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사도행전 11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7. 14:11

상처, 고난받을 때,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사도행전 11장)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받았을 때 내가 걸림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인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때는 질병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아닙니다. 환경의 문제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우리를 가장 깊이 무너뜨릴 때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받는 상처는 더 아픕니다.

세상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원래 세상은 그런 곳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형제에게 상처를 받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당신도 예수 믿는 사람이잖아.”

“우리가 같은 교회인데 왜 나에게 이렇게 하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오히려 신앙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아주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께서 이방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베드로를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비난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3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거늘.” 여러분, 베드로가 무슨 일을 잘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일을 해도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태도가 놀랍습니다.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가 베드로인데 감히 나에게 그렇게 말해?” 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처음부터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11장 4절은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차례로 설명하여.” 베드로는 감정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베드로가 비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설명의 힘과 온유함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비난을 받으면 즉시 반응합니다.

“너는 뭔데 나를 판단해?” “네가 뭘 알아?” “나도 할 말 많아.”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하나님께 가지고 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2. 기도하는 사람은 상처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크게 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옵니다.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립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베드로에게는 오랜 신앙적 전통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생각을 깨뜨리십니다. 사도행전 10장 1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가 처음에는 음식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이것이 베드로의 영적 성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장에서 베드로는 이 변화된 순종 때문에 비난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의 익숙함을 더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더 옳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일을 보면서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불신앙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적 경험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높이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경계를 넘어갑니다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이 베드로를 비난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왜 이방인과 함께 먹었습니까?”

그들의 신앙에는 오랜 경계가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 우리와 그들. 

 

그런데 복음은 그 장벽을 무너뜨립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다.”

 

십자가는 단순히 개인의 죄만 용서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도 허무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벽을 세우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복음 안에서 벽을 허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 사람을 구분합니다.

“저 사람은 우리 편인가?”

“저 사람은 오래 믿었나?”

“저 사람은 우리 교회 출신인가?”

“저 사람은 나와 성향이 맞나?”

“저 사람은 나와 정치적 견해가 같은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묻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복음은 나의 경계를 확장시킵니다.

 

4. 상처를 받았을 때 기도하면 내 뜻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이동합니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베드로는 계속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방인을 만났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비난을 받았을 때도 하나님의 뜻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내 뜻을 관철시키는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점점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합니까?”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 저 사람을 통해서도 저를 다듬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저 사람을 변화시켜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먼저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5. 내 뜻이 꺾이면 분노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눈물이 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영적 분별입니다.

내 뜻대로 살면 내 뜻이 꺾일 때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내 뜻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면 상황이 내 뜻과 다를 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옳습니다.”

“주님의 길이 제 길보다 높습니다.”

 

이사야 55장 8–9절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생각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6. 비난을 받을 때 베드로는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설명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베드로는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하기 위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11장 17절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절정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막겠느냐.”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내가 중심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싫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 기준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이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면 내가 막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베드로의 논리는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동일하게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셨다면 사람이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시는 문을 사람이 닫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사람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을 우리가 우리의 기준으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7. 교회에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1장의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가면 안디옥 교회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아주 대조적인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의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달랐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3절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현장을 보고도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봅니다.

어떤 사람은 가능성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부족함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어떤 사람은 흠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디딤돌입니까?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일어나도록 돕는 사람.

내가 주목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주목받도록 세워주는 사람.

내가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은사를 발견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8. 바나바의 위대한 점은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은 바나바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여기서 “착하다”는 말은 단순히 성격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의 선함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합니다. 그래서 다소에 있는 사울을 찾아갑니다.

사도행전 11장 25절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바나바는 사울을 경쟁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할 동역자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위대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세워줍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1장 26절입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우고, 공동체가 말씀으로 세워질 때 세상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9. 말씀 없는 부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1장의 안디옥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만이 아닙니다.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일 년 동안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활동이 있는데 기도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콘텐츠가 있는데 복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 성장은 사람의 숫자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너희 속에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일은 사람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10. 진짜 성령 충만은 사랑과 나눔으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1장 마지막 부분은 더욱 놀랍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기근이 예고됩니다.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으로 말합니다.

 

사도행전 11장 28절입니다.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29절입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그리고 30절에서 실제로 보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짜 영성의 열매를 발견합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기도만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필요를 보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의 깊이는 내가 얼마나 신비한 체험을 했느냐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얼마나 사랑으로 감당하느냐로도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1. 그러므로 상처받았을 때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습니까?

억울한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오해를 받고 있습니까?

사람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어졌습니까? 오늘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기도하십시오.

상처를 사람에게만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먼저 가져가십시오.

시편 62편 8절입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저 너무 억울합니다.”

“주님, 저 사람이 너무 밉습니다.”

“주님, 저도 상처받았습니다.”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기도는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둘째, 설명하되 공격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처럼 차례로 설명하십시오. 사실을 말하십시오. 필요하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십시오.

그러나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말하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4장 15절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진리만 있으면 차갑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나바처럼 되십시오. 사람의 약점만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십시오.

“저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구나.”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구나.”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시는구나.”

이렇게 바라보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은 걸림돌에서 디딤돌로 변화됩니다.

12.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디딤돌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걸림돌이냐, 디딤돌이냐?”

누군가 넘어질 때 “저 사람 왜 저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 제가 저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 실수했을 때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을 때 “저 사람이 뭘 안다고?”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통해 무엇을 하실지 기대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 때 교회가 살아납니다.

 

13.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도행전 11장의 베드로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이방인 선교를 완전히 이해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 역시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해 교회의 생각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가진 전통과 경험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제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뜻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14. 기도하면 상처가 사명이 됩니다

기도하면 상처가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비난의 자리가 복음을 설명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데려왔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나중에 세계 선교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의 어려움만 보지 마십시오.

지금의 상처만 보지 마십시오.

지금의 오해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만들어 가실지를 바라보십시오.

 

로마서 8장 28절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비난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상처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고난이 없어서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을 보기 때문에 강한 사람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행전 11장은 우리에게 네 가지를 가르칩니다.

 

첫째, 기도하십시오.

상처받았을 때 사람에게 달려가기 전에 하나님께 달려가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십시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습니다.

 

셋째, 비난받을 때 사랑 안에서 진리를 설명하십시오.

베드로처럼 감정으로 싸우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증언하십시오.

 

넷째, 바나바처럼 디딤돌이 되십시오.

사람의 약점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의 박해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부의 비난과 경쟁과 질투와 정죄가 교회를 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 사람의 기도,

한 사람의 온유함,

한 사람의 용서,

한 사람의 격려,

한 사람의 믿음,

한 사람의 희생이 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뒤에 복음이 퍼졌습니다.

베드로의 순종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바나바의 격려를 통해 안디옥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사울과 바나바의 말씀 사역을 통해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오늘의 순종이 내일 어떤 열매를 맺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여러분이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한마디의 격려가 그 사람의 인생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참아낸 한 번의 분노가 한 가정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드린 한 번의 기도가 교회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선택한 용서가 다음 세대에 새로운 길을 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상처받았다고 멈추지 마십시오. 비난받았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해받았다고 하나님의 일을 내려놓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붙드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십시오.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워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내 뜻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일터가, 우리의 공동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저 사람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안디옥에서 사람들이 제자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말과 행동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저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라는 증거를 남기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감정으로 반응하지 않고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막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과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속되다고 하지 않게 하옵소서.

 

바나바와 같은 마음을 주옵소서. 

사람의 약점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기뻐하게 하시며,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하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게 하옵소서.

정죄하는 교회가 아니라 회복시키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경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교회가 되게 하시며,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바나바의 마음을 주시고, 베드로처럼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며,

사울과 바나바처럼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상처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우리의 눈물도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의 실패도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의 아픔도 사용하여 주셔서,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선을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라는 증거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