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고 거둠으로 자원을 배가하라」
하나님께 받은 자원을 하나님 나라의 열매로 바꾸는 그리스도인의 재정 원칙
재정의 마지막 질문은 “얼마를 벌었는가?”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재정 원칙」 마지막 장의 주제인 “심고 거둠으로 자원을 배가하라”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 이르러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심고 거둔다는 원리는 새로운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재정 원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입니다.
참새도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믿음,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것,
십일조와 헌금의 원리,
수입과 지출을 계획하는 예산,
불필요한 소비를 절제하는 것,
빚을 해결하는 것,
정직하게 일하는 것,
그리고 남은 것을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흘려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에 맡기신 자원을 나는 어디로 흘려보내고 있는가?”
앞에서 배운 원칙들이 충분히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의 “심고 거둠”만 붙잡으면 오히려 재정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돈을 어떻게 많이 벌 것인가?”를 먼저 묻지 않겠습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 시편 24:1
시편 50편 10–12절도 선언합니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학개 2장 8절 역시 말씀합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돈도 사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가진 직업도,
내가 가진 지식도,
내가 가진 시간도,
내가 가진 재능도,
내가 가진 관계도,
그리고 내가 가진 재정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11–12절은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래서 재정의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재정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1. 심고 거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 가운데 하나가 고린도후서 9장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 고린도후서 9:6
그런데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많이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돈을 많이 주신다.” “100만 원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1,000만 원으로 돌려주신다.”
“하나님께 큰돈을 드리면 반드시 경제적으로 성공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심고 거둠의 원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심고 거둠의 직접적인 문맥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와 나눔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고린도후서 9:7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9:8
여기에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비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10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사 심을 것을 주시고 풍성하게 하사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그리고 11절에서는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적 배가는 내 통장 잔고의 배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배가입니다.
돈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복의 완성이 아닙니다.
그 돈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될 때 비로소 재정의 목적이 완성됩니다.
2. 우리는 저수지가 아니라 송수관이 되어야 합니다
강물에 사는 세 종류의 사람을 비유를 통해 재정적 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물을 계속 저장합니다.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쌓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사용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나머지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재정적 이미지입니다. 저수지와 송수관의 차이입니다.
저수지는 물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송수관은 물을 흘려보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정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저축은 필요합니다. 성경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잠언 6장 6–8절은 개미를 통해 준비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언 21장 20절도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따라서 성경은 무조건 돈을 쓰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축도 필요하고, 가정을 책임지는 것도 필요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은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매우 강하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러므로 문제는 저축 자체가 아니라 축적의 목적입니다.
내가 왜 모으는가?
두려워서 모으는가?
내 인생의 안전을 돈으로 확보하려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잘 관리하면서 미래의 필요와 선한 일을 준비하기 위해 모으는가?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 누가복음 12:15
그리고 이어지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누가복음 12:18–20
그러므로 성경적 재정관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가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3. 심기 전에 먼저 재정의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오늘 원고의 매우 중요한 원칙이 나옵니다.
질서 없는 나눔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심고 거두는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배운 재정의 기초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참새 믿음이 없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돈을 사용하거나, 빚을 방치한 채 “나는 믿음이 있으니까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입니다.
빚이 있다면 빚을 보아야 합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비 습관이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합니다.
가정의 재정 구조가 무너져 있다면 예산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잠언 22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로마서 13장 8절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빚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재테크가 아닙니다.
재정적 자유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더 자유롭게 순종하기 위한 영적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심기 전에 밭을 정리해야 합니다. 씨앗을 뿌리기 전에 토양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재정도 질서가 먼저입니다.
4.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별하십시오
재정의 질서는 “내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느냐”에서 시작합니다.
말라기 3장 10절은 십일조를 말씀합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러나 십일조의 핵심은 하나님께 돈을 드려서 하나님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거래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소유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이것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8절도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내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묻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누가 주셨는가?
건강은 누가 주셨습니까?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누가 주셨습니까?
머리를 사용할 수 있는 지혜는 누가 주셨습니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관계는 누가 주셨습니까?
그러므로 재정의 출발점은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 의식입니다. 다윗은 역대상 29장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없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5. 심는 것은 반드시 ‘투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분의 재정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투자하라”는 의미를 다루면서, 이것이 단순한 세상적 투자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베풀거나 하나님 나라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는 것까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재정의 “투자”는 단지 금융상품에 돈을 넣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복음 사역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세우는 데 투자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데 투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좋은 일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7–8절은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잠언 19장 17절도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 마태복음 6:19–20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21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돈 자체를 하늘로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정의 영성은 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돈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6. 그러나 “몇 배로 돌아올 것인가”를 믿음의 척도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심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10배, 30배, 60배, 100배로 주신다.” 이것을 기독교의 공식처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몇 배로 돌아올 것인가”를 단순히 믿음의 크기로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10배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00배를 주실 수도 있고, 전혀 다른 형태의 열매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주십니다. 관계를 주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영적 성숙을 주십니다. 다음 세대를 주십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땅에서의 물질적 보상 없이 하나님 앞에서의 영원한 열매로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수익률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신자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풍부함도 경험했고 궁핍도 경험했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빌립보서 4:12
그리고 그 비결의 중심에는 다음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빌립보서 4:13
여기서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물질적 성공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풍부와 궁핍 어느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며 충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성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7. 성경적 심고 거둠에는 세상의 경제 원리도 존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세상의 경제 원리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정직하게 일해야 합니다. 계약을 지켜야 합니다. 상품의 품질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법을 지켜야 합니다.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필요합니다.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야 합니다. 위험을 평가해야 합니다.
사업을 한다면 고객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세상의 경제체계 속에서 재정이 증가하기 때문에 현실의 경제 원리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돈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결코 게으름을 믿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은 말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는 놀라운 경제윤리가 들어 있습니다.
일하고 → 벌고 → 자기 필요를 책임지고 →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 이것이 성경적 경제의 한 구조입니다.
잠언 14장 23절은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라고 합니다.
잠언 12장 11절은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서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일하되 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벌되 돈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24
8. 재정의 질서를 무너뜨린 채 많이 심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 이상을 무리하게 심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무리한 나눔이나 투자가 오히려 새로운 빚과 갈등을 만들고 영적으로 낙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지혜입니다. 누군가를 돕는다고 자기 가정까지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돈을 주는 것이 성경적 사랑은 아닙니다.
성경은 먼저 자기 가족을 돌보는 책임도 분명하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디모데전서 5:8
그러므로 사랑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나눔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선행에도 분별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감당하면서 지혜롭게 흘려보내는 것이 성경적 청지기 정신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2–14절의 원리도 중요합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그리고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책임한 자기파괴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충성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9. 돈을 빌려주는 것과 돈을 주는 것을 분별하십시오
성경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잠언 19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누가복음 6장 34–35절도 말합니다.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성경은 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펴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도움의 목적이 상대를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빌려주는 것이 필요하고,
때로는 그냥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돈보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도움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재정교육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적 나눔은 단순한 감정적 시혜가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사랑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16절도 매우 실제적으로 말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믿음은 말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원을 움직입니다.
10. 재정적 배가는 돈만 배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배가”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돈이 두 배가 되는 것만 배가가 아닙니다.
100만 원을 가지고 한 사람을 살렸다면, 그것은 돈의 배가보다 더 큰 열매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어 그가 공부하고,
그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섬긴다면,
그 자원은 세대를 넘어 증식됩니다.
한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청년이 선교사가 되고,
그 선교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배가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24
여기에서 가장 깊은 심고 거둠의 원리가 나타납니다.기독교의 배가는 십자가를 통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원도 자기 자신을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리고 10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라고 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단순한 금융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생명 법칙입니다.
11. 참된 배가는 “내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얼마를 벌었습니까?” 성경의 질문은 다릅니다.
“얼마를 맡았습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맡은 것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왜입니까?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 마태복음 25:21
누가복음 16장 10절도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여기에서 재정의 핵심 단어가 나옵니다.
충성입니다. 재정의 성공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스럽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12. 정직은 재정의 가장 강력한 자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재정 상태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에 순종하며 신령한 지혜로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정직이 필요합니다.
직장인에게도 정직이 필요합니다.
상품을 파는 사람에게도 정직이 필요합니다.
투자하는 사람에게도 정직이 필요합니다.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도 정직이 필요합니다.
고객에게 상품의 장점만 말하고 단점을 숨기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사람을 속여서 번 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재정이 아닙니다.
잠언 11장 1절은 말합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6장 8절은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라고 합니다.
잠언 28장 6절도
“성실하게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하게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
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정의 복은 정직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랍니다.
13. 하나님께서 주시는 창조적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재정을 증가시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주실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합니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일하게 하시는 장면이 많습니다.
브살렐에게 성막을 만드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 출애굽기 35:31–32
요셉에게 경제정책을 세울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 창세기 41:39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 열왕기상 3: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돈을 주세요.” 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맡은 자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지혜를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직업의 기회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비용을 줄일 방법을 보여주실 수도 있습니다.
낭비를 발견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도와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14. 결국 재정의 마지막 목적은 “의의 열매”입니다
이제 오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사 심을 것을 주시고 풍성하게 하사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여기에 오늘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주십니다. 우리가 심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이 열립니까?
“의의 열매”가 열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재정의 궁극적인 열매는 통장 잔고가 아닙니다. 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
이웃을 살리는 열매,
가난한 사람을 일으키는 열매,
복음을 전하는 열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열매,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열매,
정직한 경제를 만드는 열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입니다.
빌립보서 1장 11절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우리의 재정적 열매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15. 재정의 모든 원칙을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해 봅시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마태복음 6:33
그리고
“너희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누가복음 12:28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십시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 시편 24:1
셋째, 재정의 질서를 세우십시오.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예산을 세우십시오. 잠언 27장 23절은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고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빚을 정리하십시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 로마서 13:8
다섯째, 정직하게 일하십시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수고하여…”
— 에베소서 4:28
여섯째, 필요한 것을 책임 있게 사용하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 디모데전서 5:8
일곱째, 여분의 자원을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심으십시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디모데전서 6:18
여덟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고린도전서 3:6
10배인지,
30배인지,
60배인지,
100배인지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우리는 숫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16.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오늘 이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한 문장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원을 주셔서 우리를 부자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복음의 경제학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축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누는 사람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저수지가 아니라 송수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흘려보내신 은혜가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가정으로, 교회로, 이웃으로, 가난한 자에게로, 다음 세대로,
선교 현장으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마지막 재정의 질문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벌었는가? 가 아니라, 내가 번 돈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선한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모았는가? 가 아니라, 얼마나 지혜롭게 준비하고 얼마나 기꺼이 흘려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입니다. 내 재정은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21
재정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 보입니다.
돈을 보면 우리의 우선순위가 보입니다.
소비를 보면 우리의 가치관이 보입니다.
헌금을 보면 우리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나눔을 보면 우리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청지기적 삶을 보면 우리가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재정을 하나님께 다시 올려드립시다. “하나님,
이 돈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이 직업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 재능도 주님의 것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저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재정의 배가입니다.
돈이 나를 위해 배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복음의 열매가 나를 통해 배가되는 것입니다.
영성 깊은 마침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우리에게 맡기신 재정과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돈을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벌었고, 내가 노력했고, 내가 소유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탐심을 깨뜨려 주십시오.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돈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도구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참새 믿음을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 누가복음 12:29–30
내일의 필요 때문에 오늘의 순종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사실을 믿게 하옵소서.
동시에 우리에게 지혜도 주십시오.
믿음을 핑계로 무절제하지 않게 하시고, 기도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예산을 세우고, 정직하게 일하고,
빚을 해결하고, 절제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재정에 질서를 세워 주옵소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면 그것을 정직하게 보게 하시고, 불필요한 소비를 끊을 용기를 주시고,
잘못된 재정 습관을 버릴 결단을 주시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 우리의 손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우리에게서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흘러온 은혜가 가정으로, 교회로, 이웃으로, 가난한 사람에게로, 다음 세대로, 선교의 현장으로
흘러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무분별하게 나누지 않게 하시고, 사랑과 지혜와 분별력을 함께 주옵소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약속하지 않게 하시고, 가족을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게 하시며,
도와야 할 사람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누군가를 돕는 것이 그 사람을 더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세워주는 도움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정직한 손을 주십시오.
속이지 않게 하시고, 과장하지 않게 하시고, 거짓된 이익을 취하지 않게 하시고, 사람의 눈을 피해서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게 살게 하옵소서.
사업하는 사람에게 정직을 주시고, 직장인에게 성실을 주시며, 투자하는 사람에게 분별력을 주시고,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창조적인 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식과 경험을 사용하여 더 좋은 일을 만들게 하시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리게 하시며,
더 많은 선한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돈을 많이 갖는 것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많이 버는 것보다
바르게 버는 것을 귀하게 여기게 하시며, 많이 쌓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것에 충성하게 하십시오.
오늘의 작은 헌신이 내일의 의의 열매가 되게 하시고,
오늘 뿌린 작은 씨앗이 다음 세대의 믿음이 되게 하시며,
오늘의 작은 나눔이 한 영혼을 살리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심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되 열매의 크기를 하나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10배를 기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100배의 물질적 보상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재정이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재정 때문에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며,
다음 세대가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가난한 자가 일어나고, 상한 자가 회복되고, 다음 세대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돈의 배가가 아니라 의의 열매가 배가되게 하시고,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배가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우리의 주인이시며 공급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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