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만몬의 영과 권세, 하나님이 정말 나의 공급자이신가?
본문: 마태복음 6장 19–34절, 특히 24절 누가복음 16장 10–13절 디모데전서 6장 6–10절
여러분, 우리는 돈을 사용하면서 살아갑니다. 돈으로 밥을 먹고, 집을 구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병원에 가고,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돈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돈에 대해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장 24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돈을 가지고 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돈 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돈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돈이 도구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나의 안전이 되고, 돈이 나의 미래가 되고, 돈이 나의 자존심이 되고, 돈이 나의 가치가 되고, 돈이 나의 행복을 결정하고, 돈이 나의 두려움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돈은 더 이상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그때 돈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들어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상숭배의 문제로 다룹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을 가리켜 **“우상 숭배”**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1. 돈의 문제는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제자도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재정에 대한 원칙을 가져야 하며,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정을 바라보는 것이
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돈에 관한 문제는 대부분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은 마음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장 21절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으면 네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가장 사랑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우리의 고백과 삶 사이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시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관심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고, 무엇을 위해 축적하는지를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상당 부분 드러납니다.
그래서 재정은 단순한 가계부 문제가 아닙니다.
재정은 제자도의 문제입니다.
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나는 누구의 사람인가?” 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3권 7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을 **자기부인(self-denial)**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며, 그러므로 우리의 뜻과 소유를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재정에 적용하면 매우 선명합니다.
“내 돈인가?” 이 질문 이전에, “나는 누구의 사람인가?” 를 물어야 합니다.
신학적 격언
“돈은 사람이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돈이 드러낸다.”
2. 예수님은 왜 하나님과 재물을 나란히 놓으셨는가?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리고 마침내 24절에서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순서를 보십시오.
보물 → 마음 → 눈 → 주인 이 흐름입니다. 즉 돈의 문제는 결국 예배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신뢰하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의지하는가?
무엇이 나에게 “괜찮아, 이것만 있으면 안전해” 라고 말하는가? 그것이 바로 나의 주인입니다.
칼빈은 마태복음 6장 24절을 주석하면서 예수님의 표현을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종의 관계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과 맘몬은 단순히 두 가지 관심사가 아니라 인간의 충성과 사랑을 요구하는 두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위험한 것입니다. 돈은 손에 들어오지만 마음까지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지갑 안에 있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마음의 왕좌에 앉으려고 합니다.
3. 만몬은 단순히 돈이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맘몬”은 단순한 화폐의 숫자를 가리키는 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4절과 누가복음 16장 13절에서 맘몬을 하나님과 대립되는 섬김의 대상처럼 말씀하신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돈 자체가 악한 영이라는 식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돈을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존재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돈에 대한 사랑과 탐욕과 잘못된 신뢰를 문제 삼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중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칼빈 역시 하나님의 창조물인 재물 자체를 악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강요』 제3권 10장에서 그는 현재의 삶에 주어진 물질적 선물이 인간의 필요뿐 아니라 기쁨을 위해서도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면서, 문제는 그것을 절제 없이 탐닉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돈은 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까지 말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골로새서 3장 5절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만몬의 핵심입니다.
4. 만몬의 가장 무서운 전략은 “돈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우리를 유혹할 때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섬겨라” 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훨씬 교묘합니다. 돈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안전할 거야.”
“조금만 더 벌면 행복할 거야.”
“조금만 더 모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거야.”
“돈이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거야.”
“돈이 있으면 자녀의 미래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어.”
“돈이 있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이것이 바로 돈이 주는 거짓 복음입니다.
“나를 믿어라.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장 25–32절입니다. 그리고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재정관의 중심입니다.
돈을 먼저 구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
돈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먼저 두라는 말씀입니다.
5.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라는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공급자인가?”
이 질문은 오늘 설교의 핵심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누구에게서 공급받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월급을 받습니다. 은행에 돈이 있습니다. 사업에서 수익이 발생합니다. 투자에서 이익이 발생합니다. 배우자의 소득이 있습니다. 연금이 있습니다. 부동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공급자입니까?
성경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통로입니다. 공급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이 공급자이십니다. 직장은 통로입니다. 사업은 통로입니다. 월급은 통로입니다. 투자수익도 통로입니다.
사람도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로를 공급자로 착각하면 문제가 시작됩니다.
신학적 격언
“섭리의 통로를 섭리의 주인으로 착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지만, 그 공급의 방식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하는 통로와 같지는 않습니다.
6. 통로가 막혀도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직장을 잃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투자수익이 줄었습니다. 경제가 흔들립니다. 예상했던 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에서 무엇이 나타납니까?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두려움 속에서도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보다 통로를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직장이 없어졌다고 하나님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은행 잔고가 줄었다고 하나님의 공급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흔들린다고 하나님의 주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통로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재정적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잠언 3장 5–6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깊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이 공급자”라는 말을 핑계로 책임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공급자이십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에는 순종과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함부로 빌리고, 무리한 보증을 서고,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반복하면서,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때로 책임 회피일 수 있습니다.
성경적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진리를 순종합니다.
그래서 재정에는 기도도 필요하지만,
예산도 필요합니다.
믿음도 필요하지만,
절제도 필요합니다.
헌신도 필요하지만,
정직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믿지만, 내가 맡은 청지기적 책임도 다해야 합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3권 10장에서 재물을 **“맡겨진 신탁”**처럼 사용해야 한다는 청지기 의식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설명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8. 믿음은 재정 원칙을 무시하는 면허가 아닙니다
비행기를 타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항공역학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이 물리법칙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성경적 원칙을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예수님께서는 재정 문제를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충성의 문제로 연결하십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많이 주실 것인가?” 이 질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것을 나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칼빈은 제8계명에 대한 설명에서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재산과 소유를 정당하게 관리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지 말며, 자신의 풍요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재정관은 정직 + 절제 + 책임 + 나눔 입니다.
9. 재정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재정관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 라고 가르치면 성경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성경은 부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많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욥에게도 많은 소유가 있었습니다.
다윗도 왕으로서 부를 누렸습니다.
솔로몬에게도 막대한 부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부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부가 나를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목표는 “나는 얼마나 부자가 될 것인가?”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얼마나 충성되게 사용할 것인가?”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자기부인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가진 것을 단순히 자기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학적 격언
“소유의 크기는 신앙의 척도가 아니며, 맡겨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청지기직의 척도다.”
10. 하나님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십니다
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시험장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을 벌 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돈을 쓸 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돈이 많을 때도 믿음이 필요하고, 돈이 부족할 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것만이 시험이 아닙니다. 가난한 것도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나는 돈이 있으니 괜찮다.” 라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나는 돈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하나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몬의 문제는 부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을 숭배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을 숭배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닙니다.
마음의 방향입니다.
11.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투자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직장에서 승진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재산을 관리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맡겨진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라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돈을 목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 가 아니라
“돈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
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돈을 누가 지배하고 있느냐?”
입니다. 내가 돈을 지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돈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
12. 사도행전 8장의 시몬은 왜 중요한가?
세 번째 강의에서 중요한 본문으로 다룬 것이 사도행전 8장의 시몬입니다.
시몬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던 마술사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접했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돈을 가지고 말합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돈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래의 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은혜를 상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시장의 논리로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오늘날에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돈과 거래하지 말아야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더 많은 돈으로 갚아주신다는 식의 공식으로 복음을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헌금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기도도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봉사도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제가 이것을 드렸으니 하나님도 이것을 주세요.” 라고 흥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거래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13.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하나님께 돈을 빌려주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실 것이다.” 라는 투자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이 내 돈을 필요로 하셔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주셨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시편 24편 1절입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하나님, 이것을 드릴 테니 더 주세요.” 가 아니라
“하나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제가 청지기로 살겠습니다.”
라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도 말씀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매수하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
14. 만몬은 목적과 수단을 뒤집습니다
오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만몬은 목적과 수단을 뒤집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이고 돈은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몬의 논리는 반대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수단이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돈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업을 하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업이 잘되게 하나님을 이용하겠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돈을 벌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겠습니다.” 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목적과 수단의 전도입니다.
15. 하나님이 목적이고 돈은 수단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먼저입니다.
돈보다 먼저. 성공보다 먼저. 안정보다 먼저. 명예보다 먼저. 자녀의 성공보다 먼저. 노후 준비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노후 준비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혜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후가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성공이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재산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산이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균형입니다.
칼빈이 제3권 10장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러한 균형입니다. 그는 지나친 금욕주의도 피해야 하지만, 물질적 풍요가 사치와 허영으로 변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신학적 격언
“기독교의 절제는 물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6. “영과 진리”를 재정에 적용할 때도 주의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의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는 말씀은 영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을 각각 따로 떼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삶 전체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만 읽으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정직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절제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계획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책임져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나누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빚의 문제를 직면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소비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17. “로고스와 레마”를 지나치게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재정 문제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는 개인적 확신을 성경의 명령과 동일한 권위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나에게 이 사업을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이 투자를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이 돈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주관적 확신이 성경의 원칙보다 앞서면 위험합니다.
성령의 인도는 성경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언을 말하면서도 성령의 사역을 말씀과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의 권위를 우리 마음에 확증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 안으로 이끄십니다.
재정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실까?” 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무엇을 명하셨는가?” 를 물어야 합니다.
1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만몬의 권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첫째,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급자로 고백하십시오.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오늘 제가 받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월급이 들어왔을 때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업이 잘되었을 때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돈의 목적을 분명히 하십시오
돈을 벌기 전에 물어보십시오. “왜 벌려고 하는가?”
돈을 쓸 때 물어보십시오. “왜 쓰려고 하는가?”
돈을 투자할 때 물어보십시오. “왜 투자하는가?”
돈을 저축할 때 물어보십시오. “왜 저축하는가?”
돈을 드릴 때 물어보십시오. “왜 드리는가?”
돈이 많아질수록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돈이 많으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돈을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셋째, 탐심을 영적 문제로 인정하십시오
우리는 흔히 탐심을 경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단순히 “나는 절약해야지.” 에서 끝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주님, 제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이 없을까 봐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의 가치가 가진 돈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 때문에 가족과 관계가 무너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보다 수익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칼빈이 자기부인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 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자기 욕망을 중심에 놓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회개는 한 번의 감정적 이벤트가 아니라 성화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화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태도도 한 번의 기도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께 내려놓았는데 내일 다시 집착할 수 있습니다.
오늘 탐심을 회개했는데 다음 달 다시 욕심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공급자로 고백했는데 내일 은행 잔고를 보면서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돈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이것이 성화입니다.
19. 만몬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돈만 있으면 행복할 텐데.”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이 돈을 잃으면 안 된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돈을 중심에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다고 만몬에게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돈이 적다고 만몬에게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은 부한 자들에게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라고 가르칩니다.
돈의 양이 아니라 소망의 방향이 문제입니다.
칼빈도 풍요와 빈곤이라는 외적 상태 자체보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제하는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풍요에서는 절제하고, 궁핍에서는 인내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 돈의 크기가 아니라 신뢰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십만 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십억 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신뢰하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모든 재산을 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재산을 처분하라는 일반 규칙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청년에게 돈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의 우상을 정확하게 건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가장 놓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에게는 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업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정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지 말라.”
21. 참된 재정 자유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재정 자유란 은행 잔고가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재정 자유란
돈이 내 마음의 왕좌에 앉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돈이 많아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어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도 나눌 수 있습니다.
돈이 적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어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공급자가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2. 하나님이 공급자라면 돈은 종이 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영적 질서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돈은 종이 됩니다.
돈이 주인이 되면 하나님을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하나님 → 사람 → 재물
이 순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사람이 청지기이며, 재물은 맡겨진 도구입니다.
그런데
재물 → 사람 → 하나님
으로 바뀌면 우상숭배가 시작됩니다.
23. 돈을 하나님 나라의 종으로 만들라
돈을 벌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벌 수 있습니다.
돈을 저축하되 지혜롭게 준비할 수 있습니다.
돈을 투자하되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을 소비하되 절제할 수 있습니다.
돈을 드리되 거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을 나누되 자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져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이 줄어들어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돈을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칼빈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의 좋은 것들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물이며, 우리는 그것을 필요와 선한 즐거움을 위해 절제 있게 사용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24.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질문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다섯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나의 공급자로 믿고 있는가?
직장인가?
사업인가?
투자인가?
은행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돈이 나에게 수단인가, 목적이 되었는가?
돈 때문에 사는가? 하나님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가?
세 번째 질문입니다. 돈이 나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돈이 들어오면 기쁘고, 돈이 줄면 절망하고, 돈이 많아지면 교만하고,
돈이 없으면 사람 앞에서 위축됩니까? 그렇다면 돈이 마음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네 번째 질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나님의 원칙을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까?
사람을 이용하고 있습니까?
거짓말하고 있습니까?
과도한 빚을 지고 있습니까?
탐욕 때문에 관계를 희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수익을 앞세우고 있습니까?
칼빈은 제8계명을 설명하면서 부를 얻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도둑질”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내 가족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복음을 위해 사용하고, 공동체를 세우고,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25. 결국 재정의 문제는 예배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재정 문제를 단순히 돈 관리 기술로 접근하지 마십시오.
성경적 재정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돈을 얼마나 모을 것인가?
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이 모든 질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돈을 버리지 말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돈을 주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돈을 사용하되 돈에게 지배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재물을 가지고 살아가되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되 하나님을 돈을 얻는 수단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칼빈의 신학적 관점에서 이것은 결국 자기부인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으로 연결됩니다.
신학적 격언
“재정의 가장 깊은 질문은 ‘얼마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주인인가’이다.”
26. 결론 — “하나님이 정말 나의 공급자이신가?”
이제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돈은 나의 공급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일 뿐이다.”
직장이 공급자가 아닙니다.
사업이 공급자가 아닙니다.
투자가 공급자가 아닙니다.
은행이 공급자가 아닙니다.
사람이 공급자가 아닙니다.
돈이 공급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급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두려워하지 않고, 돈을 숭배하지 않고, 돈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돈을 청지기로서 다룹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라는 배의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배 안에는 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재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직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투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의 방향은 돈을 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돈은 우리 배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돈이 배의 선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입니다.
[마무리 기도]
오늘 여러분의 지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통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투자와 소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가장 신뢰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주님,
돈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돈이 나의 안전이 되지 않게 하소서.
돈이 나의 자존심이 되지 않게 하소서.
돈이 나의 하나님이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나의 공급자이심을 믿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게 하시고, 필요할 때는 나누게 하시고,
부족할 때는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많을 때는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적을 때는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돈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시며, 나는 그분의 청지기임을 평생 잊지 않게 하소서.
풍요 가운데서도 주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궁핍 가운데서도 주님을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
내 손에 있는 것이 많든 적든 그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게 하시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돈이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지배하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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