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길
결정은 하나님께, 걸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제1부. 왜 우리는 이렇게 지쳐 살아가는가?
잠언 16:1-9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언 16:1)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3)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들어가는 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질병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미래가 불안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문제의 뿌리를 훨씬 더 깊이 바라봅니다.
우리의 영혼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언제 이사를 해야 하는가.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가.
투자를 해야 하는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수많은 선택 앞에서 사람은 점점 지쳐 갑니다.
결정을 잘못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일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됩니다.
1. 샌드위치 '잠언 16장'의 인생을 향해 선포하는 놀라운 비밀
잠언 16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매우 아름다운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샌드위치와 같습니다.
맨 위의 빵은 1절입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여기서 '말의 응답'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인생의 최종적인 결정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계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의 빵은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걸어갑니다. 하지만 실제로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샌드위치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속재료는 무엇일까요?
바로 3절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결정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걸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언 16장의 핵심입니다.
2. 스트레스는 하나님의 자리를 내가 대신할 때 시작됩니다.
왜 우리는 늘 피곤할까요?
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까요? 왜 기도하면서도 불안할까요?
그 이유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내가 결정권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선택을 내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혹시 잘못 선택하면 어떡하지?"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내 인생은 끝나는 것 아닐까?"
이러한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결국 중압감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려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첫걸음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정말 네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맞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시험을 받습니다.
3.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지도를 주지 않으시는가?
(1) 하나님은 '지도(Map)'보다 '동행(Presence)'을 주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가장 많이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지도를 보여 주십시오."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의외로 지도를 잘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을 주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미래보다 하나님 자신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매우 이상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놀랍게도 하나님은 목적지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리도 알려 주지 않으셨고, 기간도 알려 주지 않으셨으며, 지도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불안한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부러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지도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2) 믿음은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묻습니다.
"5년 뒤는 어떻게 됩니까?"
"제 사업은 성공합니까?"
"우리 자녀는 잘될까요?"
"노후는 안전할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질문에 답하기보다 우리에게 더 큰 선물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많이 반복하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 이유는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이사야 41:10)
하나님은 미래를 설명하시기보다 자신의 임재를 약속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다 아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3) 중압감은 지도를 원할 때 생기고, 평안은 동행을 믿을 때 찾아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뜻보다 불안을 없애 줄 확실한 계획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성공이 보장된다면 순종하겠습니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면 가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곳에 나아갔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8)
'갈 바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무모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4. 믿음이 성숙할수록 기도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이 길을 열어 주세요."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들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할수록 기도는 점점 달라집니다.
"주님, 무엇을 주시든 주님과 함께 걷게 하소서."
"결과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였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는 길보다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고난 속에서도 가장 완전한 평안을 누리셨습니다.
5.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일 뿐 아니라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잠언 16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은 단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모든 일을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알면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때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시를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환경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6.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1) 아버지 손을 잡은 아이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아버지도 잠시 방향을 찾느라 이리저리 걸어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는 한 번도 울지 않습니다. "아빠, 우리 길 잃었어!"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길이 아닙니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다면 결국 집으로 돌아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앞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계획했던 일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병과 실패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인생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이사야 41:10)
평안은 길을 다 알아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하나님과 함께 걷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초신자들이 때로는 오래 믿은 사람보다 더 담대해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눈물이 나고, 말씀을 읽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느껴집니다.
마치 아버지 손을 꼭 붙잡은 아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이 습관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보다 자신의 경험과 계산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중압감이 찾아옵니다. 계산이 많아질수록 평안은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7. 용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잠언 16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그 주권을 가장 깊이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가 바로 용서입니다.
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할까요?
내 인생을 망친 사람이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시각을 보여 줍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복수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세기 50:20)
요셉은 사람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형들은 도구였고,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상처보다 하나님의 목적을 붙들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잘못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결국 하나님께서 선하게 이끄신다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도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향해 함부로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그 안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사람은 사람과 싸우기보다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8. 순종은 가장 큰 믿음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순종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22)
순종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옳으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불순종은 잠시 내 뜻을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불순종은 더 많은 시간을 잃고, 더 큰 상처를 남기며, 더 깊은 후회를 가져옵니다.
반대로 순종은 때로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순종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호와 예비하심이 순종하는 사람의 삶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9. 결정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걷느냐입니다.
우리는 늘 묻습니다. "어느 길이 맞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물으십니다.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 것은 결정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느 길이든 축복의 길이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느 길을 가느냐보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믿음이 중압감을 이기는 힘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선택 앞에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선택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잠언 16장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깊은 영적 원리입니다.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걸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담대히 하나님께 맡기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10. 중압감은 '결과'를 붙잡을 때 생기고, 평안은 '하나님'을 붙잡을 때 찾아옵니다.
잠언 16장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결과를 붙듭니다. 성공을 붙듭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붙듭니다.
미래를 붙듭니다. 안전을 붙듭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결과를 붙드는 사람은 항상 불안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은 환경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1)
신앙은 문제를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합니다.
11.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을 오해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6장은 사람의 계획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라고 말합니다.
계획은 세우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성실하게 준비하십시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의 마지막 마침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실함입니다.
믿음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입니다.
그래서 맡김은 포기가 아니라 신뢰이며, 체념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1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인생을 모험이 아니라 '순례'로 살아갑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을 모두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이 땅을 영원한 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직장도,
오늘의 가정도,
오늘의 눈물도,
오늘의 실패도,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순례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현재의 어려움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모든 것'에는 성공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실패도, 눈물도, 질병도, 기다림도, 침묵도, 심지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엮어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일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능력입니다.
13. 결론 : 중압감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인생의 주도권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잠언 16장은 세 구절로 우리 삶을 새롭게 세웁니다.
첫째,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잠언 16:1)
내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을 아십니다.
둘째, 맡김이 믿음입니다. (잠언 16:3)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걸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잠언 16:9)
우리는 한 걸음씩 걸어갈 뿐입니다. 그러나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오늘 마음이 무겁습니까? 앞날이 두렵습니까?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중압감 속에서 지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그 짐을 네가 지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길을 안다."
"나를 신뢰하라."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완벽한 계획도 아닙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을 붙든 사람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결코 버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4. 영성 깊은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잠언 16장의 말씀을 통해 제 삶의 주인이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다시 고백합니다.
저는 미래를 통제하려 했고, 모든 결정을 제 힘으로 책임지려 했으며, 결과를 붙들려고 애쓰다가 스스로 중압감과 스트레스의 짐을 짊어졌습니다.
주님, 이제 그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결정도 주님의 것이고, 걸음도 주님의 것이며, 제 인생의 마지막 결론도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지도를 구하기보다 주님의 손을 붙잡게 하시고, 요셉처럼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응답되지 않는 기도 속에서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음성을 듣게 하시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임재와 '체온'을 잃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불안보다 신뢰를 선택하게 하시고, 계산보다 순종을 선택하게 하시며, 결과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손을 붙드시고, 한 걸음 한 걸음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제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저를 통하여 많은 영혼이 참된 평안과 소망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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