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재정관 및 직업관

[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제3장 1편] 서로 다른 두 경제 체제 - 부, 재물, 돈의 차이와 재정의 영적 전쟁

knowledgeplatform100 2026. 9. 23. 13:56

재정의 영적 전쟁, 돈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께 맡길 것인가

마태복음 6장 24절 / 누가복음 16장 10–13절 / 디모데전서 6장 6–19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반대로 돈이 없으면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요? 아니면 돈을 멀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돈은 정말 단순한 도구에 불과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돈을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돈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주인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다루려는 재정의 문제는 단순히 “얼마를 벌 것인가?” “얼마를 저축할 것인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3권 7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을 매우 강력하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이것이 재정의 출발점입니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시간도 궁극적으로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재산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도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정의 문제는 돈의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주권 인정의 문제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재정에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재정은 경제적인 영역인 동시에 영적인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우리에게 안전을 약속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신뢰와 예배의 방향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21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그래서 재정의 영적 전쟁은 먼저 은행계좌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벌어집니다.

 

2. 돈은 악하지 않지만 돈은 강력합니다

성경은 “돈은 악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정확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돈을 저축할 수 있습니다.

돈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돈을 사업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습니다.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돈으로 복음의 사역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는 순간 재정은 우상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주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재물”은 단순한 돈의 액수를 넘어 사람이 재물을 의지하고 섬기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핵심 질문은 “나는 돈이 많은가?” 가 아닙니다. “나는 돈을 의지하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입니다.

 

3. 하나님 나라와 세상 경제를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시장경제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노동하고 그 대가를 받습니다.

상품을 사고팔고, 기업을 운영하고, 투자하고, 저축하고, 계약을 맺습니다. 경제활동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 경제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느냐보다 그 경제활동을 어떤 주권과 가치관 아래 수행하느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일하지만 세상의 가치관에 지배받아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은 시장 안에 있지만 시장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지만 돈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지만 성공을 우상화하지 않습니다.

투자하지만 수익률을 인생의 가치와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가지지만 재산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게 하지 않습니다.

 

4.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그러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을 단순히 “세상 것은 세상 것이고 하나님 것은 하나님 것이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시편 24편 1절이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대답은 분명해야 합니다. 모든 것입니다.

돈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간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능력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직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기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돈을 사용할 때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코람 데오(Coram Deo)​의 재정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돈을 벌고, 하나님 앞에서 돈을 쓰고, 하나님 앞에서 돈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5. 청지기란 소유자가 아니라 맡은 사람입니다

성경적 재정관의 핵심 단어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소유자가 아닙니다. 맡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돈을 통해 우리의 충성도가 드러납니다.

칼빈 역시『기독교강요』 제3권 7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우리만을 위한 사적 소유가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위해 맡겨진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것들을 청지기처럼 관리하고 그 관리의 기준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재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 돈이 내 것인가?” 보다 “하나님께서 왜 이것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를 물어야 합니다.

 

6.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십시오.

일할 수 있는 건강은 누가 주셨습니까?

생각할 수 있는 지혜는 누가 주셨습니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누가 주셨습니까?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은 누가 허락하셨습니까?

만날 사람과 기회는 누가 인도하셨습니까?

 

신명기 8장 18절은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 노력조차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인간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자기 자랑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 격언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소유를 자랑하지 않고 청지기직을 감당한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재물의 목적을 하나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생활을 위해 필요합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필요합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 필요합니다.

선교를 위해 필요합니다.

선한 일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도 성경은 인정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재산 자체를 악하게 보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동시에 재산을 많이 가지는 것을 믿음의 자동적인 증거로 보는 물질주의도 아닙니다.

성경은 그 중간에서 감사, 절제, 책임, 나눔​의 길을 보여줍니다.

 

8. 형통을 물질적 성공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분명 형통의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통을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 라는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지만 감옥에 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광야에서 도망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했지만 굶주림과 매 맞음과 궁핍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그리고 이어서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풍부할 때도 하나님을 섬기고 궁핍할 때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

 

9. 참된 형통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을 다시 보십시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여기서 바울이 대비하는 것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재물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돈은 변합니다.

주식은 변합니다.

부동산 가격도 변합니다.

사업 환경도 변합니다.

경제 상황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고 하기보다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 고 말씀합니다.

 

10.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재정관에서 주기도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3권 20장에서 이 기도를 매우 깊이 해석합니다.

그는 “일용할 양식”을 단순히 빵 한 조각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육체적 삶에 필요한 모든 공급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동하고 노력해도 그 노동의 결실을 실제로 누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도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왜냐하면 창고가 가득 차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장에 돈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섭리를 더 깊이 인정해야 합니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가졌기 때문에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11. 칼빈이 경고한 것은 부 자체보다 탐욕입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자기부인의 삶과 관련하여 탐욕과 야망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복에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 받은 지상의 축복들을 사치와 허영을 위해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오히려 절제와 검소함, 사랑을 기준으로 재물을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균형입니다. 

 

돈을 많이 가진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마음이 높아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좋은 집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집이 자신의 자랑이 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좋은 차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투자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수익률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합니다.

 

12. 아나니아와 삽비라 — 헌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땅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왜 전부 헌금하지 않았는가?”가 아닙니다.

 

베드로의 말을 보면 그 땅을 팔기 전에도 그들의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을 사용할 권한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문제는 거짓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척하면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정의 영적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돈을 적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통해 자신을 거룩하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격언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 드린 돈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이 먼저다.”

 

13.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말도 점검해야 합니다

이 말은 아름답게 들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부를 얻기 위해 하나님 나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 자체를 무조건 죄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정직을 희생시키고, 가정을 희생시키고, 예배를 희생시키고, 이웃을 이용하고, 탐욕을 정당화한다면

 

“하나님 나라”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목적이 부정한 과정을 자동으로 거룩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14. 믿음은 재정적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니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은 무책임이 아닙니다. 성경은 지혜롭게 준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잠언 21장 5절은 말합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기도하면서 계획하십시오.

기도하면서 예산을 세우십시오.

기도하면서 부채를 관리하십시오.

기도하면서 계약을 검토하십시오.

기도하면서 위험을 계산하십시오.

기도하면서 정직하게 세금을 내십시오.

믿음과 지혜는 서로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하게 합니다.

 

15. “일용할 양식”은 탐욕을 제한합니다

칼빈은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설명하면서 이 기도가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을 억제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왜 인간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까? 하나만 더 가지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를 얻으면 다음 것이 필요합니다.

차를 바꾸면 더 좋은 차가 보입니다.

집을 마련하면 더 좋은 집이 보입니다.

자산이 늘어나면 더 많은 자산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욕망은 스스로 끝나지 않습니다. 욕망은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가난하게 살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을 배우라는 초대입니다.

 

16. 재정의 영적 전쟁은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때때로 모든 재정 문제를 사탄의 공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1장 14절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재정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욕망입니다.

더 가져야만 안전하다는 생각.

남보다 더 가져야 인정받는다는 생각.

돈이 있어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생각.

돈을 잃으면 내 인생도 무너진다는 생각.

이러한 마음이 우리를 지배한다면 돈은 이미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17.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돈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해서 돈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돈을 바르게 관리해야 합니다.

가족의 필요를 책임지고,

자녀를 교육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복음의 사역을 지원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 이 모든 것이 청지기적 책임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돈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돈이 누구를 섬기게 하느냐입니다.

 

18. 재물의 목적은 축적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복음과 재정의 관계를 놀랍게 보여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복음의 중심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부만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기독교적 재정관의 가장 깊은 모델이 됩니다.

세상의 논리는 “내 것을 더 많이 확보하라.” 그러나 복음은 “받은 은혜를 사랑으로 흘려보내라.” 고 말합니다.

 

 

19.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됩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이 원리는 재정에도 적용됩니다.

돈이 많다면 책임도 큽니다.

시간이 많다면 책임도 큽니다.

능력이 많다면 책임도 큽니다.

기회가 많다면 책임도 큽니다.

은혜가 크다는 것은 책임도 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는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청지기적 책임을 포함합니다.

 

 

20.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살겠다”도 완전한 답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를 “나는 최소한만 가지고 살겠다.” 라고 단순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많이 맡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업을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선교를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선한 사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자원을 이웃의 유익을 위해 맡기신 것으로 이해하면서, 그 관리의 원칙을 사랑과 연결합니다.

 

21. 재정의 성공을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재정의 성공을 숫자로 표현합니다.

연봉. 자산. 부동산. 주식. 예금. 수익률.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장부는 세상의 장부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실 질문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만이 아닐 것입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맡긴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일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절에서 주인은 청지기에게 말합니다.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에게는 결산의 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결산의 날이 있습니다.

 

22. 그래서 돈은 예배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지를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어디에 쓰는가?

무엇을 위해 저축하는가?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가?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가?

무엇을 위해 투자하는가?

무엇을 위해 나누는가?

이것은 단순한 재무 질문이 아닙니다. 예배의 질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여기에는 우리의 재정도 포함됩니다. 통장도 예배의 영역입니다.

 

23. 진짜 형통은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주셨는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통해 누구를 살릴 수 있는가?”

내 가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자녀를 세울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선교사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회를 유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24. 하나님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기보다 충성된 청지기로 부르십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중심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부자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충성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재정은 우리의 충성을 시험하는 영역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적을 때도 충성하십시오. 돈이 많을 때도 충성하십시오. 궁핍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풍부할 때도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오.

 

 

25. 칼빈의 자기부인 —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기독교강요』의 가장 중요한 통찰 하나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기부인에서 출발시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원칙이 재정관의 핵심입니다.

내 돈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집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직업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시간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이것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 고백이 이루어지는 순간 돈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26. 칼빈의 섭리 — “오늘의 양식도 은혜입니다”

칼빈은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설명하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의존한다고 강조합니다.

가난한 사람만 하나님의 공급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도 하나님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돈은 우리에게 생명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 있지만 돈이 음식의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병원을 갈 수 있지만 돈이 치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돈이 가정의 평안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보험을 들 수 있지만 돈이 미래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재산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27.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도 됩니다.

사업해도 됩니다.

투자해도 됩니다.

저축해도 됩니다.

재산을 축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돈이 나의 안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나의 자존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나의 미래의 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나의 인간관계를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정직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예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가족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이웃을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28. 재정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세 가지 원칙

첫째, 소유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십시오

매일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이것은 제 돈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돈입니다.”

시편 24편 1절을 기억하십시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둘째, 필요와 욕망을 구별하십시오

잠언 30장 8–9절은 놀라운 기도를 보여줍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왜입니까?

너무 부하면 하나님을 부인할까 두렵고, 너무 가난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재정의 균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필요를 채우되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셋째, 받은 것은 흘려보내십시오

고린도후서 9장 7절은 말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과 나눔은 하나님께 돈을 바치는 거래가 아닙니다.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받았기 때문에 드립니다.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흘려보냅니다.

 

29. 재정의 다섯 가지 영적 질문

자신의 재정을 놓고 다음 다섯 가지 질문을 해보십시오.

첫째, 나는 돈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희생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나는 하나님 나라를 핑계로 탐욕을 합리화하고 있지 않은가?

 

넷째,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있는가?

 

다섯째, 내가 가진 것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고 있는가?

이 다섯 가지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다면 우리의 재정 상태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마음 상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0. 맺음말 — 돈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돈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돈은 목적이 아닙니다.

돈은 도구입니다.

재산은 목적이 아닙니다.

재산은 맡겨진 것입니다.

성공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저를 부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 깊은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충성된 청지기로 만들어 주십시오.”

돈이 많을 때도 충성하게 하시고,

돈이 적을 때도 감사하게 하시고,

풍부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궁핍할 때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돈을 벌 때도 정직하게 하시고,

돈을 사용할 때도 지혜롭게 하시고,

돈을 나눌 때도 기쁨으로 하게 하옵소서.

 

칼빈의 자기부인의 원리대로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 이라는 고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칼빈이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에서 강조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공급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안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마지막 선언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돈은 도구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재물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입니다.

형통은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은 사랑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을 섬기지 마십시오.

돈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돈을 우상으로 만들지도 마십시오.

돈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재정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십시오.

돈이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돈을 통해 일하시도록 맡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충성된 청지기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건강과 재능과 직업과 기회를 주시고
필요한 재물을 맡겨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고,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했고,

우리의 통장과 재산을 우리의 안전으로 삼았던 것을 고백합니다.우리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모든 소유가 궁극적으로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많이 주셨을 때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적게 주셨을 때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풍부할 때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궁핍할 때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동시에 탐욕에서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돈을 벌 때 정직하게 하시고, 돈을 관리할 때 지혜롭게 하시고, 돈을 사용할 때 절제하게 하시고, 돈을 나눌 때 기쁨으로 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이 우리의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가족을 세우고, 가난한 자를 돕고, 교회를 섬기고,

선교를 지원하고,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살리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에 맘몬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통장을 지켜주시되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옵소서.

우리의 재산을 지켜주시되 재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업을 축복하시되 사업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제가 얼마나 많이 가졌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 주께서 맡기신 것을 얼마나 충성되게 사용했습니까?” 라는 질문 앞에 부끄럽지 않은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소유와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