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재정관 및 직업관

[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제2장] 참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knowledgeplatform100 2026. 9. 23. 13:46

참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공급의 통로가 바뀌어도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6장 24–3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돈이 부족할까 봐 두렵습니다.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질까 봐 두렵습니다. 노후가 불안합니다.

자녀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갑자기 병원비가 필요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합니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줄어들면 어떻게 할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돈이 부족한 것이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공급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믿지 못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재정 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정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공급자로 믿고

살아가느냐” 입니다.

 

“참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참새 믿음입니다. 참새처럼 작은 믿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참새를 바라보면서 참새에게 먹이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새와 백합을 돌보신다는 전제 위에서 돈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참새 믿음”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메시지의 핵심 명제는 이것입니다.

“공급의 통로는 하나님이 정하시지만, 공급의 원천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는가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주인입니다.

돈 자체가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음식을 사고 집을 구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세금을 내고 이웃을 돕습니다.

문제는 돈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를 넘어 우리의 신뢰를 요구하는 주인이 될 때 발생합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경고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여기서 바울은 “돈” 자체를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을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질문은 “돈이 있는가?” 가 아니라 “돈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가?” 입니다.

신학적 격언

“돈은 좋은 종이 될 수 있지만 나쁜 주인이 될 수 있다.”

돈은 수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십니다. 돈이 주인이 되는 순간 사람은 돈을 위해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인이 되면 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2. 참새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참새 믿음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잠언 10장 4절은 말씀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믿음은 노동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동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수단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칼빈의 섭리론이 매우 중요합니다.

칼빈은『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수단과 책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때에도 인간은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칼빈에게 하나님의 섭리는 “수단을 통해서도, 수단 없이도, 심지어 인간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도”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수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을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일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구원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나는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지 않습니다.

나는 저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축이 나의 궁극적인 안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직장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직장이 나의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참새는 공급의 원천이 아니라 공급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참새가 농사를 짓습니까? 아닙니다. 창고를 지어 곡식을 저장합니까? 아닙니다.

 

그렇다고 참새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참새가 살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근거는 참새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여기에는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새를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얼마나 더 돌보시겠습니까?

시편 147편 9절은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라고 말합니다.

 

시편 104편도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참새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의 생존은 너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다.”

 

4. 하나님의 섭리는 추상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기독교강요』의 하나님의 섭리론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미래를 미리 알고 계신다” 는 정도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세계를 보존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통치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후 멀리 물러나 계신 분이 아니라 피조세계를 계속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재정생활도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지 않습니다.

월급을 받는 것도 섭리 안에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도 섭리 안에 있습니다.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도 섭리 안에 있습니다.

때로는 직장을 잃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를 질문하게 만드는 사건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건의 의미를 즉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5. 시냇물이 마를 때 믿음이 시험됩니다

열왕기상 17장의 엘리야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처음에는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내가 마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어제까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통로가 오늘 막힐 때입니다.

어제까지 잘되던 사업이 어려워집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되던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합니다.

건강 때문에 일을 줄여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익숙했던 환경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나 열왕기상 17장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시내가 마른 것이 하나님이 마른 것이 아닙니다. 공급의 통로가 마른 것입니다. 공급자가 마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그릿에서 사르밧으로. 까마귀에서 과부에게로. 하나님은 공급의 통로를 바꾸십니다.

그러나 공급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6. “하나님은 공급하시되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공급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 신학적 명제입니다. 칼빈의 섭리론과 연결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수단을 통해 일하시기도 하고 수단 없이 일하시기도 하며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도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통로를 하나님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직장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사업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월급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부동산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주식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연금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사람도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수단입니다.

신학적 격언

“통로를 붙들지 말고 통로를 보내시는 하나님을 붙들라.”

이 한 문장을 기억하십시오. 통로가 바뀌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7. 그런데 우리는 통로를 하나님으로 착각합니다

직장이 안정되면 “내 직장이 나를 먹여 살린다.” 고 생각합니다.

사업이 잘되면 “내 사업이 나를 먹여 살린다.” 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이 정도면 나는 안전하다.” 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묻습니다. “그 돈을 누가 주었느냐?”

신명기 8장 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여기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통찰이 나옵니다. 우리는 돈만 하나님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자체도 하나님께 받습니다.

건강도 은혜입니다.

지혜도 은혜입니다.

교육받을 기회도 은혜입니다.

직업적 능력도 은혜입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유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절대적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물이다.”

 

8. 청지기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성경적 재정관의 핵심은 소유권의 이동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내 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편 1절입니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돈을 붙잡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으면 돈을 관리합니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돈을 잃을 때 내가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으면 돈이 줄어들어도 하나님까지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여기에서 칼빈의 청지기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소유를 이웃의 유익을 위해 맡기신 하나님의 예탁물처럼 이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는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청지기 정신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에 맡기신 것은 내 마음대로 소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이다.”

 

9. 『기독교강요』가 가르치는 자기부인과 재정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3권 7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을 자기부인(self-denial)​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풍요할 때에는 절제하고, 부족할 때에는 인내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것들을 청지기처럼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재정 문제와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쓰겠다.” 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를 묻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입니다. 자기부인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삶의 최종 주인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10. 헌금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여기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많이 돌려주신다.”

“십일조를 하면 사업이 성공한다.”

“헌금하면 백 배로 돌아온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돈의 관계를 설명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성경은 “심고 거둔다”는 원리를 분명히 가르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린도후서 9장 6절도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나님께 돈을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투자수익처럼 돈을 많이 돌려주신다.” 는 공식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9장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통해 기쁨으로 나누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즉, 헌금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11. 은혜가 먼저이고 헌신이 나중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순서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립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로 응답합니다.

 

로마서 11장 36절은 말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이 말씀은 기독교적 재정관의 근본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12.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밀가루가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의 사르밧 과부를 보십시오.

그 여인에게 남은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그것으로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왜 마지막 것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밀가루가 필요하셨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이 필요하셨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다루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내게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냐?”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네가 누구를 신뢰하느냐?” 를 물으셨습니다.

 

13. 참새 믿음은 무모함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참새 믿음은 무모함이 아닙니다.

아무 준비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겠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리하게 빚을 내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참새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동을 낳습니다.

기도하고, 준비하고, 일하고, 계획하고, 절제하고, 나누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의 최종적인 신뢰는 하나님께 둡니다.

 

14. 하나님의 공급에는 장소와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공급의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급의 시간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영원히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일정 기간 공급하셨지만 그 통로가 영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냇물이 마르자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직장은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는 장소일 수 있습니다.

어떤 직장은 하나님께서 나를 공급하시는 장소일 수 있습니다.

어떤 직장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명을 준비시키는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바꾸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좋아하는 장소에 머물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장소를 알아보는 영적 민감성을 주옵소서.”

 

15. 직장을 잃는 것과 공급자를 잃는 것은 다릅니다

이 메시지는 직장 때문에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중요합니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합니다.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정년이 다가옵니다.

사업이 어려워집니다.

계약이 종료됩니다.

수입이 줄어듭니다.

 

그때 참새 믿음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먹이신 방식이 이것 하나뿐이었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은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욕망”이 아니라 “모든 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그리고 그분의 지혜로운 방법으로 공급하십니다.

 

16. 돈은 흘러야 합니다

참새 믿음이 깊어지면 돈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돈을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잠언 19장 1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그러나 여기서도 “주면 반드시 더 많이 받는다”는 상업적 공식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나눔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17. 칼빈의 청지기 정신 ― 받은 것은 이웃을 위해서도 주신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물이 개인적인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모든 은사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신탁”처럼 보고, 우리는 그것을 이웃의 유익을 위해 관리할 책임이 있는 청지기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은 나만 잘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라고 맡기신 것이다.”

내가 받은 지식도,

내가 받은 경험도,

내가 받은 돈도,

내가 받은 시간도,

내가 받은 직업적 능력도,

내가 받은 영향력도,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흘러가야 합니다.

 

18. 참새 믿음의 반대는 가난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참새 믿음의 반대는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왜 어리석었습니까?

부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소유를 자기 영혼의 안전장치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가 가진 것이 많으니 이제 평안하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묻습니다. “네 생명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

 

19. 부자 청년 ―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신뢰가 문제였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드러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1절: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일하게 모든 재산을 처분해야 한다는 단순한 공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물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입니까?

안정입니까?

직장입니까?

부동산입니까?

사회적 지위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20. 자족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웠다” 는 표현입니다. 자족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닙니다. 훈련되는 믿음입니다.

풍부할 때 하나님을 믿는 것도 훈련입니다.

궁핍할 때 하나님을 믿는 것도 훈련입니다.

많이 가졌을 때 교만하지 않는 것도 믿음입니다.

적게 가졌을 때 절망하지 않는 것도 믿음입니다.

 

칼빈 역시 그리스도인이 풍요와 궁핍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이고, 풍요할 때 절제하며 부족할 때 인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족은 가진 것이 충분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충분하시다는 고백이다.”

 

21. 하나님이 공급하신다는 믿음은 미래를 향한 공포를 이깁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퇴직하면 어떻게 하지?”

“수입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지?”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믿음은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꿉니다.

“미래를 내가 알지 못하지만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믿음은 미래를 미리 보는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능력입니다.

 

22. 칼빈의 섭리론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성도에게 이것이 단순한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위로의 교리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방치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교회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모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면, 성도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칼빈에게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 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백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내 미래를 통제하지 못하지만 내 미래의 주권자는 알고 있다.”

 

23.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돈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지혜를 주십니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을 보내십니다.

때로는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때로는 소비를 줄이는 지혜를 주십니다.

때로는 욕망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때로는 직업을 바꾸게 하십니다.

때로는 기다리게 하십니다.

때로는 고난을 견딜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급을 “돈이 들어오는 것”으로만 정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때로 돈을 더 많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24. 참새 믿음은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이제 복음의 가장 깊은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공급하신다는 믿음의 가장 큰 증거는 통장 잔고가 아닙니다.

사업의 성공도 아닙니다.

건강도 아닙니다.

직장의 안정도 아닙니다.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보십시오.

하나님의 공급을 믿는 가장 큰 근거는 “앞으로 내가 무엇을 받을 것인가?” 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무엇을 주셨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의 공급을 믿을 수 있습니다.

 

25. 은혜를 먼저 받은 사람이 재물을 다르게 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은 은혜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투자해서 받은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돈을 지불해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인생 전체가 은혜의 구조를 갖습니다.

생명도 은혜입니다.

구원도 은혜입니다.

시간도 은혜입니다.

재능도 은혜입니다.

돈을 벌 능력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재정관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받은 은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관심을 둡니다.

 

26. 참새 믿음은 돈이 없어도 평안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참새 믿음이 생기면 돈이 많아서 평안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평안한 사람이 됩니다.

시편 23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내 통장이 나의 목자시니”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왕국이 나의 목자시니” 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것이 모든 재정 신앙의 중심입니다.

 

27.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가 핵심입니다

참새 믿음의 핵심은 “나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충분하시다.” 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은 더욱 강력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상황은 텅 비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의 풍요가 믿음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믿음의 근거입니다.

 

28. 세상의 경제와 하나님의 경제는 다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얻었는가?”

성경은 묻습니다. “내가 얼마나 충성했는가?”

세상은 말합니다.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

성경은 묻습니다. “맡겨진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세상은 말합니다. “얼마나 높은 수익을 냈는가?”

성경은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어떻게 사용했는가?”

세상은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안전한가?”

복음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는 누구인가?” 이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29. 돈을 더 얻는 믿음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믿음

우리는 자꾸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돈을 더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공급자임을 믿어라.”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 직장을 지켜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직장을 지키는 것보다 나를 신뢰하는 것을 배워라.”

우리는 말합니다. “사업을 성공시켜 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공보다 먼저 나를 주인으로 모셔라.”

우리는 말합니다. “내 자산을 지켜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자산보다 네 영혼을 먼저 지켜라.”

 

30. 오늘부터 세 가지 질문을 매일 해보십시오

첫째, “나는 오늘 누구를 공급자로 믿고 사는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은 무엇인가?”

 

셋째,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어디로 흘려보내기를 원하시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매일 하십시오. 

재정이 예배가 됩니다.

직업이 예배가 됩니다.

사업이 예배가 됩니다.

소비가 예배가 됩니다.

헌금이 예배가 됩니다.

저축도 예배가 됩니다.

나눔도 예배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31. 신학적 재정 원칙 7가지

이제 오늘의 내용을 일곱 가지 원칙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소유자이십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 시편 24:1

둘째, 하나님이 공급자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 빌립보서 4:19

셋째, 돈은 공급의 통로이지 공급자가 아닙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 신명기 8:18

넷째,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고린도전서 4:2

다섯째, 공급의 통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으로 통로가 바뀌었습니다.

여섯째, 헌금은 거래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 고린도후서 9:7

일곱째, 자족은 하나님이 충분하시다는 믿음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빌립보서 4:11

 

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냇물이 마르고 있습니까?

혹시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 시냇물이 마르고 있습니까?

직장이 불안합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수입이 줄었습니까?

노후가 걱정됩니까?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생겼습니까?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열왕기상 17장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릿 시냇가가 마른 것이 하나님이 마른 것이 아닙니다.

공급의 통로가 마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새로운 통로를 준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33. 결론 ― 공급의 통로가 아니라 공급자를 바라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참새를 보십시오.

참새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 것인가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참새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미래의 공급 통로를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다음 직장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다음 사업의 길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내일의 경제 상황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공급의 통로가 바뀌어도 공급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직장이 바뀌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수입이 바뀌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시냇물이 말라도 하나님은 마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참새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는 돈을 믿지 않습니다. 돈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직장을 믿지 않습니다. 직장을 통해 저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통장 잔고를 믿지 않습니다. 저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내일을 믿지 않습니다. 내일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공급자이십니다.”

이것이 참새 믿음입니다.

 

마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돈을 더 믿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직장을 더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통장 잔고를 바라보며 두려워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탐욕과 불안을 드러내 주시고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옵소서.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되 돈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게 하시고, 돈을 벌되 돈을 사랑하지 않게 하시며,

돈을 관리하되 돈에게 지배받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에서 시냇물이 마를 때가 있습니다.

직장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문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수입이 줄어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떠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통로가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통로를 잃었다고 하나님까지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말랐을 때 엘리야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던 하나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장소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포장하지 않게 하시며,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사르밧의 과부처럼 마지막 남은 것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밀가루 통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기름병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통장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직장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손에 들어온 것이 우리의 손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흘러가게 하옵소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게 하시고, 선교를 섬기게 하시며,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다음 세대를 살리게 하시며,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자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참새 믿음을 주옵소서.

공급의 통로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시냇물이 말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

마지막 한 움큼의 밀가루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내일을 알지 못해도 내일을 아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고백이 이것이 되게 하옵소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의 소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의 안전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하시며,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더 신뢰하게 하옵소서.

 

공급의 통로가 아니라 공급자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오늘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