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후회' (사무엘상 15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8. 31. 09:10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 하나님은 왜 사울을 버리셨는가?” (사무엘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무겁고 두려운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때 하나님께 선택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리고 마침내 사무엘은 사울에게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사울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거절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오늘 사무엘상 15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나 자신의 모습을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 뜻대로 살고 있는가?”

사무엘상 15장은 단순히 사울 왕의 실패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 사울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있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은혜

사무엘상 15장 1절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으니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곧바로 심판부터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기회를 주셨습니다. 먼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에게 주어진 “마지막 회개의 기회”​로 사무엘이 다시 사울에게 찾아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십니까? 은혜입니다.

마음에 찔림이 옵니까? 은혜입니다.

설교를 듣다가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까? 그것 역시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면 우리는 죄를 죄로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께 “나를 칭찬해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제가 보지 못하는 제 죄를 보여주십시오.” 왜냐하면 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직 회개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판단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신 명령은 분명했습니다. 아말렉에 대한 심판을 수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불편한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에 대해 그렇게 엄중한 심판을 명령하셨을까요?

이 문제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현대의 개인이 다른 사람을 향해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사무엘상 15장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구속사 속에서 주어진 특정한 역사적 심판 명령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아말렉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사건과 연결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절은 말합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라.”

 

신명기 25장 17–19절도 이 사건을 회상합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쳐 있을 때 뒤에서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의 행동을 단순한 군사적 충돌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따라서 사무엘상 15장의 진멸 명령은 사울 개인의 감정이나 이스라엘의 민족적 우월성을 위한 명령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이라는 구속사적 맥락에 놓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울이 그 심판의 기준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두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은 좋은 것은 남겼습니다. 아각 왕도 살려 두었습니다. 좋은 양과 소도 남겼습니다.

본문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말합니다.

 

사울과 백성이 “가치 있는 것”​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불순종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교묘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는 하되, 내가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남겨놓겠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3. 사울의 가장 큰 문제는 불순종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묻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대답합니다.

 

“백성이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얼마나 종교적입니까?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남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선포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매우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종교행위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싫어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예배였습니다. 문제는 불순종을 제사로 덮으려는 태도입니다.

 

칼빈의 해석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제사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예배의 본질이며 제사는 순종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문제는 “제사를 드렸느냐, 드리지 않았느냐”가 아닙니다.

“누가 주인인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십니까?

아니면 사울이 왕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기준입니까?

아니면 내 판단이 최종 기준입니까?

 

4. 가장 무서운 영적 상태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죄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 사울은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그런데 뒤에서 양과 소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사무엘이 묻습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이 장면은 정말 무섭습니다. 사울은 지금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는데도 죄가 보이지 않습니다. 불순종했는데도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뜻대로 했는데도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영적 마비입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기념비는 그의 영적 몰락을 보여주는 비석처럼 나타납니다.

 

여러분, 우리도 기념비를 세울 수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봉사했다.” “내가 교회에 이만큼 헌금했다.”

“내가 몇 년 동안 직분을 감당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다.”

 

그 모든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말씀에는 순종했느냐?”

이 질문 앞에서는 모든 종교적 업적이 침묵해야 합니다.

 

5. 사울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사울의 문제를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중심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왕권 폐위를 선언하자 사울은 결국 고백합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나이다.”

여기서 죄의 뿌리가 드러납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왕권과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3절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적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기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사람이 박수치면 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비판하면 내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의 박수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삽니다.

 

6. 사울은 세 번이나 회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의 후반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울이 한 번 회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보면 그 회개 속에 변명이 섞여 있습니다.

“백성이 두려웠습니다.”

“백성이 그렇게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부탁합니다.

“나와 함께 돌아가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왜 이렇게 말합니까?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일까요? 본문의 흐름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사무엘과 함께 예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옷자락이 찢어집니다.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런데 간절함과 회개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눈물이 난다고 회개가 아닙니다. 목소리가 떨린다고 회개가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반드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내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울은 죄의 결과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죄 자체를 미워하는 데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거짓 회개의 특징입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다시 제가 원하는 것을 주세요.” 진정한 회개는 다릅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주님의 뜻이 옳습니다.”

 

7.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회개를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복을 주세요.”

 

그러나 성경적 회개는 훨씬 깊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께서 옳으십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회개할 때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51편 4절에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잘못 판단하셨습니다”가 아닙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8.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오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호세아 6장 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고 번제보다 원하노라.”

미가 6장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많은 제물입니까? 수많은 제사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사야 1장에서도 하나님은 입술로 드리는 제사와 삶이 분리된 예배를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5장의 메시지는 구약 시대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배하면서 말씀에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자기 뜻을 고집할 수 있습니다.

찬양하면서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할 수 있습니다.

헌금하면서 탐욕을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면서 교만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울의 비극이었습니다.

 

9. 사울의 문제는 “조금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신을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아주 무서운 말을 합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

왜 불순종을 이렇게 심각하게 표현할까요?

왜냐하면 불순종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내가 옳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라.” 그런데 내가 말합니다.

 

“하나님, 그것은 너무 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것을 내려놓아라.” 내가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신뢰하라.” 내가 말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방법이 더 좋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순종은 단순한 행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 삶의 조언자가 되고
내가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가?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기 판단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왕권을 거두십니다.

 

10.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은 하나님의 변덕 때문이 아닙니다

11절과 29절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수하셨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이 인간처럼 정보를 잘못 알고 결정을 번복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이 실제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본문이 스스로 이 긴장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15장 29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나님께서 변개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변덕스럽게 마음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이 확정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11. 그런데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사무엘상 15장의 구속사적 의미가 더욱 깊어집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후 성경은 다윗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다윗 역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물론 다윗의 삶을 미화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심각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드러났을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사울은 사람 앞에서 왕으로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문제는 “죄가 많아서”만이 아닙니다. 죄를 지적받았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2.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의 메시지를 단순히 “사울처럼 불순종하지 말자”로 끝내면 기독교 설교로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사울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자기 뜻을 따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합니다. 우리 역시 죄를 합리화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종교적 행위로 우리의 불순종을 덮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완전한 순종을 이루신 왕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자기 뜻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울은 자기 왕권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사울은 사람의 영광을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왕좌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8절은 말합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에 복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왕이셨지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사울은 왕권을 붙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왕권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영광을 지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울을 보면서 단순히 “나는 사울처럼 살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사울과 같은 내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13. 진짜 예배는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배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주일에 예배드리고 월요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예배와 삶이 분리된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신 것을 다시 붙잡는다면 우리는 사울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미워하고, 정직하라고 하셨는데 거짓말하고, 겸손하라고 하셨는데 자신을 높이고,

탐심을 버리라고 하셨는데 더 가지려고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셨는데 사람의 평가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예배는 드리지만 순종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예배했느냐?”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내 말을 들었느냐?”

 

14.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사울”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지 마십시오.

목회자에게 적용하지 마십시오. 다른 교인에게 적용하지 마십시오. 먼저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내 안에 사울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사울.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셨는데 “이것만큼은 남겨두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울.

죄를 지적받았는데 “내가 그런 의도로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변명하는 사울.

사람의 평가가 두려워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말을 따르는 사울.

 

그리고 가장 무서운 사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가 순종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울입니다.

 

15. 하나님이 주시는 “찔림”을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혹시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내가 바로 그 사람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가 알고도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찔림 자체가 은혜일 수 있습니다.

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찌르시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여 멸망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이 아프다면 그 아픔을 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실제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16.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다섯 가지 질문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섞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그렇지만…” 이 말이 우리 안에 얼마나 자주 등장합니까?

말씀보다 내 경험을 높이고,

말씀보다 내 감정을 높이고,

말씀보다 시대의 가치관을 높이고, 말씀보다 사람의 의견을 높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 나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사람의 비판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사회적 평가입니까?

내 체면입니까?

내 명예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

넷째, 나는 회개할 때 죄를 인정합니까, 아니면 변명합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붙입니까?

“하지만…”

“상황이…”

“다른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사울의 길에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변명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합니다.

다섯째, 나는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순종하고 있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헌금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봉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모든 것과 분리된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사무엘상 15장은 사울의 왕권이 무너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문제는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사울은 실패했지만 실패한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판단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성공하고 있는가?” 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입니다.

 

교회에서 인정받고 있습니까? 좋습니다.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귀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있습니까?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보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네게 말한 것을 네가 들었느냐?”

사무엘의 외침이 오늘 우리의 귀에 들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그리고 그 말씀의 중심은 이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마지막 복음적 적용]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완전한 순종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울처럼 불순종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선택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사랑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단순히 “사울처럼 살지 마라.” 가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 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순종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드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값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내는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과 순종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거부한다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함께 손모아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무엘상 15장의 사울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때로 사울처럼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사랑했습니다.

잘못을 지적받으면서도 회개하기보다 변명했습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사울의 마음을 드러내 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예배가 삶으로 이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찬양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자기의 뜻을 내려놓으시고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우리의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게 하시고,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시고,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하시고, 죄를 지었을 때 변명하지 않고 즉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라는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 앞에서 “주님, 제가 듣겠습니다. 주님, 제가 돌이키겠습니다. 주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입술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를 빚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