어간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은 그를 사무엘에게 인도하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사무엘상 9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전환점이 될지 모릅니다.
오늘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잠언 16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더 깊습니다. 우리의 시야보다 하나님의 시야가 더 넓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오늘을 통하여 내일을 준비하십니다.
1.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됩니다
사무엘상 9장은 아주 평범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에게 나귀들이 있었는데 그 나귀들이 없어졌습니다.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가서 나귀를 찾으라.” 그래서 사울은 사환과 함께 나귀를 찾으러 갑니다.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과 베냐민 땅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찾지 못합니다. 결국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평범한 사건 뒤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사울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나귀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왕을 사무엘에게 보내고 계셨습니다.
사울에게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는 섭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우리가 문제라고 부르는 사건을 하나님께서는 섭리의 재료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이 일을 통하여 내가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겉으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사건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나귀가 없어졌습니다. 사울이 길을 떠났습니다. 나귀를 찾지 못했습니다. 사환이 선지자를 이야기했습니다. 사울에게 예물이 있었습니다. 성읍으로 올라가는 길에 물 길러 나온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마침 사무엘이 그곳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통찰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움직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셨습니다. 사무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왕이 될 생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왕으로 세울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구원의 길로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출애굽의 지도자를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사울은 나귀를 찾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을 찾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으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하여 자신의 소명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만남 하나를 통해 인생의 방향이 바뀝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모든 사건을 즉시 해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건 자체가 선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난도 있습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죄의 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당신의 주권 아래에서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3. 사울에게는 최선과 겸손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초기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최선과 겸손입니다.
사울은 나귀를 찾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나귀를 찾았음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큰일을 할 때만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을 보십니다.
가정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보십니다.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보십니다.
교회에서 맡은 작은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보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보십니다.
사람들이 박수쳐 주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충실한지를 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일의 크기보다 충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오늘의 작은 일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가정생활이 소명입니다.
오늘의 직장생활도 소명입니다.
오늘의 기도도 소명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도 소명입니다.
오늘 만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소명입니다.
4. 그러나 사울의 겸손이 끝까지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변질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지만 나중에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판단을 앞세웁니다.
처음에는 왕의 자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 충돌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무서운 경고입니다. 좋은 출발이 좋은 결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처음의 은혜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과거의 은혜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어제의 순종으로 오늘의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사울의 실패는 능력이 부족해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2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남깁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신앙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많이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5. 하나님은 사울에게 세 가지 표적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상 10장으로 넘어가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세 가지 표적을 주십니다.
첫째는 라헬의 묘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귀가 이미 찾았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둘째는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중 한 사람이 사울에게 떡 두 덩이를 줍니다.
셋째는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여 그들과 함께 예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이 징조가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단순히 왕이라는 직분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확증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특히 세 번째 표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합니다. 성경은 그가 다른 사람처럼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상 10장 6절입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그 부르심을 감당할 은혜도 함께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고 우리를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으로 준비시키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말씀을 주십니다. 공동체를 붙여 주십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필요한 환경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6. 성령의 역사는 직분보다 먼저입니다
사무엘상 10장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울에게 왕이라는 직분이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원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직분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시작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라는 직분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집사라는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은 책임이지 면허가 아닙니다.
직분은 특권이면서 동시에 섬김의 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권력 구조와 하나님 나라의 구조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3–44절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많이 섬기는 사람입니다.
7. 그런데 사울은 왕이 된 뒤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에서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제비를 뽑았더니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가 여기 왔나이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짐보따리 사이에 숨었느니라.”
왕으로 선택받은 사람이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그러나 이 장면은 사울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봅니다.
처음에는 “나는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내 왕위를 지켜야 합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의식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사람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는데 나중에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처음 사랑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처음 겸손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하옵소서.”
8. 왕을 세우는 날, 사무엘은 먼저 회개를 선포합니다
이제 사무엘상 10장 17절부터 중요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모읍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날입니다.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새로운 왕이 세워집니다.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축하부터 하지 않습니다. 먼저 죄를 지적합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였도다.”
왜 왕을 세우는 날에 죄를 말합니까?
왜 축하해야 할 날에 회개를 말합니까?
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말합니까?
왕이 세워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통치이기 때문입니다.
9.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왕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이유는 주변 나라들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야 하겠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하지 않고 세상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왕이신데도 인간 왕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통치권의 문제입니다.
“누가 나를 다스릴 것인가?” 이 질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돈이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성공이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자녀가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내 자존심이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십니다”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10. 왕을 세우는 날에도 말씀은 왕보다 높았습니다
사무엘상 10장 25절은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백성에게 설명하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왕이 생겼지만 왕이 절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왕도 말씀 아래 있습니다. 왕도 하나님의 법 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은 무제한적인 권력이 아닙니다.
신명기 17장 18–20절은 왕이 율법을 읽고 평생 그 말씀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즉 성경의 왕은 말씀 위에 있는 왕이 아니라 말씀 아래 있는 왕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도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의 가장도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도 하나님의 정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말씀보다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내 경험이 말씀보다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내 감정이 말씀보다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설교자의 말도 말씀보다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11. 그래서 사무엘상 10장은 회개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 구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10장은 왕의 등장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깊은 중심이 있습니다.
회개 → 하나님의 선택 → 왕의 세움 → 말씀의 통치 이 흐름입니다.
이것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먼저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건물이 커지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바로 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무엘상 10장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왕이 있어도 말씀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지도자가 있어도 말씀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조직이 있어도 말씀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프로그램이 많아도 말씀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많아도 회개가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12. 오늘날 교회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정말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더 좋은 시스템입니까?
더 좋은 프로그램입니까?
더 많은 사람입니까?
더 큰 건물입니까?
물론 그런 것들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본질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교회는 말씀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도 세상의 조직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0장의 경고는 바로 이것입니다. 왕을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13. 사울의 삶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0장 마지막에는 매우 의미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과 함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울을 멸시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그리고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도 않습니다.
즉 왕이 세워졌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즉시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반드시 모든 사람이 박수쳐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명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세우셨는가입니다.
14. 예수님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점에서 사무엘상 9–10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기대에 맞는 왕처럼 보였습니다.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국 보여주시는 진정한 왕은 인간이 기대하는 왕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왕좌가 아니라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백성의 환호 속에서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왕이 되셨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눈에 왕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 왕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참된 왕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8–11절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여기에서 복음의 역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섬김을 통해 왕권을 나타내십니다.
15. 사울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왕이십니다
사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단순히 “사울처럼 하지 말자”고 결론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사울은 실패하는 왕입니다. 다윗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솔로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결국 인간 왕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왕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왕인가?” 성경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분을 만왕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는 왕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하신 왕입니다.
사탄의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신 왕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도망하지 않으신 왕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순종하신 왕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왕입니다.
사울의 왕권은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권은 영원합니다.
16.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사무엘상 9–10장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무엇으로 만드실 것인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울은 나귀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평범한 일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을 하십시오.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직장에서 정직하십시오.
교회에서 충성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작은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회개해야 한다면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17.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평범한 일상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나귀를 찾는 일이 왕을 준비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하나님께는 거룩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오늘의 작은 순종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합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 사명을 감당할 표적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자랑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믿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말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왕보다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회개를 앞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의 규례를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를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계획을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18.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데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작은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사용하실지 몰라서 오늘의 충성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과거에는 겸손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경험을 더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돈이 나의 왕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가 나의 왕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성공이 나의 왕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사무엘상 10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너의 왕인가?” 그리고 복음은 대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그분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결론 — 나귀를 찾으러 간 길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은 나귀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왕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사울은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내일을 볼 수 없어도 하나님은 내일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의 작은 일에 충실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겸손하십시오. 말씀을 붙드십시오.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일상보다 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실패보다 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상황보다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제 길을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겠습니다.”
“주님, 큰일만 기다리지 않고 오늘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겠습니다.”
“주님,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주님, 제 삶의 왕좌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잠언 3장 5–6절의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걸어가는 길이 아무리 평범해 보여도, 그 길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맡은 일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준비시키고 계실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나귀를 찾으러 간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걸음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겸손하십시오.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아멘.
'[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성 칼럼] '후회' (사무엘상 15장) (0) | 2026.08.31 |
|---|---|
| [영성 칼럼] 끊임없이 다른 왕을 찾는 백성들 (사무엘상 12장) (0) | 2026.08.28 |
| [영성 칼럼] “도움의 돌” (사무엘상 6–8장) (0) | 2026.08.27 |
| [영성 칼럼] 이가봇. “영광이 떠났다.” (사무엘상 3-4장) (0) | 2026.08.27 |
| [영성 칼럼] 나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기도 (사무엘상 2장) (0) | 2026.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