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재정관 및 직업관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제1장] 예수님처럼 “내 직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섬기고, 세우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며 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knowledgeplatform100 2026. 9. 28. 14:27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직업관은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누구를 살리실 것인가?

1. 우리는 왜 일하는가?

여러분, 우리는 왜 일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까? 성공하기 위해서입니까? 승진하기 위해서입니까?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내가 가진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입니까? 물론 이것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일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에서 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처음부터 주신 선물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 창세기 2:15

인간은 죄를 지은 후에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부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일은 저주가 아닙니다. 일 자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라.”

일과 책임, 돌봄과 관리의 사명은 창조 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잠언 16장 3절도 말씀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문제는 죄가 들어온 이후 일의 의미가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통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직업이 소명이 아니라 신분이 되고, 돈이 필요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우상이 되고,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 일을 맡기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성경적 답은 매우 분명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마태복음 22:37-39

 

2. 크리스천의 사명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크리스천의 사명과 직업관은 결국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크리스천의 사명은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가복음 10:45

여기에 예수님의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주러 오셨습니다.

대접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자기를 높이러 오신 분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러 오셨습니다.

 

결국 캐노시스를 통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이것을 더욱 깊이 설명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6-8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 마태복음 23:11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직업관은 단순히 “내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내 직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섬기고, 세우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공동선을 이루자.” 이것이 성경적인 직업관입니다.

 

3. 직업은 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웃을 위한 통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핵심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마태복음 22:37-39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직업은 바로 이 두 사랑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함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침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공무원은 시민을 섬김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기업가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금융인은 자원을 올바르게 연결함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방송인은 진실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함으로 사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기술자는 인간의 삶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도 공간을 깨끗하게 함으로 사람을 섬깁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사람도 사람의 마음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업의 거룩함은 직업의 이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에베소서 6장 7절도 말씀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직업은 바로 이 섬김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직업관은 “섬김”이었다

예수님은 공생애 이전 오랜 시간 동안 평범한 노동의 현장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씀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마을로 들어오셨고, 가정으로 들어오셨고, 시장으로 들어오셨고, 병든 사람에게 다가가셨고,  난한 사람을 만나셨고,

우는 사람 곁에 서셨고, 죄인들과 식탁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까지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하나의 방향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방향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직업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이 직장에서 얼마나 인정받을 것인가?” 에서 “하나님께서 이 직장을 통해 누구를 살리기를 원하시는가?” 로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5. “연약한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최우선 채우라”는 원칙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자” 는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업인 크리스천은 아래와 같은 세가지 원리를 유지해야합니다.

첫째, 내 영역 내의 모든 사람을 돌보십시오.

둘째, 계속 배우십시오.     

 

셋째,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십시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사명이 지속됩니다. 성경도 동일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은 말합니다.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사람을 돌보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것입니다.

 

6. 최고의 전문성이 곧 최고의 섬김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 산다”는 말이 “대충 일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합니다.

환자를 사랑한다면 의사는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학생을 사랑한다면 교사는 더 연구해야 합니다.

고객을 사랑한다면 기업가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를 사랑한다면 교회 사역자는 더 전문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은 선의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책임을 요구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골로새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주께 하듯” 일한다는 것은 대충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정직하게 합니다.

성실하게 합니다.

전문성을 개발합니다.

약속을 지킵니다.

시간을 지킵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을 집니다. 

탁월함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사랑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잠언 22장 29절은 말합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역시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서 6장 3절은 다니엘에게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났다”

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필수 덕목은 바로 전문성과 탁월함입니다. 

 

7. 코람데오로 실행하는 정직함은 크리스천 직업관의 핵심이다

직업인의 중요한 가치로 정직성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직장에서의 정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잠언 11장 1절은 말합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조직 안에서 탁월한 전문가였습니다.

다니엘서 6장 4절은 그를 조사하던 사람들이

“아무 근거,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였다”

고 말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신앙만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업무에서도 흠을 찾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신앙과 전문성이 함께 있었습니다. 정직성과 탁월성이 함께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은 “나는 믿음이 있으니까 일을 좀 못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더 정직하고 더 책임 있게 일하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잠언 10장 9절입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누가 보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바로 코람데오의 실천 현장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직업현장입니다. 

 

8. 그래서 바로 직장이 선교지입니다

우리는 선교지를 너무 좁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동, 미전도종족. 물론 모두 중요한 선교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매일 출근하는 그곳도 선교지입니다.

회사도 선교지입니다.

학교도 선교지입니다.

병원도 선교지입니다.

공공기관도 선교지입니다.

연구소도 선교지입니다.

방송국도 선교지입니다.

사업장도 선교지입니다.

가정도 선교지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땅끝까지입니다. 그런데 그 “땅끝”은 반드시 지리적인 거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자리,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업무, 바로 그곳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9. 그러나 직업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

여기에는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일은 선하지만 일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직업은 중요하지만 직업이 우리의 정체성 전체가 아닙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공은 좋은 것이지만 성공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24

그러므로 우리는 일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성공해도 하나님을 붙들고, 실패해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승진해도 하나님을 붙들고, 승진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직장을 얻어도 하나님을 붙들고, 직장을 잃어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궁극적인 정체성은 직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선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10.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 '영적 레거시'

우리는 직업의 세계에서 활동하면서 무엇을 레거시(유산)로 남겨야 합니까? 

사람은 언젠가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러나 조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떠난 다음에도 더 좋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리더십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세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20

복음은 나에게서 끝나면 안 됩니다.

사명도 나에게서 끝나면 안 됩니다.

직업적 전문성도 나에게서 끝나면 안 됩니다.

신앙의 유산도 나에게서 끝나면 안 됩니다.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시편 78편 5-7절은 말씀합니다.

“그들을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게 하라… 그들이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서.”

이것이 영적 레거시입니다.

 

11. 진짜 성공은 “내가 얼마나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세웠는가”다

세상은 성공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는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성공은 다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세웠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디모데후서 2:2

여기에 사명의 계보가 있습니다. 나 → 다음 사람 → 또 다음 사람. 이것이 레거시입니다.

 

12. 그래서 리더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준비시키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명을 위임받은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미래의 리더를 미리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교회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중요한 원리입니다.

 

진짜 리더는 “내가 없으면 안 돼.”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없어도 더 잘 돌아가도록 만들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내가 없어도 조직이 살아 있다면 성공입니다.

내가 떠났는데 조직이 더 건강해졌다면 성공입니다.

내가 떠났는데 후배가 더 크게 일한다면 성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왕이 아니라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24편 1절은 선언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여호와의 것이로다.”

내 자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직장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능력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돈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시간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13. “나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다” 책임의 다른 이름 '은사' 사용법

청지기 정신은 직업관을 완전히 바꿉니다.

“이것은 내 회사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회사다.” 

“이것은 내 부서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이다.”

“이것은 내 돈이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원이다.”

“이것은 내 능력이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10절은 말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를 받은 목적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서로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은사는 책임의 다른 이름입니다. 책임의 동전의 뒷면인 '은사' 사용법을 잘 알아야합니다. 

능력이 큰 사람일수록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자원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나누어야 합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책임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도 말씀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14. 교회는 “성도의 필요”를 보아야 한다

예를들어 교회 안의 카페와 같은 공간은 순한 시설이나 사업이 아니라 성도와 지역사회를 섬기는 공간으로 바라봅니다.

커피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커피만 잘 만들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오는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옵니다.

누군가는 고민을 가지고 옵니다.

누군가는 외로워서 옵니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옵니다.

누군가는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오늘 몇 잔 팔았는가?” 만 물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누구의 마음이 회복되었는가?” 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섬김의 관점입니다. 

 

로마서 12장 10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교회는 사람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15. “필요를 보는 눈”이 사명의 시작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필요를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한 영혼을 보셨습니다.

한 가정의 아픔을 보셨습니다.

한 병자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한 과부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가치를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은 항상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사명의 눈은 사람의 필요를 봅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은 말씀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16. 이사야의 소명: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의 소명을 오늘날 우리의 직업적·시대적 사명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6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이사야 6:8

이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갈 것인가?” 라고 물으실 때 “다른 사람 보내십시오.” 가 아니라 “제가 가겠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하겠지.” 가 아니라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 “왜 내가?” 가 아니라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사명의 사람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7. 평안할 때 오히려 사명이 약해질 수 있다

이사야 시대의 영적 위기와 오늘의 평안한 시대를 대비해보면 오히려 외부적인 위기가 없을 때

오히려 신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합니다. 

고난이 오면 기도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병들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잘될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은 경고합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신명기 8장 18절은 더 분명히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그러므로 성공했을 때 더 기도해야 합니다. 돈이 많아졌을 때 더 겸손해야 합니다.

직급이 올라갔을 때 더 섬겨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때 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18. “적당히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라.” 

문제가 생길 때 사람의 방법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적당히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라.”

이것은 직업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적당히 일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사랑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섬기지 마십시오.

적당히 기도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정직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제대로 사십시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그리고 잠언 3장 5-6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19. 직업세계에서는 원수를 사랑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직장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가 있습니다.

나를 질투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내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마태복음 5:44

이것은 악을 묵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의를 방치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은 말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리고 로마서 12장 18절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직장에서 크리스천의 차별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한 만큼 갚아준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나는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 때문에 다르게 반응한다.” 라고 말합니다.

 

20. 탁월한 크리스천 직업인 의 네 가지 핵심 자질 : 전문성 + 정직 + 사랑 + 기도

그렇다면 크리스천 직업인의 네 가지 핵심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전문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계속 공부해야합니다.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십시오. 현재 수준에 머물지 마십시오. 

잠언 18장 15절은 말합니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둘째, 정직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정직하십시오. 돈 앞에서도 정직하십시오. 권력 앞에서도 정직하십시오.

시편 15편 2절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셋째, 사랑입니다.

사람을 숫자로 보지 마십시오.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성공의 도구로 만들지 마십시오.

고린도전서 16장 14절입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넷째, 기도입니다.

내 능력만 의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5절은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이 네 가지가 합쳐지면 탁월한 크리스천 직업인이 됩니다.

 

21. 협력해야 한다

중요한 또 하나의 원리로 콜라보레이션, 협력​은 매우 중요한 직업인의 덕목과 자질입니다. 

혼자서는 사명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눈만 필요하지 않습니다.

손도 필요합니다.

발도 필요합니다.

귀도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은사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12장 4-5절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직업관에는 경쟁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협력의 신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당신이 잘하는 것을 연결해야 합니다.

 

22. 경쟁의 시대에 협력하는 사람이 되라! 협력은 경쟁을 넘어서는 사다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을 말합니다. “누가 더 앞서는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질문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함께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바울은 자신의 역할을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 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심었습니다.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협력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4장 9-10절은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하나님의 일은 함께할 때 더욱 견고해집니다.

 

23. 직업은 반드시 “생계”를 넘어 “선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경적 직업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면 이것입니다.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직업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섬기도록 우리에게 맡기신 선교적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에게 신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정직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성실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용서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희생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섬김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가?” 라는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이 복음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은 말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직장에서의 신앙은 말뿐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삶을 위한 직업이 아니라 직업이 곧 복음이고 삶이 되어야합니다. 

 

24. 좋은 일을 잘하는 것도 선교다

직장선교는 단순히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교회에 오라고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 자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직한 기업을 만드는 것,

공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사람을 존중하는 직장을 만드는 것,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약자를 보호하는 것,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미가 6장 8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직업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강력하고 치열한 영적 성장과 싸움터입니다. 

 

25. 그러나 반드시 복음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신학적 균형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직업관은 단순한 사회봉사 운동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 되자는 윤리운동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없는 선행을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십자가와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섬기는 이유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께 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해서 예수님께 사랑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섬겨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섬김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나타내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은 이 진리를 완성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선한 일을 위해 살아갑니다.

 

26. 십자가가 직업관을 바꾼다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하면 직업관이 바뀝니다.

십자가는 “너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 라고 묻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너는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직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묻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누구를 살리기를 원하시는지를 먼저 묻게 하소서.” 이것이 직업의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의 고백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우리의 궁극적인 자랑은 직함도 아니고, 연봉도 아니고, 경력도 아니고, 성과도 아닙니다. 십자가입니다.

 

27. 내가 가진 능력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여러분에게 있는 능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말을 잘합니까? 그 능력으로 사람을 세우십시오.

숫자를 잘 다룹니까? 그 능력으로 조직을 건강하게 하십시오.

경영을 잘합니까? 사람이 존중받는 조직을 만드십시오.

글을 잘 씁니까? 진리를 전하십시오.

기술이 있습니까? 사람의 삶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드십시오.

돈을 잘 법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선하게 사용하십시오.

사람을 잘 돌봅니까? 상처 입은 사람 곁에 서십시오.

가르치는 능력이 있습니까? 다음 세대를 세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는 반드시 이웃을 향한 목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은 말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유익하게.” 은사는 자기 자랑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28. 결국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모든 유산과 사명의 궁극적 목표를 “예수님처럼 사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직급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유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리고 요한일서 2장 6절은 말합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29.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통장 잔고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않습니다.

직급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명함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사무실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상패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박수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남습니까? 사랑으로 행한 것들이 남습니다.

우리가 세운 사람이 남습니다.

우리가 가르친 사람이 남습니다.

우리가 살린 사람이 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 사람이 남습니다.

우리가 남긴 신앙의 유산이 남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았던 흔적이 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평가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 7절의 고백을 우리의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30. 여러분의 직업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올려드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직업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십시오.

회사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사업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전문성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돈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시간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관계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일을 통해 제가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여기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한 단계 더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성공해서 더 많은 사람을 섬기게 하소서.” 그리고 더 깊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게 하소서.” 이것이 크리스천의 직업관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처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리고 시편 90편 17절처럼 기도하십시오.

“우리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31. 오늘 우리의 삶의 소명으로 주신 직업세계의 결단과 선언

오늘부터 이렇게 선언합시다. 

나는 내 직업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 베드로전서 4:10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태복음 4:4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일합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마태복음 22:39

 

나는 적당히 일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 골로새서 3:23

 

나는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 시편 15:2

 

나는 계속 배우겠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 잠언 1:5

 

나는 다른 사람과 협력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 전도서 4:9

 

나는 후배와 다음 세대를 세우겠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디모데후서 2:2

 

나는 내 성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겠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 빌립보서 2:4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언합시다.

 

“나는 예수님처럼 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요한복음 13:15

 

결론 — “주님, 저를 통해 누군가를 살려 주십시오”

직업은 내가 나를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시는 현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남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자기희생의 윤리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에서 시작되는 삶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내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내가 먼저 섬김받았기 때문에 섬깁니다.

내가 먼저 은혜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나눕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직업관은 결국 복음과 연결됩니다.

직업은 내가 나를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시는 현장입니다.

회사에 들어갈 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누구를 만나게 하실까?”

업무를 시작할 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유익을 주기를 원하실까?”

문제가 생겼을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문제를 통해 제가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하루를 마치면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오늘 제가 한 일이 작았을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었다면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그렇게 한 달을 살고,

그렇게 일 년을 살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직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닙니다. 예배가 됩니다.

우리의 회사는 단순한 직장이 아닙니다. 선교지가 됩니다.

우리의 전문성은 단순한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됩니다.

우리의 돈은 단순한 재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겨진 자원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단순한 경력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산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고백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잘 살았습니다.” 가 아니라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주님, 제가 남을 위해 살았습니다.” “주님, 제가 예수님처럼 살았습니다.”

 

영성 깊은 마침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우리에게 직업을 주시고,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직업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우리의 직업을 통해 우리 자신만을 높이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만을 드러내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성공만을 추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던 것처럼 우리도 낮아지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상처 입은 자를 찾아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람의 필요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옵소서.

우리의 직장에서

정직하게 하시고,

성실하게 하시고,

탁월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사랑으로 일하게 하옵소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하시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충성하게 하시고,

우리의 수고가 인정받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우리보다 뛰어난 다음 세대를 기꺼이 세우게 하시며,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다음 사람을 준비시키는 기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직업이 생계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직장이 선교지가 되게 하시며,

우리의 전문성이 이웃을 살리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성공했을 때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더 낮아지게 하시고, 낮은 자리에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원수가 있을 때 미움으로 반응하지 않게 하시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갈등이 있을 때 사람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에서 험담보다 축복이 나오게 하시고, 비난보다 격려가 나오게 하시며, 절망보다 소망이 나오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을 위한 삶으로 끝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떠난 뒤에도 우리에게 배운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게 하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다음 세대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직업이 지나간 뒤에도 사랑의 흔적이 남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이 사라진 뒤에도 복음의 열매가 남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세상의 성공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 제가 주님께 받은 것을 다시 주님께 드렸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말씀하시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직업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교회도, 우리의 전문성도, 우리의 재정도, 우리의 모든 삶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